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1일 서울정부청사에서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개편 합의문 서명식이 열렸다. 서명을 마친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지난 8월 21일 서울정부청사에서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개편 합의문 서명식이 열렸다. 서명을 마친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경제검찰’로 불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전속고발권’ 때문이다. 전속고발권이란 가격담합 등 공정거래 분야 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수사가 가능하도록 한 제도다. 검찰이 주요 담합 사건을 수사하고자 해도 공정위의 고발이 없으면 수사가 불가능했다.

전속고발권을 가지고 있는 공정위는 대기업에는 관리대상 1호였다. 오너의 일탈행위가 많지 않아 검찰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기업들도 공정위는 상시로 관리했다. 계열사 대관팀마다 공정위 담당 직원을 두고 관련 정보들을 수시로 보고했다. 이것이 경영활동에 반영되기도 했다.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공정위 출신 공직자들의 대기업 취업도 각 기업들이 공정위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정부가 1980년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이후 38년간 유지하던 이 법을 사실상 없애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결국 8월 2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안’에 서명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의 절차도 거쳤다.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남아 있지만 사실상 폐지는 기정사실이 됐다. 이번 결정에 따라 전속고발권이 없어지는 4개 분야는 가격담합, 공급제한, 시장분할, 입찰담합 등이다.

이와 별도로 유통3법(대규모유통·가맹사업·대리점법)과 표시광고법의 전속고발권, 하도급법의 기술탈취 관련 전속고발권도 없애기로 했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동안 기업 간 담합이나 대기업 횡포에 대한 불공정 논란이 많았지만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발동한 사례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게다가 공정위가 감시해야 할 대기업에 퇴직자들이 고위 임원으로 가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졌으니 공정위에 대한 신뢰도는 사실상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전속고발권 폐지에 따라 검찰은 공정위 고발 없이도 기업들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수사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공정위는 이제 ‘경제검찰’이란 간판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공정위 조사 사건, 어떻게 사라지는지 몰라”

전속고발권을 둘러싸고 검찰과 공정위는 오랜 기간 힘 겨루기를 해왔다. 몇몇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두고 검찰이 공정위의 고발을 요구했으나,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구상엽 공정거래조사부장이 기자들에게 “공정위가 조사하는 사건이 캐비닛에서 어떻게 사라지는지 모른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은 공정위에 대한 검찰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검찰이 공정위를 수사한 경우가 몇 차례 있었는데, 대부분 전속고발권 문제가 공론화되기 전후였다.

1996년에는 공정위가 대기업 고발에 소극적이란 지적이 일자 검찰이 고발요청권을 직접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같은해 공정위 독점국장과 정책국장이 뇌물 혐의로 구속되는 등 공정위 관계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2007년 지하철 7호선 입찰 담합과 관련해 공정위가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고발하자 검찰은 공정위를 압수수색하는 강수를 뒀다. 올해도 검찰은 공정위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과 관련해 수사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번 조치로 전속고발권을 둘러싸고 공정위와 검찰이 30년 가까이 벌인 힘겨루기에서 사실상 검찰이 완승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은 올해 1월 26일 서울중앙지검에 공정거래수사부를 설치해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비해왔다. 이미 검찰이 자체적으로 인지한 몇몇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들에 대해 내사를 진행 중인 것도 있다고 한다.

검찰은 이번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조치를 반기는 분위기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계속해서 개혁대상 1순위로 꼽혀왔다. 결국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내어주는 굴욕까지 맛봤다. 하지만 공정위가 가지고 있던 전속고발권이 폐지되고, 검찰이 자체 수사권을 가져온 것은 결과적으로 검찰 권한의 확대를 가져왔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검찰은 이번 조치로 기업 오너 일가의 일탈행위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 전반에 대한 수사권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기업에 대한 검찰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질 수밖에 없다. 국내 5위권 대기업의 한 대관팀 담당자는 “기업 고유 활동과 관련해 큰 영향을 미치는 전속고발권이 폐지되고 검찰의 자체 수사가 가능해진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신경 써야 할 곳도 훨씬 늘어났다”고 말했다.

검경수사권 조정도 검찰 완승

검경수사권과 관련해서도 과연 검찰이 큰 손해를 봤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 입장에서는 크게 잃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주어졌지만 검찰은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또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는다 해도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사건은 그대로 검찰로 넘어간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무혐의 처리한 사건도 검찰로 넘어간다. 검사가 보완수사를 지시했는데 경찰이 거부할 경우 검찰이 해당 경찰에 대해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게다가 수사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검사에 의한 영장청구권’이나 ‘기소독점권’도 그대로 유지했다. 경찰이 아무리 수사를 하고 싶어도 검찰이 영장신청을 거부하면 수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아무리 영장을 청구해도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 수사 자체가 진전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검찰이 볼멘소리를 하지만 지킬 것은 대부분 지켰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수사권 조정안이 아직 국회를 통과한 것도 아니다. 검사 출신 국회의원의 숫자가 적지 않은 만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어떻게 변경될지 모른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결국 문재인 정부가 내걸었던 검찰개혁이 당초 방향과는 결과적으로 다르게 가고 있다는 지적에 힘을 실어준다. 수사권 조정과 같은 주목도가 높은 사안에 대해서 일부 권한을 나눔으로써 검찰의 힘을 빼는 것 같았지만, 불공정행위에 대한 수사권과 같은 알짜 수사권을 넘기면서 오히려 검찰의 힘을 더 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 출신 한 의원은 “정부가 윤석열 중앙지검장과 같이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인물을 내세워 검찰개혁에 대한 물타기를 하면서 사실상 권한만 더 키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지검장은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 매우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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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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