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5번가의 ‘로드 앤 테일러(Lord & Talyor’s)’의 플래그십스토어. ⓒphoto 뉴시스
뉴욕 맨해튼 5번가의 ‘로드 앤 테일러(Lord & Talyor’s)’의 플래그십스토어. ⓒphoto 뉴시스

미국 뉴욕 맨해튼의 개발업체 ‘브로드 스트리트 디벨로프먼트’는 현재 ‘노호가(街)’에 호화주택을 건설 중이다. 제일 싼 집이 200만달러가 넘을 정도로 비싼 주택이다. 이 회사는 초고가 주택을 홍보하기 위해 실내디자이너 라이언 코반(Ryan Korban·34)을 채용했다. 라이언 코반은 인스타그램에서 13만7000명의 팔로어를 몰고 다니는 큰손이다. 그는 맨해튼 매디슨애비뉴에 있는 최고급 패션 브랜드 ‘아쿠아주라 부티크(Aquazzura Boutique)’의 플래그십스토어를 대담한 디자인으로 인테리어해서 셀카를 찍는 고객들로 매장을 꽉 채운 인물이다. 그의 미션은 모델하우스 방문객들이 로비에서 셀카로 인증샷을 찍었을 때 ‘십 년은 젊게 보이도록’ 조명기구와 가구를 선정하고 셀카 앵글에 맞도록 배치하는 것. 이런 영업 전략은 공식처럼 쓰이던 ‘신비주의 마케팅’과는 완전히 반대다. ‘인스타그램’ 열풍은 보수적인 고급 주택 개발업계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틀이 변하고 융합하는 세상이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의식주의 형태는 예전과 같지만 소비하고 판매하는 방식은 하루가 무섭게 변해가고 있다. 그 결과가 아마존, 알리바바와 같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급성장이고, 160년 역사의 세계 최대 백화점 ‘메이시스’와 수많은 명품숍들의 몰락이다. 이 변화의 바람은 부동산 시장에도 몰아치고 있다. 리테일(retail), 즉 상가를 개발하는 디벨로퍼들은 쇼핑의 ‘큰손’으로 등장한 밀레니얼 세대의 변덕스러움에 맞추기 위해 좌불안석이다.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하는 유통 채널의 변화는 상업용 부동산 개발업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2016~2017년 본점과 전 세계 매장 100여곳의 문을 닫은 메이시스 같은 대형 상업시설에 투자한 투자자들이나 담보대출을 제공한 상업은행들처럼 피해를 입는 당사자들은 무수히 많다.

상업용 부동산 안전한가

우리나라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어떠할까. 우리나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금도 상가를 개발할 때 임차가 아닌 분양형 개발이 대세다. 자금이 부족한 영세업체들이 부동산 개발에 뛰어들다 보니 본전(원금)을 회수하고 수익 확보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임대보다는 개인을 대상으로 파는 분양이 돈 벌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상가 개발업체들이 상가를 ‘직영’하지 않고 ‘치고 빠지는’ 이유다. 따라서 공실에 따른 손실의 ‘덤터기’는 오롯이 ‘눈먼’ 수분양자에게 돌아간다. 최근에는 5060 퇴직자들이 정부의 규제 탓에 아파트 취득이 어려워지자 상가 투자에 퇴직금을 ‘몰빵’한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한국감정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상가 투자수익률은 예금금리보다 3배가 높은 7%를 돌파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금리를 단순 비교한 결과일 뿐이다. 리테일 투자는 상권이 ‘자리 잡을 때까지’ 발생하는 초기 공실, 취득세와 재산세, 건물 노후화에 따른 감가상각과 임차인의 잦은 변동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리테일의 분양가격이 높다는 사실이다. 누가 봐도 상권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곳, 특히 ‘더블(복합)상권’ 등은 분양가가 매우 비싸다. 개발업체가 분양가를 책정할 때에 상권 프리미엄을 얹기 때문인데 그 결과 임대수익률은 더 낮아진다.

지금처럼 리테일과 유통채널의 시장 구조가 급변하는 현실에서는 수분양자가 나중에 되팔 때 최초 분양가격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장사가 잘 되어야 건물주는 임대료를 올릴 수 있고 매매가격도 상승하는데, 임차인이 점포를 비울까 걱정하는 상황에서는 임대료를 인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향후 상업시설의 분양성은 불투명하므로 개발업계는 상업시설의 개발 면적을 줄이는 대신 주거면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것이고, 상업용지의 토지가격은 장기적 관점에서 하락이 예상된다. 주거와 상업시설을 함께 개발하는 주상복합도 마찬가지다. 결국 부동산 시장은 자본력 있는 일부 대형 시행사, 건설사와 부동산 신탁회사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은 분야는 리테일과 유통이다. 리테일과 유통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다. 전자상거래의 활성화에 따른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경험하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온라인 유통

2018년 미국의 온라인 소매 매출 성장률(12%)은 오프라인 소매 매출 성장률(4.4%)의 약 3배다. 그 결과 뉴욕 맨해튼의 명품 쇼핑거리 ‘5번가’가 텅텅 비어가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2018년 9월 기준 맨해튼 리테일의 20%가 공실이다. 가히 미국 유통업이 ‘대재앙’을 겪고 있는 것이다. 5번가의 상가 임대료는 2017년 기준 1㎡당 연간 3622만원으로 세계에서 제일 비쌌다. 3.3㎡(1평)의 연간 임대료가 1억원이 넘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브로드웨이에는 빈 상점만 188개이다. 의류 브랜드 갭(GAP)은 맨해튼 5번가 3층짜리 플래그십스토어를 폐점했고, 폴로도 2018년 맨해튼 플래그십스토어를 폐쇄하면서 전 세계 50개 매장을 닫았다. 캘빈클라인, 베르사체의 명품 브랜드도 5번가 매장을 이미 폐쇄했거나 철수를 검토 중이다. 이러한 유통업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전자상거래의 발달이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유통 기업들이 거꾸로 오프라인 유통망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2017년 아마존은 오프라인 유통 사업을 하려고 유기농 슈퍼마켓 ‘홀푸드’를 인수했다. 지금 미국 정치권에서는 온라인 공룡 아마존이 오프라인 유통 시장을 장악하면 거대한 독점기업이 될 것을 우려해 아마존을 해체한 뒤 여러 개 자회사로 강제 분할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온라인 유통 기업의 파워를 보여주는 사례다.

