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25억원의 ‘철강왕’ 권좌(權座)에 앉을 주인공은 누구일까.

8년 연속 세계 철강 경쟁력 1위를 지켜온 포스코가 새 CEO(회장)를 찾고 있다. 포스코 이사회는 신임 회장을 선출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5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 승계 카운슬(Council)’을 가동해왔다. 김주현 포스코이사회 의장과 박병원·정문기·이명우·김신배 사외이사로 구성된 승계 카운슬은 내부인사 10명, 외부인사 8명 등 총 18명의 회장 후보 명단을 작성한 상태. 이 가운데 5명 내외를 추려 CEO추천위원회에 넘길 예정이다. 이사회 규정상 승계 카운슬 멤버였던 권오준 회장은 후임 회장 선정의 공정성을 기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카운슬 참여를 포기했다.

7명의 사외이사 전원이 참여하는 CEO추천위는 5명 내외로 압축된 후보들을 상대로 심층면접 등을 거쳐 주주총회에 추천할 회장 후보 1인을 6월 말까지 선정하게 된다. 현재는 승계 카운슬에서 18명의 후보자 가운데 5명을 선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자천타천으로 회장 후보에 거론된 인사들은 CEO추천위에 보고될 ‘5인 엔트리’에 들기 위해 물밑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 중 일부 인사들은 언론이나 정치권 및 재계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후보군 중 앞서가고 있다”거나 “정권과 가깝다”는 식으로 언급되면서 후보군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바른미래당에서 제기한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의 포스코 인사 개입설’은 보이지 않는 전쟁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바른미래당 김철근 대변인은 지난 6월 4일 논평을 통해 “5월 29일 아침 인천 한 호텔에서 포스코 전직 회장들이 모인 가운데 장 실장의 뜻이라며 특정 인사를 포스코 회장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전임 회장들의 협조를 요청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즉각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나섰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논평을 철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민간 인사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이고, 문 대통령이 직접 이 원칙을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김철근 대변인의 논평을 보도하면서 기사 말미에 현재 포스코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준식 전 포스코 사장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이라는 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포스코 측은 이 논평에 대해 “전·현직 CEO들이 만나 후임 CEO 인선에 대해 논의했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지난 4월부터 가동 중인 승계 카운슬은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18명의 CEO 후보군 명단조차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포스코 내부 직원들도 “누가 후보인지 모를 뿐만 아니라, 카운슬에 문의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누가 부상한다거나 앞서가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 게 수상하다”는 반응이다. 승계 카운슬은 이번 CEO 후보군에 외국인도 포함될 것임을 시사한 바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름이 공개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각종 언론을 통해 거명된 후보는 십수명에 달한다. 우선 포스코 내부 인사로는 오인환 사장(철강1부문장), 장인화 사장(철강2부문장), 이영훈 포스코건설 사장, 박기홍 포스코에너지 사장, 최정우 포스코컴텍 사장, 강태영 포스코경영연구원 전문임원 등 현직 사장급 인사들과 김준식·김진일·황은연·김응규 전 사장, 구자영 전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인사로는 전윤철 전 감사원장, 오영호 전 코트라 사장,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한 한국계 미국인 기업인 등이 포함됐다고 알려졌다.

연고주의 관행 끊을 적임자는?

이들 후보군 중 누가 1차 관문을 뚫을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이들 중 누가 어떤 이유로 감점을 당하고, 어떤 이유로 득점을 할지가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정도다. 설왕설래 속에 나도는 한 가지 선정 기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철학이다. “민간기업의 인사나 사업에 정부가 개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은 포스코 차기 CEO 선정도 전적으로 이사회의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 ‘연고주의’는 깨졌으면 하는 바람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주요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연고주의와 같은 관행이 민영화된 기업에서 재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보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고주의는 지역이나 학벌 중심의 인사, 기득권적 보신주의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포스코 주변에서는 차기 CEO 선정 과정에서 이러한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가 반영될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CEO추천위에 포함된 포스코 사외이사 7명 중 부산고와 경남고를 나온 소위 ‘부산 인맥’은 3명이나 있다. 박병원·이명우·김성진 이사는 부산의 명문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를 나온 인사들이다. 문 대통령이 부산 경남고 출신이고 연고주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인 것을 감안하면 차기 포스코 CEO 선정 과정에서 부산 명문고를 졸업한 이력은 장점이 아니라 감점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현 청와대 실세로 통하는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등 호남 인맥과의 친분 과시도 지역주의적 행태로 보여질 소지가 있다. 앞서 유력한 CEO 후보 중 한 명인 김준식 전 사장이 장하성 정책실장과 가깝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월 포스코 신임 사외이사로 추천됐다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한 박경서 고려대 교수도 장하성 실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중견 재벌기업과 친척 관계로 알려진 장인화 현 포스코 사장의 경우 장하성 실장이 나온 경기고 동문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문재인 캠프 또는 노무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인사들은 ‘낙하산’ 논란을 불러올 게 자명하다는 점에서 포스코 이사회가 중요하게 검토할 항목으로 손꼽힌다. 포스코를 떠난 지 4년 만인 지난 3월 포스코에너지 사장으로 돌아온 박기홍 사장의 경우 과거 참여정부 시절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박 사장 역시 부산고 출신이다. 외부 인사로 거론되는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문재인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인사다. 오영호 전 코트라 사장은 지난 2014년 포스코 CEO 후보 선정 때도 권오준 현 회장과 경쟁했던 인물이다. 그는 노무현 청와대의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냈기 때문에 현 정권에 가까운 인사가 꽤 있다.

