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8일 오후 경남 창원시 상남동 고인돌사거리.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28일 오후 경남 창원시 상남동 고인돌사거리.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가게마다 사정이 달라 대략 몇 퍼센트다 말하긴 어렵지만 작년에 비하면 권리금이 훨씬 낮아졌어요. 20대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오지만 예전에 많이 오던 회사원들은 좀처럼 눈에 띄질 않아요. 공단 경기가 안 좋으니까. 중심지인 여기가 이런데 외곽으로 나가면 훨씬 심하죠.”

지난 8월 28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고인돌사거리에 사무실을 갖고 있는 공인중개사 주재정씨의 말이다. 창원 성산구 상남동은 ‘한강 이남 최대의 유흥가’라는 별명을 지닌 곳이다. 삼면이 네온사인 간판으로 둘러싸인 건물들이 사거리를 둘러싸고 사방에 들어서 있다. 하지만 이런 별명이 무색하게도 건물 외벽 곳곳에 ‘임대’ ‘분양’ 등의 글씨가 쓰인 형형색색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유흥주점, 숙박시설 등이 밀집한 한 6층 건물에 들어가니 2층의 한 유흥주점이 통째로 문을 닫은 모습이 보였다. 꽉 닫힌 현관문 사이에 누군가 끼워놓은 흰색 봉투에는 대출을 권유하는 전단지가 들어 있었다. 문 앞에는 ‘폐업’이라고 쓰인 스티커도 붙어 있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제조업 산업단지가 있는 도시이자 ‘기계산업의 메카’ 창원도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창원시는 경남 인구의 3분의 1인 106만명이 사는 도청 소재지이자 경남 경제의 중심이다. 창원국가산업단지에는 2600여개의 제조업 연관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8.4%, 경남의 63.7%를 창원국가산업단지가 담당한다. 지난 6·13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꼽힌 경남의 표심을 가른 경남 정치 1번지이기도 하다.

성산구 상남동은 창원국가산업단지와 창원시청 사이에 있다. 지형이 평탄하고 시장이 근처에 있으면서 창원국가산업단지로부터의 접근성이 좋아 1980년대 후반부터 술집, 노래방, 숙박시설이 밀집한 번화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중공업도시로 육성된 계획도시 창원이 성장하면서 인구가 늘고 시민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IMF도 비켜간 번화가’로 꼽혀왔다.

하지만 그렇게 ‘잘나가던’ 창원조차도 최근의 제조업 불황으로 인한 경기침체의 영향을 직격타로 맞고 있다. 올해 상반기를 강타한 조선업 경기침체가 결정적이었다. 조선업 경기가 침체된 후 창원의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창원 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가동률은 2016년 12월 81.5%에서 지난 4월 71.8%로 하락했다. 조선업은 대규모 자본과 인력이 필요한 산업인 만큼 후방으로 유발하는 경제 효과가 막대하다. 하지만 중소형선을 위주로 건조하는 조선업체들이 좀처럼 회생할 기미를 보이지 못하면서 불황의 여파는 창원 중심부의 자영업자들에게까지 미치는 상황이다. 경남은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경남도에 따르면 국내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자영업 비중이 25% 수준인 데 비해 경남은 32%에 달한다.

창원 경기가 불황에 빠지자 실업자 수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8월 17일 창원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18년 2분기 창원지역 고용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퇴직자(고용보험 자격 상실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3% 증가한 2만8740명이었다. 이에 따른 실업급여 지급 건수는 1만5142건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제조업 분야의 신규 취업자 수가 경력 취업자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했는데, 이는 최저임금 인상이 영향을 미친 결과라는 것이 창원상공회의소의 분석이다. 창원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업체들이 직원을 채용할 때 경력직을 선호하고 있어 경력직 채용규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면서 “최저임금 상승에 따라 경력직과 신규인력 간 급여 차가 크지 않은 것도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상남동의 한 대형 건물 내부 모습. 한 층이 통째로 비어 있다.
상남동의 한 대형 건물 내부 모습. 한 층이 통째로 비어 있다.

