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이었다. 김모씨가 딸의 소식을 들은 게 말이다. 지난 4월 김씨에게 경찰이 찾아왔다. 유전자 분석을 위한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김씨의 구강시료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의뢰했다.

발단은 한 여성 변사체였다. 김씨가 사는 경기도 부천에서 발견된 변사체였다. 열 손가락이 다 잘린 채였다. 신원을 알아낼 길은 DNA 대조뿐이었다. 경찰은 사체 발견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 중 실종신고된 여성들에 주목했다. 그 가족들의 DNA 시료를 채취해 국과수에 의뢰했다. 그중 한 명이 김씨였다. 김씨는 2010년 이후 딸을 만나지 못했다. 장기 실종자다. 얼마 후 김씨는 연락을 받았다. 딸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손가락 잘린 변사체는 딸이 아니었다. 딸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과수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0년 한강에서 발견된 신원불상의 여성 시신’이 김씨의 딸이었다. 국과수가 보관하는 신원불상 변사자 DNA 자료 덕에 8년의 기다림이 끝났다.

매해 성인 6만명 이상이 집을 떠난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5년엔 6만3471명, 2016년엔 6만7907명, 2017년엔 6만5830명이 가출인으로 신고접수됐다. 올해는 지난 4월까지 2만4934명이다. 대부분은 다시 돌아온다. 지난해의 경우 미발견자는 1496명이다. 가출인 중 약 2%가 돌아오지 않았단 얘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발견자 통계는 줄어든다. 가출인이 귀가하면서다. 2015년 신고된 가출인의 경우 546명이 현재까지 미발견 상태다.

한편에선 신원불상, 즉 누군지 알 수 없는 변사체가 발견된다. 발견 건수는 2015년엔 241건, 2016년 168건, 지난해엔 120건이다. 해마다 200명 안팎의 사람들이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는 셈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가출인 중 끝까지 행방을 찾지 못한 미발견자와 신원불상의 변사체 둘 다에 속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범죄의 피해자든, 사고를 당했든, 어느날 집을 나섰다 신원불상 변사체로 발견된 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현행 체계에선 이를 확인할 공식적인 방법이 없다. 실종자 수색 시스템과 변사체 관리 체계 사이에 긴밀한 연계가 없는 탓이다.

실종자를 대하는 우리나라의 법 체계를 살펴보자. 한국은 실종자 문제를 다루는 법 체계가 약간 특이하다. A라는 사람이 어느날 귀가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가족들이 경찰서에 실종 접수를 한다.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신원불상 변사체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밝혀진 것도 DNA 데이터베이스 때문이다. 2014년 7월 2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신원을 밝힌 과정을 설명하는 브리핑이 열렸다. ⓒphoto 윤동주 조선일보 기자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신원불상 변사체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밝혀진 것도 DNA 데이터베이스 때문이다. 2014년 7월 2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신원을 밝힌 과정을 설명하는 브리핑이 열렸다. ⓒphoto 윤동주 조선일보 기자

A가 18세 미만이면 그는 실종아동으로 분류된다. 2005년 제정된 ‘실종아동법’ 때문이다. 실종아동법은 실종 당시 18세 미만 아동을 뜻한다. 원래는 아동만 대상이었던 것이 후에 장애인과 치매환자로 확대됐다. 그래서 법률 이름도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장애인은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 또는 정신장애인’으로 규정했다. 예를 들면 성인 시각장애인은 해당되지 않는단 얘기다.

A를 찾기 위해 경찰은 탐문 수색에 들어간다.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실종아동의 정보를 입력한다. 동시에 A의 실종은 보건복지부의 관할 업무가 된다. 보건복지부는 실종아동 업무의 상당부분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위탁했다. 어린이재단은 유전자 검사 업무와 신상정보 데이터베이스 관리 업무를 한다. 실종아동 자체의 유전자와 실종아동을 찾으려 하는 가족의 유전자도 확보한다.

A가 만약 18세 이상이고, 신체에 아무 문제가 없는 성인이라면 가족의 신고와 동시에 ‘가출인’이 된다. 실종자가 아니다. A가 18세 이상 성인 남성이냐 아니냐로 다시 구분이 된다. 18세 미만 아동과 18세 미만 지적장애인, 18세 이상 모든 여성의 경우엔 경찰 ‘실종수사팀’ 관할이 된다. 범죄와 연관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 초동조치를 한다. A가 성인 남성이라면 경찰 ‘합동심의위원회’로 넘어간다. 신고접수 24시간 내에 회의를 개최해 A의 가출이 범죄와 연관이 있는지 판단한다. DNA 수집 등은 꼭 하지 않아도 된다. 지적장애인이나 치매환자가 아닌 성인 실종자의 경우 적용할 법률 자체가 실질적으로 없어서다. 만약 A가 바다에서 실종됐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실종아동법상의 규정은 경찰청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해경은 성인이든 아동이든 실종신고를 접수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실종자로 분류해 수색한다.

이번엔 B라는 변사체가 발견됐다고 가정해보자. 검시한 결과 범죄와 연관되지 않았다는 게 명백하면 검사의 지휘를 받아 사체를 유족에게 인도한다. B를 인수할 가족이 없거나 B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사체가 있는 지역의 시장, 군수, 구청장 등 지자체장에게 인도한다. 바로 ‘장사법 제12조’다. 무연고 사망자의 매장 혹은 봉안을 발견된 곳의 지자체장이 담당하도록 정했다. 무연고 사망자의 매장 또는 봉안 기간은 10년이다. 경찰은 신원확인을 위해 변사자의 DNA를 국과수에 보낸다. 운이 좋으면 국과수에서 누군지 밝혀진다. 그 예가 바로 세월호 사건 당시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다.

