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학생들이 스마트팩토리에서 항공기 모형을 보며 비행 원리를 탐구하고 있다. ⓒphoto 건국대
건국대 학생들이 스마트팩토리에서 항공기 모형을 보며 비행 원리를 탐구하고 있다. ⓒphoto 건국대

지난 3월 20일,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건국대학교 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를 찾았다. 건국대 스마트팩토리는 한국의 ‘팹랩(Fab Lab)’이라 불린다. 팹랩이란 ‘제작 실험실(Fabrication Laboratory)’의 약자로 실험, 생산 장비를 구비해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 보는 공간이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 캠퍼스 내 스마트팩토리가 있는 신공학관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피아노 건반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1000㎡(약 300평)가 넘는 규모의 대형 실험실이 보였다. 천장 높이만 6m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 확 트인 실험실 한가운데에는 대형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공업용 풀, 케이블, 가위 등이 놓여 있었다. 10명의 학생들이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조립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학생이 손을 들자 강사가 달려와 조립과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벽에 걸린 스크린에는 수업 자료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화면에는 건전지, 구리판, 쿠킹호일 등의 사진이 보였다. 김용진 강사는 화면을 가리키며 “오늘 만드는 물건의 재료인데, 주변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간단한 재료인 만큼 쉽게 배울 수 있으니 잘 따라와 달라”고 말했다. 3시간 동안 이어진 강의시간 내내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날 학생들이 만든 것은 컴퓨터에 연결해 사용하는 ‘미니 디지털피아노’. 학생들의 손에서 디지털피아노가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신기한 듯 건반을 연신 두드렸다. 실험실 안은 피아노 건반 소리로 가득 찼다. 학생들은 각자 완성한 디지털피아노를 서로에게 보여주는 품평회를 갖기도 했다. 의상디자인학과 3학년 이예진 학생은 “평소 기계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스마트팩토리 수업을 통해 4차 산업과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에서 이예진 학생은 평소 손에 쥐던 실과 바늘 대신 구리선과 납땜기를 들고 구슬땀을 흘렸다.

스마트팩토리에서는 매주 두세 번씩 수업이 열린다. 수업 내용은 주로 3D프린팅과 제품 제작 등 4차 산업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반지, 가구, 피아노 등 다양한 제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수강료는 무료다. 스마트팩토리 수업은 전공과 상관없이 건국대 학생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건국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수업일정을 확인한 뒤 수강신청을 하면 된다. 매일 수백 명의 학생들이 스마트팩토리를 이용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이날 실험실 한편에서는 전기전자공학부 학생들이 와서 ‘졸업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학생들은 실험실 선반에 놓인 안전고글, 납땜기 등을 이용해 TV 제작용 판넬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납땜질을 할 때마다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연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실험대 위에 솥뚜껑처럼 생긴 환풍기가 연기를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전기전자공학부 4학년 정민호 학생은 “만약 이런 공간이 없었다면 납땜기를 구매해 집에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학생들을 위한 작업 공간이 생겨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실험실에 적힌 안전수칙을 지켜가며 장비들을 사용했다. 김종설 스마트팩토리 행정실장은 “스마트팩토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방문하는 학생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장비에 대한 설명과 안전교육을 하고 있다”며 “4차 산업에 필요한 코딩 교육과 관련 지식을 배우고 실천해 볼 수 있는 혁신적인 공간”이라고 했다.

지난 3월 20일 건국대 학생들이 스마트팩토리에서 디지털피아노 만들기 수업을 듣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3월 20일 건국대 학생들이 스마트팩토리에서 디지털피아노 만들기 수업을 듣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국내 최대 규모의 첨단시설

건국대는 최근 주목해야 할 대학으로 부상 중이다. 2016년 최대 규모의 국가 교육사업인 ‘프라임(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 대형사업 부문에 선정돼 3년간 무려 480억원을 받게 됐다. 건국대의 프라임 대형사업 수주는 건국대를 새로운 도약대 위에 올려놓았다. 현재 건국대는 ‘건국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프라임 건국 2020’ 비전을 선포한 상태다.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크로스오버 인재’ 양성을 통해 ‘나라를 세우고, 세계를 품는 대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건국대는 2020년까지 ‘국내 5대 사학, 아시아 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산업의 변화와 학생 수요에 맞는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해나간다는 계획이다. 프라임 사업의 일환으로 ‘KU 스마트팩토리’가 지난해 5월 개관했다.

