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교만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당연했다. 그러니 감사할 줄도 몰랐다. 2000년 5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암은 사형선고에 가까웠다. 죽음 앞에 서고 보니 아침에 눈을 떠서 양치질하는 것도 고마웠다.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해도 건강하니 다행이다 싶고, 한쪽 가슴을 절제한 것도 사지 절단보다 낫다 싶었다. 매사가 감사할 일이었다. ‘고개만 돌리면 극락이다.’ 이 문구를 침대 머리맡에 붙여놓고 마음을 다스렸다. 주문을 외듯 모든 일상에 적용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다. 색소폰과 기타 배우기였다. 서울대병원에서 같이 수술을 받은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은 큰 위로가 됐다. 주변을 돌아볼 줄도 알게 됐다.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목요일은 서울대병원 교육센터에서 암환자들에게 상담을 하고 금·토요일은 요양원 등을 찾아 색소폰 연주를 한다. 암 진단을 받은 이후 내 삶은 오히려 행복해졌다. 암은 내 인생에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죽을 정도만 아니라면 암이 축복이 될 수 있다”고 주변에 말한다. - 주부 주광재씨·65세

직진! 인생에는 그 단어밖에 없는 줄 알았다. 8년 전, 위가 따끔따끔 바늘로 찌르는 듯이 아파 병원을 찾으니 위암이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공포를 느꼈다. 자신만만했던 삶을 망치로 한 대 내려친 것 같았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앞만 보고 달리다 멈춰 서니 주변이 보였다. 후배들을 밀어붙이고 혼자 책임지려 했던 것이 오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만 내밀면 함께할 가족과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나’가 아닌 ‘우리’로, ‘무조건 해!’가 아닌 ‘함께 해보자’로 단어를 바꾸니 일이 즐거워졌다. 즐기던 술도 담배도 끊었다. 운동이라고는 ‘숨 쉬기 운동’밖에 몰랐는데 등산, 달리기를 즐기게 됐다. 아내와 함께 산책도 자주 한다. 주변에서는 “사람 됐다”고 농담을 던진다. - 회사원 양동혁씨·52세

주광재씨와 양동혁씨는 암을 극복하고 이전보다 훨씬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무엇이 이들을 바꿨을까. 주간조선과 전화 인터뷰를 한 두 사람의 목소리는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암을 이겨낸 ‘최고의 약’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꼽았다.

암은 이제 불치병이 아니다.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2015년 기준 70.7%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16.7%가 증가한 수치이다. ‘생존’이 일반화된 상황이니 ‘암 생존자’가 아니라 ‘암 경험자’로 불러야 한다. 암 경험자는 2016년 161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31명 중 1명이 암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암은 이제 ‘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치료의 패러다임도 달라져야 한다. 암 치료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치료 이후 삶의 질 높이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암 재발 등 질병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삶의 질은 몸의 건강은 물론 마음의 건강까지 포함한 것이다. 암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사회적 의료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사실 암환자들은 병원 치료가 끝난 이후부터 진짜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어떻게 건강을 회복할지는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가장 큰 스트레스다. 새로운 2차 암, 만성질환도 위협적이다. 주광재·양동혁씨처럼 삶을 주도적으로 바꾼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절망과 우울 속에서 고통받는 경우도 많다.

암 경험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센터 윤영호(54) 교수는 20년 가까이 이 문제를 연구했다. 수많은 암 환자를 만나고 연구를 통해 ‘건강한 삶을 위한 10대 수칙’을 만들었다. 10대 수칙은 암 경험자 220명의 사례와 그동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임상시험 등을 거쳐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으로 75편의 논문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서울대병원은 10대 수칙을 암 경험자 건강회복 프로그램에 활용하고 있다. 이 10대 수칙은 비단 암 경험자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도 적용되는 것들이다.

