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한국 경제는 역대 최저 수준의 낮은 금리와 물가에도 불구하고 소비와 투자가 꽁꽁 얼어붙는 저금리·저물가·저투자·저소비의 4저(低) 불황에 빠져 있다. 돈을 풀어도 돌지 않는 ‘돈맥경화’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부동자금은 무려 757조원으로 정부 예산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제껏 한국 경제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따라서 생경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현상이다.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초고속·압축 고령화, 제조업 분야에서의 후발자 이익 소멸로 인한 캐치업 성장의 종료, 낙수효과의 소멸과 고용 없는 성장의 구조화, 근로정신의 퇴화로 인해 타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경제활동참가율, 무상복지 남발로 인한 재정투입의 효율성 저하 등을 그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많은 기대 속에서 출범한 최경환 경제팀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며 경기부양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런데 일주일이 멀다 하고 각종 대책을 쏟아부은 초이노믹스가 과연 4저 불황에 빠진 한국 경제를 구출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 견해가 늘고 있다. 특히 “정부와 한은이 잠재성장률 제고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근본적인 구조개혁과 경제체질 개선은 뒷전에 둔 채 단기경기부양을 위한 돈 풀기 정책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의 질타는 뼈아프다. 이 의원은 “일본식 장기침체를 걱정하면서도 정책적으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촉발한 확장적 재정정책과 기준금리 인하 등 단기적 경기부양을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 아니라 이미 일본이 실패한 길을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부양에 실패하고 재정건전성 악화와 가계부채 증가만 초래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필자는 초이노믹스의 최대 문제점은 ‘과녁의 불명확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베노믹스의 과녁은 명확하다. 디플레 탈출이다. 초이노믹스의 과녁은 무엇인가. 경기부양이란 말은 너무도 두루뭉술하다. 초이노믹스는 초기에 내수활성화를 강조하다가 최근에는 엔저와 글로벌 경기둔화로 인한 수출부진을 걱정하고 있으며, 과감한 규제개혁을 외치다가도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한다.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처방을 내놓는 종합백화점식 정책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초점이 명확지 않다. 여러 곳을 겨냥함으로써 힘을 분산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기존의 성장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은 서비스업보다 제조업을, 내수보다 수출을 우선하는 불균형성장 전략을 추진해 왔고, 많은 비판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전후방 연쇄효과를 거둠으로써 세계가 깜짝 놀란 발전과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선도 부문의 성장이 비(非)선도 부문으로 확산되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현저히 약화되었고, 수출과 제조업의 호조 속에서 내수와 서비스업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노동력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는 탈공업화와 서비스화는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한국 역시 1990년대 이후 이러한 현상이 본격화되었는데, 문제는 서비스업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하고 있는 데 반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작성한 산업연관표에 의하면 산업구조(산출액 구성비)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46.3%, 2009년 47.7%를 기록한 후 2010년에 50.2%, 2011년 52.2%로 상승 추세에 있다. 반면 서비스업의 산출액 구성비는 2005년 40.0%, 2009년 39.3%, 2010년 37.7%, 2011년 36.5%로 축소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산출액 구성비와는 달리 취업자 수 구성비는 2012년 제조업 15.8%, 서비스업 69.8%로 서비스업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 수치가 2005년에는 각각 18.4%, 61.8%였던 것을 보면, 제조업의 경우 생산비중은 늘어나지만 고용비중은 줄어들고, 서비스업은 생산비중은 줄어들지만 고용비중은 늘어나는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생산과 취업에 있어서의 이러한 불균형은 양 산업의 취업유발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종 수요 10억원 발생 시 일자리 수 증가를 나타내는 고용유발 계수를 보면, 2011년 기준 제조업이 8.7명, 서비스업이 15.8명으로 서비스업이 2배 가까이 높다. 제조업 중에서도 IT 업종인 전기 및 전자기기의 경우 6.1명으로 매우 낮다.

