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은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한 이낙연 국무총리(왼쪽),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 오른쪽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한국은행과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딜레마에 빠졌다. 이명박 정권부터 현 문재인 정권에 이르기까지 기준금리 정책 실패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동안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한국은행 정책결정기구로 기준금리 결정권을 쥔 금통위는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금리 동결을 고집해왔다. 하지만 미국 Fed(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인상으로 마냥 금리 동결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버렸다.
   
   2015년 12월부터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펴온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난 9월 26일 기존 1.75~2%였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높여 2~2.25%로 인상했다. 이렇게 되자 한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0.5~0.7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한국 자본시장의 심리적 불안감을 키울 만큼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확대돼버린 것이다.
   
   현재 한국 기준금리는 2017년 11월 이후 11개월째 1.5%를 이어오고 있다. 이 1.5% 역시 사실 2016년 6월 1.25%로 추락했던 기준금리를 1년5개월 만에 0.25%포인트 끌어올리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기준금리는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여온 셈이다.
   
   사실 한국은행과 금통위는 향후 어떤 결정을 내리든 비판과 논란을 피하기 힘든 상황에 몰려 있다. 11개월째 고집해온 1.5%의 기준금리를 조금이라도 올릴 경우 ‘기준금리 인상이 투자 위축, 일자리 감소, 내수경기 침체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논란이 일 가능성이 크다. 또 ‘결국 정부의 압박과 의도대로 움직인 것’이라는 비난과 함께 한국은행 독립성 훼손 논란을 피하기 힘들다. 최근 정부는 이낙연 총리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앞세워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반대로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세계 금융·자본시장 움직임, 특히 국내 부동산 거품 등 인플레이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우매한 결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또 ‘국내 유입 자본의 해외 유출을 방기했다’는 비난도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이어왔던 금통위 위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8년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는 10월 18일과 11월 30일 두 차례 예정돼 있다. 현재 전문가들과 시장은 10월과 11월 중 한 번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0.5~0.75%포인트나 벌어진 미국의 기준금리와의 격차가 이미 시장의 심리적 안정선을 위협하고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특히 미국 연준위가 ‘올해 한 차례 더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한국 시장에 투자된 국내외 자본의 유출 우려가 어느 때보다 커져 있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이 가져올 파장도 만만치 않다. 우선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지난 10월 9일 IMF는 2018년과 2019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대폭 하락시켰다. IMF는 기존 3%로 전망했던 2018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2.8%로 낮췄고, 2.9%로 예측했던 2019년 전망치는 0.3%포인트 떨어뜨린 2.6%로 낮췄다. 앞서 9월 20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도 2018년과 2019년 모두 3%로 전망했던 한국 경제성장률을 2018년 2.7%, 2019년 2.8%로 낮췄다.
   
   경제 관련 국제기구들만이 아니다. 골드만삭스와 노무라 등 외국계 주요 투자은행(IB)들과 한국의 경제 관련 연구소들도 기존에 제시했던 전망치를 도미노처럼 낮추고 있다. 심지어 한국은행조차 현재 2.9%로 제시하고 있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곧 최소 0.1%포인트 낮출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성장률 전망치가 일제히 하락하는 상황에서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투자 둔화와 내수경기 악화를 키웠다는 논란을 피하기 힘들다.
   
