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새로운 당 지도부와 함께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참배를 간 황교안 자유한국당 신임 대표(가운데). ⓒphoto 뉴시스
지난 2월 28일 새로운 당 지도부와 함께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참배를 간 황교안 자유한국당 신임 대표(가운데).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월 27일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50% 득표율로 승리를 거두고 28일 공식 취임했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로 탄핵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그는 2년 만에 제1야당 대표로 문재인 정권과 맞서게 됐다. 그는 취임 일성부터 강력한 대여(對與) 투쟁을 예고했다. 당선 수락 연설에서 “이 단상을 내려가는 그 순간부터 문재인 정권의 폭정에 맞서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치열한 전투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또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 자유한국당은 원팀”이라며 “우리가 다시 하나 되면 못 해낼 일이 없다”고 했다. 당내에서는 보수 진영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황 대표가 당의 간판으로 들어선 것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일각에선 ‘정치 신인 황교안’이 이제부터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취임 첫 일성은 ‘통합’

황 대표는 2월 28일 취임 후 가진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하루 전 전당대회 유세 연설에서 대여 투쟁에 방점을 찍은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황 대표는 “통합이 가장 중요하고, 선행돼야 한다”며 “당의 통합은 물론 나아가 넓은 통합까지 확실히 이뤄져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대한애국당 등을 포함한 보수대통합을 강조한 것이다.

황 대표는 “국민이 원하는 당으로 변모해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당으로 변모하는 일, 앞으로 우리의 큰 과제”라고도 했다. 이어 “국민이 바라는 가장 큰 바람은 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 폭정을 막아내라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필요하면 과감히 싸워달라는 것”이라며 “이런 부분들도 받들어서 정말 강력하고 그리고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대안 정당으로서의 투쟁 모습을 보여 나가야 한다”고 했다.

현장 행보도 강조했다. “도탄, 파탄에 빠진 민생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책상 앞에서 일하는 정당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정당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최고위원들과 함께 당의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나부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황 대표는 이날 첫 공식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방명록에 “위대한 대한민국의 다시 전진, 자유한국당이 이뤄내겠다”고 적었다. 현충탑 참배 후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차례로 찾은 황 대표는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전직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데 대해 “이제는 우리나라가 하나 되고 화합해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간절함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 방문 계획도 밝혔다. 취재진 질문에 황 대표는 “지금 방문 일정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황 대표는 당대표 경선에서 과반 득표율로 오세훈 후보를 크게 앞섰지만 일반 국민여론조사에선 오 후보(50.2%)에 12.5%포인트 뒤진 37.7% 득표에 그쳤다. 이런 점을 감안해 황 대표가 취임 직후 통합을 강조하는 행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 측 관계자는 “당심(黨心)은 확실히 잡았지만 중도 성향 민심(民心)을 잡기 위한 노력이 당면과제로 떠올랐다”며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경제·안보 정책은 확실하게 비판하되 합리적 중도 성향 국민들을 한국당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가겠다”고 했다. 황 대표도 당선 직후 인터뷰에서 ‘중도 확장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 당 안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인재가 많이 있다”며 “이분들과 함께 중도 통합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함께하면 원팀이라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함께하면 우리 당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외연을 넓혀가는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고도 했다.

예상보다 약했던 ‘태극기’

