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이라크전에 투입돼 작전을 수행 중인 CH-60 시 나이트 헬기. 미 해병대 제3상륙군 사령관이 한국 해병대에 20대 제공 의사를 밝힌 것과 동형이다. ⓒphoto 로이터
2003년 4월 이라크전에 투입돼 작전을 수행 중인 CH-60 시 나이트 헬기. 미 해병대 제3상륙군 사령관이 한국 해병대에 20대 제공 의사를 밝힌 것과 동형이다. ⓒphoto 로이터

미국 해병대의 한 부대가 40여년간 사용하다 퇴역시킬 예정인 CH-46 시 나이트(sea knight) 헬기 20대를 한국 해병대에 주겠다는 의사를 밝혀옴에 따라 국방부는 미 국방부에 공식 입장을 확인하는 한편, 수용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 관계자는 4월 16일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대 제3상륙군(3rd MAF) 사령관이 최근 훈련 기간 중 한국을 방문해 우리 군에 노후 헬기 CH-46 20대를 제공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면서 “제3상륙군 차원의 제안이어서 미 국방부의 공식 입장과 부속품 공급 등 향후 군수 지원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측이 지원하겠다는 CH-46 헬기는 1970년대 초 생산돼 1990년대 동체 리모델링을 거친 기종으로 40년 이상 사용한 노후 헬기다. CH-46은 무게 5230㎏, 너비 15.24m, 높이 5.09m에다 최고속도 시속 276㎞, 항속거리는 355㎞다. 승무원 2명을 포함, 25명의 병력을 실어나를 수 있다.

이 국방부 관계자는 “미군은 시누크 계열 기동헬기를 최근 개발한 V-22 ‘오스프리’ 기종으로 교체하고 있다”며 “한국 해병대가 기동헬기를 보유하지 못해 작전에 한계가 있는 점을 고려해 퇴역 예정이던 헬기를 지원하겠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퇴역 헬기를 미국 본토로 옮기는 수송비와 폐기 비용을 고려해 한국 해병대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이를 보고받고 수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이 최근 외국의 노후 장비를 들여온 사례는 없었다. 노후 헬기를 들여올 경우 우리 군의 용도에 맞게 개조하고 부품을 교체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국방부가 미국의 제안을 고민하는 것은 해병대용 헬기의 필요성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한반도의 화약고인 서북도서 방어를 맡고 있는 해병대의 기동력 보강을 위해 상륙기동헬기는 필수”라며 “새로운 기종을 도입하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데 때마침 미국 측이 헬기 공여 제안을 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체 헬기 보유는 해병대의 悲願”

국방부가 미 국방부와 헬기 공여를 놓고 협의하는 사이, 해군과 해병대는 이 헬기를 놓고 서로 갖겠다고 다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해군 관계자는 “해병대 상륙작전은 해군이 주도하게 돼 있으므로 헬기 보유도 해군이 해야 한다”면서 “해군은 항공부대(6항공전단)를 운영하고 있어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해군이 보유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해군이 보유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해병대가 가져다 쓰면 된다는 주장이다.

해병대는 해군의 생각에 반발하고 있다. 유사시 포항의 해군 6전단에서 서해 백령도까지 항공기로 이동하는 데 2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작전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해병대 관계자는 “군사적 상황은 불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과 작전을 위해 해병대가 헬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격 헬기와 수송 헬기를 동시에 보유할 경우 대북 억제력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해병대 관계자는 “미 해병대 제3상륙군 사령관이 한·미 간 작전수행을 할 때 템포도 안 맞는 데다 공중 전력 하나 없는 게 안쓰러워 그런 제안을 했던 것 같다”면서 “해병대에서 자체 헬기를 보유하고자 하는 것은 비원(悲願)에 가깝다”고 했다.

