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국립초상화전시관에 걸린 오바마 초상화.
워싱턴 국립초상화전시관에 걸린 오바마 초상화.

열대야로 불타던 8월도 끝나간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 코앞이다. 미국에서는 마치 계절상품처럼 저명인사들의 추천도서 리스트가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이 중 여름 휴가철에 읽은 대통령의 책들이 추천도서 리스트 1순위다. 대학의 9월 학기 시작과 함께 대통령이 읽은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는 일이 잦다. 하지만 2018년 가을은 다를 듯하다. 아니, 정반대다. 미디어와 지식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들은 엄청 많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이 읽었다는 추천도서 리스트는 없다.

트럼프는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너무 바빠 휴가철에 읽은 책이 없다”고 고백했다. 반(反)트럼프 미디어들은 ‘트럼프=독서를 하지 않는 무뇌 대통령’이라 비난한다.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책이 지식·지혜의 출발점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과의 대화를 중시하는 트럼프 스타일도 지식·지혜의 원천이다. 책보다 현장의 공기와 체험을 더 중시하는 것이 트럼프다. 어쨌든 올해 대통령 추천도서 리스트는 그동안 트럼프가 가끔씩 언급했던 책들로 대치되는 분위기다. 그레그 자렛(Gregg Jarrett)이 쓴 논픽션 ‘러시아 혹스(The Russia Hoax)’가 대표적이다. 트럼프가 수작이라 평가한 책으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트럼프를 떨어뜨리려던 미연방수사국(FBI)의 음모를 다루고 있다. 트럼프다운 아전인수 격 추천이지만, 이미 베스트셀러에 진입해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읽은 책들은 8월 셋째 주 거의 모든 미디어가 다룬 빅뉴스 중 하나였다. 트럼프가 언급했던 책들보다 더 크게 취급됐다. 여름철 오바마가 읽은 책들이, 마치 보란 듯이 트럼프와 비교되면서 베스트셀러로 올라섰다. 오바마의 책들은 타라 웨스트오버(Tara Westover)가 쓴 논픽션 ‘에듀케이티드(Educated)’를 비롯해 전부 다섯 권이다. 마이너리티의 역사, 국가의 윤리와 철학 등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오바마가 직접 밝혔듯이 “여름철 내내 흠뻑 빠져 읽었던 책들”이다. ‘남부 출신 남성 저학력 백인 인종차별자’만이 트럼프 지지자의 전부는 아니다. 그렇지만 미국 도시 거주 지식인의 상당수가 반트럼프인 것은 사실이다. 지식인이 지지하는 오바마 추천도서가 더 많이 팔리는 것은 당연하다.

식지 않는 인기 이유

현직이 아닌 전직 대통령의 여름철 독서가 화제가 된 것은 미국 역사상 극히 드문 일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만들어낸 오바마 레전드(전설)야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새로운 정보가 폭주하는 인터넷 시대에 전직 대통령 레전드는 이미 과거사가 됐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퇴임 2년째인데도 불구하고 오바마 레전드는 식을 줄 모른다. 오바마의 영향력이 출판 마케팅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8월 4일, 오바마의 57세 생일은 마치 국가적 축제일처럼 다뤄지기도 했다. 반면 트럼프 생일에 관심을 갖고 생일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왜일까. 왜 이미 ‘끝난’ 인물이 뉴스메이커로 떠올라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트럼프를 염두에 두면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상대적 우위다. 역시 반트럼프 정서가 오바마를 밀어올리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운 일방통행과 포퓰리즘에 분노할수록 구관(舊官)이 떠오른다. 역사 속에 저문 어제의 대통령이지만, 트럼프 기세가 오를수록 명관(名官)으로 그리워하게 된다.

둘째는 절대적 우위다. 오바마가 가진 매력 자체에서 비롯된 레전드 현상이다. 결코 ‘질리지 않는다’는 점은 고전(古典)이 갖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호메로스의 역사소설 ‘트로이’,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로마의 휴일’은 볼 때마다 새롭다. 8년간의 대통령 재임 기간만이 아니라 사실 오바마는 정치인으로서 상당 기간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마치 신선한 고전처럼 통하는 인물이 오바마다. 최근 식지 않는 오바마 레전드 현상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워싱턴 국립초상화전시관(npg.si.edu)에서의 체험을 통해서다.

