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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들고 반짝반짝 해보세요. 감각이 이상한 곳은 없죠?”

“그림 그려보시고 이름 한번 써보세요.”

“몇 퍼센트나 좋아진 것 같으세요? 제가 보기에는 90퍼센트 이상인데.”

“100퍼센트요? 하하하.”

“자 MRI 찍어보고 한 번만 더 갑시다. 진짜 100퍼센트로 올려봅시다.”

지난 5월 18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수전증 치료를 위한 초음파 뇌수술을 참관했다. 수술 장면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수술을 집도한 장진우(60) 연세대 의대 신경외과학 교수(뇌연구소 소장)는 메스 대신 마우스를 잡고 있었다. 환자는 수술대 대신 원통형의 MRI(자기공명영상장치) 기계 안에 누워 있었다. 장 교수는 MRI실 밖에서 컴퓨터로 환자의 뇌 영상을 보면서 수술을 진행했다. 뇌수술인데도 환자는 마취도 하지 않았다. 장 교수는 스피커를 통해 환자와 농담을 주고받기까지 했다.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상태를 점검했다. 컴퓨터 화면에 뇌의 한 지점이 빨간 점으로 표시됐다. 점 부위에 마우스를 갖다 대니 ‘57도’라고 온도가 표시됐다. 점 주변의 온도는 40도를 가리켰다. 장 교수는 만족스러워했다.

장 교수가 고집적 초음파로 수전증 수술을 하는 모습이다. 장 교수는 2012년부터 초음파를 활용한 수전증 치료를 시작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고 세계적으로도 최초이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듯 초음파를 모아 목표 지점에 쏘면 열에너지가 수전증 등 뇌의 기능이상을 일으키는 신경회로를 차단한다. 정확하게 목표지점에 명중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헬멧처럼 머리에 쓴 초음파 기계를 통해 1000여개의 초음파가 뼈를 뚫고 뇌 속으로 들어가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지는 것이다. 이때 병변 주변의 온도는 올라가면 안 된다. 1㎜라도 어긋나면 다른 감각 기능에 이상이 올 수도 있다. 좌표를 위아래로 미세하게 이동하면서 치료를 해갈수록 환자의 상태가 좋아졌다. 이날 초음파가 ‘공격한’ 부위는 5×8㎜ 크기였다.

수술 시간은 1시간여. 환자가 걸어나와 의자에 앉았다. 환자는 수술 전만 해도 손이 떨려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었다. 이름 석 자 쓰는 데도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수술 결과를 보기 위해 달팽이집 모양의 원을 따라 그림을 그리고 이름을 쓰게 했다. 수술은 대성공. 1시간 만에 환자는 극적으로 달라졌다. 상하 10㎝를 움직이며 덜덜 떨리던 손이 정지화면이 된 듯 멈췄다.

뇌신경계 수술의 새로운 길

진단용이나 피부미용에만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던 초음파가 뇌신경계 질환의 해결사로 나섰다. 수전증, 파킨슨병, 우울증, 강박장애에서 치료 효과를 확인한 데 이어 치매, 악성 뇌종양 등 난치성 뇌질환 치료에까지 도전장을 던졌다. 초음파를 세계 최초로 뇌질환에 적용한 사람이 바로 장진우 교수이다. 장 교수는 정위기능신경외과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꼽힌다. 기능신경외과는 뇌혈관질환, 척추질환 등 구조적 이상을 치료하는 것과 달리 파킨슨병, 우울증처럼 중추신경계의 기능적 이상을 치료하는 분야이다. 특히 뇌조직의 손상을 막기 위해 헬멧처럼 생긴 정위수술기구(stereotactic frame)를 뇌에 고정시키고 x, y, z 좌표로 표적을 찾아 수술하는 방법을 정위기능신경외과라고 한다. 메스가 필요 없는 뇌수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생소한 분야이지만 정위기능신경외과는 컴퓨터 등 첨단 기술과 뇌과학을 활용해 최근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마지막 영역, 뇌의 비밀을 찾는 가장 ‘핫’한 분야이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야말로 뇌과학, 의학, 공학이 융합된 최첨단 미래의학이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고, 뇌에 전기장치를 심어 중풍환자의 팔다리를 움직이는 등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이미 기능신경외과학에서는 현실이 되고 있다.

