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의 한 시민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장식한 개양귀비 십자가를 들여다보고 있다. 개양귀비꽃을 단 작은 흰색 십자가들은 1차대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2016년 영국 현충일(11월 11일) 사진이다. photo 뉴시스
아득한 100년 전 일이 영국인에게는 오래전 일이 아닌가 보다. 11월 11일에 100주년이 되는 1차대전 종전기념일을 맞는 영국 사회 분위기를 보고 드는 생각이다. 금년 초부터 간혹 등장하던 ‘종전 100주년’ 관련 기사가 요즘 영국 언론에는 거의 매일 등장한다. 금년이 아니더라도 가을로 접어드는 매년10월 중순이면 영국인 가슴에는 새빨간 색깔의 개양귀비(poppy) 꽃잎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11월 11일의 현충일(Remembrance Day)을 맞아 전사자 가족, 전상군인, 퇴역군인들의 복지를 위한 모금활동의 일환으로 개양귀비꽃이 팔린다. 그래서인지 종전 100주년을 맞는 금년 현충일의 개양귀비는 더욱더 붉어 보인다.
   
   1차대전은 유럽이 그전에 한 번도 겪지 못한 정말 전대미문의 대전이었다. 1914년 7월 28일 개전되어 1918년 11월 11일까지 1421일 동안 연합군(영국·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미국 등)과 추축군(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터키 등)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양측에서 연인원 7000만명의 군인이 동원되어 988만명 전사, 2100만명 부상, 민간인 770만명 사망 등 도합 3858만명 전상 피해라는 엄청난 비극을 낳았다. 개전하던 해인 1914년 유럽 전체 인구가 4억8200만명이니 3858만명은 전체의 8%인 셈이다. 그래서 영국인을 비롯한 유럽 모든 가정에는 1차대전과 21년 뒤에 일어난 2차대전까지 치면 가족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전쟁의 피해를 봤다. 종전 100년이라면 이제는 잊혀질 만도 한데 유럽의 분위기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더욱 세차지기만 하는 느낌이다. 마지막 1차대전 참전자도 2012년 2월 111세 생일 2주 전 사망해서 이젠 전쟁 당사자가 아무도 생존해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1차대전 정도는 이젠 역사 속으로 흘려보내도 될 만한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런 특별한 기념일이 있는 때가 아니더라도 유럽의 언론에는 1·2차 세계대전 관련 기사가 잊을 만하면 나온다.
   
   
   100년 전에도 종은 울렸다
   
   특히 올해는 100주년을 기념해 종전선언이 나온 날인 1918년 11월 11일의 광경을 묘사한 기사들이 많다. 이를 통해 감정을 밖으로 잘 내뱉지 않는 영국인들이 당시 얼마나 기뻐했는지, 역설적으로 전쟁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종전 뉴스가 영국 언론사들에 전해진 것은 1918년 11월 11일 오전 10시15분이었다. “사실 종전은 11시에 효력을 발생한다고 되었으나 이미 10시25분에 영국 언론사 건물 창문에는 유니언잭 영국기가 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사이렌이 울렸고 교회 종들도 타종을 시작했다. 시내는 떠나갈 듯이 시끄러웠다. 창문마다 깃발이 걸리고 사람들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모두들 창문을 열고 공기를 들이마시고 새 소식을 들으려는 듯 바깥을 내다보았다. 시민들은 1시가 되어서야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행진을 하고 광장에 모여 노래를 불렀다. 자연히 공장, 가게, 사무실도 문을 닫았다. 학교는 휴업을 했지만 그래도 버스는 다녔다. 깃발 든 사람들이 급조된 밴드에 맞춰 어설픈 자발적 행진을 하고 거리 등화관제를 하던 가로등도 4년 만에 처음으로 덮개가 벗겨졌다.” 맨체스터의 한 신문이 묘사한 그날의 분위기다.
   