신원불상 변사체가 유병언으로 밝혀진 과정을 잠깐 보자. 2014년 6월 12일 밭주인이 밭에 나갔다 사체를 발견했다. 사체는 전남 순천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부검이 이뤄졌고, DNA 분석 시료가 국과수 법유전자과에 보내졌다. 부패가 많이 진행돼 지문 채취는 하지 못했다. 분석 시료는 대퇴골과 치아. 대퇴골과 치아는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검출 확률이 높다. 더구나 지방에서 사체가 발견되면 시료가 운반되는 도중 부패할 염려가 있다. 시간을 다투지 않는 신원불상 변사자에게서 대퇴부와 치아를 채취하는 이유다. 뼈로 유전자 분석을 하려면 보통 2~3주 이상이 걸린다. 단단한 뼈를 무르게 만들기 위해 칼슘을 빼내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여느 신원불상 변사체와 다르지 않았다. 6월 21일 유전자 분석 결과가 나왔다. 그것만 가지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국과수가 자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 DNA뱅크에 넣고 혹시 일치하는 유전자가 있는지 검색해봐야 한다. 당시 세월호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DNA가 국과수에 들어와 DNA뱅크에 여러 건이 등록된 상황이었다. 유병언의 사무실과 별장에서 확보된 DNA 등이다. 검색 결과 이 사체가 유병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만약 국과수에서 순천 변사자가 유병언이라는 게 밝혀지지 않았다면 무명씨인 상태로 매장되었을 터다.

유전자 감정은 신원불상 변사자의 신원을 밝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성인 실종자를 다루는 법 자체가 없다 보니 변사자가 들어와도 실종자 가족과 대조해볼 방법이 없다. 국과수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해볼 뿐이다. 국과수는 실종자와 관련해 자체적으로 약 8000개의 DNA 샘플을 보관하고 있다. 신원불상 변사자의 샘플 3600여개와 실종자 가족의 샘플 3800여개다. 실종자 가족의 경우 가족이 원하거나 앞서 부천의 김씨 사례처럼 수사 과정에서 의뢰한 경우다.

DNA를 어떻게 수집하고 다뤄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에 신원확인이 되면 삭제하는 등 국과수가 상황에 따라 대처하며 보관 중이다. 실종자 수에 비해 가족의 DNA 샘플이 극히 적은 이유다. 임시근 국과수 법유전자과 연구관은 “DNA는 민감한 개인정보다. 현장에서의 원활한 업무를 위해서도 관련 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아동·성인 통합 관리

외국은 어떨까. 영국·미국 등은 단일법률로 실종자 문제를 다룬다. 아동과 성인으로 구분하지 않고 실종자를 찾는다는 뜻이다. 영국은 특히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부문에서 가장 앞선 나라다. MPDD(Missing Persons DNA Database), 즉 실종자 DNA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한다. 실종자와 가족의 DNA 수만 건을 확보해 관리 중이다. 보조 DB로 경찰, 과학수사요원, 유전자 분석요원 등의 DNA도 수집했다. 시료가 오염돼 잘못된 결과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피해자의 DNA 시료에 경찰관의 DNA가 섞여 들어가도 쉽게 구분해낼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도 보조 DB 구축을 추진했지만 ‘경찰관 DNA 수집은 인권 침해’라는 내부 반발로 잠정 중단한 상태다.

실종자 문제를 엄격히 다루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각 주의 자율성을 우선하지만 실종자 문제에 있어선 연방 차원에서 강력히 대응한다. 한국은 보건복지부가 실종(아동)자 문제를 다루지만 미국은 법무부 관할이다. 미국은 실종자 및 신원불상 변사자에 대한 전국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NAMUS(National Missing and Unidentified persons System)다. NAMUS는 실종자 및 신원불상 변사자에 대한 기록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한곳에서 저장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실종자 데이터베이스, 신원불상 변사자 데이터베이스, 미연고자 데이터베이스로 구분해 관리한다. 신원불상 변사자를 발견하면 실종자인지 여부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도 마찬가지다. 한곳에서 일괄해 관리한다. FBI(연방수사국)다. 두 가지의 DNA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범죄 관련 DNA데이터베이스인 CODIS(Combined DNA Index System)와 실종자 수사를 위한 NMPDD(National Missing Person DNA Database)다. CODIS에는 총 1400만여명의 DNA가 저장되어 있다. 실종자와 함께 미제사건의 용의자, 수형인의 범죄자를 총망라해 한곳에서 관리한다. NMPDD엔 실종자와 관련한 모든 유전자를 모아놨다. 신원불상 변사자, 실종자, 실종자 가족(친척)의 세 가지 데이터베이스다.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한국은 실종자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는 공식적으론 전무할 뿐더러 범죄자·용의자의 유전자 정보도 두 곳에 분산되어 있다. 대검찰청과 국과수다. 크라임신, 즉 범죄현장에서 채취된 유전자는 국과수에서 보관하고, 수형인의 유전자는 대검찰청에서 보관한다. 범죄 수사에 관련된 유전자 정보를 이원화해 보관하는 곳은 한국뿐이다. 두 데이터베이스의 공조 및 통합은 오래전부터 지적됐지만 해결되지 않은 해묵은 사안이다. 검경 수사권 문제와 관련돼 있어서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성인 실종자와 실종아동을 통합해 관리하는 실종자 수색·수사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선진국은 이미 아동·성인 구분 없이 실종자를 통합관리 중이다. 성인 실종자 법적 사각지대 해소를 통해 실종자의 조속한 발견과 복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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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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