특히 초음파를 이용한 뇌수술 분야에서 장 교수는 세계 최고로 꼽힌다. 수전증을 비롯해 세계 최초로 강박장애, 파킨슨병, 우울증 환자에게 초음파 수술을 시행했다. 2012년이 첫 도전이었다. 장 교수의 성공 이후 세계 각국에서 초음파 뇌수술을 시도하고 있다. 초음파의 신기술을 개척한 공로로 장 교수는 지난 3월 대한의학회와 바이엘코리아가 주는 바이엘임상의학상을 수상했다.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 전기자극을 심어 운동장애를 치료하는 심부뇌자극수술(DBS)을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것도 장 교수이다. 10년 전 EBS ‘명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환자를 DBS 수술로 벌떡 일어나게 만든 장면은 화제가 됐다. 그가 수술한 신경계 뇌질환 환자 수가 7000여명에 이른다.

그의 이름은 국내에서보다 세계 학회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현재 기능신경외과학의 총본산인 세계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내년 6월 뉴욕에서 열리는 학회에서는 회장 취임이 예정돼 있다. 57년 역사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학회 규모도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 학회에는 전 세계에서 1000여명이 모였다. 의학계에서 한국인이 세계 리더가 되는 일은 좀체 드문 일이다.

초음파 뇌수술의 세계적 대가 장진우 교수가 수전증 환자의 뇌 영상을 보면서 수술하고 있다.
초음파 뇌수술의 세계적 대가 장진우 교수가 수전증 환자의 뇌 영상을 보면서 수술하고 있다.

치매·뇌종양 치료에 도전하다

최근 장 교수는 초음파를 이용해 치매와 뇌종양을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난치성 신경계 질환 연구에 또 한 번 큰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의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치매·뇌종양 치료에서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는 뇌혈관연결막(BBB·Blood Brain Barrier)이다. BBB는 우리 몸의 혈액이 뇌에 공급될 때 혈액 속의 세균 등 이물질을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뇌를 지키는 관문인 셈인데 워낙 조직이 치밀하다 보니 대부분 치료 약물이 이 막을 통과하지 못한다. 치매 치료 연구도 이 막 앞에서 멈춰 있는 상태이다. 뇌를 보호하는 장치가 거꾸로 뇌 치료를 막고 있는 셈이다.

장 교수는 초음파 뇌수술을 하면서 초음파가 BBB를 느슨하게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BBB를 안전하게 열면 치매·뇌종양 치료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진다. 지금까지 굳게 닫혀 있던 빗장을 열어젖힌 셈이다. 효과를 보지 못한 치료법도 이 방법을 이용하면 새롭게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미 동물실험에서는 성공을 거뒀다. 임상 치료에서 효과가 입증되면 치매·뇌종양 정복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지난 5월 21일 연세대 의과대학 연구실에서 잠깐 짬을 낸 장 교수와 만났다. 그는 수술, 외래, 학회 활동으로 정신없이 바빴다. 매일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해 일주일이 휴일 없이 ‘월화수목 금금금’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줄기세포를 뇌에 넣어 치매와 뇌종양을 치료하는 것이 가장 최근 세계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연구 주제입니다. 그런데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엄청나게 줄기세포를 쏟아부어도 BBB에 막혀 실제 들어가는 양은 아주 극소량이기 때문입니다. 약물로 BBB를 열기 위한 시도를 하는 등 다양한 연구가 있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초음파 수술을 하다 보니 BBB가 잘 열리는 겁니다. 실제로 쥐 실험을 통해 초음파로 BBB를 자극하고 줄기세포를 넣었더니 5~10배가 더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사람에게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금 세계 학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는 동물실험을 바탕으로 초음파를 이용한 치매와 뇌종양 치료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뇌종양의 경우 가장 악성인 교모세포종 치료에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5월 20일 별세한 LG그룹 구본무 회장도 지난해 교모세포종이 발견돼 1년여 투병생활을 했지만 치료에 실패했다. 장 교수는 교모세포종 치료의 가능성이 보이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뇌종양 치료는 지난해 가을부터 준비해 임상 연구를 앞두고 있다. 초음파로 BBB를 열어 약물과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미국 초음파재단으로부터 100만달러를 지원받아 하버드대학과 공동으로 임상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장 교수 식약처에 임상 허가 신청서를 내고 6월 초로 예정된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식품의약청(FDA)으로부터 최근 임상 승인을 받은 상태이다. 우리 측 허가만 떨어지면 7월 초부터 초음파로 악성 뇌종양을 잡는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다.