   이런 내용의 신문 사설도 있었다. “오늘은 위대한 날이다. 너무나 바라고 그리워하던 위대한 평화의 날이다. 아주 멀리 있던 듯,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그러나 결코 좌절하지 않았고, 단호하게 추구하던 승전을 결국 해내고 말았다. 우리 것이긴 하지만 우리 것만이 아니다. 세계인 모두의 것이다. 우리들의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적의 것이기도 하다.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천국에서 내려온 비 같은 선물이다.”
   
   당시 영국인들의 감격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이 사설을 게재한 신문의 주 제목이 ‘전쟁이 끝났다(The war is over!)’였다. 모진 고통을 이겨낸 생존자들이 지르는 비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주 제목 밑의 본 기사는 ‘우리의 아버지, 형제, 오빠, 동생이 돌아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당시 영국인들의 기쁨을 가히 알 만도 하다.
   
   금년에는 이런 기쁨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 종전기념일에 영국 전역의 교회에서 당시처럼 종을 울린다. 1년 전부터 1400명의 타종수를 선정해 준비해왔다. 작년부터 수리 중인 런던 국회의사당 웨스트민스터 종탑의 빅벤도 이날은 울릴 예정이다. 종은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서도 일시에 울린다. 거기다가 영국의 정부 기관이 몰려 있는 런던 화이트홀 스트리트에 위치한 중앙 현충탑에서 열리는 기념식에는 독일 대통령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가 참석해 헌화를 한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헌화를 두고 군인들이나 시민들이 반대 의사를 많이 밝혔으나 큰 소동 없이 치러질 전망이다. 사실 1·2차 세계대전 기념식에서 과거 적국의 수장이 참석해 화해를 한 일은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14년 7월 28일 1차대전 개전일을 시작으로 이번 종전기념일까지 지난 4년 동안 거의 매년 1차대전 관련 각종 기념행사가 주요 전투가 치러졌던 벨기에 여러 곳에서 열렸다. 그때마다 과거의 적들이 서로 악수를 하면서 힘들게 얻은 평화를 지켜가자고 약속했다.
   
   
▲ 성당에 설치된 1차대전 참전군인 모양의 아크릴 조각. 1500만파운드를 목표로 진행 중인 설치미술형 모금이다.(좌) 런던에서 퇴역군인들이 개양귀비꽃을 팔고 있다.(우) photo 권석하

   독일도 참석한 기념식
   
   2015년 4월 25일 터키와 영국 간에 벌어졌던 갈리폴리전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찰스 영국 왕세자가 터키를 방문해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헌화를 한 일도 있었다. 베르뎅전투를 기념하는 예식이 독일 총리 메르켈과 프랑스 대통령 올랑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리기도 했다. 2016년 7월 1일 솜전투 100주년, 2017년 7월 31일 파스샹달전투 100주년, 2018년 8월 8일 아미앵전투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느라 영국 왕실과 수뇌부는 4년 내내 바빴다. 그 사이에 2차대전 행사까지 있었다. 2014년 6월 6일 프랑스 서해안 노르망디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을 맞아 거의 100세에 가까운 참전군인들이 참석해 기념식을 치르기도 했다. 이런 1·2차 대전 모든 기념식에는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독일 측에서도 반드시 참석했다.
   
   뿐만 아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다가 전사한 양측의 군인들이 군인묘지 경내에 같이 묻혀 있다. 영국에서 유로터널을 건너 유럽 서해안을 타고 북으로 올라가다 보면 1차대전 묘지를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끝도 없이 펼쳐진 흰색의 나무십자가 앞에 서면 숙연하다 못해 말을 잃어버릴 정도이다. 특히 묘비에 쓰인 그들의 나이를 보면 애잔함을 넘어 분노를 감출 수 없다. 20대 초반, 심지어 16살도 간혹 있다.
   