당시 개소식에서 민상기 총장은 스마트팩토리를 신설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학 교육의 혁신을 선도할 수 있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 스마트팩토리는 학생들의 다양한 상상과 아이디어를 실험해 볼 수 있는 곳으로 실험, 경험, 교육은 물론이고 아이디어를 상품화하여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민상기 총장의 말처럼 스마트팩토리는 대학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건국대는 미래 융복합교육을 선도하면서 최근 로이터가 발표한 ‘아시아 최고 혁신대학’에 2년 연속 선정됐다. 지난해 11월 건국대는 국내 대학 최초로 ‘대학드론경진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건국대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융합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건국대가 야심 차게 선보인 스마트팩토리는 융합인재 양성을 위한 요람을 지향하고 있다. 40억여원을 들여 신공학관 1층을 복층으로 개발하고 1250여㎡ 규모의 공간에 스마트팩토리를 열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팹랩(Fab Lab)과 독일 뮌헨공대의 메이커스페이스(Maker Space)가 ‘KU 스마트팩토리’의 모델이다. 뮌헨공대의 메이커스페이스 역시 다양한 공작도구와 재료를 갖춰 놓고 학생들이 와서 자유롭게 시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창업할 수 있도록 돕는 시설이기도 하다. 국내 대학에서는 서울대와 한양대 등도 메이커스페이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건국대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고가의 장비가 많아 학부생의 접근이 어려웠던 기존 메이커스페이스의 접근성을 크게 높인 것도 건국대 스마트팩토리만의 장점이다.

건국대 스마트팩토리에는 VR실, 금속장비실, 목공장비실, 3D프린터실, 설계실, 드론운영시험장 등 다양한 실험실이 들어서 있다. VR기기, 3D프린터, 3D스캐너, 자동대패 등 고가의 장비들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기존 강의실에서는 어려웠던 3차원 영상강의와 캡스톤 디자인(capstone design) 등의 실습수업이 스마트팩토리에서 진행되고 있다. 캡스톤 디자인은 산업 현장의 수요에 맞는 기술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창의적 종합 설계’라고도 한다. 전공 영역을 떠나 학생 스스로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다.

3D프린터실로 가 보았다. 이곳에는 8대의 프린터와 1개의 스캐너가 설치돼 있다. 모델링 작업을 할 수 있는 PC도 4대가 놓여 있다. 8대의 프린터는 FDM(용융적층 방식)과 DLP(광경화 방식)로 각각 4대씩 구성됐다. FDM 프린터 출력물은 DLP에 비해 강도가 높아 하중을 받는 부품을 출력하는 데 많이 활용된다. DLP 프린터는 출력물의 표면이 FDM 출력물보다 매끄러워 프라모델이나 액세서리 등의 출력에 많이 사용된다. 학생들은 각각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물건에 맞는 프린터 앞에 줄을 섰다. 특히 DLP 프린터의 인기가 좋았다. 학생들이 디자인한 각종 장난감과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들이 DLP 프린터를 통해 만들어졌다. 전기전자공학부 4학년 최민재 학생은 “상상만 했던 것들이 실제로 만들어지니 신기하다. 다른 학교 친구들이 스마트팩토리가 있다는 것을 부러워할 정도”라고 말했다.

스마트팩토리에서 장비를 이용해 과제를 풀고 있는 학생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스마트팩토리에서 장비를 이용해 과제를 풀고 있는 학생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스마트팩토리에서 학생들이 VR기기를 착용하고 VR을 즐기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스마트팩토리에서 학생들이 VR기기를 착용하고 VR을 즐기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창업의 꿈을 이루는 場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VR실’이다. VR실 근처로 가자 학생들의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VR기기를 착용한 두 명의 학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의 입에서 “와~”라는 짧은 감탄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대형 스크린인 ‘VR 프로젝션 월’에서는 우주의 여러 행성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이때마다 두 학생은 행성을 피하듯이 몸을 숙였다. 여학생은 놀란 듯 비명을 짧게 지르기도 했다.

