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만명 가까운 인구가 암으로 목숨을 잃고 사망원인 1위로 암이 꼽히는 상황에서도 항암 치료에 대한 정보를 얻는 일은 쉽지 않다. 항암 치료는 그 어느 의학 분야보다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신 항암치료제로 꼽히던 것은 표적항암제였다. 암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떠올리던 탈모와 백혈구 수 감소 같은 부작용을 없애주는 ‘마법의 신약’처럼 다뤄졌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면역항암제가 표적항암제를 제치고 암 정복의 꿈을 노리는 신약으로 등장했다.

글로벌 제약회사가 앞다투어 신약 개발에 뛰어드는 면역항암제는 인류 최대의 숙원인 암 정복을 이뤄줄 수 있는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면역항암제를 투여받고 말기 암환자의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수사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면역항암제는 암세포를 사멸시킨다. 다른 치료제가 없던 암환자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면역항암제는 이제 갓 개발된 신약이다. 면역항암제의 원리나 작용기전, 부작용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이뤄지고 있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동시에 약이 개발돼 급히 환자에게 사용하는 게 바로 면역항암제다.

면역항암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 회장으로 국내 폐암 치료 권위자로 꼽히는 강진형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한국에 면역항암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의사 중 하나이지만 여전히 면역항암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항암 치료 분야는 가장 최신의 연구결과가 그때그때 반영되는 역동적인 분야다. 면역항암제만 하더라도 아직 임상실험이 끝나지 않은 부분부터 어떤 환자에게 효과적인지, 부작용은 왜 일어나는지를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의사는 물론 환자들 역시 면역항암제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암 정복의 기대주’라는 추상적인 표현 속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 일러스트 허인회
지난 10월 28일 포털사이트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정치인 김한길의 이름이 상위권에 올라왔다. 지난해 19대 대선이 끝나고 여의도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던 그는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까지 지낸 4선 의원 출신이다. 이날 그는 tvN의 ‘따로 또 같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부인인 배우 최명길씨와 함께 등장해 “그간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로 이틀 전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10월 폐암 4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다른 부위로 전이가 돼 “대체로 10개월 더 산다”는 비관적인 판정을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가 1년도 지나지 않아 건강한 모습으로 방송에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획기적인 신약” 덕분이었다. 그는 “암세포가 제어돼서 이대로 가면 완치가 가능하다”는 얘기도 함께 전했다.
   
   그가 말한 ‘획기적인 신약’이 면역항암제다. 지난 10월 1일 발표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수상 이유가 됐던 바로 그 항암 치료제다. 제임스 P. 앨리슨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 교수와 혼조 다스쿠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는 각각 다른 방법으로 암 치료에 적용될 완전히 새로운 원리를 밝혀냈다. 그들이 이 원리를 찾아내기 시작한 것은 25년은 더 된 이야기지만 신약에 적용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첫 면역항암제 여보이(Yervoy)가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허가를 받은 것이 2011년이다. 5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면역항암제는 ‘암환자의 마지막 희망’ ‘암 정복의 새 길’ 같은 거창한 수식어를 얻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면역항암제는 실제로 매우 효과적으로 암을 치료해왔다. 1924년에 태어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몸소 보여줬다. 그는 2015년 8월 20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암이 전이가 돼 간에서 발견되었고 제거했다고 생각했지만 뇌에서 다시 4개의 종양이 발견되었다”고 알렸다.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Malignant Melanoma)이 4기로 접어들어 간과 뇌로 전이가 된 것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이날부터 방사선 치료에 들어간다고 알리면서 마치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이 삶을 정리하는 말도 남겼다.
   
   “처음 뇌로 종양이 전이된 것을 알게 된 날 밤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지만, 놀랍게도 아주 편안했다. 이제 모든 것은 신의 손에 달려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그리고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2015년 12월 7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이번 주에 MRI를 찍어봤는데 더 이상 암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완치 사실을 밝혔다. 카터재단에서 공식적으로 밝히기를 그는 ‘면역항암제(Immunotherapeutic drugs)’라고 불리는 면역항암요법(Immunotherapy)을 받아 완치됐다.
   