다른 건물의 한 유흥주점.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다른 건물의 한 유흥주점.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거제·통영 영향이 창원까지

지난 8월 28일 오후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 정문 앞. 통영의 중견 조선업체인 성동조선해양 노조 관계자들이 붙인 현수막이 정문 앞 도로변에 걸려 있었다. ‘성동조선 노동조합은 노회찬 의원을 추모합니다’라는 글씨가 적힌 검은색 현수막이 걸린 모습도 보였다. 주위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가 창원 성산구다. 지난 5월 노 의원은 “당초 포함되지 않을 창원 진해구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설명해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에 포함시켰다”는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다.

경남 통영에 본사를 둔 성동조선은 한때 세계 8위까지 오른 국내 대표적 중견 조선소이다. 하지만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경영 악화를 겪으면서 2010년 채권단으로부터 공동관리를 받았다. 이후 공적자금 3조1000억원이 투입됐지만 경영 정상화에는 실패했다.

조선업 경기 악화로 인한 성동조선의 경영난으로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들은 두 달째 경남도청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성동조선의 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3월 창원지방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현재 창원지법은 기업회생과 매각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매각 주관사로 선정된 삼일회계법인은 11월 초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올해 연말 매각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인수 대상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성동조선은 파산절차를 밟게 된다. 성동조선 인수에는 많게는 7000억원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업계는 예측하는데, 조선업이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만큼 이 금액을 들여 인수하려는 기업은 좀처럼 찾기 어려울 전망이라는 것이 현재까지의 중론이다.

통영에 있는 기업을 다닌 이들이 창원에 와서 시위를 하는 것은 창원이 경남의 도청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시·군별 주요 고용지표 집계 결과’를 보면 올해 상반기 경남 거제시 실업률은 7.0%였다. 2013년 시·군 실업률 통계 작성을 시작한 뒤 시·군 지역 실업률이 7%대에 이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거제처럼 조선업 경기의 영향이 절대적인 통영시도 상반기 실업률이 6.2%를 기록했다.

정부는 경기침체로 시름하는 전국의 산업 밀집지역에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과 고용위기지역을 지정하고 있다. 창원에서는 진해구가 지난 5월 29일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됐다. 조선업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거제와 통영은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과 고용위기지역으로 동시에 지정됐다. 해당지역에는 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한 자금보조융자출연 등 금융 및 재정 연구개발 고용안정 등 각종 지원이 이뤄진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문제를 가중시켰다고 봅니다. 그렇게 최저임금을 올린 기준도 모르겠고, 저희 오피스텔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주로 이용했는데 지금은 절반이 비어서 보증금은 아예 못 받고 월세만 받는 상황입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없으니까요. 예전에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보증금은 아예 못 받고, 월세만 받고 있지요.”

창원 마산회원구에 오피스텔을 보유하면서 아르바이트생들을 상대로 세를 놓는 정주영씨의 말이다. 그는 “마산합포구와 회원구 등에 있는 주변 업자들도 상권이 구(舊) 창원으로 옮겨가면서 공실은 더욱 늘어만 간다”며 “원래 창원이 아니었던 마산 쪽은 상권까지 뺏기면서 경기침체가 훨씬 심하다”고 말했다.

부동산도 불황, 스타필드 딜레마

정씨의 말처럼 창원의 부동산은 전반적으로 침체 국면에 돌입해 있다. 주거용 오피스텔만이 아니다. 국민은행 전국 아파트값 변화 분석결과에 따르면 창원 성산구 아파트값은 3년간 15.6%가 떨어졌다. 전국 하락률 1위다. 창원은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인 대한주택보증공사(HUG)로부터 2017년부터 2년 연속 ‘미분양 경고 위험지역’으로 지정된 상태다.