   프랑스 에타플 군인묘지(Etaples Military Cemetary)에는 1만1500명의 묘지가 있다. 1만개가 넘는 묘지를 본 적이 있는가? 이런 묘지를 처음 본 순간을 표현할 문구는 사실 찾기가 힘들다. 에타플 묘지에는 영국군 8810명과 2032명의 연합군이 묻혀 있다. 같은 경내에 적국이었던 독일 병사 658명의 무덤도 같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숭고한 평화의 의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하긴 이들은 1차대전 중 성탄절에 휴전을 하고 축구를 같이하던 친구들이니 할 말도 없긴 하다. 다시 발길을 남으로 돌려 프랑스 노르망디 근처에 가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이 묻힌 2차대전 군인묘지가 있다. 특히 규모가 큰 캉브(La Cambe)에는 2만1222 명의 독일 군인들이 묻힌 묘지가 있다. 바로 그 옆에는 프랑스군 묘지도 있다. 자신의 나라를 침공해 갖은 만행을 저지른 독일군 묘지를 프랑스가 지켜주고 보살펴주고 있다.
   
   특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이프레스 인근의 타인코트 묘지에는 영국군 1만1961명이 묻혀 있는데 이런 식으로 벨기에에는 정말 수도 없는 1차대전 군인 묘지가 있다. 이프레스 지역 전투에서만 80만명의 전사자가 나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런데 결국 그중 5만4000명의 영국군 전사자는 유해조차 못 찾았다. 아직도 이 지방에서는 1년에 서너 구의 전사자 유해가 발굴되곤 한다. 그래서 매일 저녁 8시에는 1927년에 세워진 메닌게이트에서 유해가 발굴되지 않은 5만4000명을 위해 벨기에 자원봉사자(Last Post Association 멤버)들이 의식을 거행한다. ‘라스트 포스트(Last Post)’라는 영국군 일과 종료곡이 트럼펫으로 연주된다. 이제 일과가 끝났으니 쉬라는 뜻의 진혼곡인 셈이다. 이프레스 시내로 들어가는 관문인 메닌게이트 안에서 의식을 행하는 이유는 군인들이 이 문을 통해 전장터로 나갔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1928년에 시작되어 2015년 7월 9일 3만번째 의식까지 거행되었다. 해가 지는 이프레스 시내로 퍼져나가는 트럼펫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자신의 나라를 독일의 침공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희생한 영국군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벨기에인들의 각오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는 진창의 참호전, 살과 눈이 타들어가는 독가스, 날아와 터지는 포탄의 소리와 빛에 눈이 멀고 고막이 터지는 지옥 같은 서부전선의 참상은 유럽인이라면 누구나 안다. 돌이켜보기도 싫을 참혹한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성대한 행사를 치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는 당시 전투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한 수많은 참전군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기리려는 뜻이다. 그래서 ‘Lest We Forget(잊지 않기 위하여)’이란 문구가 항상 현충 관련 기념물이나 기념품에 등장한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값진 평화가 그들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다시 한 번 자각하자는 다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새기고 다짐하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과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각오를 다진다.
   
   
▲ 프랑스 에타플 군인묘지. 1차대전에서 숨진 영국군 8810명과 연합군 2032명, 독일군 658명이 잠들어 있다. photo 권석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
   
   영국인들에게 아직도 전쟁은 진행형이다. 1·2차 대전의 기억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포클랜드전투,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전상자들을 위해서도 영국인들은 구호만 외치지는 않는다. 11월 11일 현충일을 즈음해 영국인 가슴에 꽂힌 새빨간 개양귀비의 가격은 1파운드(약 1500원)다. 개양귀비 판매를 통해 거둬들인 모금액은 2017년 기준 4700만파운드(약 705억원)였다. 4000만개의 개양귀비가 15만명의 자원봉사 판매자들에 의해 팔린 것이다. 정말 영국인들의 정성이 들어간 금액이다.
   
