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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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의 전북 군산공장 폐쇄로 미국 GM(제너럴모터스)의 한국 철수설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GM 측은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의 지원이 없으면 GM의 한국 철수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GM의 한국 철수 검토는 동아시아 자동차시장 재편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그 가운데 상하이GM(上汽通用)이 있다. 미국 GM이 중국 상하이차(上汽)와 합작해 1997년 상하이 푸둥(浦東)에 설립한 상하이GM은 중국 자동차시장 2위 기업이다. 2017년 기준으로 상하이GM이 중국 시장에서 판매한 자동차는 모두 199만대. 중국 내수시장 1위 기업인 상하이폭스바겐(206만대)에 이어 2위다.

여기에 GM과 상하이차, 우링(五菱)차가 바오쥔(寶駿) 브랜드로 합작생산하는 ‘상하이GM우링차(上汽通用五菱)’의 판매량(155만대)까지 합하면 354만대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사드(THAAD) 문제로 중국에서 날벼락을 맞은 베이징현대차(北京現代)가 중국 시장에서 판매한 78만대의 4.5배에 달하는 판매량이다. 이 밖에 상용차를 생산하는 이치GM(一汽通用) 등 군소 GM 합작사들을 포함하면 중국 내 판매량은 400만대가 넘는다. GM 본사는 지난 1월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해 GM과 합작사가 404만대를 판매해 처음으로 400만대를 돌파했다”며 “전년(2016년) 대비 4.4% 성장으로, 중국은 6년 연속 GM의 최대 소비시장”이라고 했다.

이러한 중국 GM의 위세와 비교하면 한국GM의 성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한국GM이 지난해 판매한 자동차는 완성차 기준으로 52만대. 이 중 수출이 39만대, 내수는 13만대에 그친다. GM으로서는 한국 시장은 수출과 내수를 통틀어도 중국(404만대)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2012년 한때 127만키트(자동차 대수에 해당)에 달했던 한국 GM의 CKD(완전해체조립품) 수출도 판로가 막히면서 2016년 66만키트로 반토막 났다. 한국GM의 박해호 이사는 “지난해에는 CKD 54만키트를 수출했다”며 “CKD는 부품을 묶어서 보내는 것이라서 공장가동률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상하이GM은 생산성에서도 월등하다. 상하이GM은 187만대의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음에도 100% 이상 풀가동해서 연간 199만대의 차량을 팔아치웠다. 반면 91만대의 생산설비를 갖춘 한국GM은 완성차 기준 연간 판매량이 52만대에 그친다. 상하이GM 측이 밝힌 설비가동률은 112%에 달하는 데 반해, GM 측이 밝힌 한국GM의 설비가동률은 60% 내외다. 특히 한국GM이 공장폐쇄를 단행한 군산공장은 가동률이 20%대에 그친다.

GM 안에서 상하이GM과 한국GM이 차지하는 위상도 천지차이다. 상하이GM은 지난해 9월 15일, 메리 바라 GM 회장과 천홍(陳虹) 상하이차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 시장 누적판매 1500만대 돌파 기념행사를 열었다. 상하이GM측은 “1500만대는 GM의 중국 진출 20년 만에 거둔 성과”라며 “1500만대 기록을 돌파하는 데 이치폭스바겐(제일차+폭스바겐)은 30년, 상하이폭스바겐(상하이차+폭스바겐)은 25년, 상하이GM(상하이차+GM)은 불과 20년이 걸렸다”고 자평했다. 메리 바라 회장은 2016년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GM의 첫 여성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 인천 부평공장을 찾아오려 했으나 돌연 취소한 뒤 무기연기했다. 현재 한국GM의 구조조정은 올 들어 세 차례나 방한한 배리 앵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이 지휘하고 있다.

숫자만 놓고 단순 비교해 보면 GM으로서는 글로벌 전략 차원에서 비용만 들어가고 판매량은 중국의 8분의 1도 안 되는 한국을 계속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한국GM의 주력 생산기지인 인천 부평과 전북 군산, 경남 창원은 상하이GM의 주력 생산기지인 상하이 푸둥, 산둥성 옌타이(烟台), 랴오닝성 선양과 비행기로 1~2시간 거리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런데 한국 공장이 생산성 떨어뜨리는 고임금의 강성노조와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에 시달린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GM의 임직원은 1만6000명, 협력업체 직원은 14만여명에 달한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지난 2월 20일 “군산 지역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긴급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중국 시장 진출 20년을 맞아 1500만대 판매 돌파 기념행사에 참석한 메리 바라 GM 회장(왼쪽 세 번째)과 천홍 상하이차 회장(네 번째). ⓒphoto 상하이GM
지난해 9월 중국 시장 진출 20년을 맞아 1500만대 판매 돌파 기념행사에 참석한 메리 바라 GM 회장(왼쪽 세 번째)과 천홍 상하이차 회장(네 번째). ⓒphoto 상하이GM

