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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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무력 충돌은 피하겠지만 환율 전쟁까지는 이어질 겁니다. 두 나라 간의 갈등이 크고 길어질수록 한국 경제는 그 어떤 나라보다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향후 몇 년간 2008년 세계 경제를 강타했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 분쟁이 한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중 무역 분쟁이 환율 전쟁으로 확대돼 달러의 가치 하락을 유발하고, 주식·채권 등 세계 자본시장의 혼란을 불러오게 되면서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은 서강대 경제학과 김영익(59) 교수가 최근 저서 ‘위험한 미래’를 통해 내놓은 것이다. 대신증권과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 하나경제연구소 소장, 창의투자자문 대표 등을 거친 김 교수는 한국 1세대 애널리스트이자 이코노미스트로 유명하다. 특히 시장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기업 부채 확대로 성장한 중국 경제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경제, 특히 한국 경제는 위험한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선 그는 미·중 무역 마찰이 성장 일변도였던 중국 경제를 심각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압박을 풀기 위해 중국이 미국을 향해 역공에 나설 가능성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미국과 유럽은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 몰렸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때 연 9%의 경제성장을 했습니다. 사실 한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위기를 떨쳐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연 9%나 성장한 중국 덕분이었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올해 들어 미국의 무역 공세가 거세지면서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중국의 경제는 구조적으로 미래 어느 시점에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태였는데 미국이 경제와 교역 부문에서 강성인 트럼프 체제로 전환되면서 중국 경제의 악화 시점이 좀 더 앞당겨진 면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가 말하는 중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부채’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채 문제는 세계 주요국들의 골칫덩어리로 부상해 있다. 그런데 중국의 부채 문제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들의 부채 문제와 구조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10년 전인 2008년 세계 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확대했는데, 그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정부를 중심으로 유동성을 확대하며 국가 부채가 급증했다. 한국의 경우 가계부채 확대를 통해 경기 부양을 유도했다. 하지만 신흥국들은 기업을 중심으로 부채를 확대했다. 2008년 신흥국 GDP에서 기업들의 부채 비중은 56% 정도였는데 이것이 2017년 9월 104%로 증가했다. 신흥국 중 중국 기업들의 부채 역시 가파르게 증가했다. 2008년 GDP 대비 96% 정도이던 것이 2017년 9월 163%로 급증해버렸다.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반 중국 경제의 급성장이 사실상 기업의 부채 확대를 통한 투자 증가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유동성의 힘으로 금융위기를 극복하면서 성장을 이끌던 시대는 2015년 12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2018년 6월까지 6차례 더 진행됐고, 향후에도 이어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유동성 확대가 키워준 부채 경제가 더는 유효하지 못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 기업·은행들의 부실 우려

현재 부채가 키워놓은 자산 버블은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기업 부채 급증과 과잉투자가 불러온 기업 부실이 이들에게 돈을 댄 중국 은행들의 집단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대중 경제·무역 압박은 중국 기업과 은행들에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 중국 기업들의 상황은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직전 부채와 과잉투자로 덩치를 키웠던 한국 기업들의 상황과 유사하다”며 “특히 회계가 불투명한 중국 기업들이기에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경제성장률이 떨어졌을 때 불거질 중국 기업들의 부실, 이에 따른 중국계 은행들의 부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 중국 기업과 은행들이 구조조정에 응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중국의 구조조정이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주도로 빠르게 진행된 한국의 상황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중국이 미국의 자본과 영향력이 막강한 IMF 등 국제 금융기구를 통한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스스로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뜻인데 이렇게 되면 구조조정의 기간이 예상보다 더 길어질 수밖에 없고, 갈등과 후유증 역시 커지게 될 전망이다. 김 교수는 “올해 25%쯤 떨어진 중국 상하이 종합주가지수가 중국의 구조조정이 사실상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라며 “최소 3년 이상 지루한 구조조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은 서로 관세 폭탄을 날리는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미·중 무역 전쟁이 한국의 경제와 산업을 강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제조업과 무역 비중이 절대적으로 큰 경제·산업구조, 거의 모든 산업 부문에서 중국 투자를 확대해온 기업들을 가진 한국에 미국의 관세 폭탄 조치는 거의 모든 제품의 가격경쟁력에 비상이 걸렸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에 투입된 설비 등 자산을 회수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뿐이 아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등에서 보듯 동맹인 미국과 한국의 정치·사회적 결정에 따라 중국이 한국을 향해 즉각적으로 경제보복에 나설 위험도 상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중국은 미국을 향해 어떤 대응 카드를 빼들까. 김 교수는 “느리게 진행될 중국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국의 대중국 무역 규제가 강화될수록 중국 또한 강한 대응 카드를 찾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약한 부분을 중국이 건드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가 말하는 미국의 약한 부분은 바로 미국 국채다.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 미국 국채 보유국으로, 지난 7월 기준 1조1710억달러어치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김 교수는 중국이 미국 국채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달러화 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전략으로 미국에 맞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미 국채 매도 카드 꺼내나