오랜만에 워싱턴 국립초상화전시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을 찾은 이유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초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아칸소주 리틀록(Little Rock)에 들렀으면서도 그곳의 맥아더 박물관을 찾지 않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체 역사를 통틀어 맥아더보다 더 큰 영향을 준 무장이 있을까. 맥아더가 아니었다면 현재의 한국은 물론 일본 히로히토(裕仁) 천황도 전범으로 넘겨져 역사 속에서 지워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후 일본에는 맥아더를 신(神)으로 모시는 종교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리틀록에는 전 대통령 빌 클린턴 박물관도 들어서 있다. 리틀록은 클린턴의 성장지이지만 원래 클린턴 고향은 남서쪽으로 170㎞ 떨어진 호프(Hope)다. 반면 맥아더는 리틀록에서 태어났다. 현재 클린턴 박물관과 맥아더 박물관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다.

워싱턴 국립초상화전시관에서 맥아더 장군의 초상화는 2층 321호 갤러리에 걸려 있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맥아더 입상 유화가 눈에 띈다. 와이셔츠에다 군복 점퍼 차림이다. 맥아더의 상징인 담배나 파이프는 없지만, 모자만 벗는다면 군인보다 학자에 가까운 이미지다. 흥미롭게도 맥아더 정반대편에는 장군 시절의 아이젠하워 초상화가 들어서 있다. 모자와 외투를 팔에 건 정장 차림으로, 엷은 미소와 함께 앉아 있는 덕장(德將)의 이미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2년 뒤인 1947년 작품으로 당시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한 상태였다. 아이젠하워와 비교해보면 맥아더의 모습은 뭔가 반항적으로 느껴진다.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넥타이도 안 매고 윗도리도 아예 풀어헤친 거친 모습이다. 유럽 전선에서의 영웅 아이젠하워는 1952년 제34대 대통령에 당선된 반면 아시아 전선의 영웅 맥아더는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선거 유세에 나서던 1951년 4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으로 본국에 소환됐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전쟁 확전에 관한 트루먼과의 이견으로 인해 해임되면서 아시아에서 ‘영원히’ 멀어졌다. 초상화는 한국전쟁에서 완전히 손을 뗀 직후인 1952년 작품이다.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은 두 손과 무표정한 얼굴 등을 통해 당시의 심경을 읽을 수 있다. 한때 대통령 후보에까지 오른 전쟁영웅이지만, 트루먼에 맞선 하극상 장군으로 끝을 맺은 셈이다.

워싱턴 국립초상화전시관에 걸린 오바마 사진. 젊은 시절 흑인 인권운동을 할 때의 장면이다.
워싱턴 국립초상화전시관에 걸린 오바마 사진. 젊은 시절 흑인 인권운동을 할 때의 장면이다.

초상화 앞 긴 행렬의 정체

국립초상화전시관의 하이라이트는 1층 대통령 초상화 갤러리다. 군복 차림이 아니라 민간인 대통령으로서의 아이젠하워 초상화를 볼 겸 들렀다. 평소와 달리 갤러리 밖에서부터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워싱턴·제퍼슨·링컨 초상화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긴 행렬이 기다리고 있다. 갤러리의 출구로 이어지는, 레이건 대통령 초상화 바로 뒤쪽 벽이 긴 행렬의 출발점이다. 행렬의 관심사가 뭔지 알기 위해 출구 쪽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짙은 감청색 양복 차림에 양손을 무릎에 얹은 채 정면을 응시하는 좌상 초상화다. 심각하면서도 진지하고 긴장된 표정이다. 인물 주변 공간을 가득 메운 푸른 나뭇잎과 밝은 꽃들이 없다면, 마치 인생을 마감하는 유서를 대할 때의 표정처럼 보인다. 천장에서 내려꽂히는 강렬한 불빛 때문이겠지만, 굳게 닫힌 입술 주변의 긴장감도 한층 더 강하게 와닿는다. 초상화 반대편 벽에는 ‘정의를 위한 투쟁’이란 타이틀의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 때 사진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심플하면서도 뭔가 꽉 차 있는 인상의 그림이다. 바로 오바마 초상화다. 2017년 1월 20일 퇴임 후 오바마 초상화가 제작 중에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어느 틈엔가 대통령 초상화 갤러리에 전시돼 있는 것이다. 흑인 화가 케인드 와일리(Kehinde Wiley)가 1년간에 걸쳐 그린 유화로, 올해 2월부터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국립초상화전시관에 걸린 오바마의 젊은 시절 사진.
국립초상화전시관에 걸린 오바마의 젊은 시절 사진.

오바마 그림을 본 순간, 왜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을까 생각해봤다. 그림의 가치와 의미는 그림 그 자체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림을 보러온 사람들의 반응과 자세야말로 그림의 진짜 가치를 가늠하는 척도다. 오바마 초상화 앞을 지키는 수많은 관람객들의 태도를 찬찬히 보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오바마 초상화 주변은 설명할 수 없는 공기로 채워져 있었다. 마치 20여년 전에 목격한, 바티칸 대성당 미켈란젤로 피에타(Pieta) 조각상 주변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공기다. 피에타 앞에서 기도를 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무형의 공기다. 오바마 초상화 주변의 공기 역시 영혼의 울림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느껴졌다. 흑인만이 아니라 백인, 히스패닉 관람객 모두 어두운 갤러리 안에서 숨죽인 채 오바마를 올려다보고 있다. 사진 하나 찍고 돌아서는 자세들이 아니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를 대하는 것보다 더 진지한 모습으로 오바마를 쳐다본다.

