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김은주씨가 택시를 탄 것은 지난 가을이 마지막이다. 그간 김씨는 택시 대신 ‘타다’를 이용했다. 승합차를 이용한 차량 공유 서비스인 ‘타다’는 승객이 호출하면 인근에 있는 승합차가 배치돼 승객을 목적지까지 옮겨준다. 택시 요금보다 20% 정도 비싸지만 ‘타다’를 한번 이용한 승객 중 계속 ‘타다’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직장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집인 마포구 공덕동까지 택시를 타면 15분 걸려 요금이 5000원 정도 나와요. 업무 특성상 야근이 잦고 택시를 탈 일이 많은데 승차 거부당할 때가 대부분이에요. 1시간씩 택시를 기다리다 못해 걸어서 1시간 걸려 집에 간 적도 있어요.”

그러나 ‘타다’에서는 승차 거부를 당할 일이 없다. ‘타다’의 운전사는 택시처럼 거리에 비례해 요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액의 월급을 받는다. 긴 거리를 가든 짧은 거리를 가든 운전사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대신 근처의 승객에게 강제 배차된다. 운전사는 승객이 탑승하고 나서야 목적지를 알게 된다. 몇 가지 매뉴얼도 있는데 운전사가 먼저 승객에게 말을 걸지 않고 클래식 음악이나 방향제 등으로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며 안전벨트 착용 등 안전 수칙을 준수한다.

“직장 동료들과 여럿이서 같이 타면 택시보다 저렴한 가격에 이동할 수 있지만 혼자 타더라도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늦은 밤 시간에 안전하고 쾌적하게 집에 갈 수 있다는 것, 승차 거부 당할 이유 없이 그냥 차에 올라타 내리기만 하면 결제도 자동으로 이뤄진다는 편리함이 너무 좋아서 1000원, 2000원 더 내더라도 타다를 이용해요.”

지난 10월 처음 출시된 ‘타다’의 회원 수는 두 달 만에 16만명을 넘어섰다. 호출 건수도 그 사이 200배 증가했다고 한다. ‘타다’의 성공은 지금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파악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한동안 소비자들을 장악했던 단어는 ‘가성비(價性比)’였다. 사전에는 없는 ‘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로 저렴하면서도 성능 좋은 제품을 찾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중국의 실수’로 명명되면서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던 중국 전자업체 ‘샤오미’의 전자제품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 가전제품보다 절반은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성능을 보이는 샤오미 제품이 입소문을 타고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트렌드는 가성비가 아니다. ‘가심비(價心比)’다. 가심비는 가격 대비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행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타다’는 택시보다 요금이 조금 더 비싸더라도 만족감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꿰뚫었다.

가격보다 가치와 만족감을

전날 밤 11시까지만 주문하면 밤 사이 물건이 집 앞으로 배달되는 식재료 배송 서비스 ‘마켓컬리’의 성장도 가심비 따지는 소비 경향을 잘 보여준다. 마켓컬리에는 웬만한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식재료가 다 판매되지만 결코 저렴하지 않다. 대신 주변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재료부터 양보다 질을 강조하는 식재료가 주로 포진돼 있다. 당일 배송을 강조하지만 막상 일찍 주문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대에 받기 힘든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 대신 밤늦게 퇴근하고 주문해도 다음날 새벽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서울 용산구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황진아씨는 마켓컬리의 조리식품을 자주 구입한다고 말했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면 다음날 아침에 가족들 먹을 음식거리가 전혀 없을 때가 있잖아요. 다시 나가서 장보기도 힘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이것저것 차리는 것도 힘들고. 그냥 마켓컬리처럼 새벽배송이 되는 앱에 들어가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 몇 가지 시켜두면 다음날 아침에 집 앞에 잘 포장돼 오는 게 너무 좋아요.”

꼭 물건을 사고 재화를 이용하는 데만 가심비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생활 전반에 걸쳐 가격보다 가치, 만족감을 중시하는 경향이 드러나고 있다. 1인 가구 혹은 소규모 가족을 위한 가사도우미 서비스가 유행하는 것도 가치를 따지는 소비자가 늘기 때문이다. 가사도우미 서비스 ‘미소’를 가끔 사용하는 35세 직장인 권지연씨는 바쁜 직장생활로 가사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을 때 가사도우미를 부른다고 했다.

“제가 원하는 날에 원하는 만큼 가사도우미를 불러서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한 번 부르는 데 4만~5만원 정도 들어서 한 달에 두 번 부르면 10만원인데, 10만원 가지고 이 정도 만족감을 얻기 쉽지 않습니다.”

매년 소비트렌드를 예측해온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2018년 트렌드 중 하나로 ‘가심비’를 꼽은 바 있다. 함께 꼽힌 키워드가 ‘소확행’ ‘워라밸’ 같은 단어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개인적인 만족감, 무조건 저렴한 가격보다는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더욱 중시한다. ‘트렌드 코리아’의 저자로 매년 참여하는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이제는 하나를 소비하더라도 개인의 만족감과 행복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가 주류를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20~40대 젊은 소비자에게서 가치를 따지는 소비행태가 더 잘 드러난다. 예전처럼 소비활동이 생존에 밀착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을 위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한정된 재화 내에서 만족감을 찾는 소비자가 더 많아지게 됐다는 얘기다.

가심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는 요즘 유통계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프리미엄’ 붐을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더 비싸지만 좋은 소형 가전제품을 사는 젊은 소비자들이 많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가격이 50만원이나 하지만 빠른 시간에 머릿결이 상하지 않게 말려준다는 다이슨 헤어드라이기나 30만원대의 발뮤다 토스터기가 그런 예다.

기왕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것이라면 연회비가 10만원, 20만원 더 들더라도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프리미엄 카드를 발급받는 소비자도 많다. 출시 18일 만에 1만장이 발급된 현대카드 그린카드도 가격보다 가치를 중시하는 20~30대 젊은 소비자의 선택을 많이 받았다. 현대카드에 따르면 그린카드를 발급받은 사람 중 20~30대가 80%에 달하기도 했다. 그린카드는 1년 10회에 한해 전 세계 800여개 공항라운지 무료 이용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소비자의 행태를 무조건 ‘베블런 효과’, 즉 가격이 비싸더라도 과시욕 때문에 소비가 더 늘어나는 현상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향은 교수는 “무작정 비싸다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비싸지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재화만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다는 얘기다. 가격을 비싸게 매겨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격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그만한 가치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출 때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만을 위한 음식을 제공해주는 원테이블 레스토랑,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 찾아와 정기적으로 세차해주는 출장세차 서비스, 다른 사람 신경 쓸 것 없이 본인만을 위해 서비스해주는 1인 미용실 등 가심비를 고려한 서비스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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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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