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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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수식하는 단어 중 하나는 ‘첫 재외동포 출신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라는 것이다. 743만 재외동포를 잇고 대우하는 재단이니 재외동포 출신이 이사장이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이는 일인데, 그간 그렇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 사회가 재외동포를 바라보던 시선이 희미한 연대감에 그쳤던 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10월 취임하자마자 한우성 이사장은 열성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추진력 있는 업무 속도를 보였다. 임기가 1년 지난 시점에 재외동포재단은 재단 안팎에서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마침 제주도 서귀포시의 제주혁신도시로 사무실을 이전했고 내년부터는 업무 영역도 더욱 넓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그간 한 이사장은 왜 우리 사회가 재외동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강조해왔다. 한국 사회의 미래 성장 동력은 재외동포 사회에서 온다는 것이 한 이사장의 설명이다.

추석 연휴가 막 끝난 지난 9월 27일, 이전을 앞두고 분주한 서울시 서초구 재외동포재단 서울사무실에서 한우성 이사장을 만났다. 추석 연휴기간에도 그는 명절을 즐길 틈이 없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흔히 고려인이라고 부르는 우즈베키스탄 재외동포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재외동포재단이 그간 우즈베키스탄 재외동포에 대한 장학금 및 연수 프로그램을 계속 지원해왔던 것과 관련이 있다.

“재외동포재단에서 목적하는 바는 한 가지, 재외동포가 민족적 유대감을 간직하면서 거주국에서 안정적이고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 재외동포재단이 하는 일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거주국에서 재외동포들이 성공적이고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에게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한국으로 초청하며 역량을 길러주려고 노력하는 일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지난 여름에는 멕시코와 쿠바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의 한국계를 모아 한국에서 직업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모국(母國)에서 배우고 훈련받아 자신의 터전에 돌아가 기회를 얻고자 하는 재외동포는 수없이 많다. 이들이 외국에서 타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성공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재외동포재단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그러나 종종 이런 활동들은 ‘한국을 떠난 사람을 왜 도와줘야 하느냐’는 비판에 부딪힐 때가 있다. 한우성 이사장은 이런 비판이 국가의 미래 성장 가능성과 국가의 영향력을 너무 좁게 제한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의 영향력이 영토에 한정된 것이라면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좁은 국토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영토가 아닌 국민, 더 넓은 의미의 한민족으로 충분히 확장할 수 있습니다. 재외동포는 영토를 떠난 사람이 아니라 국가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러 앞서간 사람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성공적으로 각국에서 자리 잡은 재외동포는 다시 고국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성공한 유대인 기업가들이 유대인 공동체와 이스라엘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것이나 성공한 화교가 중국 문화를 전 세계에 퍼트리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숨은 재외동포를 발굴해야 하는 이유

이를 위해서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 재외동포에 대한 정체성 교육이 필요하다. 마침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는 지대한 관심을 받는 중이다. 한국을 떠난 후 한국 문화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던 재외동포라도 다시 한 번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만한 ‘K-컬처 열풍’이다. 지난 7월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닐슨이 아시아계 미국인의 영향력에 대해 발표하며 주목한 부분이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금메달리스트 클로에 킴 같은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이 자신의 한국 정체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여름마다 재외동포를 한국에 불러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게 하는 캠프를 여는데 경쟁률이 매해 치솟고 있습니다. 캠프를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져 더 인기를 얻고 있고요. 캠프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쉬운 대로 세계 곳곳에 있는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웁니다. 한글학교를 지원하고 한글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공부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재외동포재단의 몫이고요.”

한우성 이사장은 재외동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일은 자칫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 있는 ‘민족주의적 의식’과는 다른 미래지향적 문제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국 사회의 경쟁력을 더욱 고취시킬 수 있는 집단이 바로 재외동포라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각 분야에서 성과를 이룬 전문가를 적극 포용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한 이사장은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시달리는 한국으로서는 재외동포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적을 떠나 문화적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각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재외동포가 많아진다면, 다음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이런 재외동포들을 하나로 엮는 ‘네트워크 사업’입니다. 재외동포 공동체뿐 아니라 한국 사회와 재외동포 사회가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세계한상(韓商)대회에서 재외동포 CEO와 한국 청년을 연결시켜주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150명의 청년들이 재외동포의 기업체에 인턴으로 취직하는데 그동안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이 50%에 가깝다.

반면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재외동포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베트남 귀환여성과 한국인 자녀 문제가 그렇다. 장차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이 될 귀환여성의 자녀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한우성 이사장의 설명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의 경쟁력과 문제는 재외동포 집단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관심 없다고 지나치는 문제, 예를 들어 귀환여성의 자녀 같은 문제는 나중에 한국 사회의 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제3세계의 국가에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이나 거주국 어디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 재외동포가 많은데 이들을 돕는 일은 한국 사회의 향후 문제를 예방하고 사회의 포용력을 넓히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입니다.”

내년부터 재외동포재단은 더 많은 주재원을 해외에 파견해 보다 체계적인 재외동포 지원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한글학교를 지원하고 재외동포의 네트워크를 마련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숨어 있는 한인들을 발굴해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한다.

“국적에 관계없이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재외동포와 그들로부터 비롯된 한국 문화와 한민족의 우수성이 세계 만방에 펼쳐지는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숨어 있는 재외동포를 발굴하고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을 연결하는 것, 우리 사회가 다 함께 해야 하는 일입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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