지난 전당대회는 우경화 논란 속에 치러졌다. 이른바 ‘태극기부대’라고 불리는 극우 성향 지지층이 합동연설회장을 휩쓸었고,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등은 국회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이 주장된 토론회를 열어 여야 모두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전대 토론회 등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쟁점들이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제1야당으로서 합리적 대안 제시는 하지 못하고 과거 이슈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황 대표도 ‘탄핵 절차의 정당성 문제’와 ‘최순실 태블릿PC 조작 가능성’을 언급해 논란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황 대표뿐 아니라 다른 후보들도 이번 전대 과정에서 ‘태극기 세력’의 위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던 것 같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극도로 예민하게 반발하는 일부 지지층 때문에 한국당의 정치적 부담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좀 더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황 대표는 당선 직후 인터뷰에서 ‘태블릿PC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었다’는 질문에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존중한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드렸다”며 “이제는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는 일에 매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내에서는 황 대표가 전대를 전후해 제기됐던 당의 우경화 논란에 과감하게 선을 긋고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온 4·3 재보선에서 승리하고 당 지지율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중도층 공략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내 ‘태극기 세력’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사실도 이번 전대를 통해 확인됐다. ‘태극기 세력’의 전면적 지지를 받았던 김진태 후보가 한때 2위를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개표 결과 2위 오세훈 후보에게 1만6000여표 차로 뒤진 3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김 후보 측은 그간 “투표함을 열면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해왔다. 김 후보는 전당대회 당일에도 “5·18 유공자 명단 공개하라는 게 망언입니까”라며 강경 주장을 이어갔다. 반면 ‘태극기 세력’의 집중적인 비난과 야유를 받았던 오 후보는 이날 전대에서도 “‘5·18 망언’으로부터 시작된 전대는 온갖 분노를 표출하는 장으로 변해버리더니, 탄핵 논란까지 가세해서 미래는 완전히 사라지고 과거로 뒷걸음치고 말았다”며 “과거에 발목 잡혀 국민 여망을 담아내지 못하면 국민은 다시 우리 당에 회초리를 들 것”이라고 했다. ‘저딴 게 대통령’ 등 전대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 등에 대한 막말로 논란을 일으켰던 김준표 청년 최고위원 후보도 신보라 의원에게 밀려 당선되지 못했다.

대구 지역 한 의원은 “보수 성향이 가장 강한 지역이 대구와 경북이지만 이곳에서도 ‘태극기 세력’의 영향력은 그렇게 크지 않고 보수는 기본적인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황 대표에 대한 지지세도 그런 품격을 가진 지도자로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북 지역 한 의원은 “황 대표가 강경보수 성향이라면 오히려 영남 지역에서도 실망감이 더 클 것”이라며 “이곳 주민들은 황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에 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혀주고 당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 만한 대안을 제시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친박에 둘러싸인 채 ‘탕평’ 가능할까

황 대표 체제의 출범으로 당은 다시 친박계가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작년 12월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친박 진영의 지원에 힘입어 나경원 원내대표가 당선됐고, 이번 황 대표 당선에도 친박계 의원들의 물밑 지원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친박 의원들은 자신의 보좌진을 황 대표 캠프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비박계도 이런 상황에 맞서 결집하지 않고 ‘황교안 대세론’을 인정하며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에 따라 전대 과정에서 계파 갈등은 거의 불거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황 대표가 친박과 비박을 가리지 않는 탕평 당직 인선으로 당내 불화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비례대표 의원은 “어떻게 보면 황 대표는 박 전 대통령 탄핵과 탈당으로 이어지는 당의 분열 과정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과거 어떤 당대표보다 계파 구도에서 자유롭게 당을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라며 “전당대회 과정에서 도움을 준 의원들에게 인간적인 고마움을 표시할 수는 있겠지만 당직 인선 등에서는 ‘탕평’이라는 두 글자를 늘 염두에 두고 인선에 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친박과 비박이란 말 자체가 나오지 않도록 당을 이끌어가야 비로소 국가 운영에 대한 생산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당력이 집중될 것”이라며 “황 대표가 비록 정치는 신인이지만 소신을 지켰던 법조인 출신이기 때문에 이제는 좀 더 자신 있게 당 개혁 작업을 진행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보수 대통합을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당이 하나로 뭉쳐 있어야 한다”며 “한국당 의원들의 계파 갈등 구조가 워낙 첨예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황 대표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객관적인 판단을 이어간다면 뜻밖에 쉽게 풀려나갈 수도 있으며 결국 당 외곽의 인사들이나 세력들과도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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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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