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김병준 위원장(오른쪽 세 번째).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김병준 위원장(오른쪽 세 번째).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실에는 전직 대통령 3인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전직 대통령 3인의 액자사진은 홍준표 전 대표 체제에서 당의 상징성을 고려해 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대표실 벽면에 걸린 액자는 크기와 위치가 부자연스럽고 인물 선정도 애매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보수정당 출신의 전직 대통령을 모두 걸어둔 것도 아니고, 공과(功過)를 가진 전직 대통령 중에서도 일부만을 취사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뒷말이 있어왔다.

한국당의 혁신을 위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김병준 위원장은 지난 7월 17일 당대표실에 입주했으나 벽에 걸린 이 3인의 전직 대통령 사진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내내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와 관련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을 모두 걸 수도, 현재 걸린 세 분의 사진을 내릴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황에 있다”고 기자에게 언급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이 문제를 두고 결단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괜한 시빗거리를 만들어 논란의 빌미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혁신비대위를 이끄는 김병준 위원장의 당내 입지와 처신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자유한국당 내에는 여전히 친이와 친박 세력의 뿌리가 깊은 것이 사실이다. 또 당원들이 선출한 대표가 아닌 이상 김병준 위원장에게 강력한 힘이 실리기도 어려운 구조다.

친박·친이 골고루 기용이 오히려 발목?

김 비대위원장이 취임한 지 한 달 보름여가 지났다. 취임 초기 당 안팎의 비판세력과 언론의 집중조명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이른바 ‘허니문’ 기간도 끝났다. 당내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중진급 인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비대위 체제의 한계를 거론하면서 김 위원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중순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태호 전 경남지사, 김기현 전 울산시장, 서병수 전 부산시장 등 지방선거 당시 한국당 광역단체장 후보로 나섰던 인사들이 모여 김병준 비대위 체제에 대한 우려를 공감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심상치 않다. 이에 앞서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경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사쿠라(변절자)’라는 표현을 담아 김병준 체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비대위 측은 “당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등 순차적으로 당의 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쇄신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인적쇄신 등 과감한 개혁에 나서지 못하는 김병준 비대위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 역시 조금씩 늘고 있다.

이번 비대위는 출범 초반 문재인 정부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친이·친박 인사를 골고루 기용하는 무난한 당직 인선을 하다가 오히려 인적쇄신이 어려운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김 비대위원장 주변에서조차 “인적청산은 쉽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이 혁신의 본질인 인적청산 문제를 정면돌파하지 않는다면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생각을 같이하는 강경파 인사들의 비판과 훈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여기다 9월 중순 홍준표 전 대표까지 귀국하게 되면 비대위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자칫 당 안팎에서 조기전대론이 탄력을 받는 상황이 연출된다면 김병준 비대위는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김병준 비대위는 이런 위기를 돌파할 카드가 과연 있을까.

최근 ‘비대위 위기론’이 당 안팎에서 제기됨에 따라 인적청산 로드맵이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선 2020년 4월 총선까지는 예정된 선거가 없기 때문에 김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공천권은 행사할 수 없다. 그래서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는 것이 당협위원장 교체 건이다. 김 비대위원장이 쉬쉬하며 당협위원장 교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온 것은 ‘인적청산’ ‘당무감사’라는 단어가 등장할 경우 당내 기득권의 반발에 부딪혀 비대위 출범 초기부터 흔들릴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원은 물론이고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한국당이 인적쇄신을 단행하지 않는 한 민심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 반사이익 없어

이런 진단이 나오는 배경에는 일차적으로 한국당의 부진한 지지율이 있다. 최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와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에 따른 반사이익이 한국당으로 옮겨가지 않고 있다. 최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당 지지율은 11%에 불과하다. 올 초 한때 14%를 찍었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11%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최근 조사에서 50%대 초반까지 떨어졌고 민주당 지지율은 5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까지 10%포인트 이상 하락했지만 한국당 지지율은 그대로다. 집권여당에 대한 지지를 거둔 유권자들이 한국당으로 옮겨가기보다 정의당 지지로 이동하면서 미니정당인 정의당의 지지율은 15%까지 치솟았다. 한국당을 떠난 민심이 좀처럼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현 정권의 실정과 한국당 지지를 별개의 사안으로 바라보는 유권자가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당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보수 성향 인사들조차 “한국당이 혁신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다면 대안 정당 출현의 빌미를 주고 소멸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여성 비율도 당협위원장 전체의 50%로

이런 상황에서 현재 주요 당직을 맡은 개혁 성향의 일부 인사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파격적인 혁신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252개 국회의원 지역구 당협위원장의 절반을 만 49세 이하로 교체하고 여성 비율을 전체의 50%까지 끌어올리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안이 논의 중이라고 한다. 기존 한국당의 낡고 구태의연한 정당 이미지를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취지이다. 현재 한국당 내 지역구 국회의원 가운데 50세 이하의 정치인은 김세연·김성원 의원 단 두 명뿐이다.

