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제도발전위원회가 연 공청회 자리에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회원들이 국민연금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제도발전위원회가 연 공청회 자리에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회원들이 국민연금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민연금 개편은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연금 납부자와 수급자,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수천만 명이 강제가입해 수십 년간 소득의 일부를 붓고 적립한 기금으로 다시 수백만 명이 지급받는다. 여기에 국민연금에 가입되지 않은 소외계층, 즉 사각지대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국민연금 문제는 복잡한 만큼 자문 기구도 여럿이다. 이 중 재정추계위원회는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추계를, 제도발전위원회는 제도의 전반적 발전방향을 모색한다. 직접 정책을 만들거나 결정하지는 않지만 제도를 고안해 정부에 주요 참고안을 제공한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쉽게 다루지 못하는 것은 국민연금이 지닌 잠재적 갈등 요소가 크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 국민연금에는 약 2182만명이 가입돼 있다. 현재 연금수급자가 367만명에 육박한다. 2060년 수급자는 17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현행대로라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 내는 돈보다 국민연금으로 받는 돈이 더 많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낸 돈보다 받는 돈이 많은 이유는 국민연금이 단순한 연금이 아니라 노후 보장의 성격을 띠는 국가 운영 연금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우려는 여기서 출발한다. 국민연금 개편 때 흔히 나오는 말이 ‘더 내고 덜 받는다’는 말이다. 소득이 있는 세대가 앞 세대를 부양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소득 세대가 앞 세대보다 소득이 적어지면 차츰 기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설계대로라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국민연금 가입기간의 평균소득 대비 연금수령액 비율)은 2018년 45%에서 매년 0.5%씩 떨어져 2028년부터 40%를 유지하도록 돼 있다.

당장 보험료율 인상이 다수의견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는 5년마다 한 번씩 재정추계를 한다. 올해가 4차 재정계산 해다. 지난 8월 1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는 장기재정 전망 결과 국민연금 적립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측되는 시점이 기존 2060년에서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졌다고 발표했다. 예상보다 빠른 급격한 저출산과 고령화가 원인이다.

국민연금에 들어오는 돈과 나갈 돈의 규모는 경제성장률, 출산율, 노동소득분배율, 경제활동 참여율 등과 같이 움직인다. 경제성장률, 출산율 등의 지표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움직이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다.

현재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에는 위원장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를 포함해 연금 전문가인 민간위원 12명, 정부 측(보건복지부·기획재정부) 위원 2명 등이 포함돼 있다. 제도발전위는 적립금 고갈을 늦추기 위한 방안으로 두 가지 안을 내놓았다. ‘가안’과 ‘나안’이다. 가안과 나안은 보험료율 외에도 소득대체율과 연금수급 개시 연령 등 서로 다른 점이 많다. 우선 피부로 와닿는 보험료율을 기준으로 보자. 가안은 내년(2019년)에 당장 11%로 2%포인트 인상한다. 2034년이 되면 추가로 1.31% 올려 최종 보험료율은 12.31%가 된다. 반면 나안은 내년부터 꾸준히 10년간 보험료율을 올려 총 4.5%포인트 인상한다. 최종 보험료율은 13.5%가 된다. 어떤 안이든 납부하는 금액이 늘어난다. 다만 인상 시점과 폭은 다르다.

지난 8월 17일 국민연금 개편 관련 공청회에 참석한 김상균 제도발전위 위원장(왼쪽)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7일 국민연금 개편 관련 공청회에 참석한 김상균 제도발전위 위원장(왼쪽)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 ⓒphoto 뉴시스

이번 제도발전위원회가 가안과 나안을 모두 제시한 것은 제도발전위 내 위원들 간에도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너무 다양해 합의된 단일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가안과 나안 둘 다 정부에 제공했다는 것이 제도발전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익명을 전제로 취재에 응한 한 제도발전위 민간위원은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도발전위 안에서도 의견이 갈렸고 위원들마다 주장하는 적정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수준이 다 달랐다. 결국 핵심은 보험료율을 언제 올리냐의 차이인데, 이전부터 계속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에 참가해온 분들의 경우 더 이상 보험료율을 올리는 걸 늦춰서는 안 된다고 한다(가안). 이전부터 참여해온 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나는 당장 보험료율을 급하게 올리기보다는 천천히 올리자는 입장이다(나안). 소득대체율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기금이 얼마나 적립되는지 추이를 일단 지켜보면서 보험료율은 좀 더 천천히 정해도 늦지 않는다는 게 내 의견이다. 지금 국민연금이 가진 기금이 부족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제도발전위에서 내 의견은 소수의견이다. 사실 제도발전위는 전문가들이 개인 의견을 내는 자리이기 때문에 위원들이 어떤 합의를 보는 게 중요하진 않다고 본다.”