국방부는 현재 해병대용 공격헬기 16대와 상륙용 수송헬기 40대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해병대의 신속한 기동을 위해 상륙기동헬기 도입을 2005년 이후 추진해 왔다. 하지만 해군과 해병대는 해병대용 공격헬기와 상륙용 수송헬기 사업에서도 헬기 소유권 다툼을 벌여왔다. 이 바람에 현재 상륙용 수송헬기는 기종조차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해병대 상륙작전은 해군 작전의 일환이므로 항공전력(6전단)을 보유한 해군이 운영해야 한다는 해군의 주장, 그리고 이에 맞서 실제 사용하는 부대가 보유·운영해야 효과적이라는 해병대의 논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상륙용 수송헬기 사업도 ‘소유권’ 다툼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해병대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기도 했으나 해군이 강력 반발하는 바람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신형 헬기 도입이 계속 늦어지자 군은 뒤늦게 ‘총 40대 중 1차로 도입되는 32대 중 해군이 14대, 해병대가 18대’라는 절충안을 마련했다. 군 관계자는 “해병대에 배치가 확정된 공격헬기 16대에 상륙기동헬기가 추가되면 해병대 전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며 “특히 백령도 맞은편 장산곶에 위치한 공기부양정 기지의 북한 특수부대를 견제하는 전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은 소유권 정리로 시간을 끈 만큼 헬기 기종 선정에 속도를 높일 방침이다. 후보 기종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개발을 끝내고 테스트 중인 한국형 수송헬기 ‘수리온’이다. 수리온은 항속거리 450㎞, 최대속도 시속 260㎞로 무장병력 16명을 태울 수 있다. 한국형 기동헬기(KUH)사업으로 오는 6월 개발 완료를 앞둔 수리온은 육군의 노후화된 UH-1H와 500MD를 대체할 예정이다.

해군과 해병대 간의 헬기 소유권을 놓고 힘겨루기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예비역 장성들을 중심으로 “이번 기회에 육·해·공 헬기전력을 통합해 운용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들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한국군은 현재 육군이 460여대의 헬기(공격헬기 240대, 수송헬기 220대)를 운용하는 등 육·해·공 통틀어 700여대의 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300여대)은 물론 중국(600여대)보다 많은 700여대의 헬기를 보유한 세계 5위권의 ‘헬기 강국’이다.

헬기는 한국군의 차기 무기도입 사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다. 해군의 대잠헬기 사업, 상륙기동헬기 사업, 소해(掃海)헬기 사업, 육군의 차기 공격헬기 사업 등 금액으로만 따지면 총 3조원에 달한다. 육군은 이밖에도 차기 경전투 헬기 사업, 수리온 기동헬기 도입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전 세계에서 미국, 일본 다음으로 회전익 전력 개발과 도입사업을 많이 추진하고 있는 나라다.

육·해·공 헬기 부대 통합 가능할까

육군 항공작전사령관을 지낸 K씨는 “노태우 대통령 말기인 1991년, 합참 작전과 주도로 헬기전력 통합을 검토해 보라는 지시가 있었다”면서 “합참의 생각은 공군은 전투기를 중심으로 운용하고 육군은 헬기를 통합해 운용하게 하자는 취지였고, 육군은 통합이 가능하다는 보고를 올렸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계획은 해·공군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됐다고 한다. K씨는 “공군은 ‘헬기를 지휘기로 사용하기도 하고 탐색구조 임무도 해야 한다’고 했고, 해군은 ‘링스 대잠헬기처럼 헬기세력을 키워가고 있는데 주도권을 뺏길 수 없다’는 논리였다”고 했다. 그는 “정비·교육훈련 등 헬기 운용의 묘(妙)를 살리자면 통합하는 것이 맞고, 작전운용성을 볼 때는 각 군이 따로 운용하는 게 유리하다”면서 “육·해·공을 통합한 국군헬기사령부(가칭)를 만들어 운용하고, 작전 권한은 각 군에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했다.

김국헌 전 국방부 군비통제관(예비역 육군 소장)은 “공군의 탐색구조 헬기도 육군항작사에서 운용하는 등 국군의 헬기를 통합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우리 해병대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서북도서 방위로 모든 편성과 장비, 교육과 훈련은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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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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