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최근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더 오래 더 많이 내야 하고, 더 늦게 더 조금 받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또다시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국민연금이 아닌 궁민연금’ ‘국민의 노후를 궁핍하게 만드는 정부와 정권의 쌈짓돈’이라는 극단적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모두가 국민연금의 개편과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부가 개혁안이라고 내놓을 때마다 불신만 더 키우는 상황이다.

2018년 여름, 국민적 분노와 저항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은 어떻게 개혁해야 할까. 국민들의 신뢰를 되살릴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만났다.

전 전 이사장은 2009~2013년 4년여간 국민연금공단을 이끈 최장수 이사장이다. 최초로 연임에 성공한 이사장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의 수장을 맡기 전에는 한국 정부 최초의 ‘민간인 출신’ 금융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했다. 1세대 국제금융 분야 전문가로 국제투자금융 분야에서 정평이 나 있는 인물로, 그가 국민연금을 맡았던 4년 중 2년간은 국민연금의 연수익률이 10%를 넘었다. 4년 전체 수익률 역시 7%를 웃돌며 역대 국민연금 이사장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올해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은 지난 5월까지 0.49%에 불과하다. 심지어 같은 기간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수익률은 -1.18%로 투자한 돈마저 까먹은 실정이다. ‘차라리 시중은행 정기예금에 기금을 넣어두는 게 더 나은 투자 아니냐’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20일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만난 전광우 전 이사장은 최근 국민연금 사태에 대한 안타까움부터 밝혔다. “최근 정부와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가 내놓은 개편안을 보면 ‘국민들이 언제까지 얼마를 더 내고, 언제부터 얼마나 덜 받게 되는지’에 대한 납부와 수급 등 제도 개편 관련 내용만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민연금 기금을 누가,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입니다. 이를 통해 기금을 얼마나 더 불리고, 이렇게 불어난 연기금을 국민 노후를 위해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에는 이에 대한 내용은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더 내고 덜 받는’ 개편안에 분노 폭발

국민연금의 실태를 개혁하고 자문하기 위해 꾸려졌다는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이하 국민연금 위원회)는 물론 국민연금공단과 보건복지부, 청와대조차 634조원짜리 기금운용 방안은 빼놓은 채 납부(부담)와 수급에 대한 내용만 땜질식으로 바꿔보겠다는 개편안을 내놓았다는 지적이다.

전광우 전 이사장은 예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634조원에 이르는 규모의)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1%만 더 끌어올리면 연금 수급 기간을 최소 5년 연장시킬 수 있고, 2%만 더 끌어올리면 그 두 배 이상의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국민연금을 국민에게 지급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국민들이 쌓아준 634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기금을 어떻게 잘 투자하고 운용해서, 얼마나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느냐가 국민연금 개편안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에 국민연금 위원회가 내놓은 국민연금 개편안과 정부, 청와대의 해명에서는 기금 운용과 수익률 확보·관리에 대한 부분이 완전히 빠져 있다. 국민연금 위원회가 이렇게 엉성한 개편안을 만들어 내놓으며 오히려 국민적 분노와 불신을 키우는 상황이다.

국민연금 위원회가 내놓은 개편안을 간단히 살펴보자. 당초 2060년 고갈이 예상됐던 국민연금 기금이 사실은 2057년 고갈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가안’과 ‘나안’ 두 가지 개편안을 내놨다. ‘가안’은 △40%인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고 △국민이 내야 할 9%의 보험요율은 내년부터 즉시 11%로 올린 후 2034년에 12.3%까지 더 올리겠다는 것이다. ‘나안’은 △소득대체율은 40%로 그대로 두고 △내년부터 보험요율을 올려 2029년에 13.5%까지 인상한다는 것이다. 또 △65세인 연금 수급연령을 늘려 2043년 67세부터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앞으로 국민들은 더 많이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이에 대해 전광우 전 이사장은 “한국의 국민연금 구조상 앞으로 더 내고 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피할 수 없는 게 냉정한 현실”이라면서도 “문제는 이 방향이 어쩔 수 없다면,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할 부담과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내용을 개편안에 더 정성껏 담아야 했다”고 했다.