창원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불황에 허덕이면서 신세계그룹이 창원 의창구 중동의 부지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초대형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창원’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스타필드 창원 건립을 위해 2016년 육군 39사단이 보유했던 3만3000㎡(1만평) 규모의 부지를 사들였지만 창원시로부터 건설 인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착공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상황이다. 특히 지역 상인단체와 소상공인들의 반대가 심하다. 승장권 창원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시내 대형 유통점은 이미 과밀화돼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섰다”며 “이런 상황에서 매머드급 스타필드 매장이 들어서면 소상인들이 붕괴해 조선업 불황으로 휘청거리는 지역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규모 복합쇼핑몰의 입점을 통한 지역 경기 부양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1500여명이 가입한 ‘스타필드 창원 시민 지지자 모임’의 신승복 공동 대표는 “인구 100만 도시 창원에 제대로 된 쇼핑몰이나 여가시설이 없어 시민들이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 등으로 원정 쇼핑을 가고 있다”며 “시에서 인허가 과정을 조속히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청 온라인 게시판에는 ‘스타필드 유치를 바란다’는 글 수천 건이 올라오고, 시청에는 시민들의 민원 전화가 쇄도하기도 했다. 스타필드가 들어설 경우 예상되는 지역 고용창출 규모가 최소 2000~3000명에 달한다는 점도 이들이 스타필드 창원 건설을 주장하는 이유다.

현재 신세계그룹은 민감한 사안인 만큼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신세계에서 스타필드 건립을 위한 부지 매입과 인허가 신청 업무를 담당하는 신세계 프라퍼티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현재는 지자체에 인허가 사항을 접수하기 위해 대기하는 상황”이라며 “진행을 접지는 않을 텐데, 언제 신청을 하냐는 시점의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750억원 규모로 알려진 신세계그룹의 부지매입비는 아직 완불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는 “현재 (신세계그룹은) 중도금까지 지불했고, 잔금은 완공 시에 치르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안과 관련해 창원시는 현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허성무 창원시장은 주민들로 조직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스타필드 창원 건립 허가와 관련된 판단을 맡긴 상태다. 전임 안상수 창원시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제가 불거지자 “다음 시장에게 스타필드 창원 인허가 문제를 넘기겠다”고 선언했었다.

지난 6월 13일 지방선거는 최대 격전지였던 경남 도지사만이 아니라 여러 지방권력을 바꿨다. 그간 자유한국당이 다수를 차지해온 경남도의회에서도 여야 간 다수당이 처음으로 뒤바뀌었다. 민주당이 34석으로 다수당을 차지했고 자유한국당은 21석에 그쳤다.

최근 경남도의회는 2018년도 제1회 추가경정(추경)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예산안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이1200억원 규모의 지역개발기금이다. 경남도에 따르면 지역개발기금 1200억원의 용처는 구체적으로 국지도·지방도 등 도로건설 확충에 343억원, 다리·도로를 제외한 기타 건설지원(마산로봇랜드 조성 등)에 333억원, 복지시책 245억원, 중소기업 육성 지원금액이 184억원, 재해예방에 95억원으로 분류된다. 김정민 경남도청 예산담당 주무관은 “원래 같으면 지역개발기금 없이도 예산편성내역에 이 항목들을 포함시킬 수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경기불황으로 재원은 부족한데 지출 항목은 늘어나니 이 부분을 충당하기 위해서 융자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지역개발기금은 통과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역개발기금은 내부거래로 인정돼 법령상 채무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엄연히 상환해야 할 부채이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경남도의 채무를 완전히 없애고 이를 최대 치적으로 홍보했던 전임 홍준표 도지사와는 확연히 다른 기조다. 강민국 경남도의원(한국당)은 “지역 경기가 너무나 어렵고 특히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상남도가 편성한 이번 1차 추경예산 중 소상공인 지원 명목으로 잡혀 있는 금액은 약 9억8000만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액됐다. 이 중 하반기 소상공인 정착 보전금 명목으로 편성한 금액이 7억5000만원, 노란우산공제회 가입자 지원금액이 1억5000만원, 1인 자영업자 고용보험지원 금액이 8200만원이다. 노란우산공제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운영하는 소상공인보호제도로, 공제금을 법으로 보호해 미래의 생활안정자금을 확실히 보장한다는 것이 운영 취지다. 김현진 경남도청 경제정책과 주무관은 “이번에 추경으로 편성된 9억8000만원이라는 소상공인 지원 금액은 우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편성한 금액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지원 등 공약사업 이행을 위한 내년도 예산은 상당히 증액해 편성해서 올린 상태”라며 “새로운 예산 편성 금액은 대략 올 12월쯤 윤곽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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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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