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우송커우 크루즈터미널 ⓒphoto 바이두
상하이 우송커우 크루즈터미널 ⓒphoto 바이두

상하이를 휘감아 흐르는 황푸강이 장강과 합류하는 지점에는 우송커우(吳淞口)라는 곳이 있다. 중국 내륙으로 침략하려는 외국 군은 늘 우송커우를 통해 들어왔다. 아편전쟁 때 영국군, 중일전쟁 때 일본군이 그랬다. 지금 우송커우는 중국 관광객들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관문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2011년 중국 최대, 아시아 최대 크루즈터미널이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다. 지난 8월 28일, 이곳을 찾았을 때도 일본 가고시마에서 들어왔다가 다시 사세보로 출항을 앞둔 7만5000t급 크루즈선 ‘버고(virgo)’호를 타고 내리는 중국 여행객들로 시끌벅적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우송커우 크루즈터미널이 들어서기 전까지 크루즈터미널은 상하이 도심 한가운데 황푸강변에 있었다. 푸둥(浦東) 루자주이의 마천루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하지만 황푸강의 얕은 수심과 크루즈터미널 바로 코앞 양푸대교(높이 48m)의 고도제한 때문에 7만~8만t 이상의 대형 크루즈선이 입항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초대형 크루즈선이 입항하기 좋도록 아예 바다만큼 너른 장강 하구의 우송커우에 크루즈터미널을 배치한 것이다. 지금은 일부 정기 국제노선(상하이~오사카)을 제외한 크루즈선은 모두 우송커우로 이전해간 상태다.

결국 우송커우 크루즈터미널은 2014년 싱가포르를 능가했고, 201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마저 넘어서 지금은 세계 4대 크루즈 항만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확장공사를 마치고 세계 최대 22만t급 크루즈선 2척과 15만t급 크루즈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규모로 몸집을 더욱 키웠다. 연간 1000척의 크루즈선과 600만명의 여객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지난 7월에는 초대형 크루즈선 3척을 동시에 받아 중국 크루즈항 최초로 하루 여객처리 2만명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8월 22일부터 상하이의 한국행 단체관광이 재개됐다. 베이징시, 산둥성, 후베이성, 충칭시에 이어 다섯 번째다. 중국 최대 관광수요를 가진 상하이의 한국행 단체관광이 재개됐다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온라인 모객, 전세기, 크루즈, 롯데 계열(롯데면세점·롯데호텔) 이용이 여전히 제한돼 있어 ‘앙꼬 빠진 찐빵’이란 평가도 나온다. 그중 가장 아쉬운 부분은 크루즈선을 통한 한국 관광이 꽁꽁 묶여 있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해 완전 제한은 아니다. 우송커우 터미널의 운항스케줄을 보면 8월과 9월 상하이발 한국행(부산) 크루즈선은 각각 1척에 그친다. 빠져나갈 구멍 하나만 만들어놓고 사실상 꽁꽁 묶어버린 것이다.

특히 상하이의 경우 아시아 최대 크루즈 모항이자, 중국 크루즈 여행의 선두에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 크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크루즈선을 이용한 출입국 여행객은 495만명에 달했다.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11개 크루즈 항만의 크루즈선 기항횟수는 1181항차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여객은 8%, 기항횟수는 17% 성장하는 등 성장세가 가파르다. 이 중 상하이를 통한 크루즈 여객이 298만명으로 전체의 60%, 상하이항의 크루즈선 기항횟수는 512항차로 전체의 43%에 달한다. 폭풍성장하는 중국의 크루즈 여행 붐을 주도해온 곳이 바로 상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최대 항구도시이자 중국에서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상하이에서는 크루즈 여행이 보편화돼 있다. 유명 크루즈선사들이 경쟁적으로 상하이에 취항하면서 크루즈선을 이용한 여행 가격도 과거에 비해 몰라보게 저렴해졌다. 시에청(씨트립), 취나얼과 같은 대형 온라인 여행사에는 상하이 등지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여행 상품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필자가 사는 푸둥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LCD 광고판 역시 한여름 내내 크루즈선 광고를 내보내며 입주민들을 유혹했다.

