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벌어진 연금개혁 반대 집회. ⓒphoto AP
2017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벌어진 연금개혁 반대 집회. ⓒphoto AP

‘연금정치(Pension Politics)’라는 말이 있다. 유럽과 북미에서 사용된 지 이미 오래된 용어다. 연금개혁을 비롯한 연금 문제가 정치적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것이 아니다. 연금 문제는 경제학적 계산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환경과 더불어 결정된다는 얘기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2차 연금개혁 과정을 보자. 1998년 김대중 정부의 1차 연금개혁으로도 국민연금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자 2003년 당시 복지부는 연금개혁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반발해 개혁안을 국회에서 심사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16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며 개혁안은 자동폐기됐다.

2004년 총선과 더불어 시작한 17대 국회는 탄핵정국의 후폭풍으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넘으면서 시작했다. 다만 연금개혁안을 힘있게 몰아붙이기에는 부족한 수였다. 자연히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연금개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2006년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2차 연금개혁을 둘러싼 연금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캐스팅보트는 역시 제1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쥐고 있었다. 당시에 국민연금 개혁안만큼이나 화두였던 것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이었다. 연금개혁안은 정당 세력 분포도뿐 아니라 사학법 개정안 같은 다른 이슈와도 함께 움직였다. 처음 한나라당은 정치 성향상 완전히 반대 진영에 서 있던 민주노동당과 손을 잡았다. 2007년 4월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양당안이 절충된 국민연금법 수정안이 국회에 상정됐는데 막상 국회 본회의에서는 부결됐다. 한나라당이 직접 제출한 연금개혁안이 한나라당에 의해 부결된 것이다.

대신 한나라당은 여당이던 열린우리당과 절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7년 7월 2차 연금개혁이 이뤄졌는데 통과된 연금개혁안은 원래 정부안과도, 여당과 야당의 주장과도 부합하지 않는 그 중간 지점의 것이 됐다. 대신 여당은 연금개혁을 위해 야당이 주장하던 사학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줬다는, 이른바 ‘야합’ 의혹을 받으며 논란에 휩싸였다. 연금정치에 대해 오래 연구해온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이 결과를 두고 “오랜 제휴의 과정을 무마시키는 한국 정치 특유의 희극성과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평하면서도 “연금개혁의 최종결과는 개혁을 둘러싸고 만들어졌던 권력 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 7월 국회를 통과한 연금개혁을 반대하는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들. ⓒphoto 이진한 조선일보 기자
2007년 7월 국회를 통과한 연금개혁을 반대하는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들. ⓒphoto 이진한 조선일보 기자

다시 말해서 당시 불안정했던 정당의 권력 관계와 정부 여당 지배력의 결과가 어중간한 2차 연금개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만 이전의 1차 연금개혁 과정에서는 정당이나 권력집단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2000년대 들어서서는 연금 문제가 정치 문제로 비화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도 연금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에 큰 영향을 주는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10년, 연금정치는 ‘놀랍게도’ 사라져버렸다. 기초연금법이나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등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일어난 적은 있었지만 그다지 소란스러운 문제는 아니었다. 얼핏 생각해보면 연금이 정치적 논리에서 벗어나 독립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건 좋은 일인 것만은 아니다. 유럽이나 북미, 일본의 경우를 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연금은 정치와 연동될 수밖에 없고, 또 그럴 때에만 연금개혁이 제대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한국에 연금정치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연금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연금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정부와 정치권, 국민 모두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종된 연금정치

연금정치가 실종된 가장 큰 이유는 연금이라는 게 원래 인기가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7일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발표되면서 연금개혁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이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언론에서도 ‘국민연금 기금이 2057년 고갈될 것’이라는 재정계산의 결론과 이에 따라 제도개선위원회가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는 사실만을 주로 다룬다. 그보다 더 깊이 다루기 시작하면 기사는 곧 재미 없는 내용으로 바뀐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라는 단어는 웬만한 비전문가가 이해하기란 쉽지 않고, 그나마 쉽게 다가오는 내용이란 ‘국민연금 개시 연령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정도에 그친다.

2007년에도 국민연금 개혁 때문에 장관이 바뀌고 야당의원들이 농성까지 했지만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제대로 아는 국민은 얼마 되지 않았다. 2007년 4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서 조사한 바를 보면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4.4%에 그쳤고 ‘내용을 잘 모른다’고 답한 사람은 65.6%에 달했다. 2014년 7월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기초연금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시행 두 달 전인 2014년 5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초연금 제도에 대한 내용을 ‘잘 모른다’고 답한 사람은 55%가 넘었다.

