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6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서울 중구 환경재단에서 대진침대가 생산한 라돈 침대에 대한 정부의 역학조사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16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서울 중구 환경재단에서 대진침대가 생산한 라돈 침대에 대한 정부의 역학조사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여기가 그 라돈 침대 파는 곳 맞지? 방사능 피폭 당하기 전에 빨리 지나가자.”

지난 5월 15일 서울 광진구의 한 대진침대 직영점 매장 앞.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대진침대 매장 안을 들여다본 뒤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이날 직영점의 입구에는 ‘본사 직영 판매점·최저가 판매’라는 노란 현수막만 걸려 있을 뿐, 다른 안내문 없이 매장 문은 잠겨 있었다. 기자가 매장 주변을 기웃거리자 한 행인이 “라돈 침대 교환하러 오신 거라면 여기서는 못 한다”면서 “매장 영업을 안 한 지 벌써 며칠째”라고 말했다. 직영점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침대를 환불하고 싶어 찾아왔다는 이순영(가명)씨는 “상담센터에 전화를 해도 잘 안 받고, 인터넷 사용이 서툴러 직접 매장에 찾아왔는데 헛걸음했다”며 돌아섰다. 그의 말처럼 현재 대진침대 고객센터는 고객들의 상담전화가 폭주하면서 리콜 접수가 어려운 상황이다.

대진침대의 라돈 검출 논란은 지난 1월 한 주부가 휴대용 라돈 측정기를 우연히 침대 위에 올려놓으면서 시작됐다. 갑자기 침대 위에 올려놓은 휴대용 라돈 측정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라돈 측정기에 기록된 수치는 99.9피코큐리(pCi/L·방사능 단위). 1피코큐리는 라돈 37베크렐(Bq)에 해당한다. 처음에 이 주부는 기계고장을 의심했다. 결국 해당 업체가 이 주부의 집으로 방문해 베란다와 안방을 중심으로 3일 동안 정밀 측정했다. 그 결과 침대 위에서 2000Bq/㎥의 라돈이 검출된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적용되는 라돈 기준치는 △실내 공동주택 200Bq/㎥ △다중이용시설 148Bq/㎥ 등으로 설정돼 있다.

주부가 이 사실을 SBS에 제보하면서 지난 5월 3일 기사화됐다. ‘라돈 침대’ 기사가 나간 직후 파장은 엄청났다. 대진침대 상담센터에는 소비자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이날 인터넷쇼핑몰 ‘11번가’에서는 휴대용 라돈측정기 판매량 및 대여가 지난 4월 일평균과 비교해 40배 폭증하기도 했다. 대여기간과 가격은 업체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데, 대략 5만원 내외(5~10일)로 이용이 가능하다.

한 주부의 라돈 측정으로 시작된 사태

그런데 며칠 뒤 SBS 보도가 과장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5월 10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가 대진침대를 대상으로 한 1차 조사결과가 나오면서다. 당시 원안위는 “대진침대 매트리스의 연간 피폭량(최대 0.15mSv·밀리시버트)이 기준치(1mSv) 이하”라면서 “호흡으로 인한 내부 피폭 영향은 있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내부 피폭에 대한 기준은 국내외적으로 없다”고 발표했다.

당초 SBS의 보도 내용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었다. 원안위의 1차 조사결과가 나온 직후 국민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원안위의 애매한 발표 내용은 라돈 침대 논란에 불을 지폈다. 라돈이 위험하다는 것인지, 안전하다는 것인지,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안위는 1차 조사결과를 불과 5일 만에 번복했다. 라돈 수치가 기준치 이하란 당초 조사결과와 달리, 라돈 피폭량이 기준치의 최대 9.35배를 초과했다는 것이 2차 발표 내용이었다. 원안위가 조사한 7종 모델은 대진침대의 그린헬스2, 네오그린헬스, 뉴웨스턴슬리퍼, 모젤, 벨라루체, 웨스턴슬리퍼, 네오그린슬리퍼다. 이 중 그린헬스2의 경우 하루 10시간을 침대 2㎝ 높이에서 호흡한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피폭량이 라돈은 0.39mSv, 토론은 8.96mSv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토륨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토론이 만들어지고, 우라늄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라돈이 생성된다. 이는 국제적인 생활방사선 노출기준(연간 1mSv)을 뛰어넘는 수치다. 네오그린헬스(8.69mSv), 뉴웨스턴슬리퍼(7.60mSv), 모젤(4.45mSv) 등 다른 제품 역시 기준치를 크게 초과했다. 참고로 병원에서 흉부 엑스레이를 1회 촬영할 때의 피폭선량은 0.1~0.3mSv다.

조사 결과가 뒤바뀐 데 대해 원안위는 “조사범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1차 조사 때는 문제를 유발한 모자나이트가 포함된 속커버만 살펴봤지만 2차 때는 모자나이트가 쓰인 것이 뒤늦게 확인된 매트리스 스펀지까지 추가 조사했다는 것이다. 원안위는 “대진침대가 ‘음이온 효과’를 높이기 위해 매트리스 겉커버 안에 있는 속커버 원단 안쪽에 음이온 파우더를 도포했는데 이때 사용한 것이 바로 모자나이트”라고 밝혔다. 모자나이트는 대부분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모래 또는 분말 형태로 생산되는 천연 방사성 광물로 우라늄과 토륨이 1 대 10으로 함유된 물질이다.