그는 “부담과 손실 감내만 말할 뿐 이런 노력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특히 20~40대 젊은 국민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국민연금을 두고 청와대와 정부, 심지어 국회 등 정치권이 지금껏 신뢰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온 상황에서 국민이 신뢰를 가질 수 있는 독립성이 보장된 제3의 외부 기구가 아니라 정부와 청와대가 먼저 국민연금에 대해 언급하고 나선 게 국민적 저항을 키운 요인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실 지난 박근혜 정권은 물론이고 현 문재인 정권에서도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해치는 의혹과 잡음들은 심심치 않게 불거져왔다. 국민연금 인사(人事)에 청와대 실세 핵심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또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할 기금운용에 대한 간섭 의혹까지 나왔다. 연금의 안정적 운영과 수익 확보를 심각하게 해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광우 전 이사장은 상황이 이런데도 국민연금 개편안을 준비하던 국민연금 위원회보다 정부는 물론, 대통령까지 먼저 나서 지난 7월 말과 8월 초 국민연금 개편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면 그래도 국민적 저항을 줄이며 개편과 개혁에 동의를 구하기 용이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지금 여론과 상황은 그렇지 못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래 세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방안 마련과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연금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문제를 푸는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외면받는 국민연금 기금운용과 독립성

인터뷰 내내 전광우 전 이사장은 불신과 분노, 저항의 대상이 된 국민연금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결국 기금이 잘 운용되고 탁월한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국민연금이야 말로 가장 안정적 투자이고 쉬운 재테크라는 인식을 갖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연금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결국 ‘640조원에 육박하고 있는 연기금을 누가, 얼마나 잘 운영해, 좋은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느냐’일 수밖에 없다”며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서 국민연금의 납부·수급 변경 등 연금의 제도 개편 이상으로 기금운용과 운용인력의 독립성 확보 문제가 반드시 함께 논의됐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의 국민연금 개편, 개혁 논의에서는 기금운용과 운용인력의 독립성 문제는 오히려 외면받는 상황이다. 그는 “국민 노후 안전판으로서 안정적 연금 지급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 ‘더 나은 기금운용 방안’이 논의되지 않고 있는 게 안타깝고 걱정스럽다”며 “단기적 수익률도 중요하지만 연금이라는 특성상 양호한 중·장기적 평균 수익률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안전성만 고집한 채권 몰빵 투자나, 단기수익성에 집착한 주식(특히 국내 주식) 몰빵 투자에 집중하는 방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기금운용의 장기적 수익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한 ‘투자 내용과 수익률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어떤 투자자라도 모든 투자처의 수익률이 좋을 수 없다. 분명 수익률이 좋지 못한 투자처가 등장하게 된다. 그럴 때 다른 투자처들에서 확보한 좋은 수익률을 통해 전체 평균 수익률을 양호하게 만들 수 있는 투자 방법이 필요다. 자본 투자의 기본 중 기본인 균형감을 갖춘 투자 포트폴리오다. 양호한 중·장기 수익률 확보와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최대 목표인 국민연금이기에 균형 있는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과 이에 맞춘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이와 관련 전광우 전 이사장은 2009년 국민연금 이사장이 됐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사장으로 갔을 때 조금 놀랐습니다. 투자 자산의 80%를 채권에 몰빵한 겁니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당연히 시장 수익률보다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당시 국민연금 관계자들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보다 투자 대상 중 하나라도 마이너스가 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컸던 겁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국민연금은 한국 최대이자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투자 자본이었다. 그런 국민연금이 투자의 기본인 투자 포트폴리오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사실상 채권 몰빵 투자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채권 몰빵 투자구조를 채권·주식·대체투자는 물론, 국내와 해외로 더욱 세분화해 투자자산 포트폴리오를 재편했었다”며 “그 결과물이 10% 넘는 연평균 수익률이었고, 기금의 적립금도 빠르게 늘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1%만 늘려도 5년은 더 안정적으로 연금을 줄 수 있는 구조’도 이때 말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같은 설명에 빗대어 보면 최근의 기금운용 실태와 수익률은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 주식시장이 좋지 못하면 국내외 다른 투자처의 수익률로 나빠진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을 희석시키고, 전체 운용 수익률을 양호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기금운용 실태와 수익률은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이 나빠지자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올 1월부터 5월까지 기금의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은 투자한 돈마저 까먹고 있음을 의미하는 -1.18%였고, 전체 수익률도 0.49%에 불과했다.