10대 수칙은 무엇보다 암을 이긴 220명의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윤 교수는 암 경험자의 삶의 질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4000여명에게 편지를 보냈다. 어떻게 암을 이겨내고 건강을 되찾았는지 묻는 내용이었다. 답장을 보내준 사람은 220명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들의 답장 내용이 함께 썼나 싶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정리하니 10가지가 나왔다. 놀랍게도 윤 교수가 암 재발을 막고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진행해온 연구 결과와도 딱 맞아떨어졌다. 이는 의료 전문가들이 권장해온 건강지침들과도 비슷하다. 10대 수칙은 다음과 같다.

1. 긍정적인 마음

2. 적극적인 자세

3. 규칙적인 운동

4. 올바른 식습관

5. 금연과 절주

6. 정기적인 건강검진

7. 과로는 금물! 나에게 맞는 생활하기

8.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9. 마음 베풀기

10. 종교생활

특별한 건강비법을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사실 10대 수칙은 너무나 평범하고 뻔한 내용이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잘 먹고, 잘 쉬고.” 병원에 가면 병명에 상관없이 의사에게 들어봤던 내용과도 다르지 않다. 결국 건강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습관’에 있다는 것이 삶의 끝을 경험한 220명의 암 경험자가 얻은 결론이었다. 윤 교수가 그동안 수많은 환자들과 만나면서 들은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평범한 진리를 ‘습관’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새해를 며칠 앞둔 12월 29일 서울대병원 진료실에서 만난 윤 교수 역시 “습관이 만들어지는 데는 6개월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생각을 안 해도 행동이 되기까지 반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6개월 이상 지속해야 진짜 습관이 되고 몸에 배면서 자동적으로 실천하게 됩니다. 저도 매일 아침 야채를 먹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역겨웠습니다. 참고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습관이 됐습니다. 이젠 식당을 가면 식탁의 야채는 전부 제 겁니다. 하하. 한 분야의 달인이 되기 위해 보통 1만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암 환자의 경우 진단부터 완치까지 5년을 잡고, 1만시간을 만들려면 1일 6시간입니다. 그 정도는 투자해야 건강의 달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윤 교수는 “암에 걸리는 것은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지만, 암을 대하는 태도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면서 영국인 사회개선가 사무엘 스마일즈의 말을 빌려 습관의 힘을 설명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되고, 행동이 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성격이 달라지고, 성격이 달라지면 운명이 바뀝니다.”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센터 윤영호 교수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센터 윤영호 교수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10대 수칙을 10대 습관으로

윤 교수는 10대 수칙을 모든 사람들의 건강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다. IT를 활용한 ‘스마트 건강관리’ 시스템도 개발해놓은 상태이다. 모바일 앱을 통해 자신의 건강 상태부터 건강 습관 등을 매일 점검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매뉴얼북도 만들었다. 매 수칙마다 학습-실행-점검-기억의 단계를 거치면서 습관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난해 연말 ‘습관이 건강을 만든다’(예담아카이브)란 책을 펴내고 10대 수칙의 원리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책에 나온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0대 수칙 중 첫 번째는 긍정적인 마음이다. 세계폐암학회는 2010년 534명의 폐암 환자 중 암 진단을 받기 전 실시한 성격검사에서 긍정적인 성격에 가까웠던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생존기간이 평균 6개월이나 더 길다고 보고했다. 이들의 5년 생존율도 12% 더 높았다.

긍정적인 마음도 훈련과 습관에 따라 길러질 수 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설명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는 머릿속에 있는 ‘스톱’ 버튼을 누르고 현재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연습을 해보자. 긍정적인 마음 가지기의 1단계는 스트레스 알기이다. 스트레스 관리가 제대로 돼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스트레스는 외적 스트레스와 내적 스트레스로 나뉜다. 외적 트레스는 바꾸기 힘들지만, 이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내적 스트레스는 각자의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부정적인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모든 스트레스가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스트레스는 동기를 부여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나쁜 스트레스를 좋은 스트레스로 바꾸는 것이 생각의 힘이다. 등산이 ‘노동’이 되느냐 ‘운동’이 되느냐는 생각에 달렸다.