생산 비중에 비해 고용 비중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1993년 제조업 대비 102.7%였으나 2010년에는 제조업의 46.8%까지 하락하였다. 제조업의 2001~2010년 취업자당 노동생산성 평균증가율은 7.02%로 높은 반면, 서비스업은 1.26%로 더디게 성장하였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생산성본부의 2013년 4월 발표에 의하면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9만7382달러로 비교 대상 OECD 19개 회원국 중 2위를 차지했으나, 서비스업은 4만5602달러로 비교 대상 22개 회원국 중 20위에 머물렀다. 제조업은 미국 대비 노동생산성이 80.8%였고 일본과 비교해서는 118.3%로 오히려 높았으나, 서비스업은 미국의 48.8%, 일본의 66.7%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의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은 2010년 미국이 77.6%, 일본이 83.0%로 우리나라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제조업과 비교해 노동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고 급여 수준도 낮은데(2010년 기준 서비스산업의 임금 수준은 제조업의 55%) 제조업 종사자 수가 줄고 서비스업 종사자 수가 느는 현상이 바로 탈공업화와 서비스화의 한국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탈공업화가 중국의 급속한 추격 등으로 타 선진국과 비교해 국민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단계에서 조기에 이루어진 것이었듯이, 한국의 서비스화 역시 준비되지 않은 것이었다.

제조업 부문에서 선진국 따라잡기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키워오던 한국 경제는 세계화의 진전으로 경쟁이 격화되자 생산자동화와 해외 생산기지 구축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강화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국내 고용인원은 줄어들게 되었고 그 잉여인력들이 서비스업으로 몰려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의 구조조정은 이러한 흐름의 결정적 확산이었다. 제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퇴출된 인력들이 음식·숙박, 도소매 등 영세자영업자로 변신하는, 즉 고부가가치 제조업에서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의 노동력 이동이 바로 서비스화의 한국적 특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비스업의 취업자 증가는 ‘제조업의 밀어내기’가 낳은 ‘비자발적 취업 증가’이며, 서비스화의 과정에서 고부가가치화를 이룬 여타 선진국과 달리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근로소득을 낮췄다는 점에서 ‘빈곤적 고용 증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최근 4년간 늘어난 패스트푸드점(치킨·피자·햄버거 등)은 9444곳으로 2009년보다 64.1% 증가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개인사업자는 537만명으로 2009년의 487만명보다 10.4%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총인구 증가율(1.8%)의 6배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취업자 대비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 비율(2011년 28%)은 여타 선진국(2011년 11개국 OECD 평균 13%)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위의 표를 보면 총 취업자 수 대비 서비스산업의 고용비중은 OECD 평균에 근접한 수준으로 이것만 보아서는 서비스 부문에서의 추가적 일자리 창출 여력이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OECD 평균보다 10% 낮고 유사한 고용구조를 지닌 독일·일본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서비스업의 생산성 향상을 통한 고부가가치화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서비스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을 기준으로 볼 때 OECD 회원국 중 32위에 불과하다. 이는 선진국 벤치마킹을 통한 서비스업의 캐치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제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미국·일본보다 낮은 반면, 서비스업의 취업유발계수는 미국, 일본보다 높다. 이처럼 한국의 서비스산업은 무한한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향후 양질의 일자리 확보 여부는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발전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제조업 중심 불균형성장 전략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서비스산업을 새로운 국가전략산업으로 선정하는 정책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출과 내수의 쌍끌이 전략이라는 기존의 교과서적 해법을 되풀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국가적 자원배분과 규제혁파의 우선순위를 서비스산업에 두어야 한다. 정부 정책의 초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서비스업을 옭아매는 규제가 제조업보다 10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대 유망 서비스업(보건의료·교육·관광·금융·소프트웨어)의 규제가 전체 서비스업 규제의 47.6%를 차지했다. 정부는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각종 이익집단과 혈투를 벌여 이런 장벽들을 부수어야 한다. 통제와 보호라는 서비스업에 대한 기존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자유로운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서비스 빅뱅’의 요체다.

서비스 빅뱅으로 인한 새로운 세계의 출현은 대한민국의 풍경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규제 혁파를 통한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그에 따른 새로운 수요의 창출은 침체된 내수를 활성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내수와 수출에 대한 전통적 구분에서 벗어나 세계화시대에 맞는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해야 한다. 한국은 2012년에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증가속도가 피부양인구의 증가속도보다 빠른 ‘인구보너스기’가 종료되었다. 2016년부터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 가계부채는 늘어나고 비정규직이 600만명을 넘어서는 등 내국인들의 소비여력은 줄어들고 있다.

