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19일 결혼하는 영국의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이 지난해 12월 1일 잉글랜드 한 도시에서 열린 에이즈 관련 자선행사에 참석했다. ⓒphoto 뉴시스
오는 5월 19일 결혼하는 영국의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이 지난해 12월 1일 잉글랜드 한 도시에서 열린 에이즈 관련 자선행사에 참석했다. ⓒphoto 뉴시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신데렐라와 왕자님의 결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영국 왕실 찰스 왕세자의 둘째 아들인 해리 왕자와 미국 여배우 메건 마클의 결혼식이 5월 19일로 다가왔다. 채 한 달이 안 남았다. 결혼식에 대한 시시콜콜한 내용들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세상이 다 알다시피 마클은 영국 왕실의 신붓감으로는 파격이다. 해리 왕자보다 3살 연상에 미국인 여배우에다가 이혼녀다. 그리고 흑백 혼혈이다. 이들의 결혼을 두고 영국인들은 지금 걱정이 태산이다.

‘이혼 경력의 미국인 신붓감’이라고 하면 영국인들은 어디선가 익숙한 느낌을 받는다.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삼촌이던 에드워드 8세의 부인 왈리스 심슨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진 미국인 신부였기 때문이다. 이혼율이 40%가 넘는 영국에서 지금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이혼 경력이 당시에는 에드워드 8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동생(엘리자베스 아버지 조지 6세)에게 양위를 하고 프랑스로 망명 아닌 망명을 떠나야 했다.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세기의 사랑’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다.

에드워드 8세를 왕에서 끌어내린 이혼 경력은 이제 영국 왕실에서도 별 문제는 안 된다. 해리 왕자의 아버지이자 왕 승계 제1순위인 찰스 왕세자도 이혼녀와 결혼했다. 이번에도 문제는 이혼이 아니다. 영국 언론이나 영국인들이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해리의 부인감이 흑인이라는 점에 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해리 왕자가 영국 상류층에 흑인 여자(nigger girl)를 끌어들여도 좋은가?’라는 온라인 투표가 벌어졌다. 결과는 63%가 찬성한 반면 반대도 37%에 달했다. 인종차별이 별로 없을 듯한 영국에서도 ‘왕실만은 아직 흑인은 안 된다’는 정서가 상당하다. 여기에 쓰인 단어 ‘nigger girl’을 실생활에서 쓰이는 그대로 하면 ‘깜둥이×’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트위터에서는 ‘최초의 새카만 왕실 아기(first little royal darkie)’가 태어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라는 문장이 리트윗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흑백 부모 밑에서 백인 아기도 나오지만 완전히 흑인 아기도 나오기 때문이라 괜한 시비는 아니다. 인종차별이란 단어에 거의 경기를 할 정도의 영국 사회도 결국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특히 자신들이 아직은 애지중지하는 왕실의 결혼문제에서는 말이다.

온라인에서는 마클을 영국 왕실 멤버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1000만파운드가 드는 해리와의 결혼식 비용을 국민세금으로 내지 말라는 서명도 한창이다. 사실 왕실 결혼에 이런 식의 반대를 대놓고 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윌리엄과 케이트의 결혼에는 두 배인 2000만파운드가 들었어도 큰 반대가 없었다.

인종차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영국인

영국 극우언론 데일리텔레그래프의 주간잡지 ‘더 스펙테이터’는 “70년 전이라면 마클은 왕자가 정부로 둘 그런 종류의 여인이었지 부인감은 분명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왕실의 문제아인 해리 왕자나 선택할 만한 기상천외한 신붓감이라는 뜻이다. 중도좌파 언론인 가디언은 더 스펙테이터의 기사 중 ‘그런 종류의 여인(the kind of woman)’이라는 표현은 ‘흑인 피’를 가리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극우언론인 데일리메일을 보자. 약혼 발표 후 “왕족과 결혼한다고 왕위계승 자격을 자동으로 얻는 건 아니다(Marrying into royalty does not earn you a right to the throne)”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길게 설명하진 않았지만 행간의 의미는 이렇다. ‘만일 왕실 가족에 무슨 일이 생겨 왕위 승계 순위 6위의 해리가 바로 1위가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해도, 흑인 부인을 가진 해리에게 왕위가 자동으로 넘어가는 건 아니다. 그때 가서 영국 조야가 따져봐야 한다.’ 인종차별 이론으로 보면 흑인 피가 4분의 1만 섞여도 흑인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혹시 흑인 피를 가진 여왕을 모셔야 하거나 흑인 피가 섞인 자손이 대권을 이어받는 게 아닌가 우려한 보수 우익이 자신들의 독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 주장을 한 것이다.