개혁파들이 논의 중인 한국당의 인적쇄신은 국정감사가 종료되는 10월 말부터 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무감사의 권한은 전적으로 당대표 격인 김 위원장에게 있다. 때문에 김 위원장을 지원하는 사무총장실이 정기 당무감사를 단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당협위원장을 교체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전국 252개 지역 당협위원장은 사고 지역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현역 국회의원이 당협위원장을 맡는 시스템이다. 만약 2020 총선을 대비해 당협위원장을 교체한다면 지역 조직을 맡을 신진 인사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국회의원 물갈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개혁파의 복안이다.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최근 “인적쇄신을 위해 솔선수범하겠다”는 당내 일부 인사들의 의사를 전해 듣고 ‘사의(謝意)’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당협위원장 교체작업을 사실상 추인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비대위 측은 인적쇄신을 위해 지난 8월 초 ‘선거 패배의 원인 진단과 평가’에 대한 분석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에 의뢰한 바 있다. 배현진 비대위 대변인은 이와 관련 “선거 패인을 진단하는 한편 여성과 청년에게 열린 정당, 투명정당으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하기 위해 서울대에 용역을 의뢰했다”고 밝혔었다. 서울대 연구 용역 결과는 향후 당협위원장 교체의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데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막말이나 살생부 논란의 주역, 사당화에 앞장선 인사, 위법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정치인의 경우 퇴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인적쇄신은 사람이 사람을 치는 인위적 청산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추진될 예정”이라면서도 “김 위원장은 만약 당헌당규를 고쳐야 한다면 당연히 시스템을 먼저 다듬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준 비대위 체제가 “가시적 성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4개 소위를 가동하며 혁신안 준비에 골몰해온 것도 땜질식 혁신이 아니라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

인적쇄신에 동조하는 당내 일부 인사들은 스스로 당협위원장직을 내려놓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당협위원장 교체 과정에서 친이 또는 친박의 진영논리에 막혀 인적쇄신이 발목을 잡히는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김용태 사무총장 등 3선급 중진들이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일단 높아 보인다. 당의 원활한 인적쇄신을 위해 전체 당협위원장의 사표를 일괄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으나 기득권적 사고가 강한 인사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을 감안, 연쇄적으로 개혁에 동참하게끔 유도하기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적쇄신의 첫 번째 타깃은 구속 수감 중이거나 위법한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인사들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실세 최경환 의원과 친박계 인사로 분류됐던 이우현 의원이 대표적이다. 최 의원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6월 29일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된 바 있다. 10억원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우현 의원은 지난 7월 19일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됐다. 이밖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완영 의원은 지난 5월 1심 판결에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원과 추징금 850만원이 선고됐다. 이완영 의원은 19대 총선 당시 성주군의원 김모씨에게 돈을 빌리고도 “돈을 빌린 것은 허위”라며 맞고소해 1심 형량이 최종 확정될 경우 무고죄가 추가될 수 있다. 이밖에도 홍문종 의원은 뇌물수수 혐의로, 원유철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김재원 의원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권성동·염동열 의원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혐의로 각각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김정훈·정종섭, 총선 불출마 입장 번복?

그럼에도 인적쇄신 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협위원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국회의원의 경우 차기 총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일부 인사들은 당의 개혁에 제동을 걸고 나설 개연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시사했던 일부 의원들이 최근 입장을 달리한 것도 이런 개연성을 높이는 요소다.

김무성 의원 등 당내 일부 정치인들은 지난 6·13 총선 패배 직후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4선의 김정훈·이군현 의원을 비롯해 황영철·윤상직·정종섭·유민봉 의원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시사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 이들의 총선 불출마는 기정사실이 됐다. 황영철 의원의 경우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던 도중 지난 7월 재판정 최후진술에서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국회의원은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팽배할 때와는 입장이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훈 의원 측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전화통화에서 “(김정훈) 의원이 직접 불출마를 언급한 적이 없다”면서 “선거 직후 참담한 분위기 속에서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회피하지 않겠다는 중진으로서의 입장 표명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종섭 의원 측도 “불출마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면서 기존 언론 보도와 다른 입장을 내놨다. 정 의원의 한 보좌진은 “책임 있는 분들이 (불출마) 선언하면 (정 의원도) 기꺼이 하겠다는 것이었다. 때가 되면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론이 잦아드는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 부각되자 슬그머니 입장을 바꾼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국당 원로급 인사는 “혁신비대위가 인적쇄신에 대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지 않고 그럴 의지도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는 당내에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태의연한 모습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당 핵심 인사 A씨의 말이다. “당의 체질 변화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이회창 총재 시절 처음 야당이 되고 나서 야당수호투쟁위라는 것을 구성한 적이 있다. 야당으로서 밖에 나가 구호를 외치는데 손을 어깨 위로 치켜들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10년 만에 다시 야당이 된 상황에서 체질을 바꾸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과거 친박 성향으로 분류됐던 인사들은 바른정당에 갔다가 돌아온 복당파를 청산 대상으로 언급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물갈이 대상이 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 김용태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자들이 복당파로 분류된다. 이들은 현재 김병준 비대위체제와 한배를 타고 있다. 지난 8월 20일 경기도 과천 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연찬회 당시 친박계인 홍문종·김진태·김태흠·박대출·박완수·정용기 의원 등은 잇따라 마이크를 잡고 “리더십이 선거 패배와 당 혼란의 가장 큰 문제”라면서 김 위원장을 압박했다. 김 위원장도 이날 인적청산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순위가 다르다”면서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우리 당은 지금 고장난 차인데, 운전사만 바꾼다고 차가 잘 나가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인적쇄신에 대한 김 위원장의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김 위원장 측 한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무언가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일면 수긍하지만 인적청산의 칼춤을 추지 않는다고 압박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과거 성공했다는 비대위도 근본적 체질을 바꾸지 못해 혁신은 도루묵이 되곤 했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인적쇄신보다 당내 통합에 나섬에 따라 비대위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명대 김관옥 교수(정치외교학과)는 “김병준 위원장이 기존 질서에 부응함으로써 쇄신의 동력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당에 혁신 대상은 분명 존재하지만 누구도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잠시 휴전 상태다. 김병준 비대위는 가치정립 등 옳고 바른 얘기를 하지만 변화와 실천은 눈에 띄질 않는다. 이런 상황이 조금 더 지속되면 쇄신을 하러 온 건지, 대여 정치를 하러 온 건지 모호해질 수 있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김대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