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6일 제6차 일자리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는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왼쪽). 오른쪽은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 ⓒphoto 뉴시스
지난 5월 16일 제6차 일자리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는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왼쪽). 오른쪽은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 ⓒphoto 뉴시스

일자리 증가와 고용 안정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1순위 목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내린 업무지시가 일자리위원회와 일자리 상황판 신설이었다. 지난해 5월 문 대통령은 첫 일자리위원회를 주재하면서 “정부가 일자리를 위한 최대 고용주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가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며 “청와대는 일자리 인큐베이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일자리 증가에 쏟는 관심을 반영하듯 일자리정책 컨트롤타워인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국무회의급 규모’로 출범했다. 일자리위원회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지금까지 여섯 차례 열린 위원회 회의 중 절반을 대통령이 주재했다. 일자리위원회 위원 당연직 15명 중 11명은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을 비롯한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주요 부처 장관이다. 초대 부위원장으로는 국세청장 출신인 이용섭 전 의원(현 더불어민주당 광주시장 예비후보)이 선임됐다가 후임으로 지난 4월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이목희 전 의원이 임명됐다.

이렇듯 ‘매머드급’으로 일자리위원회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고용률, 실업률 등 고용 관련 지표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특히 청년실업률이 심각하다. 지난 3월과 4월 만 15~29세 청년실업률은 각각 11.6%, 10.7%로 2개월 연속 10%를 넘었다. 체감실업률은 22.8%에 달한다. 일자리위원회 내 2개 전문위원회 중 하나인 공공부문 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병훈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은 전화통화에서 “정부가 결연한 의지를 싣고 일자리 문제에 개입했지만 오히려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며 “일자리 문제 관련 선언을 하고 기구도 두고 범정부 차원 대책을 만들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데는 왜 그런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산 쥔 기재부 안이 우선 반영”

6차까지 열린 일자리위원회 회의는 지난 5차까지는 이용섭 전임 부위원장 체제였고, 6차 회의는 지난 4월 취임한 이목희 부위원장이 주재했다. 일자리위원회 회의 결과로는 매번 다른 분야의 대책이 나온다. 가령 지난 3월 열린 5차 회의에서는 청년실업 관련 대책이 나왔었고, 6차에서는 국토·교통 분야와 창업 중심의 일자리 마련 대책이 나왔다.

일자리위원회에는 정부 주요부처 장관들이 모두 참석하는 만큼 일자리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부처 간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는 것이 회의에 참석하는 민간위원들의 말이다. 지난해

1차 때부터 위원회에 참석해온 민간위원들은 “주무부처가 아니라 가장 힘 센 기재부 안이 많이 반영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청년계를 대표하는 일자리위원회 민간위원인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청년일자리 증가 방안과 관련해 지난해부터 고용노동부와 꾸준히 협의하고 있었는데 5차 일자리위원회가 열리기 직전에 갑작스럽게 기재부 안이 주요안건으로 올라오고 당사자들이 논의한 내용은 후순위로 밀렸다”며 “결국 부처 간 힘의 논리에 따라 기재부 안이 첫 번째로 반영됐다”고 했다. 정책 수요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문 대표는 “그 결과 노동자나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안이 아니라 기업 중심의, 기존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청년실업 대책안이 채택됐다”고 말했다. 일자리위원회에 각계를 대표하는 민간위원으로는 노인·청년·지방자치·여성·농업·벤처(스타트업)업계별로 총 6명이 참석한다.

일자리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의 위원들도 위원회가 기재부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병훈 학회장은 “그간 일자리위원회의 기조는 기재부 위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재정 지원, 추경 등 예산, 공공 분야에 돈을 끌어다 지원하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만든 점이 옳았는지 출범 1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간 기재부가 일자리위원회에서 주도권을 가져온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일자리 마련 방식과 관련이 깊다. 취임 초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취임 1년 동안 주로 공공부문에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고용 문제를 다뤄왔다. 거기다 초대 부위원장이었던 이용섭 전 부위원장은 국세청장을 지낸 정통 기재부(재정경제부) 관료 출신이다. 이 전 부위원장과 반장식 일자리수석이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협의해 기재부에서 예산을 끌어오고 공공부문에 확충하는 식으로 일자리를 늘려왔다. 이런 구도에서는 실물경제와 함께 예산 측면에서 키를 쥐고 있는 기재부의 힘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 편성된 3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이 ‘일자리 추경’으로 불리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재탕 대책도 여럿