상하이GM 성공 토대는 ‘대우차’

한국과 중국의 GM 진출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으로선 억울한 측면도 있다. 정작 상하이GM의 성장 토대가 한국GM의 전신인 ‘대우차’이기 때문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경제학)와의 대화를 모은 ‘김우중과의 대화’라는 회고록에서 “GM이 대우차로 중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했다는 건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며 “GM이 경쟁사들보다 중국에 제일 늦게 진출했지만 지금은 중국 시장에서 1등(실제로는 2등)이 되어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GM이 중국 시장에 뛰어든 것은 1997년이다. 중국 진출 시 현지 기업과 합작해야 하는 진입 규칙에 따라 중국 최대 소비시장인 상하이에 본사를 둔 상하이차를 합작 파트너로 정했다. 미국 업체 중 가장 먼저인 1995년 중국 시장에 뛰어든 포드차보다 2년이나 늦었다. 역시 상하이차와 합작으로 1985년 중국 시장에 뛰어든 폭스바겐에 비해서는 무려 12년이나 늦었다. 김우중 회장은 “GM이 중국 시장에 빨리 들어가려면 우리 차(대우차)를 갖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GM이 중국 시장에 뛰어든 1997년은 대우차가 군산에 자동차 생산공장을 준공한 시기와 일치한다. GM은 대우차의 전신인 신진자동차 시절부터 오랜 합작 관계를 형성해왔다. 대우차와 GM은 1992년 지분관계를 정리한 다음에도 큰 틀에서 협력을 계속해왔다. GM은 1997년 중국 시장 진출 이후에도 인천 부평과 전북 군산 등지에서 대우가 생산한 자동차를 중국으로 가져가 판매했다. 당시 경남 창원 공장은 대우중공업(대우조선) 산하 대우국민차로 계열이 달랐다.

대우는 국내 대기업 중에 중국 시장에 대한 연구가 가장 많이 축적된 기업이었다. 한·중수교 전인 1987년에 이미 중국 푸젠성 푸저우(福州)에 냉장고 합작공장을 세우며 국내 기업 중 중국에 가장 먼저 진출했었다. 1994년에는 이미 중국 서남부 광시(廣西)자치구 구이린(桂林)에 연산 5000대 규모의 버스 생산라인(현 자일대우버스 구이린 법인)까지 구축한 터였다.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이보다 훨씬 늦은 2002년이다.

그 결과 상하이GM은 대우차가 자체 개발한 소형차 라노스(소형)를 중국 시장에 맞게 개조한 ‘싸이오(赛歐·Sail)’를 출시해 대박을 쳤다. 라노스는 대우차가 1996년부터 GM에 피인수된 2002년까지 생산한 모델이다. 대우차의 전성기였던 1997년 전후 자체 개발한 신차(新車) 삼총사(라노스·누비라·레간자) 중 소형차 시장을 겨냥한 전략차종이었다. 1997년 자동차시장 태동기에 있던 상하이GM은 소형차 라노스를 중국에 가져가 다시 조립한 뒤 뷰익 싸이오(2001~2004년), 쉐보레 싸이오(2005~현재)란 브랜드를 붙여 판매해 왔다. 특히 싸이오는 1997년 중국에 진출한 상하이GM이 내수 시장에 안착하는 데 기여한 가장 중요한 모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한국GM이 이런 식으로 중국에 수출한 반제품 물량은 압도적이다. 한국GM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으로 수출한 물량만 누적대수로 349만대 이상에 달한다. 2위 우즈베키스탄(190만대), 3위 멕시코(81만대)에 비해 압도적 물량이다. 한국GM이 생산한 차종 가운데 2002년부터 2013년까지 259만대 이상 수출한 준중형 라세티 역시 누비라의 후속 모델이다. 라세티 역시 중국에서 뷰익 카이웨(凱越·Excelle)란 브랜드로 2003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268만대를 팔아치웠다.

GM이 한국GM을 중국 시장을 겨냥한 연구개발, 반(半)제품 생산기지로 활용해왔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의 기자 겸 작가였던 마이클 던도 ‘GM의 중국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미국 바퀴, 중국 도로(American Wheels, Chinese Roads)’라는 책에서 “상하이GM의 성공에는 GM대우(한국GM의 전신)가 명백하게 핵심적 역할을 했다”며 “2002년에 불과 4억5000만달러에 인수한 이 회사(대우차)는 GM의 핵심적인 글로벌 제조 베이스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중국 산둥성 옌타이의 대우차 엔진공장을 인수한 상하이GM 옌타이 공장. ⓒphoto 상하이GM
중국 산둥성 옌타이의 대우차 엔진공장을 인수한 상하이GM 옌타이 공장. ⓒphoto 상하이GM