스트레스 상황을 전환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발성 연습을 하듯 ‘하하하’ 큰 소리로 웃는 것이다.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인 상황으로 바꿔 생각해 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긍정적인 단어들이 머릿속에 저장되면서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말버릇을 갖게 된다. 나를 칭찬하고 응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잘하고 있어!” “힘내!” “나는 건강해질 거야!” 응원메시지를 잘 보이는 곳에 붙이고 주문처럼 외우자.

규칙적인 운동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셀 수 없이 많다. 숙면과 근력, 체력 유지에도 도움이 되고 식욕, 면역력도 높인다. 자신감, 기분전환 등 정서적으로도 좋다. 유방암 경험자 93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암 진단 후 신체 활동량이 늘어난 사람들의 사망 위험이 45% 낮아진 반면 활동량이 줄어든 사람은 사망 위험이 4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질환별로 맞는 운동을 해야 한다.

폐암의 경우 복식호흡이나 풍선불기처럼 오래 숨을 내뿜을 수 있는 운동으로 시작해 어깨, 가슴 스트레칭, 유산소운동 순으로 점차 늘려가는 것이 좋다.

대장암·직장암의 발병 요인은 동물성 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하거나 칼슘, 비타민D 부족, 비만, 과체중 등이다. 활동이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발병 위험이 30~40% 낮다. 따라서 몸을 많이 쓰거나 운동을 하는 것이 1차 예방법이다. 매일 30분 이상 빠르게 걷기나 자전거 같은 중강도 운동을 생활화해야 한다. 골반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케겔 운동도 좋다. 전립선암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으나 암 경험자 중 체중이 늘어난 사람의 재발률이 두 배나 높았다. 남성호르몬 억제 치료를 받기 때문에 뼈의 강도가 약해지고 근육량이 줄어들어 규칙적인 운동은 필수다. 케겔 운동을 생활화하고 근력운동이 좋다.

유방암 환자는 수술 초기 목이나 어깨 돌리기, 가슴근육을 늘릴 수 있는 스트레칭 동작을 꾸준히 실시하고 서서히 운동량을 늘린다. 요가, 필라테스, 탄력밴드 등을 활용한 유연성 운동이 근육을 부드럽게 하고 림프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준다. 조깅, 수영, 자전거 같은 유산소운동도 좋다.

올바른 식습관은 건강한 몸을 위한 기본 재료다. 환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바로 식습관이라는 것이 윤 교수의 말이다. 윤 교수는 먼저 “좋은 음식을 찾기 전에 나쁜 음식부터 피하라”고 권한다. 식습관이 중요한 이유는 적정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비만이나 저체중은 건강을 훔치는 주범으로 꼽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 마시고, 밥에 잡곡을 섞고, 탄산음료 대신 과일주스로 바꾸는 등 사소한 습관을 하나씩 바꿔나가도록 권한다.

윤 교수는 무엇보다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나 건강식품을 맹신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모든 음식에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효능과 부작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녹즙, 해독주스는 다량 섭취하면 설사, 변비, 구토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항암 효과가 있다는 커피도 많이 마시면 부정맥의 위험이 있다. 비타민, 영양제는 과하게 먹으면 치명타를 주기 때문에 일일 상한 섭취량이 있다. 지나치게 난무하는 건강정보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 많지 않다. “먹기만 해도, 따라하기만 해도 병이 사라지는 묘약”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잠은 건강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암 환자들은 불안과 우울 증상으로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숙면을 위한 10가지 수면 습관을 알아두자.

1.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난다.

2. 침실은 오로지 잠자는 곳으로만 이용한다.

3. 잠자기 전에 따뜻한 물로 샤워나 반신욕, 족욕을 한다.

4. 배가 고파 잠이 안 올 땐 우유 등 자극적이지 않은 간식을 먹는다.

5. 이른 오후에 유산소운동을 한다.

6.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한다.

7. 잠자기 6시간 전에는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는다.

8. 잠자리 전 흡연은 각성효과가 있어 잠을 방해한다.

