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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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에 미학이랄 게 있겠습니까. 그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것이 영업이지요. 영업이란 ‘나를 파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나를 파는 과정, 그 과정을 통해 상대방이 내게 마음을 활짝 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남의 마음과 진심을 얻으며 사는 것, 그게 인생 아닐까요.”

대한민국 최고의 영업 달인으로 불리는 장인수(63) 전 OB맥주 부회장이 평생을 이어온 자신의 영업 인생을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으로 정리했다. 고졸 신화, 대한민국 최고 영업 달인, 술박사, 소맥왕, 최고의 맥주 장사꾼 등 무수한 수식어들이 이름 앞에 붙어다니는 이가 바로 장인수 전 부회장이다.

1990년대 초부터 만년 2위 맥주 회사로 굳어져 있던 OB맥주. 그런 OB맥주에 2010년 영업담당 부사장으로 합류해 시장점유율 1위로 끌어올린 핵심 멤버가 바로 그다. 약 2년 뒤인 2012년 6월에는 고등학교, 그것도 상업고등학교 졸업이라는 배경을 뛰어넘어 국내 최대 맥주기업인 OB맥주의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때 2위 하이트맥주와의 점유율 격차를 좀 더 벌리며 OB맥주를 한국 맥주시장 1위 자리에 안착시켰다.

2014년 말 OB맥주 최고경영자 자리를 내려놓았던 그는 최근 식용계란과 농수산물을 생산·유통하는 농·식품기업 ‘조인’의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변신했다. 또 평생 영업맨으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 이야기이자 자신만의 영업 이야기를 담은 ‘진심을 팝니다’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 중구 광화문 근처 한 카페에서 장인수 부회장을 만났다. 그의 사회생활 첫 출발은 소박했다. 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지회사 경리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곤 얼마 안 돼 소주업계 1위 진로에 고졸 영업사원으로 입사하며 주류시장과 연을 맺었다. 학벌·학력이라는 유리천장이 분명 존재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고졸 영업사원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차례차례 승진을 이어갔다.

OB맥주 부회장이 된 고졸 영업사원

부장·상무·전무·부사장을 거쳐 하이트주조와 하이트주정 사장과 대표이사까지 승승장구했다. 2010년 1월에는 OB맥주 영업총괄 부사장이 됐고, 2년 뒤 한국 시장점유율 1위 맥주 회사의 사장과 부회장으로 연이어 승진했다. 그랬던 장 부회장은 2015년 이후 경영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나며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그에게 “OB맥주를 왜 그만둔 것인지” 이유를 물었다. 그는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오며 지쳐 있었고, 특히 어느 순간인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컸다”며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상무·전무·부사장·사장·대표이사에 부회장까지 제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수식어가 하나하나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식어가 하나하나 붙을 때마다 가족들의 희생이 컸다는 걸 뒤늦게 안 거죠. 고졸 영업사원으로 시작한 제가 커다란 대기업에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장가도를 달렸습니다. 정말 휴가는커녕 수십 년 동안 휴일도 없이 일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런 제 모습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OB맥주 CEO 시절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봤다”며 “그 첫 휴가에서 딸이 무심코 했던 말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딸이 21살이고 아들이 20살일 때 정동진으로 뒤늦게 휴가를 갔습니다. 아침에 정동진 모래사장을 걷는데 딸이 ‘와, 모래다’ 하는 겁니다. 별거 아닌 말인데 갑자기 제 뒤통수가 멍했습니다. 이제껏 딸이나 아들로부터 ‘바다다’라거나 ‘모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20살이 넘었는데도 그 흔한 바캉스 한 번 가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사실 그때까지 제게 휴가 가지 말라고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일에 빠져 스스로 안 갔던 겁니다.”

그는 “서울로 돌아오는 차에서 ‘내년부터는 꼭 아이들과 휴가를 가겠다’고 약속을 했었다”며 “그렇게 약속을 하고도 사실 그 이후로 아직 아이들과 같이 휴가를 가지 못한 여전히 미안한 아빠”라고 했다.

어쨌든 그는 자신을 위해 희생해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OB맥주 최고경영자 자리를 내놓게 한 결정적 이유였다고 강조했다. 이 말을 하며 그는 “많이 놀려고 사표를 냈고, 사표만 내면 많이 놀게 될 줄 알았다”며 “그런데 막상 놀고 싶다는 이유로 사표를 내긴 했는데 정작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이 그에게서 노는 방법조차 빼앗아간 것이다.

기성세대에 실망한 청년들에게

사실 그가 ‘OB맥주를 그만둔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다양한 업종의 많은 기업들이 영입 제의를 해왔다고 한다. 영업에 관해서만큼은 ‘장인수’라는 이름이 한국에서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영입 제의를 모두 고사했다. 그는 “쉬겠다고 OB를 그만뒀는데 다른 회사에서 일하겠다고 나서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느냐”며 “그리고 영입 제의를 한 대기업들에서는 제 역량을 충분히 펼 수 있는 역할과 권한이 불분명했다”고 했다.