무관심과 무지는 언론과 정치권의 외면을 가져온다. 한국일보의 9월 3일자 보도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22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82%인 18명의 의원이 연금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놓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재정계산은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한 번씩 의무적으로 하는 것으로, 그때마다 정부는 개편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근 20년이 지나도록 논의에 진전은 없었다.

연금은 이렇게 ‘조용한 것’이 아니다. 현대적인 연금제도가 일찍부터 자리 잡았던 유럽 각국을 보면 연금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정치 이슈 중 하나였다. 연금 때문에 정권이 바뀌고 정치인들 때문에 연금 정책이 널을 뛸지언정 연금정치는 활발히 이뤄졌다. 그래서 유럽 각국에서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나름의 연금체계를 갖고 조금씩 점진적으로 연금제도를 발전시켜가는 중이다.

한국은 유럽보다 더 연금 문제에 민감해야 하는 나라다. 각종 조사에서 드러나듯이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저출산 기조까지 맞물려 한국은 아주 빠르게 연금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노인빈곤 문제는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는데, 노인빈곤 문제의 시발점이자 해결책인 연금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 원인을 언론에서 찾는다. 언론의 전통적인 역할 중 하나는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한 교수는 “정치인과의 협력 관계가 잘 형성돼 있는 한국 언론은 정치가 짜놓은 프레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한국 사회에서는 연금 문제뿐 아니라 복지 문제에 대한 담론이 잘 형성되지 않았다. 전통적인 지지층이 ‘경제 살리기’ 이슈에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복지는 언제나 경제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복지 문제를 다듬는 데 큰 힘을 쏟지 않았다. 한 교수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의 복지 공약에는 유의미한 이념의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복지에 한해서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언론 역시 복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도 복지 문제는 다루면 다룰수록 ‘흥행성’이 떨어집니다. 가볍게, 연성화해서 다루기에는 좋지만 원인과 해결책을 파고들면 ‘잘 읽히는 기사’를 만들 수 없지요. 자연히 언론들이 복지 담론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게 됐습니다.”

언론이 다루지 않는 문제는 점차 국민들의 관심에서도 벗어나게 됐다. 어렵고 복잡해 이해하기 힘든 연금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국은 어느 사회보다 연금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국가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사회 진입 속도도 그러하거니와 노인빈곤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5.7%에 달한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연금 한눈에 보기(Pensions at a Glance·2017)’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의 소득수준은 전체 인구의 평균 소득을 100으로 봤을 때 68.8에 그쳐 OECD 가입국 중 최하위권이다.

낮은 소득수준의 원인은 연금 때문이다. 노인인구의 소득원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한국 사회의 심각성이 크게 두드러진다. 프랑스의 경우 노인인구의 소득원을 따져보면 근로소득 비중은 5.5%에 불과하다. 소득의 77.3%는 국민연금제도를 비롯한 공적연금에서 나온다. 일하는 노인이 가장 많은 축에 속하는 일본만 해도 한국과 차이가 난다. 연금에 의존하는 비중이 51.3%이고 근로소득 비중은 38.7%다. 한국은 근로소득 비중만 50.8%다. 연금소득 비중은 30.2%에 그친다.

이런 점에서 연금 문제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사회문제나 경제정책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연금제도가 일찍 정착한 유럽 각국에서는 연금 문제를 노인, 나아가 국민 전체의 복지 문제로 인식하고 시급하게 다뤄왔다.

블레어의 연금개혁이 성공한 이유

영국은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도 가장 먼저 급진적인 연금개혁을 시도한 나라 중 하나다. 영국의 연금개혁은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1986년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정부가 실시한 개혁, 1999년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정부의 개혁에 이어 2002년 블레어 정부에서 시작해 2011년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에 이르는 3차 개혁이다.

연금 문제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개혁을 실시하기는 했지만 영국의 연금개혁, 연금개혁안을 둘러싼 연금정치는 결코 안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김영순 서울과기대 교수의 설명을 따라 영국의 연금정치 변화를 살펴보자.