   곧이어 기적 같은 완치 사실을 알리는 환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암세포가 줄어들고 전이됐던 종양이 사라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대부분 면역항암제를 투여받는 환자는 ‘말기 암’ 단계, 그러니까 더 이상 치료법을 찾지 못한 상황에 이른 경우가 많다. 면역항암제는 이런 환자들의 암 크기를 줄이고 아예 없애기까지 했다.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임상실험은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해준다. 2017년 AACR(미국암연구협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면역항암제 옵디보를 투약한 진행성 폐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6%로 일반적으로 6%로 알려진 것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다른 임상시험에서는 옵디보를 투약한 폐암 환자의 1년 생존율이 40% 넘는 수치를 보이기도 했다. 기존의 세포독성치료제에 비해 27~41% 낮은 사망위험률을 보이기도 했다. 중국에서 진행된 면역항암제 임상시험은 아예 도중에 중단됐다. 목표치를 너무 일찍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만 놓고 본다면 면역항암제는 암 정복에 거의 다가선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의사들은 면역항암제는 ‘이제 막 개발된 신약’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면역항암제의 우월한 효과만큼이나 그 원리와 의의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 2015년 12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암이 완치되었음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photo 뉴시스

   노벨 생리의학상의 열매
   
   면역항암제의 정확한 명칭은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s)다. 면역항암제라 불리는 이 신약은 말 그대로 면역관문을 억제해 항암 작용을 한다.
   
   우리 몸에는 면역 체계를 담당하는 T세포(T-cell)가 있다. 정상적인 몸에서는 바이러스나 균, 암세포 같은 몸 내외부의 위험물질이 발견됐을 때 활성화된 T세포가 이를 공격해 없앤다. 류머티즘,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은 T세포가 활성화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활성화되면서 멀쩡한 자기 세포까지 공격받는 경우에 생기는 질병이다. T세포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 몸에서는 제동장치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T세포에 붙여두고 있다. PD-1이라고 불리는 단백질이다. 면역반응, 그러니까 침입자를 없애는 T세포의 활동은 PD-1이 PD-L1이라는 또 다른 단백질과 결합할 때 ‘종료’ 사인을 보내며 끝난다.
   
   그런데 PD-L1은 암세포에도 존재하고 있다. 암세포의 PD-L1은 암세포의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T세포의 PD-1과 결합해 ‘면역반응 종료’ 사인을 보내버리기 때문이다. 암세포를 공격해야 할 T세포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T세포는 활동을 멈추고 암세포를 공격하지 않는다. 의사들은 암세포의 PD-L1이 ‘T세포의 눈을 가려버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덕분에 암세포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다. T세포의 PD-1과 암세포의 PD-L1이 결합하는 것, 그러니까 T세포의 눈을 가려버리는 것을 면역관문(Immune Checkpoint)라고 한다.
   
   만약 이 면역관문을 끊어버린다면? 다시 말해서 PD-1이 T세포를 제동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론적으로 볼 때 T세포의 PD-1 단백질이 암세포의 PD-L1 단백질과 결합하지 못하게 한다면, 정상적인 신체에서 그런 것처럼 T세포는 암세포를 공격해 없앨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과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게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혼조 다스쿠의 업적이다. 지금 개발된 면역항암제는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한 면역관문억제제다. 세계적 제약회사인 MSD의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와 BMS·오노의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타이레놀’이 약의 이름이고 그 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인 것과 마찬가지로 면역항암제 ‘옵디보’의 성분은 니볼루맙이다.
   
   PD-1 말고도 T세포에는 CTLA-4라는 단백질이 제동장치 역할을 하기도 한다. CTLA-4이 CD80/CD86이라는 물질과 만나면 PD-1이 그랬던 것처럼 암세포에 대한 눈속임이 가능하다. CTLA-4의 결합을 차단하면서 항암작용의 원리를 밝혀낸 것이 노벨상 공동수상자인 제임스 앨리슨 교수의 업적이다. 이를 활용한 면역항암제로는 BMS의 ‘여보이’(성분명 이필리무맙)가 있다.
   