영국은 인종차별 정당이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프랑스 같은 나라들과는 달리 정치인이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가는 그날로 정치생명이 끝나는 몇 개 안 남은 유럽 국가 중 하나이다. 해외 식민지를 많이 거느렸던 대영제국 시대부터의 지혜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양식이 아직은 살아 있어서이다. 브렉시트 투표 전후 영국 정계를 흔들었던 국수정당 독립당이 브렉시트 통과 이후 총선에서 철저하게 무너진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정말 영국인이 인종 편견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지는 그 누구도 잘 모른다. 지방의 평범한 시민들이 비록 가난해지더라도 우리끼리만 살겠다고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이유도 분명 또 다른 종류의 인종차별이다. 뿐만 아니라 흑인 노예 무역이 영국 상류층 귀족의 치부 중 하나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사실이다. 그런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미국 흑인 노예 후손’인 마클이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백작 집안 출신인 다이애나도 결국 왕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비운의 생을 마치고 말았는데 자유분방한 할리우드 출신의 마클이 과연 얼마나 버틸지에 대해 추측이 왕성하다. 세계적 페미니스트이자 저명한 지식인으로 1980년대를 풍미했던 저메인 그리어의 말이 그래서 더욱 불길하다. 저메인은 “아마도 결혼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무료한 임무와 과중한 역할에 금방 싫증을 느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난번 2년의 결혼도 약혼과 결혼 반지를 우편으로 보내고 끝냈듯이 말이다.” 저메인은 다이애나 전 세자비가 파리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현재 해리 왕자의 계모 카밀라의 친구이기도 하다.

영국 왕실의 사고뭉치

해리의 형수인 케이트 미들턴은 지난 4월 23일 세 번째 아기 왕자를 낳고 세손비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클은 물론 해리도 형인 윌리엄 왕자와 형수 케이트와는 완전히 다른 성품과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려울 거라는 시각이 많다. 케이트는 영국의 전형적인 중하층(lower middle class) 출신이다. 케이트는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을 정도로 성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잘 헤쳐 나갈 거라는 예상이다.

일설에 의하면 스튜어디스 출신인 케이트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신데렐라로 만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준비시켰다고 한다. 케이트를 무조건 윌리엄이 진학한다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대학으로 보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해 세인트앤드루대학교 여학생 지원율이 두 배가 늘어서 대학이 입학사정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후문도 있다. 케이트에게는 상류층과의 결혼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던 것이다. 그런데 상류층 중에도 최고인 영국 왕자와 결혼을 했으니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고 충실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버지 찰스 왕세자와는 달리 윌리엄은 너무나 가정적이고 충실한 남편이다. 찰스와 다이애나의 불행한 결혼이 윌리엄과 케이트에게는 학습효과로 작용,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왕실 전문가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윌리엄은 14살에 부모의 이혼을 겪고 15살에 어머니를 사고로 잃었다. 자신의 불행을 결코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심이 강할 것이다.

그러나 해리와 마클은 형 윌리엄 커플과는 완전히 다르다. 윌리엄은 장래 대통을 이어갈 왕세자답게 신중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10대 때는 물론 성장해서도 한 번도 말썽을 피운 적이 없다. 거기에 비해 해리는 형보다 더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죽음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말썽꾸러기 반항아로 유명했다. 해리가 문제아가 된 데는 상처 탓도 있지만 부모의 반골 성향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언론의 분석도 흥미롭다. 영국 사회의 기득권층과 알게 모르게 부딪치는 반항아 찰스와 귀족임에도 왕실과 귀족에 대해 맞섰던 다이애나를 그대로 빼닮았다는 평이다. 다이애나는 이혼 후 사귄 남자 두 명이 모두 유색 외국인(파키스탄·이집트)에다가 무슬림 이교도였다. 그런 생모를 해리 왕자가 꼭 빼닮았다는 것이다.

해리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알고 일부러 사고를 치곤 했다. 17살에 마리화나를 피우고, 음주를 일삼았다. 심야에 나이트클럽 앞에서 파파라치 카메라맨의 멱살을 잡고 싸운 일이나, 21살에 나치 군복에 나치 문양의 견장을 차고 파티에 나타나 영국을 발칵 뒤집은 일은 결코 우발적이 아니다. 평범한 집안 자식도 그 정도면 문제가 될 터인데 영국 왕실의 왕자가 그런 사고를 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해도 결코 모를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의도적으로 자신으로부터 엄마를 뺏어간 세상에 반항했는지도 모른다. 나치 군복을 입고 대형사고를 쳤던 해리는 2005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년간의 훈련을 마치고 소위 임관을 하면서부터는 충실하게 군 임무를 수행해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한창 군인 생활에 이력이 붙을 때인 28살 때 미국 라스베이거스 호텔방에서 친구들과 옷 벗기 내기를 하다가 찍힌 나체 사진이 미국 미디어에 노출되고 말았다. 2012년이었다. 영국인들은 “역시 해리답다”고 입을 모았다.