VR실은 두 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한 곳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VR기기를 착용하고 방 전체를 걸어다니면서 VR 공간을 체험한다.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기술을 개발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최적의 공간인 셈이다. 또 다른 곳에는 대형 입체 디스플레이, 3차원 VR 프로젝션 월 등이 설치돼 있다. 두 학생이 VR기기를 이용해 우주체험을 한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서는 여러 명이 동시에 VR기기를 착용하고 실감 나는 VR을 체험해 볼 수 있다. VR실 설계에 참여했던 소프트웨어학과 김형석 교수의 말이다.

“VR실에서는 학생들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돌아다녀도 컴퓨터가 다 인식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했다. 그만큼 이곳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생각하는 창의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금속·목공장비실도 학생들에게 인기다. 이곳은 학생들이 원하는 장치를 스스로 제작하고 가공할 수 있는 장비가 설치돼 있다. 밀링머신, 드릴링머신, 수압대패, 벨트샌더 등 금속과 목재를 다룰 때 사용하는 장비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건국대 기계공학과 고성림 교수는 금속·목공장비실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장비가 특별하다거나 새로운 건 아니지만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해줄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이곳으로 달려와 얼마든지 제품으로 만들어낼 수가 있다.” 금속·목공장비실은 3D프린터실과 마주 보고 있는데, 이는 학생들의 동선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금속·목공장비를 다루다가 부품이 필요해지면 건너편 3D프린터실에서 얼마든지 제작이 가능하다.

공학도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은 곳이 있는데, 바로 전기전자·아두이노실이다. 이곳은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초 전자제어시스템 도구들이 구비돼 있다. 실험실 내부의 선반에는 고글, 장갑 등의 안전장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여러 대의 솥뚜껑처럼 생긴 환풍기가 천장에 설치된 것이 눈에 띄었다. 전기전자 실험에 필요한 납땜을 하다 보면 인체에 유해한 연기가 나오기 마련인데 여러 대의 환풍기가 유해연기를 외부로 즉각 배출한다. 학생들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실험실을 설계했다고 한다.

스마트팩토리는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인문계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전공을 불문하고 4차 산업은 학생들에게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 중 하나가 바로 코딩 교육이다. 코딩은 컴퓨터프로그래밍의 다른 말로 C언어, 자바, 파이선 등 컴퓨터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분석 및 활용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변하는 모든 것이 정보통신기술(ICT)을 바탕으로 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구현된다. 코딩이 생소한 인문계 학생들에게 스마트팩토리는 논리력과 문제해결력 등을 키울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정치외교학과 백지윤 학생은 “4차 산업에 필요한 코딩 교육은 학과 수업에서 배우기 힘든 부분인데, 이곳에서 배우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고 했다. “요즘은 기업에서도 융복합 인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스마트팩토리는 학생들에게 4차 산업과 관련된 실무지식을 쌓을 수 있는 또 다른 학교다.” 웃으며 돌아서는 백지윤 학생의 손에는 오늘 만든 ‘미니 디지털 피아노’가 들려 있었다.

건국대 스마트팩토리는 갈수록 진화하는 중이다. 올해 안에 모션플랫폼을 완벽하게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모션플랫폼이 완성되면 기계공학, 항공우주학 분야에서 비행기나 자동차 제작 시 카메라 움직임만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세밀한 역동성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건국대 스마트팩토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김선주 건국대 공과대학장은 이렇게 답했다.

“스마트팩토리에 구축해놓은 인프라를 활용해 전공 실습, 창업 지원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 연계 및 기업과의 산학협력의 장으로도 발전시킬 생각이다. 전공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이 이곳에서 창업의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학생들은 스마트팩토리에서 신산업 미래 유망 분야를 직접 체험해 보면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융합형 인재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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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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