   
▲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p. 앨리슨(왼쪽), 혼조 다스쿠. photo 뉴시스

   항암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면역항암제의 기본원리, 즉 면역관문을 억제한다는 생각은 항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지금까지 항암 치료는 암세포를 직접 공격해 사멸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춰왔다. 1세대 세포독성항암제는 암세포의 DNA가 복제되는 과정을 막았다. 암세포는 복제·증식이 매우 빠른 세포인데 암세포가 증식할 수 없게끔 직접 방해하는 것이 세포독성항암제의 기본원리였다. 이 과정에서 다른 정상세포의 DNA도 공격받을 수밖에 없었다. 암세포처럼 분화가 빠른 정상세포, 예를 들어 모근세포나 조혈모세포 같은 정상세포도 같은 원리로 공격을 받았다. 탈모가 일어나거나 백혈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난 이유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생겨난 2세대 표적항암제는 특정 암세포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항암제였다. 암세포에만 나타나는 특정 단백질이나 신호전달체계를 교란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표적항암제는 표적 대상이 제한적이고 진행성 암에 대해서는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내성이 생기는 일은 표적항암제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였다. 대표적인 표적항암제가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비정상적인 확산으로 생기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쓰는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이다. 글리벡은 백혈병 환자에게 새 삶을 가져다주었지만 내성의 위험성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했다.
   
   면역항암제는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지 않는다. 다만 암세포 때문에 교란된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정상으로 돌린다. 조병철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는 기억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면역항암제는 이 기억기능을 통해 지속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환자들은 면역항암제 사용을 중단하고 나서도 계속 효력을 유지하기도 한다. 면역세포가 기억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인데 면역항암제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전의 항암제가 종양이 있는 국소 부위에 직접 투여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면 면역항암제는 전신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조 교수는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네 가지로 요약했다. 앞서 말한 지속적인 효과와 더불어 면역항암제를 투여받은 환자의 장기생존율이 상당히 높게 나타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내 몸의 면역체계를 이용해서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히 재발이나 전이의 가능성이 낮다.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게다가 부작용이 적고 항암 효과는 폭넓게 나타난다.”
   
   항암 치료의 여러 부작용 중 가장 가시적이고 환자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부분이 탈모다. 1세대 항암제인 세포독성항암제가 정상세포인 모근세포까지 공격하면서 나타나던 부작용인데 면역항암제에서는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로 대다수 면역항암제 투약 환자들을 보면 항암 치료 중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외양적인 변화가 없다.
   
   
   모든 환자가 효과 보는 것 아니다
   
원리를 따져보면 면역항암제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암에서 두루 사용할 수 있다. 기전(機轉)에 따라 암의 종류가 갈리지만 암세포의 분화·증식 방법은 대동소이한 만큼 하나의 면역항암제가 여러 암에 두루 쓰일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옵디보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흑색종, 폐암, 신세포암, 두경부암 등 7개 암에서 사용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면역항암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암세포가 생기면 그때그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암세포의 발생 자체를 억누른다는 점에서 ‘암 정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충분히 품을 수 있다. 연구가 진행되고 면역항암제로 인해 암의 기전이 완전히 밝혀진다면 머지않은 시기에 암을 미리 예방하는 일도 가능하다는 게 의료계의 낙관적인 전망이다. 면역항암제는 난치병으로만 여기던 암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이 강조하듯이 면역항암제는 개발된 지 채 10년도 되지 않는, 연구와 임상이 동시에 진행 중인 완전한 신약이다.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곧바로 의료 현장에서 쓰이고는 있으나 여전히 면역항암제의 작동원리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어떤 환자가 면역항암제에 잘 반응하는지 아직 잘 모른다는 점이다.
   
   PD-L1 발현율이라는 것이 있다. 암세포에서 PD-L1 단백질이 얼마나 발현(expression)되느냐를 따지는 것인데 면역항암제의 원리를 생각해본다면 PD-L1 발현율이 높을수록 면역항암제가 잘 들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암세포가 T세포를 방해하기 위해 PD-L1 단백질을 많이 내보내 T세포의 PD-1 단백질과 많이 결합하게 되면 면역항암제가 더 많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면역항암제를 실제 사용해봤을 때 꼭 PD-L1 발현율이 면역항암제에 대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강진형 서울성모병원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폐암 환자를 보면 PD-L1 발현율이 양성인 환자가 면역관문억제제에 반응할 확률이 15~25%가 된다. 그렇지만 PD-L1 발현율이 0%이거나 아예 음성으로 나오는 환자라고 해도 면역관문억제제가 안 듣는 것은 아니다. 10%의 환자가 약에 반응한다.”
   
