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초 베트남 여인과의 사이에서 딸을 출산한 이모(47)씨는 6개월이 넘도록 딸의 출생신고와 국적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 경북의 한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이씨는 “출생신고하는 데 법이 이렇게 복잡하고,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줄 알았으면 애초 아이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지난 6개월간 딸의 출생신고와 국적 문제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태어난 아기의 출생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받아야 할 출생에 따른 기본 복지 혜택은 고사하고, 건강보험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기가 큰병이라도 걸릴까봐 가슴 졸이며 지냈습니다.”

이씨는 출생신고를 위해 딸에게 베트남 국적을 받은 뒤 이를 다시 한국 국적으로 회복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씨는 자신의 딸이 한국땅에서 태어나고, 아버지가 명백한 한국인인데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아직도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비용만 1200만원 넘게 들어

“아기를 베트남 국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출생신고를 위해 그동안 두 명의 변호사로부터 상담도 받았고, 시청에 세 번, 법원에 세 번, 출입국관리소에 한 번 갔습니다. 전화통화는 수도 없이 했습니다. 앞으로도 출입국관리소에 몇 번을 더 가야 합니다. 아기를 가진 후 지금까지 깨진 돈만 1200만원이 넘습니다. 담당 공무원들은 법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공장 노동자가 출생신고 하나 때문에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딸의 출생 직후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시청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시청의 출생신고 담당 여직원이 아기의 출생신고가 불가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담당 직원은 “민법에 ‘혼인관계 종료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에 포태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씨의 경우 베트남 부인이 전 남편과 이혼한 지 300일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녀는 법률상 전 남편의 자녀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담당 직원은 덧붙여 이씨에게 출생신고를 위해서는 태어난 자녀와 부인 전 남편 사이의 친생자부존재확인 판결문과 확정증명원, 베트남에서 자녀의 출생등록증명서와 베트남 신분증(여권), 한국 병원출생증명서 등의 서류를 갖춰 와야 한다고 말했다. 친생자부존재확인 판결문은 소송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전 남편의 자식이 아닌 것을 입증하는 법원 판결문이다. 시청 직원은 “생부의 아이로 등록하려면 반드시 ‘친생부인의 소’라는 재판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전 남편의 자녀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딸의 출생신고를 위해 법률구조공단 등에서 제공하는 무료 법률자문 서비스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해당 민법 조항이 수년 전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아 개정을 앞두고 있으며, 2018년 2월 1일부터 개정민법이 시행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개정된 민법은 전 남편을 상대로 한 ‘친생부인의 소’라는 복잡한 소송 절차 없이 생부가 가정법원에 ‘인지허가청구소송’을 통해 자신의 자녀임을 증명한 후 출생신고를 직접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놨다. ‘인지(認知)’란 미혼인 상태에서 태어난 자녀를 자신의 자녀로 인정함으로써 법률상의 친자관계를 발생시키는 의사표시다.

이씨는 ‘인지허가청구’를 위해 친생자 확인 DNA 검사를 받았고, 태어난 자녀가 친자임을 확인받았다. 인지청구소송을 위해 관련 서류 10여가지를 준비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법원의 인지허가 결정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아이의 국적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담당 공무원은 “외국인과 미혼인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을 경우 한국 국적이 아니라 아이 어머니 국적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베트남대사관에 출생신고를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이가 태어난 후 18일 뒤에 혼인신고를 했다. 아이가 태어날 당시는 부인과 법률적으로 결혼한 상태가 아닌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가운데 아이를 출산한 것이다.

이씨는 “아내가 나를 만났을 때는 전 남편이 오랫동안 행방불명된 상태였다”며 “나를 만난 후 전 남편과 곧바로 이혼절차를 밟았고,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서 태어났는데도 베트남 국적

“전 남편이 행방불명 상태에서 이혼절차를 밟아야 했기 때문에 기간이 10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법원도 부인의 전 남편이 경제적 무능과 행방불명을 이혼 사유로 판결했습니다. 부인의 이혼 확정판결 서류를 비행편으로 베트남에 보낸 후 현지에서 다시 이혼처리를 밟았습니다. 그 서류를 한국에서 받아서 법원에 제출한 후에야 저의 혼인신고가 완료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나마 아내의 친척이 베트남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어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베트남 현지 공무원의 도움 없이 일을 진행했다면 아직도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서류를 번역하고 공증해야 했는데 비용이 보통 400만원 이상 들어갑니다.”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국적취득 절차 업무 경험이 풍부한 전은주 행정사는 “외국인과 혼인신고 전에 임신해서 자녀가 출생할 경우 자녀는 어머니의 나라인 외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며 “그래서 이씨의 경우 아이에게 한국 국적을 주려면, 먼저 베트남 국적으로 출생신고를 한 이후 한국인의 인지신고 과정을 거쳐 주소지의 출입국관리소에서 국적취득 신고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과 사실혼 상태에서 아이를 출산할 경우 인지절차가 좀 복잡합니다. 외국인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외국에서 아이를 낳았을 경우 인지신고를 현지 우리 대사관에 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보통 6개월에서 1년까지 걸립니다. 절차를 잘 몰라서 신고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고요.”

국적법상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출생에 의한 국적취득’과 ‘인지에 의한 국적취득’, 그리고 ‘귀화에 의한 국적취득’이 그것이다. 법무부 국적 관련 담당자는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의 경우 법률상 아버지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출생에 의한 국적취득 대상자가 되지 않는다”며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귀화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그전에 귀화보다 간편한 ‘인지에 의한 신고’를 통해 국적을 회복할 수 있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적법의 인지를 통한 국적회복 관련 조항은 법을 만들 당시 한국 국적의 남성이 해외에서 현지 여성과 아이를 낳고 혼자 귀국하는 경우를 상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씨는 아기가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베트남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했다. 이 과정에서 비용이 115만원 정도 소요되었다고 한다. 지난 3월 21일 이씨의 딸은 베트남 국적을 부여받았다. 이씨는 딸의 한국 국적취득을 위해 곧바로 관련 서류를 갖춰 지역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다. 이씨는 자녀 출생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외국인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칙금을 받았다. 출입국관리소에서 국적회복 신고를 위해 별도의 유전자 검사도 받았다. 이 모든 행정적 절차가 끝나고서야 이씨의 딸은 한국 국적으로 등록될 수 있었다.

이씨의 아기 출생신고 고군분투기는 이제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씨에게는 아기의 베트남 국적을 포기하고, 주민등록신고를 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힘들게 얻은 베트남 국적을 잉크도 마르기 전에 다시 포기하라니까 제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국적 포기에 또다시 큰돈이 들어갑니다. 누구를 놀리는 것도 아니고 정말 화가 치밀더군요. 베트남에서 숨 한 번 쉬어 본 적이 없는 애를 왜 베트남에서 태어난 것과 동일한 절차를 거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땅에서 태어났고, 친자 확인이 된 자녀의 출생 등록이 이렇게 복잡하면 돈 없고, 시간 없는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국제결혼이 보편화된 지금 저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을 겁니다. 법이 현실을 반영하고, 좀 더 상식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흔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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