9. 낮잠이 필요하다면 30분 이내로 잔다.

10. 수면제는 3주 이상 복용하지 않는다.

암 진단을 받고 나면 5단계의 감정 변화를 거친다고 한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다. 윤 교수는 5단계의 감정을 넘어 ‘성장’ ‘기억’의 단계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이 9번째 수칙인 ‘마음 베풀기’이다. 남을 돕는 일은 자신감 회복, 우울증 감소 등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다.

수용을 넘어 성장으로

윤 교수는 10대 수칙을 바탕으로 건강관리에 리더십과 코칭을 융합한 ‘건강 리더십&코칭 프로그램(LEACH)을 개발했다. 암 경험자에게 ‘코칭’ 훈련을 시키고, 다른 암 환자들의 건강 멘토 역할을 한 후 삶의 질을 측정하니 정신적 활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삶의 태도가 진취적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했다. 피상담자도 같은 암 경험자로부터의 도움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양동혁씨는 “다른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고 다잡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암 경험자 건강파트너 프로그램을 보완하기 위해 간호사를 대상으로 건강마스터 훈련을 시켰다. 건강 마스터인 간호사와 함께 암 경험자를 건강파트너로 활용해 암 환자들의 건강회복을 돕는 사회적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암뿐만 아니라 만성질환 관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 코치를 전문적인 분야로 인정하고 의료수가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이다. 윤 교수는 미국에서는 이미 건강 코칭 개념을 도입하고 임상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 교수는 건강 코칭 교육, IT를 활용한 건강관리 앱, 기업 건강 컨설팅을 내건 사회적 기업을 세우는 것이 목표이다. 서울대 교내 기업으로 추진 중인데 아직 수익구조를 못 찾고 있다. “사회적기업진흥원도 찾아가보고 고민을 하고 있지만 조직도 없고 연구만 하는 사람이라 아직은 길이 안 보인다. 어쨌든 5년 내에는 꼭 하겠다.” 윤 교수의 다짐이다. 최근 출간한 ‘습관이 건강을 만든다’란 책의 수익은 모두 사회적 기업에 사용할 생각이다. 그는 “의사의 사명은 병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병을 가진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다”라고 믿고 있다.

가정의학 전문의인 그가 본격적으로 암 경험자들의 삶의 질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2년이다. 미국학회에 참석했는데 주제가 ‘암 생존 관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분야였지만 암 환자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건강회복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국립암센터에 ‘삶의 질 향상 연구과’를 신설한 것도 윤 교수이다. 그는 ‘삶의 질’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애써왔다. 말기암 환자의 완화 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데 앞장섰다. 한국호스피스국민운동본부 설립에 참여하고 존엄사를 보장하는 연명의료결정법, 일명 ‘웰다잉법’ 제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윤 교수는 매년 새해가 시작되면 ‘건강검진’을 한다. 올해 검진날은 1월 2일. “미루다 12월 돼서야 겨우 한다”는 기자에게 윤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한 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보증수표’를 받고 시작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긍정 마인드입니다. 긍정적인 생각도 습관입니다.”

220명의 암 경험자들이 윤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는 ‘감사’ ‘행복’이라는 단어가 많았다.

“아이들 키우고 공부시키는 데 매달려 사느라 나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유방암 선고를 받고 ‘나 자신을 위해 살자’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제 내 삶의 우선 순위를 반반씩 나누게 됐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고 부정적인 생각만 했는데 50%의 내 인생을 알게 돼서 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살아가는 데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이죠. 우리는 매일매일 숨 쉬고 살아가는 것이 허락된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길 바랍니다.”

“애호박과 양파, 두부를 넣은 구수한 된장찌개, 갓 구운 생선까지… 평생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고 살아왔지만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 안에 아내의 사랑과 관심이 가득 들어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쩌면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소중한 사람이 내 곁에 있고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이들은 모두 암이라는 위기를 인생의 선물로 만들었다. 그들이 전해준 10가지 지혜로 건강을 지키는 것은 이제 우리 몫이다.

황은순 차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