   PD-L1 발현율이 약에 반응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반응을 예측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가장 적합한 기준이 PD-L1 발현율인 것은 맞다. 키트루다는 암세포에서 PD-L1 발현율이 양성인 환자에게만 사용할 수 있게 승인돼 있다. 키트루다를 사용해보니 PD-L1 발현율이 50% 이상인 환자의 45.4%, 그러니까 거의 절반이 면역관문억제제에서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옵디보는 PD-L1 발현율에 상관없이 약을 사용할 수 있다.
   
   보통 의료계에서는 바이오마커(Biomaker·생체표지자)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커, 즉 표지자라는 말은 무언가를 추적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수단이나 물질을 의미한다. 바이오마커란 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치료 방법과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을 말한다. 표적항암제의 바이오마커는 돌연변이 유전자다. 만약 암환자가 특정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치료 방법을 정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면역항암제에는 이런 ‘예측가능성’을 따지는 일이 아직 진행 중이다. PD-1 단백질의 결합을 끊는 것이 T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은 확실해졌지만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PD-L1 발현율이 낮더라도 면역항암제에 반응하는 이유가 뭔지 아직 규명되지 않은 여러 원인이 숨어 있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항암 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병용요법을 많이 활용한다. 조병철 교수의 설명이다.
   
   “기존 세포독성항암제와 면역항암제를 병용해서 사용했을 때 반응률이 2~3배 높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옵디보와 여보이 등을 병용해서 사용하는 면역항암제·면역항암제 병용요법도 있다.”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제약업계에서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단일 제제의 반응률이 높아도 50%를 넘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2가지 이상의 면역항암제를 같이 투여하는 임상실험은 전 세계적으로 1000건 넘게 진행 중이다.
   
   
   위암도, 간암도, 신장암도 면역항암제
   
   원리를 떠올려보면 면역항암제라는 신약은 지금 가장 활발히 쓰이는 흑색종이나 폐암뿐 아니라 다른 암에서도 널리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 면역항암제를 쓸 수 있는 암은 그렇게 많지 않다. 게다가 1차 치료제, 그러니까 항암 치료를 시작하자마자 쓸 수 있는 경우는 폐암 하나에 불과하다. 사실 항암 치료는 전 세계적으로 정립된 표준항암치료가 있다. 가장 많은 환자에게 쓰였고, 효과가 입증됐으며, 최소한의 부작용을 담보할 수 있는 치료방식을 표준치료라고 하는데 암의 종류에 따라,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정해진 단계가 있다. 1차 치료가 듣지 않으면 2차 치료, 3차 치료로 넘어가는 식이다.
   
   면역항암제는 아직까지 대부분의 암에서 1차 치료제로 쓰이지 못한다. 그만큼 새로운 약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환자가 사용해봐야 하고 원리와 부작용이 입증돼야 한다. 면역항암제가 제일 처음 허가를 받고 사용된 흑색종이나 폐암에서는 더러 1, 2차 치료제로 쓰인다.
   
   왜 하필 흑색종이나 폐암일까. 흑색종과 폐암은 서구사회에서 가장 많이 발병하는 암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흑색종은 발병률 5~6위권을 맴도는 암이다. 폐암은 전 세계에서 발병률이 1위인 암이다. 글로벌 제약회사가 앞장서는 신약 개발에서 환자 수가 많고 임상시험 폭이 넓은 암 분야에서 먼저 신약이 시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흑색종에 대한 항암 치료는 처음부터 면역체계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었다. 강진형 교수는 “별다른 항암제가 개발되지 못하던 흑색종에서는 한참 전부터 면역치료를 통해 흑색종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많이 이뤄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면역체계를 변화시켜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자 곧바로 신약 개발의 핵심 분야로 포함된 것이다. 폐암의 경우는 유전자 변이가 많이 일어나는 특성상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더욱 보기 쉽다는 점도 고려됐다.
   