“최고경영자, 영업 책임자에게 영업과 경영에 대한 모든 권한을 줄 수 있는 한국의 대기업이 얼마나 될까요. 전문경영인이나 최고경영자가 자신만의 경영철학과 영업전략을 마음껏 펴볼 수 있는 여건이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많은 대기업들의 경영 현실이 사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오너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상황이지요. 경영에 대한 권한보다 책임만을 요구하는 성격이 강한 곳에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경영과 영업을 제대로 해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구조가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경영자로서, 또 영업현장을 책임져야 할 사람으로서 그런 구조가 저와는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는 외국계 기업인 OB맥주의 예를 들며 “성공한 외국계 기업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신들이 영입하거나 선택한 최고경영자의 경영철학과 경영방식에 신뢰를 보인다는 것”이라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는 있지만 그런 신뢰가 결국 성과를 이끌어내는 바탕이 된다”고 했다.

OB맥주를 그만둔 후 장 부회장은 젊은이들, 중소·중견기업인들과 만나는 자리를 많이 만들었다. 그는 젊은이들을 적극적으로 만나온 이유에 대해 “세상을 먼저 산 ‘기성세대’로 불리는 사람으로서 지금 우리 젊은이들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다”며 “젊은 청춘들이 ‘이런 인생도 멋있다’거나 ‘저 사람도 했는데 내가 못하겠냐’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 중에 지금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에 실망하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요. 사회 각 분야에서 두루두루 실망을 했을 겁니다. 저 또한 기성세대이지요. 그럼에도 ‘너무 실망만 하지 말아주세요’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처럼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젊은이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주고 싶었어요.”

이런 마음 때문인지 장 부회장은 강연이든 토론회든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면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젊은이들과 만난 뒤 맥주 한잔 기울이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 역시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신입사원의 아이디어를 응원하라”

중소·중견기업인들과의 만남 역시 OB맥주를 그만둔 후 그에게 중요한 일이 됐다. 30년 넘게 대기업에 몸담으며 영업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경영 노하우를 중소·중견기업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경제 상황과 시장 구조에서 기업이 안정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경영의 효율과 일관성”이라며 “이것을 기업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경영 시스템”이라고 했다. 30년 넘게 대기업 영업 현장을 누빈 경영인으로서 중소·중견기업인들이 힘겨워하는 이런 경영 시스템을 보다 수월하게 안착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그는 이런 마음을 담아 중소·중견기업인들을 만나 자신이 경험한 경영과 영업 현장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에게 중소·중견기업인들에게 유용한 경영 노하우 몇 가지를 말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구성원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며 “특히 경영자가 말을 많이 하기보다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경영자나 관리자들이 직원들과 대화를 하겠다고 많이들 나서지요. 그런데 그렇게 대화하겠다는 자리의 모습을 보면 경영자나 관리자들이 직원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자기들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전하는 겁니다. 직원들에게 오히려 더 불편한 자리겠지요. 이러지 말고, 사소한 이야기라도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또 직원들이 꺼내놓은 이야기와 제안에 대해 사소한 것이라도 반드시 피드백을 주는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구성원과의 대화입니다. 이런 대화를 통해 구성원 간의 벽을 허물 수 있습니다.”

그는 특히 1~2년 차 신입사원들의 아이디어를 주목하고 응원해줘야 한다고 했다. “신입사원들의 아이디어는 사실 거칠고 투박합니다. 그런데 상당히 신선합니다. 지금 당장 경영이나 사업, 영업에 활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서 배제해버리지 말라는 뜻이지요. 신입사원만큼 기업이나 조직을 냉철하게 보고 말해줄 사람들이 있을까요.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말고 거칠면 다듬어주고 응원해주는 자세가 경영자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장인수의 영업 노하우

한국 소주시장 1위 진로와 맥주시장 1위 OB맥주의 경영, 특히 이 기업들의 모든 영업을 책임졌던 영업 달인에게 영업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업종을 불문하고 어떤 기업에도 영업은 전쟁이다. 그 전쟁터에서 최고 영업맨 중 하나로 꼽혔던 이가 장인수다. 그에게 “영업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마케팅 교과서나 대학 교수들이 말하는 영업의 정의와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35년 영업 현장에서 발로 뛰며 경험한 바로는 영업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 내게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이 영업이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내게 마음을 열게 하려면 나를 팔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나를 파는 과정이 쌓이고 쌓이면서 저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고, 그 신뢰가 밑거름이 돼 상대방이 비로소 제게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지요. 영업은 절대 물건을 파는 게 아닙니다. 물건을 파는 건 그저 장사꾼일 뿐입니다. 영업은 나를 팔아 신뢰를 쌓고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한 나를 파는 영업’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보다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들어주고 알아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가려워하는 것을 확인해 그 문제를 최선을 다해 해결해주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제 모습을 상대방이 보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두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니까요. 영업의 세계에서 어쨌든 신뢰라는 건 그렇게 쌓이는 겁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신뢰가 쌓이고 쌓이면 비로소 상대방이 제게 마음을 활짝 열어주게 되는 것이지요.”

그는 조금은 느릴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는 영업을 스스로 ‘걸음쟁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고객말고 회사부터 설득해라

그는 영업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영업맨들이 고객을 설득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 설득의 상대는 고객이 아니라 몸담고 있는 회사”라며 “고객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들어줄 수 있도록 끊임없이 회사에 의견을 전달하고 대안을 제안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영업 현장에서는 아무리 사소하고 악의가 없더라도 과장 혹은 거짓말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악의 없는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향후 더 큰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를 불러올 수 있다”며 “거짓말이 거짓말을 부르는 악순환에 빠지면 어느 순간 상대방으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주류업계 고졸 신화, 영업 달인으로 불리던 장인수. 농업기업 대표이사로 변신한 그가 새롭게 선보일 경영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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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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