   금년에는 개양귀비 판매와는 별도로 1차대전 전사자를 기리는 ‘거기에 있어도 없는(There But Not There)’이라는 색다른 기념 모금 행사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필자는 우연히 들른 영국 켄트 지방 시골마을 성당에서 1차대전 참전 군인 모양의 반신형 투명 아크릴 판자가 여기저기 의자에 놓인 이유를 알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크릴 판 옆에 놓인 플라스틱 조각에는 전사자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종이에는 ‘이 사람 모양의 판들은 우리 성당 신자 중 1차대전에서 전사한 25명의 군인을 상징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 판자를 귀중하게 취급해주세요. 판은 쉽게 흠이 가니 그들을 손대지 말아주세요. 그들 사이에 앉으시고 위에 앉지는 마세요’라는 문구도 종이 위에 쓰여 있었다. 아크릴판을 ‘그들(them)’이라고 인칭으로 부르고 있는 것에 감동했다. 흡사 전사한 이들이 돌아와 앉아 있는 듯 이름이 쓰인 판 사이에서 미사를 보는 유가족들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가슴이 뭉클해졌었다. 종이에는 마지막으로 ‘그들은 더 이상 벽 위의 이름이 아니에요’라는 문구도 쓰여 있다.
   
   영국인들은 이렇게 100년 전의 이웃을 벽 위의 이름이 아닌 현재의 이웃으로 아직도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아크릴판은 성당 신자들이 사와서 설치해놓은 것이다. 1차대전 참전군인 모습의 실루엣 투명 아크릴판은 전국 여기저기에 나타나고 있다. 런던탑, 교회, 학교, 공회당, 기차역, 지하철역, 사무실 등에는 입식형 판도 설치되고 있다. 반신형의 좌식 실루엣은 의자에 설치할 수 있다. 모두 해당 단체나 기관들이 각자 구매해 설치하는 것들이다. 이 캠페인은 1500만파운드(225억원) 모금을 목표로 해서 시작했다. 이런 종류의 설치미술형의 모금은 2014년 런던탑에 설치된 1차대전 전사 영국군과 영연방 군인 88만8246명을 상징하는 동일 숫자의 세라믹 개양귀비에서도 볼 수 있었다. 당시 모금액도 1500만파운드였다.
   
   
   100년 전의 편지
   
   벨기에에서는 1차대전 전투 중 가장 참혹하고 처절했던 파스샹달전투 전사자 60만명을 기려 동일 숫자의 진흙 달걀을 만들었다. 2014년부터 누구나 원하면 작업장에 와서 손수 진흙 달걀을 만들 수 있다. 이 달걀들은 올해 종전100주년에 맞추어 공개된다. 인근 박물관에는 희생자 전원의 이름이 새겨진 ‘개패(dog tag)’라고 부르는 군인인식표 60만개가 전시되기도 한다.
   
   이렇게 유럽인들에게 1차대전 종전 100년은 상처를 잊기에는 짧은 세월이다. 2017년 7월 31일에 있었던 파스샹달전투 100주년 기념식에서 64세의 손자가 36세의 나이로 전사한 할아버지가 쓴 편지를 읽어 모두를 울리기도 했다. 전사 6개월 전 부인에게 쓴 편지로, 당시 4명의 자녀를 둔 할아버지는 전투 첫날 전사했다. “나는 당신에게 잘 있으라는 작별인사도 못 하고 당신을 떠나기는 싫어요. 사랑하는 당신, 나는 이 말을 꼭 하고 싶답니다. 나는 당신과 결혼하기 전까지는 행복이 무엇인지, 또 인생이 얼마나 기가 막힌 것인지를 몰랐다오. 당신이 내게 준 하루하루와 1년들은 정말 즐거웠고 행복했다오. 시작도 기가 막혔지만 갈수록 더 좋았다오. 특히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좋았지요. 내 대신에 그들에게 키스를 해주세요. 그들은 내가 다시 자신들을 볼 수 없다는 걸 모를 겁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너희들을 사랑했고 너희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걸 내 대신 꼭 좀 말해주길 바라오.”
   
   다른 편지 하나는 더욱 참혹하다. 적군인 젊은 독일군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이다. “사랑하는 어머니, 전우들의 피투성이 시체 조각들 사이를 기어나와 포연과 잔해 사이에서 헤매다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겨우 숨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언제인지 모를 죽음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이 현재의 세계 상황을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에 있었던 21년간의 간전기(間戰期)와 흡사하다고 최근 갈파했다. ‘정치가 실패하는 곳에 전쟁이 있다(When the politics failed there is the war)’는 말이 문득 떠오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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