   그런데 한국은 사정이 좀 다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한 암은 위암이다. 대장암, 갑상선암, 폐암, 유방암, 간암이 뒤를 이었다. 보건당국에서 분류하는 5대암은 위암, 간암, 대장암, 자궁암, 유방암이다. 자연히 환자 수가 많은 위암이나 간암 환자들에게서 면역항암제에 대한 문의가 잇따를 수밖에 없다. 면역항암제의 글로벌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는 류민희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위암에서도 명확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옵디보가 위암 3차 치료제로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상황이다. 절제가 불가능한 전이성 위암이거나 절제술을 받았는데도 재발한 위암같이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면역항암제는 3차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위암 면역치료제를 사용한 환자들에게서 장기생존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암은 생존율이 비교적 높은 암이기는 하지만 뚜렷이 효과를 보는 치료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표적치료제를 통해 치료받지만 내성이 생기는 환자의 경우 치료가 매우 까다롭다. 3차 치료제로 쓰이는 약이 하나밖에 없을 정도다. 이 때문에 위암 환자들은 3차 치료에 이르기 전에, 조금 더 먼저 면역항암제를 써보고 싶어한다.
   
   간암도 마찬가지다. 간암에서는 면역항암제가 아직 치료제로 허가받지 못했다. 대한간암학회장인 박중원 국립암센터 간암센터 교수는 “간암은 기전이 복잡한 암이라 표적치료제를 쓰는 일도 쉽지가 않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반면 면역항암제에 대해서 항암 효과는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FDA가 보통 3단계로 이뤄지는 임상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2상 연구 결과만 가지고도 간세포암 치료제로 허가했다. 국내에서는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사전신청 요법’ 절차를 통해 종합병원에서 먼저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고가의 약값을 환자들이 그대로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간세포암 치료에 면역항암제를 사용할 경우 한 달에 600만원 정도가 든다. 최소 3~4개월을 사용해야 하는데 효과가 지속될 경우 1~2년간 투약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억 단위의 돈이 쓰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 지난해 8월 면역항암제를 사용하는 환자들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 모여 면역항암제 급여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photo 뉴시스

   급여와 비급여, 완치와 부작용 사이
   
   환자들은 면역항암제를 급여화해달라는 주장에 점점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백진영 신장암환우회 대표는 “신장암에 대해 면역항암제는 식약처로부터 1차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지만 워낙 약값이 비싸 환자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장암 1차 치료제로 허가받은 옵디보·여보이 병용요법은 기존 치료법보다 사망위험을 37% 떨어트리는 효과를 보였다. 환자들로서는 더 효과적인 치료제를 사용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 심정일 것이다.
   
   “신장암은 최근에 들어서야 면역항암제가 효과적인 치료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급여는 예전 기준에 맞춰서 1차 치료에 하나, 2차 치료에 하나로 한정돼 있다. 조금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싶은 것이 환자들이 공통적인 소망이다.”
   
   아시아임상암학회 회장이자 심평원의 암질환심의위원회 위원인 김열홍 고려대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는 고가의 항암제로 인해 이른바 ‘메디컬푸어’가 생기는 현실에 대해 연구해왔다. 김 교수에 따르면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는 항암제에 대한 급여율은 다른 질환치료제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희귀질환치료제의 급여율이 79%, 일반 치료제의 급여율이 89%에 달한 것에 비해 항암제는 64%에 그쳤다. 그만큼 건강보험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항암제가 많다는 얘기다.
   
   한국의 항암 신약 보험등재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OECD 평균적으로 보험에 등재되는 항암 신약이 62%에 달하는 것에 비해 한국은 29%에 불과하다. 등재까지의 소요기간 역시 OECD 국가 평균(245일)보다 한국(601일)이 훨씬 길다. 1년8개월이나 기다려야 보험에 등재되는 셈이다.
   
   지난 11월 1일 심평원에서 열린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도 급여 등재와 관련된 문제는 또다시 보류됐다.
   