옌타이항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쉐보레 브랜드의 수출용 상하이GM차. ⓒphoto 상하이GM
옌타이항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쉐보레 브랜드의 수출용 상하이GM차. ⓒphoto 상하이GM

상하이GM이 차지한 옌타이 대우공장

특히 상하이GM이 산둥성 옌타이에 있던 대우차 엔진공장을 인수한 것은 성장의 날개를 달아줬다. 1992년 한·중수교를 전후해 한국과 가까운 산둥반도 일대에는 인천 부평에서 생산된 다량의 대우차가 밀수돼 번호판을 바꿔 단 채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에 산둥성의 당 간부들은 한·중수교 직후 대우차의 인천 부평공장을 시찰하고 대우차와 합작을 타진했다. 그 결과 대우차는 1997년 중국 진출 거점으로 낙점한 산둥성 옌타이경제기술개발구에 중국 제일자동차(이치)와 합작으로 자동차 엔진과 변속기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공장을 구축했다.

1999년 10월에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김태구 대우차 사장을 비롯 권병현 주중대사, 송파탕(宋法棠) 산둥성 부성장(후일 헤이룽장성 당서기) 등 한·중 양국 인사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준공식을 열기에 이르렀다. 당시 김태구 대우차 사장은 “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에 이어 완성차 합작사업도 조속히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옌타이공장에서 생산한 초기물량은 인천 부평과 전북 군산으로 다시 들여와 대우차에 탑재됐다.

하지만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전까지 중국 내 완성차 공장 건립은 이뤄지지 못했다. 김우중 회장은 “완성차는 만들기로 다 합의했다가 그쪽 사장(제일자동차)이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는 바람에 완공이 지연됐다”며 “우리가 워크아웃 들어가는 바람에 완공을 못 했지만 완공했으면 프리미엄만 10억달러가 넘었을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결국 대우차 옌타이 엔진공장은 1999년 대우차와 삼성차(현 르노삼성) 간의 소위 ‘자동차 빅딜’이 무산되면서 대우그룹이 ‘사형선고’를 받자 함께 공중에 붕 떴다가 2004년 상하이GM에 인수되기에 이른다. 이 공장이 바로 상하이GM의 중국 내 4대 생산거점의 하나로 싸이오 등 쉐보레 브랜드 차를 주로 생산하는 옌타이 동위에(東岳) 공장이다. 특히 옌타이 엔진공장 인수로 생산능력을 크게 끌어올린 상하이GM은 1997년 중국 진출과 함께 들여온 뷰익 브랜드에 이어 2004년 캐딜락, 2005년 쉐보레 브랜드를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중국 안후이성 광더현의 상하이GM 자동차 주행시험장. ⓒphoto 상하이GM
중국 안후이성 광더현의 상하이GM 자동차 주행시험장. ⓒphoto 상하이GM

결과적으로 한국GM의 전신인 대우차가 상하이GM의 급성장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GM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뷰익은 118만대, 쉐보레는 54만대, 캐딜락은 17만대가 판매됐다. 특히 GM의 최고급 브랜드인 캐딜락은 2017년 처음으로 중국이 본고장인 미국을 추월해 최대 시장으로 떠올랐다.

현재 상하이GM은 상하이 푸둥을 비롯해 산둥성 옌타이, 랴오닝성 선양, 후베이성 우한(武漢)에 4대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화동, 화북, 화중지방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입지다. GM의 또 다른 합작사인 ‘상하이GM우링’도 광시(廣西)자치구 류저우(柳州)를 비롯 산둥성 칭다오, 충칭(重慶)에 3대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GM의 합작사가 중국 내에서 직접 고용하는 임직원만 모두 5만8000명에 달한다. 상하이에는 GM의 글로벌 연구개발기지 팬아시아자동차기술센터(PATAC)도 두고 있다. 2012년에는 안후이성 광더(廣德)현에 16억위안(약 2700억원)을 들여 5.67㎢ 부지에 길이 9036m의 고속주행로를 갖춘 자동차 주행시험장도 조성했다.

상하이GM은 2001년부터는 중국 내수시장을 넘어서 필리핀에 뷰익 GL10 5000대를 수출한 것을 신호탄으로 남미 칠레와 페루, 아프리카 리비아에까지 수출하고 있다. 상하이GM에 따르면, 지난해 10월에도 옌타이 공장에서 생산한 쉐보레 ‘싸이오3’ 2900대를 멕시코와 카리브해 등 북미 지역에 수출했다. 2001년부터 누적수출량은 이미 40만대를 돌파했다. 불과 비행기로 1~2시간 거리의 인천 부평이나 전북 군산, 경남 창원에 공장을 별도로 둘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중국산 GM차를 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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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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