최근 열린 6차 회의 결과로 마련된 중소기업벤처부와 국토교통부의 대책은 “기시감이 강하다”는 점에서 비판받기도 했다. 지난 5월 16일 창업 활성화 등의 내용을 담은 6차 민간 분야 일자리 창출 대책에서 국토부의 ‘국토교통 일자리 로드맵’은 지금까지 국토부가 추진한 모든 일자리 관련 대책을 모은 성격이 강하다. 국토부는 도시재생·공공임대·혁신도시 등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을 통해 창업공간 4700개와 일자리 9만6000개를 새로 만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기시감이 강한 정책들이다. 2022년까지 창업 지원 시설과 주거를 연계하는 소호형 주거클러스터를 3000호 공급한다는 것은 작년 말 ‘주거복지 로드맵’에 있었고, 도시재생 과정에서 창업 지원과 주거 기능을 복합한 어울림플랫폼 100곳과 첨단창업지원센터 15곳을 조성한다는 내용은 올해 발표한 ‘도시재생 로드맵’에 담긴 내용이다.

같은 대책에서 중기부가 마련한 대책안 역시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발표한 대책과 거의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기부는 ‘소셜벤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펀드를 1200억원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셜벤처 펀드 조성은 이미 지난해 11월 3일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안’을 발표할 때 나온 내용이다. 금액만 10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늘어났다.

일자리위원회가 고용증가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각 부처·기관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면서 일부 기관에서는 고유한 정책목표와 충돌이 생길 조짐도 보이고 있다. 예컨대 물가안정이 최대목표인 한국은행도 고용안정을 추가 목표로 책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이주열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 목표로 ‘고용안정’을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한은 본래의 정책목표인 물가안정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도 올해 말부터 금융위원회가 도입할 ‘금융일자리 지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은행·보험·증권사 등의 고용창출 실적을 평가하는 이 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취임 직후 청와대에 설치한 일자리상황판의 ‘금융권 버전’이다.

“일자리는 결국 민간에서 나온다”

일자리위원회 민간위원들과 전문가들은 “결국 일자리는 민간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병훈 학회장은 “노동시장, 산업구조 등 구조적 변화를 추동하는 요인들을 고려하면 재정지원을 통해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위원회에서 벤처업계를 대표하는 민간위원인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 역시 전화통화에서 “일자리는 결국 공공보다는 민간에서 나올 것”이라며 “초기에 공공부문에서 추경을 편성해서 마중물 역할을 하는 건 정부지만 결국 중요한 건 민간 영역에서의 일자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일자리위원회는 민간부문에 눈을 돌리는 상황이다. 지난 5월 16일 열린 제6차 일자리위원회에서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재벌 대기업을 설득하고 있다. 아마 제7차 일자리위원회부터는 대규모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계획을 국민들께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선망하는 일자리로 이어지는 대기업들의 채용 확대를 직간접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최근 이 부위원장이 일자리위원회 사용자 측 위원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잇달아 만난 것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이목희 신임 부위원장에 기대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취재를 위해 접촉한 민간위원들은 한결같이 “예전과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일자리 증가를 위해 예산 투입 등 공공 영역에서의 재정적 수단을 사용한 전임 이용섭 부위원장과 달리 노동운동가 출신인 이목희 부위원장은 정치적으로 노동계와 산업계의 대화를 이끌지 모른다는 기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안건준 협회장은 “결국 핵심은 위원장인 대통령인데,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이고 유관부처 장관들을 푸시해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목희 신임 부위원장은 매우 적합한 사람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화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한 민간위원 역시 “이목희 위원장 체제에서 변화가 감지되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일자리위원회 위원들은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환상’에 함몰되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병훈 학회장은 “일자리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만 될 일이 아니고 특히 민간부문에서 노·사가 문제를 공감하고 해법에 동참을 해야 한다”며 “고용·노동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산업 영역, 특히 혁신 산업에 대한 지원 확대 등 산업 정책과 인구 구조를 고려한 총체적·입체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건준 협회장은 “중소·벤처기업만이 아니라 대기업이 일자리 조성 생태계에서 큰 역할을 하는데 현재는 두들겨 맞고 구석에 숨어 있는 상황”이라며 “이들을 국가 변혁의 중심 영역으로 유도하고 박수를 보내면서 혁신 생태계가 조성될 분위기를 만들어 민간 주도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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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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