사실 원안위는 이번 라돈 침대 사태를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원안위는 모자나이트와 같은 천연 방사성 물질을 관리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13년 1월 원안위가 배포한 ‘천연방사성 물질 취급자 등록제도, 전면 실시’의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 보도자료에 담긴 내용은 이렇다. ‘천연 방사성 핵종을 함유한 원료물질을 취급하는 업체는 취급물질의 종류와 수량을 안전위에 등록해야만 한다. 안전위는 매년 실태조사를 실시해 천연 방사성 물질 등을 취급하는 업체의 현황 정보를 갱신하고 등록을 유도한다. 또한 생활 주변 방사선 안전관리 기반이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해나간다.’ 만약 원안위가 보도자료의 내용을 철저하게 지켰다면, 이번 라돈 침대 사태가 벌어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원안위의 발표 번복이 논란 키워

원안위의 발표가 거듭될수록 오히려 국민들의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이번에는 라돈과 토론이 별개의 대상이라는 건지, 같은 대상이라면 왜 그렇게 봐야 하는 것인지 국민들의 궁금증이 커졌기 때문이다. 우선 라돈은 토양에서 방출되는 무색·무미·무취의 비활성 기체다. 벽돌, 자갈, 시멘트 등으로 지은 건물이나 지하실에서 주로 검출된다. 라돈의 위험성에 대해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라돈이 침대에서 검출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침대에 사용한 정도의 양으로는 실질적인 피해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라돈은 마치 담배연기와 같아서 당장 노출된다고 해서 폐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개인 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 교수가 담배연기에 비유한 라돈은 폐암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센터(IARC)는 2009년 발표한 연구결과를 통해 라돈이 세계 폐암 발병 원인의 최대 14%를 차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IARC는 라돈을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미국의 연간 폐암사망자 중 2만여명(10% 수준)이 라돈의 누적 피폭 때문이라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라돈에는 화학적 성질은 같지만 질량이 조금 다른 동위원소가 존재하는데 그게 바로 토론이다. 라돈은 질량수가 222인 Rn-222이며, 토론은 질량수가 220인 Rn-220이다.

라돈과 토론을 구분해서 부르기도 하지만, 라돈과 토론을 총칭해 라돈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라돈과 토론은 반감기가 서로 다르다. 반감기는 방사성 붕괴를 통해 원래 양의 절반이 되는 시간이다. 라돈은 반감기가 3.8일이다. 토론은 반감기가 55.6초밖에 되지 않아 현재 토론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이번에 대진침대 매트리스에서 검출된 라돈 수치는 라돈과 토론의 수치를 모두 합한 것이다.

충청남도 천안시 대진침대 본사.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충청남도 천안시 대진침대 본사.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실내에 떠다니는 라돈은 환기를 시키면 쉽게 제거되지만 그렇다고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건축자재나 흙에 들어있는 토륨이나 우라늄과 같은 방사성 원소에서 만들어진 라돈이 실내로 계속 방출되기 때문이다. 토륨의 반감기는 140억년에 달한다. 이 때문에 콘크리트 건물이나 지하실의 라돈을 완전히 제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벽에 금이 많이 간 집이 라돈에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틈이 있다면 메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구업계에선 대진침대 매트리스 라돈 검출 사례가 소비자 불신으로 이어질까 걱정하는 눈치다. 국내 가구업계 한샘과 현대리바트는 음이온 방출 침대 매트리스가 없으며, 모두 안전검사를 통과한 제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5월 16일 원안위는 “라돈에 의한 피폭이 확인됨에 따라 동일 원료를 사용한 제품뿐 아니라 음이온을 방출하는 제품 전반에 걸쳐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원안위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라돈 침대는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로 불리며 집단소송으로 번지는 중이다. 참여자가 이미 1600명을 넘은 상태다. 시민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도 범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대진침대는 A손해보험사에 건당 1억원 한도의 생산물 배상책임보험(PL보험)을 들고 있다. 생산물 배상책임보험은 보통 상해를 기본조건으로 여기고 있어, 질병에 걸렸을 때는 보상 기준이 미비한 상황이다.

국민들의 ‘케모포비아’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케모포비아란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증을 의미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환경연구소가 발표한 ‘생활화학물질 위해성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100명 중 15명은 케모포비아로 인해 화학물질을 생각하면 식은땀을 흘리는 등의 공포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화학물질과 화학물질로 인한 위험이 너무 두려워서 그것을 떠올리기조차 싫다”는 응답자가 40.7%에 달했다. 이번 라돈 침대 사태에 대해 이덕환 교수는 “이번 라돈 침대 사태는 원안위의 애매한 조사결과 발표와 일부 언론의 과장보도가 겹치면서 더욱 심각해진 측면이 있다”면서 “라돈으로 인한 내부피폭량에 대한 보다 정밀한 측정이 이뤄져야 하고, 라돈에 대한 올바른 인식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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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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