1986년 대처 정부와 1999년 블레어 정부의 연금개혁은 말 그대로 ‘격변’이라고 할 만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연금개혁이 일어났다. 대처 정부는 보수당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1986년에 처음 연금개혁을 시도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1979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대패(大敗)한 이후 좀처럼 야당 역할을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심지어 노동당의 전통 지지층이었던 노동자 집단마저도 보수당의 대처 정부를 지지하던 상황이었다. 이런 안정적인 지지 기반은 대처 정부가 까다로운 연금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던 것이 ‘제3의 길’을 기치로 내걸고 노동당의 재집권을 이뤄낸 블레어 정부에 들어서 변화가 감지됐다. 노동당은 비록 보수당의 오랜 집권을 깨고 정권을 재창출하기는 했지만 예전 대처 정부처럼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블레어 정부의 중도적인 노선은 당 안팎에서 여러 도전을 받았다.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층을 잃지 않고 새로 끌어들인 보수당 지지층까지 지키는 방법은 점진적인 개혁이었다. 노동당이 집권하기는 했지만 1999년 영국의 연금개혁은 이전의 대처 정부가 했던 것과는 달리 보수당 정부의 기본 방향을 유지한 채로 보완적인 개혁안으로 진행됐다.

권력에 대한 강력한 견제가 있을 때는 연금정치가 일방적이고 급진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고 점진적으로 절충안을 찾아 진행된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바다. ‘유럽 정당의 복지정치’라는 책을 쓴 마르틴 질라이프 카이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의 연금개혁을 연구하면서 집권당을 견제하는 세력이 강할 때에는 연금정치가 합의점을 찾기 위해 작동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 점에서 2007년 한국의 2차 연금개혁은 어떻게 보면 강력한 야당과 절충안을 찾으려던 여당의 연금정치가 나름의 방도를 찾아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연금개혁을 원하던 입장에서는 반쪽짜리 성공이라 비판받을 만큼 미완의 성과를 올리기는 했다. 그럼에도 연금이 단지 정부의 많은 정책들 중 하나에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 세대 모두에게 중요한 사안이라는 점을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이후의 연금개혁 문제를 기대할 만했다.

하지만 영국과 한국은 이후에 이어진 연금개혁에 대한 태도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기존의 정부안에 훨씬 못 미치는 개혁안을 통과시킨 한국 정부로서는 다음 연금개혁에 대한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2차 연금개혁이 있고 나서 10년 동안 연금 문제는 다시 수면 아래로 잠들어 있었다. 영국에서는 달랐다. 미진한 2차 연금개혁을 딛고 대대적인 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블레어 정부는 ‘10년지대계’라 부를 만한 연금개혁안을 수립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연금위원회를 만들어 유례없이 방대하고 체계적인 보고서를 마련하게 한 것이다. 영국에서도 이전 연금개혁 때마다 자문그룹이니 위원회 같은 보조기구가 있어왔다. 그러나 이들 보조기구가 정부의 개혁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2002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재집권에 성공한 블레어 정부는 위원회에 당장 개혁안을 내놓으라고 하기보다 사실만을 적시한 보고서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그러고 나서 나온 것이 2004년 발표된 1차 보고서, ‘연금: 도전과 선택(Pensions: Challenges and Choices)’이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만을 적시하면서 연금위원회는 두 가지 미래 방향을 제시했다. 김영순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모두가 가난해지거나 연금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블레어 정부는 차차 연금정치의 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5년 내내 이어진 대대적인 연금 토론의 시작이었다. 2월에는 ‘개혁의 원칙: 전 국민적 연금 토론’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6월부터 11월까지 영국의 8개 지역에서 일반 대중과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벌이는 ‘전 국민 연금 토론’이 진행됐다. 서서히 연금개혁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자 블레어 정부는 더 큰 공론장을 마련했다.