반면 다른 한 민간위원은 가안과 나안 중 어떤 의견이 제도발전위에서 다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공청회 자료집에도 있듯 가안과 나안은 순위를 매겨서 제안한 게 아니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두 가지로 제안을 한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어느 것이 다수설이다, 소수설이다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두 가지 제안의 성격이 다르니 복지부에서도 고심을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제도발전위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가안’이 상대적으로 다수를 차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당장 급격하게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는 ‘나안’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에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포괄하는 ‘다층체계 구조’를 마련해 노후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도발전위 민간위원 중 한 명인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국민연금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기초연금이 맡고, 임금의 8.3%로 조성된 퇴직연금을 연금 형태로 발전시키자고 말한다.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에 노후보장 기능을 맡기고 국민연금의 재정 지속가능성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중하위 계층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중상위 계층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중심으로 노후를 대비하는 ‘한국형 다층연금체계’를 만들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제도발전위 민간위원들만 의견이 갈리는 것이 아니다. 현재 정치권에서도 국민연금 개편 방향을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오가는 상황이다. 여당 내부에서도 서로 갈등이 첨예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법안 개정을 통해 예정대로 소득대체율을 현행대로 40%로 갈지, 45% 정도로 타협할지, 심지어 50%로 다시 올릴지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 가능할까

국민연금은 연금이자 펀드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 노후 복지를 담당하는 연금이면서도, 기금을 운용해 수익을 낸다는 점에서 펀드의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5년마다 기금이 고갈될 시점을 예측하면서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보험료율 인상을 거론하는 등 부담만 높여왔다는 비판 여론이 많다.

다른 특수직역연금과 달리 국민연금은 지급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국민연금을 비판하는 이들이 흔히 꼽는 불만 요소다. 대표적 특수직역연금인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이미 기금이 고갈돼 국가 예산으로 지급한다. 내년 예산안에 1년치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적자 보전액으로 각각 1조7000억원, 1조6000억원이 편성됐다. 직역연금은 부족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법으로 명시돼 있다. 사학연금은 아직 흑자이지만 2023년이면 적자에 돌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2033년이면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처럼 국민연금과 같이 대규모로 공적연금기금을 적립하는 나라는 드물다. GDP 대비 연기금 규모가 지금 상태에서도 32.8%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국민연금 제도를 시행한 지 오래된 영국이나 독일은 그해 걷은 돈을 그해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쌓아둔 기금이 한국만큼 크지 않다.

국가가 국민연금의 지급을 보장하면 국민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이 채무로 잡히게 된다. 이 경우 국가의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국민연금 측의 입장이다. 현재는 국민연금 기금 중 약 0.03%만이 부채로 기록되는 상황이다. 반면 국민연금 지급을 명문화하라고 요구하는 측은 현재 국민연금의 부채비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기금이 방만하게 운영되는 걸 막을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 지급을 명문화할 방법을 찾으라”고 말한 만큼 정부 부처들은 국민연금을 채무로 잡지 않고도 지급을 명문화할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중 수령자에게 지급해야 할 몫은 국가 부채로 기록된다.

국민연금 개편안은 10월 말까지 국회에 넘겨질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제도발전위가 제안한 두 방안을 참고로 각계의 의견과 여론을 수렴해 9월 말까지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마련한다. 이 계획안은 국민연금심의위원회와 국무회의 등을 거친 뒤 대통령 승인을 통해 최종 정부안으로 확정된다. 제도발전위에 참여한 한 민간위원은 사견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국민연금을 지켜보는 여론이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복지부는 국민연금 개편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한다. 입장을 표명할 때도 아주 수세적이고, 전문가 견해로 의견을 내고 뒤에 숨어 있는 경향이 있다. 사실 5년짜리 정부가 40년 후의 상황을 어떻게 내다보고 정책을 설계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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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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