미국 국채의 대량 매도는 중국이 미국을 당황스럽게 만들 수 있는 카드다. 가뜩이나 양적완화 후유증으로 자산 버블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져 있는 미국이기에, 중국의 미국 국채 대량 매도는 달러화 가치를 흔들어놓을 폭탄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을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달러가 가진 위상을 매우 부러워합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달러의 힘을 알게 됐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유발한 미국이 불과 30~40센트 정도의 제조비로 달러를 찍어내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찍어낸 달러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을 무수히 사간 것은 물론, 무기를 만들어 세계의 경찰국가로 움직이는 모습도 목격했지요. 미국이 아닌 중국이나 다른 나라가 그렇게 했다면 그 나라 경제는 이미 무너졌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은 위기에 몰렸던 경제를 달러를 찍어내는 방법으로 오히려 회생시켰고, 지금은 호황까지 맞고 있습니다. 중국에 이런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은 부러움을 넘어 위안화가 지향하는 목표가 된 겁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대량 매도는 결국 중국 입장에서 미국 달러의 가치를 흔들고, 무역 전쟁에서 입게 될 피해를 만회하는 것은 물론, 위안화의 위상을 확대할 수 있는 절묘한 대응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중국이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다 팔지 않고 일정 부분만 팔기 시작해도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이 있을 것”이라며 “미국 국채를 보유한 다른 나라들도 자산손실이 커지는 상황을 앉아서 맞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대량 매도가 미 국채 보유국들의 연쇄 매도 현상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이 대량으로 팔기 시작하면 미국 국채 세계 2위 보유국인 일본도 미 국채를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며 “일본 정부보다 손실에 민감한 민간 금융 부문에서도 미국 국채 매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동안 미국과 갈등을 겪은 국가들이 미국과 미국 경제를 겨냥한 대규모 국채 매도에 나섰던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세계 자본시장에서 금과 함께 최고의 안전자산이자 일정 수익을 보장받는 미국 국채를 대량 매도한다는 것은 매도자 역시 미국의 손실 이상으로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은 이런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달러 가치 하락과 위안화 위상 강화, 무역 전쟁의 맞대응 카드로 미국 국채 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큰 위기 뒤엔 기회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미·중의 무역, 환율 전쟁은 두 나라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유독 큰 한국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 대규모 설비를 투자해 제품을 생산하고, 이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두 국가가 서로를 향해 벌이고 있는 무역 규제는 한국 기업과 산업에 치명적이다. 뒤이어 전개될 환율 전쟁과 중국의 미국 국채 대량 매각, 달러화 가치 하락 역시 가뜩이나 유동성이 큰 한국 자본시장을 뒤흔들 가능성이 짙다.

하지만 김 교수는 미·중 갈등이 불러올 이런 심각한 위기 뒤에 기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지출과 소비 비중이 큰 미국 경제 구조상 무역 규제와 압박만으로 값싼 중국산 제품 수입에 따른 무역 적자 문제를 해소하기 힘들다는 것을 미국 정부도 잘 알고 있다”며 “결국 미국은 자신들이 잘하는 금융과 서비스 산업을 중국이 과감히 개방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문제는 중국이 미국의 뜻대로 중국 경제의 취약 부문인 금융시장을 개방하겠느냐는 것이다. 금융시장 개방 시 부채 비율이 높은 중국 기업과 은행들의 부실 악화가 더욱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 자본이 부실화된 중국 기업과 금융자본을 손쉽게 인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중국의 목적도 결국 금융강국과 위안화의 국제화”라며 “무역 갈등 해소와 위안화 국제화라는 목표를 위해 미국의 요구에 상당 부분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중 갈등이 만들어낼 중국의 금융시장 개방은 미국만큼 한국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 자본의 해외 투자 수익 확대를 노릴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무역 갈등의 본질이 결국 패권 전쟁이라고 했다. 그 패권 전쟁의 파편이 한국에 곧 쏟아질 상황에서 다가올 미래의 위험을 인식하고 그 충격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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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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