2006년 3월 18일 영국의 런던과 버밍엄, 뉴캐슬, 사우스웨일스, 글래스고, 벨파스트 등 각 지역의 대표적인 대도시 6곳에서 1075명의 시민이 동시에 토론에 참석하는 ‘전 국민 연금의 날’이 개최됐다. 김영순 교수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영국 국민들은 온종일 연금에 대해 토론한다는 아이디어에 놀라움과 열정을 가지고 반응했다”고 설명했다. 토론에 참석한 연금 전문가들은 고령화 추이와 노인빈곤 문제에 대해 모든 시민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시민들은 연금개혁이 왜 중요한지, 나에게도 필요한 문제인 것인지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규모 공론장이 펼쳐진 자리에서는 여론조사도 함께 이뤄졌다. 김 교수는 “여론조사에서 시민 대부분이 연금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다는 것이 밝혀졌다”면서 “토론을 통해 연금 문제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나자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여론이 매우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여론이 형성되면 이제 정치가 작동할 차례다. 정치권은 연금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초당적인 합의를 이어나갔다. 2005년부터 시작한 논의는 2007년, 2008년에 이어 계속됐다. 노동당과 보수당이 치열하게 토론해가며 만들어낸 연금개혁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탈정치적이고 탈당파적인 것이 돼갔다. 2010년에 보수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연금개혁안의 골자는 그대로 유지됐다. 그리고 캐머런 정부는 이전 블레어 정부가 세운 연금개혁안을 이어받아 2011년 개혁을 마무리지었다.

‘어떻게’를 얘기해야 할 때

연금정치는 그 자체로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용어는 아니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연금개혁을 이끌어내는 주요한 방법이다. 영국의 경우를 보면 처음에는 일방적인 연금정치가 이뤄지기도 하고 반쪽짜리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결국 원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이끌어냈다. 영국의 연금개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추후에 평가할 문제지만 숙의민주주의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공론화된 방법으로 개혁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정치제도가 우리와 다른 영국에서는 정당과 시민사회의 관계가 밀접하고 뚜렷한 편이다. 이러한 경향이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노동당은 노동자 집단을 대변한다. 강력한 양당 체제에서 영국의 정치제도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그러나 모든 연금정치가 정부와 정당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본의 연금개혁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보다 고령화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에서도 연금개혁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미 1970년대부터 고령화 문제를 걱정해야 했었는데 그러면서 자연히 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일본 정부가 연금개혁을 시작한 것은 1985년부터였다. 일본의 연금정치에서 정당이나 시민사회만큼이나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기업이었다.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경제단체연합회, 게이단렌(経団連)은 무작정 연금개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연금정치에 참여했다. 1998년에는 기초연금제도를 제안하기도 하고 2004년에는 기초연금 개혁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내 정부의 정책안에 큰 영향을 줬다.

최영준 교수는 “한국의 연금정치에서도 흔히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바로 기업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보통 연금개혁안에 대한 여론을 이야기할 때는 국민들의 반발만을 주로 언급하는데, 기업이 지게 되는 부담과, 부담을 회피하려는 전략 역시 연금정치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 최 교수는 “국회, 정당과 정부, 시민사회만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기업과 노동조합까지도 연금정치의 이해당사자로 넓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연금개혁은 노·사·정의 연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1994년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연금개혁을 시도했지만 일방적인 추진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대대적인 반발로 무산됐다. 1994년 10월 14일 열린 개혁 반대 시위에는 이탈리아 전국에서 300만명이 참가할 정도였다. 당시 이탈리아 정권은 연금개혁 문제로 결국 바뀌어야 했다.

1995년 들어선 디니 정부는 전 정부의 실패를 거울 삼아 신중하게 연금개혁을 진행했다. 노동조합의 힘이 센 이탈리아 사회의 특성을 고려해 노조 대표를 연금개혁 위원회에 참여시키고 전국 4만2000여개의 공장에 위원회를 조직하고 연금개혁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1995년 4월 30일부터 5월 1일까지 진행됐던 투표에는 490만명이 참가해 연금개혁에 대해 64%가 찬성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사회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집단을 모두 연금정치 과정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연금정치는 어느 한 지점에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바뀐다는 점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이탈리아에서는 1995년 꽤 훌륭한 민주주의 과정을 거쳐 연금개혁을 이뤄냈지만 2004년 집권에 성공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다시 독단적인 방식으로 연금제도의 틀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연금개혁은 어느 한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보완해나가며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협상과 점진적 보완, 양보와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연금개혁의 방안에 대해서만 주장할 뿐 어떻게 연금개혁을 이뤄낼 것인지 방법과 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연금제도가 하나의 경제적 정책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때 오는 오류이다. 연금제도는 정치·사회·경제 모든 분야의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맞물려 작동하는 매우 고도의 정치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연금정치를 피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껏 연금제도 전문가들이 바람직한 연금제도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면, 이제 어떻게 그것을 만들어낼 것인지 말하는 연금정치가 필요한 때다.

<참고 서적> ‘코끼리 쉽게 옮기기’ 김영순·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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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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