5살 정도의 자식에게 오바마가 누구인지 설명하면서 초상화 곁에서 사진 찍기에 열심인 흑인 대가족, 벽에 붙어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며 오바마를 기리는 60대 백인 여성, 오바마를 향해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무릎을 끓는 30대 히스패닉 남성…. 그림 앞 관람객의 태도에서 우러나는 가치라는 점만 따지면 오바마 초상화 이상의 작품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들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공기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간단히 느낄 수 있는 신비함과 경건함이 오바마 초상화 주변에 넘실된다. 관람객들이 오바마를 경건하게 응시하는 이유가 제각각일 테지만 이런 시선들이 모여 아직도 오바마 레전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오바마 초상화를 보려고 서 있는 관람객들.
오바마 초상화를 보려고 서 있는 관람객들.

50년 역사 국립초상화전시관

워싱턴의 국립초상화전시관은 특이한 곳이다. 전 세계 미술관 어디에 가도 초상화가 걸려 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초상화전시관을 운영하는 나라는 열 손가락 안에 그친다. 미국은 그중 하나다. 원래 국립초상화전시관의 원조는 스웨덴이다. 1822년 전시관을 건립했다. 이어 1856년 영국이 재빨리 흉내 내 국립초상화전시관을 만들었다. 이후 와스프(WASP), 즉 화이트 앵글로색슨 국가들로 초상화 전시관들이 퍼져나갔다. 바이킹의 나라 스웨덴을 제외할 경우, 국립초상화전시관은 와스프의 상징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같은 장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의 경우 국가적 차원의 초상화 전시관이 없다.

스웨덴과 앵글로색슨 나라들이 국가적 차원의 초상화 전시관에 주목한 이유는 뭘까. 짧은 역사를 보강하기 위한, 국가적 정체성 확보가 주된 배경일 듯하다. 초상화를 통한 네이션빌딩(Nation Building)이다. 물론 역사 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초상화 속의 영웅들을 통해 국가적 통합과 단결, 위신을 다져나가는 식이다. 사진이 없던 시대의 상식이기도 하다.

워싱턴 국립초상화전시관은 1968년 개관했다. 영국보다도 112년 늦게, 와스프 국가 가운데 가장 늦게 선보인 전시관이다. 242년의 짧은 건국 역사에 어울리게, 고전풍의 유화만이 아니라 사진 심지어 비디오로 만들어진 초상화도 많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흔히 접하는 왕족 귀족 중심의 수직형 전시 공간이 아니라 국가 구성원 모두가 골고루 뒤섞인 수평형 전시관이다. 한국인 눈으로 보면, 교과서나 뉴스에서나 접하던 구한말 혹은 광복 현대사에 관련된 미국인들의 초상화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미국 역사만이 아니라 한국과 아시아 근현대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통령 초상화 갤러리는 이 전시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미국 역사 교육의 현장이다. 양복 정장 차림은 초상화가 기본이다.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44대에 걸친 대통령 가운데 넥타이 없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그려진 인물은 단 두 명이다. 오바마와 43대 조지 W. 부시다. 이 전시관은 평소 한산했지만 올해 초 오바마 초상화가 들어선 이래 관람객이 폭증했다고 한다. 예년에 비해 평균 3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루브르박물관=모나리자’처럼, ‘국립초상화전시관=오바마’로 정착되는 셈이다.

오바마는 퇴임 후 워싱턴 카로라마(Kalorama) 지역에 머물고 있다. 워싱턴 한국대사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유명인들이 모여 사는 특별한 동네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부부와 아마존닷컴 창시자 제프 베조스도 주변에 거주한다. 오바마는 강연이나 저술로 가끔씩 밖으로 나갈 뿐, 대부분은 이곳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끔 식사를 위해 외출할 때는 악수를 청하려는 사람들로 동네 입구가 터져나간다. 다음날 전국 뉴스로 취급되는 것은 물론이다. 오바마의 일거수 일투족이 아직 뉴스다. 그러나 미국의 퇴임 대통령 대부분이 그러하듯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있다. 오바마 레전드는 변화(Change)가 아니라 희망(Hope)을 가슴속에 던진 리더가 만들어낸 결과물로 보인다. 오바마 레전드의 의미와 실상을 워싱턴 오바마 초상화 주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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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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