이럴 때 내국인들의 소비만으로 내수를 활성화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국내에서 소비하는 것 역시 내수로 잡힌다. 올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14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600만명이 중국인 관광객인 요우커(遊客)들이다. 청와대 앞 삼계탕집부터 설악산과 해운대, 이르기까지 요우커가 없는 곳이 없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방한 요우커가 올해 유통·숙박·운수·문화예술 등 각 업종에 미칠 파급 효과는 23조2000억원으로 올해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예상치의 1.6%에 해당한다. 전반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주요 호텔과 면세점, 화장품, 패션 기업 등의 올해 매출이 두 자릿수로 성장한 데는 요우커 파워가 절대적이었다.

많은 한국인은 삼성전자 휴대폰을 100만원어치 수출하는 것보다 요우커들이 국내에서 100만원어치 소비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과 내수활성화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미 직감적으로 간파하고 있다. 비행기를 타면 한국에 2시간 내에 올 수 있는 중국과 일본 등의 인구가 무려 3억명이다. 이제 우리는 5년 내로 5000만 관광객을 유치해 ‘1억 내수 시대’를 열겠다는 원대한 구상을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을 오고 싶은 나라, ‘매력 한국(attractive Korea)’으로 만들어야 한다. 서비스 빅뱅은 매력 한국의 문을 여는 열쇠다. 지난해 프랑스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8470만명으로 6600만명인 내국인을 훨씬 초과하였다. 5000만 관광객 유치를 통한 1억 내수 시대 개척이 결코 허황된 목표가 아님을 보여준다.

서비스산업의 매력은 산업 간 융합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의료관광이 대표적 예다. 컨설팅 업체 ‘매킨지 앤드 컴퍼니’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전 세계 의료관광 시장 규모는 1000억달러로 2004년 400억달러에서 2.5배나 증가하였다. 의료관광객 수는 2005년 1900만명에서 2012년 5600만명으로 3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의 의료관광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을 찾은 의료관광객은 2009년 6만여명에서 2012년 15만9464명으로 2.5배 이상 증가했고, 진료 수입은 547억원에서 2391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연평균 성장률은 무려 37.3%이다. 그러나 의료관광객 수는 싱가포르, 태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경쟁국들에 비해 크게 밀린다. 한국은 고교 이과생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전국 41개 의과대학을 다 채운 후 그 다음 성적의 학생들이 서울대 공대에 진학하는 나라다. 그런데 의료관광산업의 경쟁력은 의료기술과 서비스 수준을 한참 못 따라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경쟁국들은 ‘아시아의 건강 수도’(태국), ‘싱가포르 메디신’, ‘하이테크 힐링’(인도)을 모토로 지구촌의 의료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규제를 없애는 등 경쟁적으로 의료관광 허브의 꿈을 키우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높은 의료 수준과 영어 사용, 서구적 문화와 사회적 규범, 다수의 JCI 병원(미국의 병원 인증 제도) 등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치료를 위한 장기 비자 발급 절차가 복잡하지 않고, 싱가포르관광청은 4개 국어로 주요 병원과 의료관광 상품을 안내하는 포털사이트(www.singaporemedicine.com)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산업은 공공성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과도한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산업이라는 표현조차 금기시하는 풍조가 강하다.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치료·영양·휴양의 3박자를 갖춘 웰니스(wellness) 호텔이 오래전부터 성업인데, 한국은 최근에서야 의료전문호텔인 메디텔의 설립을 허용하였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 3.1명인데 한국은 1.7명이다. 의사 1인당 진찰 건수는 한국이 미국의 4.6배, 스웨덴의 8.8배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을 통제하고 있다. 종합병원의 외국인 환자 병상 수도 전체의 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의 설립은 요원하기만 하다.

우리에게는 한류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대장금’과 ‘별그대’가 없었다면 그렇게 많은 요우커들이 성형을 하러 한국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문화콘텐츠+의료+관광’이라는 융합물은 매력 한국의 대표상품이 될 수 있다. 그 이외에도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적 융합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인들의 그 많은 ‘끼’를 두었다 어디에 쓸 것인가.

우리가 어떤 구상과 각오로 임하는가에 따라 한국 경제의 앞날은 크게 바뀐다. 서비스 빅뱅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과제가 아니다. 고통스럽지만 한국 경제의 중흥을 위해 반드시 돌파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단언컨대 서비스 빅뱅이야말로 4저 불황에서 탈출하여 1억 내수 시대를 여는 지름길이다.

신지호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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