자유분방하기로 따지면 마클도 해리 이상이다. 마클의 부모를 봐도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있다. 마클의 아버지는 1979년 흑인 여성과 결혼할 정도로 개방적이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당시에는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이다. 어머니는 왕성하게 자선활동을 하는 활동적인 여성이다. 마클도 그동안 사회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부당한 일에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마클은 여성권리와 양성평등을 위해 유엔이 지명한 여성보호대사(UN Woman Advocate)직을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다. 월드비전 캐나다 대사이기도 하고 2015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앞에서 페미니즘에 관한 연설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해리와 약혼 후에도 영국 왕족의 정치 개입이나 현실문제에 대해 언급을 삼가는 금기를 깨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해리 왕자의 어머니인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생전 모습. 왕실 요트 브리타니아 갑판 위에서 해리 왕자를 안고 있다. ⓒphoto 뉴시스
해리 왕자의 어머니인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생전 모습. 왕실 요트 브리타니아 갑판 위에서 해리 왕자를 안고 있다. ⓒphoto 뉴시스

‘시누이’ 영국인들의 걱정거리

두 사람의 결혼식 초대 리스트에도 마클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는 말이 나온다. 영국 현직 메이 총리를 비롯해 일부 정치인들은 결혼식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신부가 결혼식에서 직접 발언을 하겠다고 나섰다. 선물을 전혀 받지 않겠다고 선언을 해 영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는 영국 왕실의 전통을 깬 것이다. 영국 왕실 결혼식에는 세계 각국 왕실, 국가 수반들은 물론이고 영국의 일반 시민들도 선물을 하곤 했다. 특이한 선물인 경우 왕실에 비치해두고 선물한 이들의 마음을 기리는 것이 전통으로 이어져왔다. 해리와 마클은 자신들에게 줄 선물을 여성 인권, 환경, 노숙자, 사회, 에이즈, 군대 문제를 다루는 7개 자선단체에 돈으로 기부해 달라고 부탁했다. “참 유별나다”는 빈정거림이 나올 법하다. 그러니 ‘시누이’ 노릇하는 영국인들의 걱정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것도 이해가 간다.

물론 표면상 주류 영국 언론은 축하 관련 보도 일색이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를 부각시키지도 않는다. 해리 결혼에 대한 의견은 브렉시트와 마찬가지로 도시와 지방 간, 세대 간의 차이도 뚜렷하다. 브렉시트 투표의 경우 런던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반대가 60%, 찬성이 40%였던 반면 중소도시나 시골은 반대 40%, 찬성 60%였다. 해리와 마클의 결혼을 보는 여론도 이와 비슷하다. 연령대와 지역별로 갈라지고 있다. 나이가 많은 시골 노년층일수록 말썽쟁이 해리가 결국 또 결혼까지도 평범하게 영국 처녀와 하지 않고 분란을 일으킨다고 투덜댄다. 결혼식까지 전통을 무시하고 너무 잘난 척한다는 비판도 많다. 영국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이 잘난 척하거나 튀는 행동이다. 그들은 이런 식의 파격들이 해리가 아닌 마클의 주동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마클이 왕실 일원이 된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을 것이고, 해리 또한 결코 마클을 말릴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사실 영국인 사이에서 해리는 특별한 애정을 받고 있다. 장차 왕이 될 윌리엄과는 달리 어릴 때부터 사고뭉치인 해리는 집안의 막내아들 같은 존재이다. 영국인들은 다이애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의젓하게 상주의 역할을 하던 어린 왕자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말썽을 피울 때도 “엄마의 애정을 못 받고 커서”라고 이해해줬다. 그러나 왕실에 ‘시한폭탄’을 던져놓은 것 같은 결혼을 계속 너그럽게 봐줄지는 의문이다. 응석을 받아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걱정을 증명하듯 최근에도 작은 소동이 있었다. 공개석상에서 마클이 혀를 내민 사진을 두고 한바탕 시끄러웠다. 본인은 앞에 있던 아이가 귀여워서였다고 해명을 했지만 영국 대중들에게는 전혀 낯선 행동이었다. 어쨌든 영국인이 마클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과연 젊은 커플의 별난 행동을 영국 사회가 받아줄지, 아니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상처투성이의 부상자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영국인 재발견’ 저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