국제투자금융 전문가인 전광우 전 이사장은 “숫자로 나온 수익률 문제보다 투자 내용과 수익의 질이 더 우려되는 부분”이라는 지적도 했다. “지난해 이후 국민연금의 투자에서 대체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고, 계획돼 있던 대체투자의 1~2% 정도밖에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수익률이 나빠진 근본 이유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독립성이 위기에 처하고,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운용인력들이 대규모로 이탈하면서 조직의 운용능력마저 이전보다 약해진 것을 꼽았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 있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이 기금운용 책임자와 담당자들에게 큰 상처가 됐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 사안으로 국민연금 수뇌부는 물론 기금운용 책임자와 담당자에 대한 수많은 감사, 심지어 검찰 수사까지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기금운용본부의 운용인력들은 자기 보호를 위해서라도 리스크 부담보다는 누구에게도 책잡히지 않을 안전한 운용만 하자는 분위기가 커졌을 겁니다.”

그는 “이는 국민의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양심과 소신을 가진 운용 전문가들의 독립성이 왜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했다.

“정치색 가진 기금운용본부장은 피해야”

전광우 전 이사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인선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634조원에 이르는 기금을 운용하는 투자 책임자다. 그런데 이 자리가 지난해 7월 이후 벌써 1년 넘게 빈 상태다. 몇 차례 인선을 시도했지만, 청와대 실세로 통하는 장하성 정책실장의 인사 개입 의혹이 폭로되는 등 인선에 실패했다.

8월 다시 기금운용본부장 후보들에 대한 면접이 진행 중에 있지만 몇몇 후보에 대한 정권 차원의 영향력 의혹, 자산운용 및 투자 전문성이 전혀 없는 특정 인물의 갑작스러운 등장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광우 전 이사장은 전직 이사장으로서 인사 부분은 거론하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사실 이제까지 기금운용본부장 인선이 이렇게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없었다”며 “독립성을 갖고 기금운용을 가장 잘할 수 있는 투자 철학과 능력을 지닌 사람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뽑으면 되는 사안”이라고 했다. 그는 언제부턴가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정권의 입맛에 맞춘 전리품처럼 다뤄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아픈 현실이라는 지적도 했다. “정치권, 특히 청와대에서 기금운용본부장 인선과 후보에 대해 언급하는 상황이 매우 어색합니다. 해외 어떤 연기금에서도 이 같은 상황을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자격은 단순명료하다고 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돈을 소중히 여기며 무엇을 해야 하는 자리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634조원짜리 자산운용을 책임질 수 있는 투자와 자산운용에 대한 전문지식, 경험, 능력이 뛰어나고 풍부해야 합니다. 또 최근 1~2년 사이 무너진 기금운용 조직을 추스를 독립성과 안정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진짜 투자·운용 전문가라야 합니다. 특히 이 세 번째 기금운용본부장은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합니다. 정치색이 분명하거나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 634조원짜리 자산의 운용 책임자가 됐을 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문제가 불거지거나 탈이 날 수 있는 개연성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기금운용본부장은 투자와 자산운용계의 스타나 권력자로 올라서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외부 노출을 최대한 삼가야 하는 힘든 자리”라고 했다. 기금운용본부장의 언행 하나하나가 진의와 달리 시장에서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된 메시지와 정보를 줘 시장 왜곡 등 각종 문제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금운용본부장은 외부 혹은 언론과의 접촉을 최대한 삼가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충고다. 그는 “노후 보장을 위한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이런 부분부터 개혁하고 바꿔나가야 작게나마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제도 개편만큼 중요한 운용 수익률 1%

그는 2시간이 훨씬 넘는 인터뷰 동안 국민연금과 기금 운용에 대해 기사에 모두 담지 못할 만큼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무엇보다 전임 국민연금 수장으로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분노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납부와 수급 등 제도의 개편안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수백조원의 기금을 더 잘 운용해 더 많은 수익을 쌓고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연금을 지급할 수 있게끔 기금운용에 대한 개혁과 독립성 보장 역시 국민연금 개혁 과정에서 반드시 중요하게 논의돼야 한다.

그는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을 1%만 더 끌어올려도 6조3400억원이 넘는 돈을 더 적립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매년 평균 1~2%의 수익률을 올리는 게 사실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5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보다 연평균 1~2% 수익을 더 올리고 있는 연기금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키워드

#인터뷰
조동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