온라인 유통 채널의 진격에 오프라인 유통 기업도 살아남기 위해 반격을 가하는 중이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매장에서 2㎞ 안에 있는 고객이 모바일앱으로 커피 등을 선주문하고 결제할 수 있는 ‘사이렌 오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회사는 자체 개발한 사이렌 오더를 미국 본사에 제공했고 본사는 전 세계 매장에 이를 보급했다.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대표적인 혁신이다.

온라인 시장의 확장은 오프라인 기업의 매장 전략도 변화시켰다. 보통 상가 건물 1층은 수요가 많아 임대료가 비싸고 위로 올라갈수록 임대료가 낮아진다. 이것을 ‘플로어팩터(floor factor)’라고 부른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의 플래그십스토어인 ‘SPC플레이’는 이러한 플로어팩터를 완화하기 위해 건물 외벽에 엘리베이터를 추가로 설치해 도로에서 2층, 3층으로 곧바로 출입할수록 매장을 구성했다. 출입동선을 최소화하고 노출을 극대화시켜 매출을 올리려는 목적이다.

오프라인 유통 기업들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상점인 ‘팝업스토어’도 선보이고 있다. 팝업스토어는 ‘폐업 세일’이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단기간 떨이 제품을 파는 가게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원하는 콘셉트와 상품기획에 따라 의도적으로 ‘반짝 장사’를 하고 고객의 반응을 제품 개발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통상의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했을 때 시장 트렌드와 상권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팝업스토어는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은데 미국의 팝업스토어 전문업체 ‘팝업리퍼블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미국 팝업스토어 시장의 거래액은 10조7000억원 수준으로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처럼 온라인 업체들이 오프라인 유통망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오프라인 기업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는 치열한 영역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향후 10~20년 이내에 전자상거래와 오프라인 매장이 결합한 ‘신(新)유통’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유통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사용자와 상품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상품의 생산, 유통, 판매가 고도화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모바일 시대, 리테일 시장을 흔들다

요식 업계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주문의 대중화는 외식 업체의 오프라인 매장을 위축시키는 추세다. ‘배달의 민족’ 같은 외식 배달 플랫폼의 등장은 오프라인 매장을 소비자의 반응을 확인하는 ‘안테나숍’ 정도로 위축시켰다. 1인가구 증가에 따른 ‘혼밥’의 보편화와 경기 침체의 장기화에 따른 소비 감소로 인해 외식 업체 매장은 갈수록 축소될 듯하다.

문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진입이 깊어질수록 오프라인 음식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감소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소매업 컨설팅 업체 이케이엔(EKN)은 수년 내에 전통적 형태의 오프라인 매장은 50% 이상 없어지고 팝업스토어, 플래그십스토어와 같은 테마형 매장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오프라인 리테일의 붕괴를 경험 중인 미국의 지자체들은 위기에 빠진 상가를 살리기 위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예컨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케임브리지시는 도심 토지 사용에 관한 조례를 바꿔버렸다. 아이스크림, 맥주 등을 주방에 설치한 시설을 통해 직접 제조해 매장에서 팔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지금까지 케임브리지시는 대다수 도시가 그렇듯이 맥주 생산을 중공업의 하나인 보틀링(bottling) 시설로 분류해 도심에서의 생산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도시의 골목상권이 붕괴하는 모습을 보고 규제를 없앤 것이다.

테네시주 멤피스시도 리테일에 공급하는 제품들의 도심 생산을 허용했다. 그 결과 비누 생산업체 ‘버프 시티 솝 컴퍼니(Buff City Soap Company)’는 멤피스시 도심에서 소비자들이 보는 앞에서 비누 생산 과정을 보여주고 즉석에서 판매하는 색다른 마케팅을 펼쳐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뉴욕주의 코닝시는 도심의 모든 쇼핑가에 건널목을 추가로 설치하기도 했다. 쇼핑객들이 편리하게 이동해야 소매점 방문 횟수와 매출이 증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유통 붕괴가 세수 부족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지자체들이 소매 상점들을 살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구매 기호 역시 물건의 구입에서 ‘경험의 구매’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부동산 시장에서도 ‘소유’는 감소하고 ‘사용’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물론 시대정신이 변해도 부동산은 여전히 ‘위치’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점점 운영의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부동산의 가치보다는 운영 방법이 더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이 논리는 주거, 소매상가 등 모든 부동산에 적용된다. 부동산 산업에서도 디지털 혁신이 본격화되면 기존에 사람이 제공하던 서비스는 사라지고 빈자리를 기계가 대체할 것이다. 동네 음식점들이 최근에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입하는 ‘무인판매기’ 같은 시스템을 부동산 업계가 도입한다는 얘기다.

국내의 KB금융연구소도 부동산 시장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계약이 확산되면 거래 자동화가 가속화되고 거래가 투명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아울러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부동산 분석 및 예측 기법이 부동산 가격의 급등, 폭락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가에 투자하려는 5060 퇴직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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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 부동산학 박사·건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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