초음파로 수전증 수술을 한 환자의 수술 전후 상태 비교. 수술 1시간여 만에 환자가 그린 그림과 글씨가 극적으로 달라졌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초음파로 수전증 수술을 한 환자의 수술 전후 상태 비교. 수술 1시간여 만에 환자가 그린 그림과 글씨가 극적으로 달라졌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캐나다는 수천억, 한국은 제로

치매환자에 대한 초음파 수술의 경우도 임상 시험을 위한 준비는 모두 돼 있다. 캐나다 토론토 서니브룩대학의 쿨러버 하이넨(Kullervo Hynynen) 교수는 치매환자 10명의 전두엽에 초음파를 쏜 결과 부작용 없이 BBB가 열리는 것을 확인했다. 하이넨 교수는 장 교수와 함께 뇌질환 초음파 연구를 이끌고 있는 세계적 과학자이다. 그는 하이넨 교수의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초음파로 BBB를 열고 아밀로이드 베타 등 치매를 유발하는 독성 단백질은 빼내고 줄기세포를 넣어 치매 치료의 가능성을 확인하려고 한다. 줄기세포가 독성 단백질이 손상시킨 염증 조직을 치료하고 뇌세포를 재생하는 것을 확인한다면 치매 정복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전임상 연구를 위해 정부 지원 국책 과제에 신청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이 치료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지난해 가을 서니브룩대학에 있는 하이넨 교수의 연구실에 초청받아 구경 갔습니다. 캐나다 정부에서 하이넨 교수에게 지원하는 연구비가 수천억원대입니다. 연구실에 그가 혼자 쓸 수 있는 MRI 장비만 3대가 있습니다. 우리 병원에는 초음파 수술 연구가 가능한 MRI가 몇 대 있는 줄 아세요? 딱 1대 있습니다. 그것도 공용입니다. 아예 경쟁이 안 되죠.”

그가 초음파 뇌수술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12년이다. 그 후 강박증, 파킨슨, 우울증 등 임상 연구를 위해 50~60명의 환자에게 수술을 시행했다. 보험 적용이 안 되다 보니 환자 한 명당 입원비, 수술비 등으로 2000여만원이 들었다. 이를 해결해준 것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의 초음파재단과 마이클제이폭스재단이었다. 모두 10억원을 지원받아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파킨슨병과 근긴장이상증 등 일부는 지난해부터 비급여이긴 하지만 일반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이 가능하게 됐다.

치매 연구를 앞두고 그는 마음이 급하다. 초음파 수술로 정상의 위치에 있을 때 그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선두 자리를 뺏기는 것은 시간 문제다. 가장 맹렬히 추격하고 있는 곳은 북미이다. 캐나다 서니브룩대학, 버지니아대학은 이미 독자적으로 초음파 연구센터를 만들었고 미국 최고 종합병원으로 꼽히는 하버드대학, 메이유 클리닉도 발 벗고 나섰다. 이들 대학의 연구비 지원 단위는 보통 한 번에 500만달러를 넘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다른 분야보다 임상 연구 환경이 취약하다. 국책 과제 선정에서도 늘 후순위로 밀린다. 분야별 견제도 심하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9월 치매국가책임제를 선언하고 나섰다. 치매 연구개발(R&D) 사업에 10년간 1조1054억원을 투입한다. 장 교수의 비약물적 수술을 이용한 치매 연구도 치매 연구개발 사업의 주제로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최종 과제로 채택될지는 의문이다. 2020년 과제 선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언제 사업시행이 될지 알 수 없다.

마냥 정부 지원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3~4년 전부터 기능신경외과 연구센터 설립을 추진했다. 그가 주치의를 맡고 있는 환자 3~4명이 그의 뜻을 응원하며 선뜻 10억원을 내놓았고, 친구가 10억원 기부를 약속했다. 가칭 ‘미래기능신경외과센터’이다. 세브란스병원에 들어설 센터 개소식 날짜는 11월 22일로 정해놓고 캐나다 하이넨 교수도 초청해 놓은 상황이다. 20억원을 모았지만 사실 턱없이 부족하다. 연구에 필요한 초음파 장비만도 1대에 30억원에 달한다.