특정 대학·학과 출신이 포스코 고위직에 많이 포진한 것도 CEO 선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권오준 회장을 비롯 포스코 내부 전·현직 고위 인사 상당수는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이다. 그동안 특정 대학·학과 출신이 포스코 경영진에 유독 많다는 것은 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구자영 전 SK이노베이션 부회장, 김준식·김준일 전 사장 등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인사들이다. 한편 현 CEO 후보군 중에는 미투운동과 관련해서 구설에 오르는 인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포스코를 이끌 적임자의 덕목 중 하나로 개혁성과 신사업 역량을 꼽고 있다. 철강 중심의 포스코 사업구조는 현재 중국·인도 등 후발주자에게 바짝 쫓기고 있다. 고급화 전략으로 철강 부문 체질을 전환해야 하는 숙제를 신임 CEO가 떠안게 된다. 동시에 60조원 안팎의 회사 외형을 유지하려면 비철강 분야의 신사업 개발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철강 중심의 사업에 익숙한 직원들을 이끌어가려면 차기 CEO는 개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50년 역사의 포스코 내부에서 구조조정과 개혁을 이끌기란 쉬운 과제가 아니다. 권오준 회장의 경우 정준양 전 회장 당시의 방만경영을 바로잡기 위해 구조조정 등에 박차를 가했는데 이를 실무적으로 지휘한 최정우 포스코컴텍 사장에 대해서는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거부감이 상당하다.

권오준 회장 연임 당시부터 차기 CEO로 거론되어온 황은연 전 사장의 경우 오랫동안 대관 및 홍보 업무를 담당해왔다는 점에서 포스코 안팎의 평판이 나쁘지 않다. 다만, 신사업 개발 등에서 역량을 발휘해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정치적 바람을 원천 차단하고 포스코를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이번에는 외국인 CEO를 선임해야 한다는 주장도 주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CEO 후보도 승계 카운슬의 CEO 후보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가 기간산업인 포스코에 외국인을 앉히는 게 과연 적절하냐는 문제제기와 함께 외국계 기업 출신 CEO가 국내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가 거의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원로급 재계 관계자는 이번 포스코 CEO 선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와 달리 정권 차원에서 누구를 지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포스코의 개혁과 기존 관행을 깰 적임자를 찾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 같다. 한때 포스코를 흔들던 사람이 특정 인사를 민다거나 회사에 손해를 끼쳤던 인사가 CEO 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을 재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포스코 정도의 기업 사외이사라면 이런 부분을 잘 파악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포스코는 공기업에서 민영화됐기 때문에 과거부터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사외이사들은 개인 자질보다 가급적 구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인사를 CEO로 선정해오곤 했다. 정준양 전 회장과 권오준 회장의 경우도 당시 정권과 가깝거나 대외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 아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후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대기업의 수장이 이 정부 들어 처음 선정되는 사례가 포스코 회장이라는 점에서 이번에도 대외적 영향력보다 주주의 이익을 제고하고 회사 체질을 바꿀 인물을 이사진들이 선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권오준 회장 전격 사의 배경

포스코 새 사령탑 선출은 회장직 연임에 성공한 권오준 회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촉발됐다. 올해 1월 포스코 이사회는 최고경영자(CEO) 단수 후보로 권오준 회장을 추천했고, 2014년 3월 포스코 회장에 취임한 권 회장은 우여곡절 끝에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권 회장 연임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포스코에 대한 사정기관의 조사가 잇따랐고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권 회장의 연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제기됐다. 차기 포스코 CEO를 노린 전·현직 인사들의 권 회장 체제 흔들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권 회장은 지난 4월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했고 이후 후임 회장 선출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창사 50주년을 앞두고 다양한 구상을 마련했던 권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의표명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뒷말이 아직도 적지 않다. 실제 권 회장은 사의 표명 일주일 전까지 신사업 추진 방향을 놓고 측근들과 회의를 갖는 등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때문에 포스코 내부에서는 “권 회장이 자리를 지킬 수 없을 정도의 특별한 사정이 생긴 것 같다”는 말이 돌았다. 자신의 갑작스러운 사임 배경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권 회장은 주주총회를 통해 차기 CEO가 확정될 때까지 현직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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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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