   한국에서는 신약이 비교적 식약처의 허가를 받기 쉽지만 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간암에 대한 면역항암제는 아직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해 간암환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보통 제약회사의 글로벌 임상시험은 1상, 2상, 3상이라고 부르는 3단계 임상시험을 거쳐야 보건당국으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를 보면 FDA는 옵디보가 간암에 대해서 2상 시험만 끝났는데도 사용 허가를 내렸다. 그만큼 항암 신약이 환자들에게 긴급하고 신속하게 접근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허가가 난 약이 보험에 등재되기 전까지는 고가(高價)라 웬만한 환자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보통 글로벌 제약사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8000억원에서 1조원 정도가 든다. 그런데 면역항암제는 한 종류의 약으로 다양한 암 종류에 대해서도 효과를 확인하다 보니 개발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최소 평균 10배 이상 든다는 게 제약업계의 설명이다.
   
   “약가 협상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빠듯한 보험 재정 때문이다. 심평원에서 가장 초점을 두고 심사하는 것은 ‘경제성 평가’인데 약가를 얼마로 정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 핵심이다. 최대한 보험 재정에 무리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약가를 정하려다 보니 등재가 늦어지는 것이다. 그 사이에 환자들은 급한 대로 전액 자신이 부담하면서 비급여로 약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보험의 테두리 안에 잡히지 않는 약의 사용은 국가에서 모니터링하기가 어렵다. 미용 성형에 대한 실태조사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등재되지 않은 신약에 대한 ‘적정성’ 심사는 거의 불가능하다. 강진형 서울성모병원 교수의 말이다.
   
   “면역항암제는 그저 원한다고 해서 다 사용해서는 안 되는 약이다. 사용량이 많아지고 임상시험이 풍부하게 이뤄지면서 그 부작용도 뚜렷하게 보고되고 있다.”
   
   당장 강 교수는 지난 9월 독일에서 열린 국제 학회에 참석해 면역항암제의 부작용에 대해 토론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면역 관련 부작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직접 만들며 면역항암제의 부작용을 명시하기도 했다. 특히 항암제가 T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원리로 인해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부분은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다. 피부발진, 갑상선 기능 이상, 췌장세포 파괴로 인한 제1형 당뇨병 발병 등 제대로 된 처치가 없으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부작용이 꽤 있다.
   
   “면역항암제 같은 신약은 누구나, 아무렇게나 투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리와 부작용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환자의 상태를 정밀하게 관찰할 줄 알며 그 즉시 처치할 수 있는 의사가 다뤄야 한다. 항암제는 일반 약제와 다르다. 여러 전문가가 있는 자리에서 모니터링돼야 하는 약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는 누가 얼마큼 신약을 사용하는지 적정성을 제대로 심사하기 어렵다.”
   
   지난해부터 폐암과 두경부암 등에서 2차 치료제로 면역항암제를 사용할 때는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면역항암제에 대한 환자들의 기대가 팽배한 상황에서 급여화에 대한 요구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 리 없다. 김열홍 교수는 빠르게 반응하는 의료 현장에서는 다양한 약가제도와 본인부담률 차등적용 같은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신약에 대해 보수적으로 허가를 내주는 편이지만 일단 허가를 내주면 보험에 무조건 등재를 시킨다. 영국은 보험급여를 제한하면서도 저소득층을 위한 기금을 마련해서 본인부담률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다양한 치료 기회를 얻고 싶어하는 환자들의 접근성까지 방해받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면역항암제는 다른 모든 항암제를 대체할 만한 만능 신약이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치료기회가 없어 삶을 잃어가던 환자에게는 치료 기회를 대폭 넓혀주는 구세주인 것만은 확실하다. 만약 면역항암제를 보험재정을 위협하는 ‘비용’으로만 생각한다면 환자들의 치료 기회 확대는 물론 변화하는 의료환경을 따라잡는 일은 요원할 것이다. 강진형 교수의 말이다.
   
   “면역항암제는 항암치료뿐 아니라 신약에 대한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에도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면역항암제는 거의 실시간으로 여러 다양한 암의 다양한 단계에서 허가가 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건강보험 체계는 매우 낮은 본인부담률을 강조하며 보장성 확대만을 논하고 있기 때문에 고가의 신약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조금 더 부담하더라도 치료 기회를 갖고 싶어하는 환자들도 많다. 환자의 필요성과 건강보험 재정 간의 절충점을 새로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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