세계 2위 크루즈 여행대국 중국

상하이에서 크루즈선을 이용한 한국 관광이 제한되면 단체관광 재개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특히 크루즈 여행객들이 다른 여행객들보다 씀씀이가 크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사실 사드(THAAD) 사태 전만 해도 한국은 부실한 크루즈 인프라를 가지고도 중국 크루즈 여행 폭발성장의 특수를 톡톡히 누려왔다. 컨테이너 항만에서 크루즈 여객들을 짐짝처럼 받는 일도 예사였다. 그래도 상하이에서 가장 가깝고 일본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제주도는 중국 크루즈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었다.

하지만 사드 사태로 한국행 크루즈 여행이 일제히 금지되면서 중국발 크루즈 특수를 고스란히 가로채간 것이 바로 일본이다. 크루즈 상품을 취급하는 대형 온라인 여행사인 시에청(씨트립)에서는 과거 한·일 노선을 함께 묶어서 판매했다. 지금은 일본 노선 단독으로만 판매하고 있다. 또 다른 대형 온라인 여행사인 취나얼의 경우 여전히 ‘일·한(日韓)항선’으로 크루즈 상품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 일정에서 한국 기항지는 없다. 대신 상하이에서 출항하는 이들 크루즈선들은 일본 지방 항구 곳곳에 관광객을 풀어놓고 있다.

크루즈선을 이용한 일본 여행 상품은 가격 부담도 크지 않다. 상하이 우송커우 출항 기준으로 2000위안(약 32만원) 정도면 일본 나가사키나 후쿠오카 등지를 4박5일로 다녀올 수 있다. 3000위안(약 49만원) 정도면 오사카나 고베를 6박7일 일정으로 여행할 수 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2869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는 중국발 크루즈 관광객들을 고스란히 독식한 점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배제된 지금 상하이발 크루즈선의 다음 기항지는 99%가 일본이다.

사실 지도만 펴놓고 보면 한국은 일본행 중국 크루즈 관광객들을 낚아채기에 최적의 위치다. 부산은 상하이에서 북상하는 남중국 크루즈 여객들을 잡기에 좋고, 인천은 톈진(天津)에서 남하하는 북중국 여객들을 잡기에 좋다. 특히 제주는 남중국이나 북중국 크루즈 여객 모두를 낚아챌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하지만 한국의 크루즈 전용부두는 아직 건설 단계에 있거나 규모가 협소하다. 특히 중국발 크루즈 수요가 높은 제주항이나 강정항(서귀포)은 15만t급에 그친다.

현재 상하이를 비롯 중국의 11개 크루즈항을 모항으로 하는 크루즈선은 모두 16척이다. 이미 16만7800t급 ‘퀀텀오브더시즈’호가 40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상하이와 나가사키, 후쿠오카를 오간다. 톈진을 모항으로 일본을 오가는 크루즈선도 이미 16만7800t급 ‘오베이션오브더시즈’호가 취항 중이다. 크고 화려한 것을 선호하는 중국 여행객들의 기호를 고려해 중국을 모항으로 하는 크루즈선은 갈수록 대형화하는 추세다. 지금 추세만 보면 22만t급 크루즈선이 제주도 앞바다를 오갈 날도 머지않았다.

중국은 2016년 이미 독일을 추월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크루즈 여행대국으로 부상했다. 중국크루즈선협회는 2030년 크루즈 여행객이 7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송커우 크루즈터미널과 지척에 있는 상하이 와이가오차오(外高橋) 조선소에서는 오는 2023년까지 13만3500t급의 첫 번째 국산 중대형 크루즈선을 건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용악화에 내수경기마저 최악인 요즘 중국 크루즈 관광객을 상대로 관광기념품 하나라도 하루빨리 팔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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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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