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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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사의 근본은 씨앗입니다. 지금 다들 식량 전쟁 얘기를 하지요. 앞으론 종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겁니다.”

지난 10월 30일 경북 안동의 한 종묘회사 사무실에서 우휘영(60) 안동농협 감사를 만났다. 올해로 3년째 안동농협 감사직을 맡고 있는 우 감사는 1958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중·고 졸업 후 영남대 원예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나온 뒤 30년 이상 종묘 분야에 종사해온 그는 “앞으로의 세계 전쟁은 종자 전쟁”이라고 단언했다.

“농부는 죽을 때 씨앗 포대를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지요. 그만큼 농업에서는 씨앗이 중요합니다. 우수한 종자를 개발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가 있습니다.”

지난 6월 독일에서는 독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업 인수합병(M&A)이 있었다. 독일 기반의 다국적 화학·제약기업인 바이엘이 미국의 종자회사인 몬산토를 인수한 것이다. 바이엘은 2년간의 구애 끝에 인수대금 총 630억달러(약 67조4000억원)를 들여 인수절차를 마무리했다. 그만큼 종자산업의 성장성을 높게 본 것이다. 우 감사는 “우리 농촌도 세계의 종자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종자 주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 파프리카 같은 경우는 종자 가격이 같은 무게의 금 가격보다 더 비쌉니다. 근데 이 파프리카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요. 만약에 외국 회사들이 우리에게 종자를 공급하지 않는다고 하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는 거죠.”

종자는 ‘농업의 반도체’로 불린다. 부가가치가 높고 전·후방 산업에 대한 파생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종자를 개발한 사람이나 단체는 지적재산권을 갖는다. 새로운 종자나 식물을 만들고 키워내면 특허처럼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B)이 일정 기간 법적으로 보호해준다. 한국은 2002년에 가입했고 10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2년부터 이 기구의 적용을 받고 있다. 협약에 따르면 신품종을 개발해 판매하면 최소 20년 동안 재산권을 가질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신품종은 채소 씨앗이다. 쌀·보리 등 식량작물은 농촌진흥청에서 주로 육성하고 보호한다. 하지만 채소 씨앗은 민간종묘회사에서 개발해 공급하고 공공 영역에서는 대부분 관여하지 않는다.

국내 종자 70% 이상이 외국산

하지만 한국의 종자 주권은 1997년 10월 발발한 IMF 외환위기 이후 흔들렸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흥농종묘, 중앙종묘 등 한국을 대표하던 종자회사 네 곳이 외국의 거대 다국적기업에 매각됐다. 이후 대부분의 채소 씨앗을 외국 회사들이 점유하면서 농민들은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게 됐다. 우 감사는 “지금 국내에서 판매되는 종자의 70% 이상이 외국산 종자”라고 했다.

우 감사는 영남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사회생활을 흥농종묘에서 시작했다. 당시 흥농종묘는 규모 면에서 국내 종자 분야 1위 기업이었다. 우 감사는 이곳에서 영업부장, 지점장 등을 지내면서 종묘 분야의 전문성을 기초부터 쌓아올렸다.

하지만 1999년 흥농종묘가 멕시코계 기업인 세미니스에 인수되면서 우 감사도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당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종묘 분야 3위였던 중앙종묘 역시 흥농종묘와 함께 세미니스에 인수됐고 두 회사는 2005년 미국의 종자기업 몬산토로 넘어갔다.

흥농종묘가 외국계 자본에 넘어가면서 우 감사는 농우바이오로 자리를 옮겼다. 농협 계열사이자 코스닥 상장사인 농우바이오는 현재 몇 안 되는 국내 메이저급 종묘회사로 꼽힌다.

“종묘회사를 경영하려면 자본 투자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한 품종이 나오는 데 10년 정도가 걸립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10년간 계속 투자를 해야 하는 거죠. 지금 종묘회사를 경영하려면 최소한 100억원 이상 투자하지 않고서는 엄두를 못 냅니다.”

우 감사는 2008년 6월 농우바이오를 그만둘 때까지 경북지점장과 유통사업본부장을 지냈다. 이 중 유통사업본부는 우 감사가 맡기 전까지는 원래 없었던 조직인데, 그가 회사에 제안하면서 새롭게 만든 조직이다. 자신이 판매한 씨앗으로 재배한 농산물 중 적어도 일부는 책임감을 갖고 판로까지 개척해준다는 뜻에서다.

“당시에는 종자회사들 중 유통 쪽에 관여하는 회사들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씨앗을 판매하는 데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재배, 유통, 판매까지 관여하려고 했죠. 그 자리에 있으면서 씨앗만이 아니라 농산물이 유통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고추 유통 본부 안동으로

우 감사는 농우바이오에서 경북지점장을 지내다 2008년 고향인 안동에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와서는 직접 종묘회사를 세운 뒤 안동농협 감사직을 맡기 전까지 운영했다. 그는 “고향 안동의 농촌과 농업을 어떻게 하면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한 결과 안동에 돌아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안동에서 재배되는 작물로는 고추·참마·생강·사과 등이 유명하다. 특히 고추의 경우 전국 유통량의 40%가 안동에서 유통된다는 것이 우 감사의 설명이다. 경북 북부권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 때문에 안동·봉화·영양·청송·예천·의성의 고추가 모두 안동으로 집결하고 안동농산물공판장에서 경매·판매된다.

종묘회사에서 30여년간 일해온 우 감사는 지금 고추 종자 개발 전문가이기도 하다. 우 감사가 최근 대표적으로 미는 종자 상품들은 수량성이 뛰어나고 매운맛이 강한 ‘대종상’, 남들이 3번 수확할 때 4번 수확할 수 있다는 ‘연속타’, 크게 자라고 매끈한 ‘하늘아래’ 등이다. 특히 우 감사가 주로 판매하는 상품들은 ‘세절고추’인데, 일반적으로 통고추로 유통되는 일반 고추와 달리 붉은고추를 수매한 뒤 세척하고 소독한 다음 잘라서 건조해 판매하는 것이다. “일반 통고추를 건조하면 최소 24시간에서 48시간은 말려야 하는데. 잘라서 건조하면 3시간이면 건조가 됩니다. 또 고추 꼭지를 떼기 때문에 비타민C 등 영양소가 유지되고 고춧가루를 만들어도 빛깔이 살아있죠. 세균도 적고요. 이렇게 해서 세워진 세절고추 가공공장이 지금 안동말고도 봉화, 영양 등 여러 군데에 있습니다.”

우 감사는 색다른 이력도 갖고 있다. 17대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농업대책부위원장을 맡았고, 18대 대통령 선거 때도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농업대책부위원장을 맡았다. 30년간 종묘 한 분야에서 일해온 전문성을 정치권에서도 인정받은 것이다. 이후 우 감사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2년7개월 동안 비상임이사로 근무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이력이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줬다는 것이 우 감사의 설명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시달리는 우리 농촌을 살리려면 결국 고부가가치 농업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 씨앗 주권을 지키기 위해 안동에서 먼저 뛰겠습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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