   
   한은 독립성 훼손 직격탄
   
   한국은행과 금통위로서는 최근 정부의 압박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현미 장관이 기준금리 인상 문제를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 총리는 지난 9월 13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부동산 가격 문제와 관련해 “이 문제(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좀 더 심각한 생각을 할 때가 충분히 됐다는 데에 동의한다”고 했다. 김현미 장관 역시 10월 2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의 도중 “집값 폭등의 원인”에 대한 질문에 “지난 정부부터 지속된 저금리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전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유동성 과잉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금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립성 문제로 기획재정부 등 정부와 오랫동안 불편한 관계를 표출해온 한국은행과 금통위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인지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 겸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이 총리 발언 다음 날 출근길 기자들에게 “통화정책이… 부동산 가격 안정만을 겨냥해서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경기와 물가 같은 거시경제 상황, 부동산 가격을 포함한 가계부채와 금융안정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야 한다”며 반박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18일 예정된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그 목적이나 과정과 상관없이 당장 “한은과 금통위가 정부 압박과 의도에 코드를 맞춘 것”이라는 비난이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과 금통위 독립성 훼손 논란 역시 다시 가열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과 금통위 상황을 잘 아는 한 전문가는 “기준금리는 금통위원들 사이에서도 서로 전혀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는 사안이라 외부 압력에 좌우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다”면서도 “그런데 이번 (이낙연 총리) 발언은 좋지 못한 시점과 상황, 특히 민감한 장소(국회)에서 나온 것이라 한은과 금통위에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금통위원들의 금리 결정은 미국의 기준금리와 국내외 경제와 외환시장 상황, 한국의 경제 체력을 면밀히 살핀 후 철저히 표결(금통위원 7인 중 5인 이상 참석과 참석 위원 과반수 찬성, 즉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다”며 “기준금리 결정에 관한 금통위원 개개인의 의견도 분명하게 밝히는 구조”라고 했다.
   
   
▲ 지난 7월 12일 이주열 총재가 한국은행 본점에서 금통위원들이 참석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금리인상 필요성 vs 경제 충격
   
   그럼에도 기준금리 인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여론 역시 강하다. 돈의 특성이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또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준금리보다 최대 0.75%포인트나 높은 미국 기준금리, 사상 최고점을 깰 만큼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주식시장 상황 등은 한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대표적 신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아직은 크지 않지만 실제 한국 시장에서의 자본 유출 조짐도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채권 시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국내외 경제 이슈에 더 민감하게 움직이는 것이 주식시장인데 올해 1월 2일부터 10월 8일까지 외국인들은 3조7909억원에 이르는 한국 주식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해갔다. 미국과 기준금리 격차가 최대 0.75%포인트로 벌어진 9월 26일부터 10월 8일까지, 거래일을 기준으로 단 7일 만에 외국인들이 회수한 자금 규모가 무려 1조6011억원이 넘는다.
   
   또 이낙연 총리와 김현미 장관이 언급한 부동산 가격급등 문제, 저금리 기조가 만들어낸 1000조원이 넘는 과잉 유동성은 한국 경제의 초대형 폭탄이다. 그동안 정부가 내놨던 부동산 안정 대책과 과잉 유동성 해소 정책들이 기대만큼 효과를 못 거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이들 문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강력한 카드다.
   
   하지만 부작용도 상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15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문제는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바로 현실적 위기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자조차 갚기 힘든 한계 가구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 부문,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이자 증가 등으로 대출상환과 자금압박 직격탄을 맞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에 따른 금융사들의 연쇄 부실 우려도 한국 경제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자 부담 증가에 따른 기업들의 허리띠 졸라 매기가 투자축소, 구조조정과 맞물려 일자리 감소와 내수경기 침체 악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과 금통위가 눈을 감아버리기에는 기준금리 인상 후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 벌써부터 경고음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논란 피해 11월 혹은 내년 인상?
   
   한국은행과 금통위가 독립성 훼손 논란과 경기 악화 책임론에서 조금이라도 비껴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언론과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논란과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는 10월을 피하고, 대신 올해 마지막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11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혹은 내년 초쯤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이다. 이것이 기준금리 딜레마에 빠진 한국은행과 금통위에는 그나마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까지 금통위 내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주장한 금통위원은 이일형 위원 단 한 명뿐이다. 이 위원만 지난 7월과 8월에 걸쳐 총 7인의 금통위원 중 유일하게 기준금리 동결에 반대하며 1.75% 인상을 주장했다. 나머지 금통위원들은 모두 기준금리 동결에 손을 들었다. 이 위원의 인상 목소리가 8월까지는 금통위 내에서도 소수 의견이었던 셈이다.
   
   기준금리를 올려도, 또는 동결해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무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한국은행과 금통위가 처한 상황이다. 7인의 금통위원들이 한국 경제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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