그는 초음파 수술 장비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뇌수술용 초음파 기계를 처음 개발한 곳은 이스라엘 기업인 인사이텍(Insightec)이다. 초음파가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의학적 효과가 있다는 것은 1940년대 발견됐다. 그 후 최근까지도 초음파는 뼈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 때문에 두개골에 둘러싸인 뇌에는 초음파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인사이텍에서 뼈를 통과하는 초음파 기계를 개발하고 2009년 세계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회장이던 캐나다 안드레스 로자노 교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사기꾼이다”라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스라엘 회사와 인연

호기심 많고 도전을 즐기는 성격이 그를 움직였다. 2010년 그는 혼자서 이스라엘로 날아가 인사이텍을 찾아갔다.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달려들었다. 그가 이 기계를 이용해 초음파 뇌수술에 성공한 후 세계 각 대학에서 이 기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후 인사이텍은 그의 팬이 됐다. 덕분에 최근 연세대에는 뇌종양 초음파 장비가 무상으로 굴러 들어왔다.

“하버드대, 오사카대, 서니브룩대는 전부 연구비를 지원받아 기계를 샀습니다. 우리도 연구용으로 꼭 필요한데 20억~30억원이 어디 있습니까. 임상용 장비는 연구 장비라도 정부 지원을 받기가 힘듭니다. 대학에서도 돈도 못 버는 값비싼 장비를 사줄 리가 없죠.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걸 알고 인사이텍 측에서 무상 임대를 해주겠다고 나선 겁니다.”

파킨슨병처럼 고주파를 쏘아 병변을 만드는 기계와 달리 뇌종양용 기계는 주파수가 다르다. 뇌종양 초음파 장비를 비롯해 세브란스병원에는 두 대의 뇌수술용 초음파 장비가 있다. 국내서는 유일하다.

만일 그가 이스라엘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초음파 뇌수술의 세계적 대가 장진우’는 없었을 수 있다. 초음파가 뇌의 빗장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초음파로 치매와 악성 뇌종양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그의 대답이다.

“치매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치료법이 시도됐습니다. 면역약물치료, 수술, 줄기세포, 유전자치료, 전기자극 수술 등 세계적으로 힘을 쏟고 있지만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면역치료의 경우 동물실험에는 성공했지만 임상에서는 실패했습니다. 난공불락입니다. 가능성이요? 아무도 모르죠. 그렇지만 기회가 있다면 잡아야죠. 약물로 BBB를 여는 데는 실패했지만 초음파로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치매를 정복하려면 한 분야의 치료법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소총, 탱크, 군함 모두 필요합니다. 실패가 결코 실패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의학의 역사를 보면 실패를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세계 학회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도 알고 보면 ‘실패’에서 비롯됐다. 2011년 처음 초음파 기계를 들여와 수전증 수술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영 실망스러웠다.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실패한 환자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두개골의 뼈 두께가 두꺼웠던 것이다. 뼈가 두꺼우면 에너지가 반사되기 때문에 같은 양의 초음파를 쏴도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양이 적다. 서양 사람들에 비해 동양인의 뼈 두께가 두껍다 보니 실패율이 더 높았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5년 발표한 논문이 화제가 됐다. 현재 그의 연구가 세계적으로 초음파 뇌수술 환자를 선정하는 가이드라인이 됐다. 두개골 두께와 수술 성공 가능성의 함수관계를 그의 연구가 밝혀낸 것이다. 그는 “실패를 기다려주지 않는 우리나라 연구 환경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치매 연구는 현재 어디까지 왔을까.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이 치매 정복을 외치고 있지만 최근 치매 치료는 답보상태이다. 치료제 개발에 수조원을 쏟아부었던 글로벌 제약사들도 최근 잇따라 임상시험 포기를 선언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치매환자 수는 70만명이다. 2050년에는 303만명으로 4.3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 노인인구는 1799만명이다. 노인 6명당 1명은 치매환자라는 이야기다. 치매관리 비용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201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0.9%(13조2000억원)에서 2050년이면 3.8%(105조5000억원)를 차지하게 된다. 고령화사회 치매는 국가적 재앙이다. 뇌의 빗장을 열어젖힌 그의 연구가 재앙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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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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