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박명훈(서울과학기술대), 박인규(서울시립대), 양운기(서울대), 김동희(경북대), 유재훈(미국 텍사스주립대) 교수. ⓒphoto 최준석
사진 왼쪽부터 박명훈(서울과학기술대), 박인규(서울시립대), 양운기(서울대), 김동희(경북대), 유재훈(미국 텍사스주립대) 교수. ⓒphoto 최준석

주간조선은 지난 1월 8일 강원도 정선의 강원랜드 내 컨벤션홀에서 한국의 입자물리학자 5명으로부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LHC(대형강입자충돌기)에서 초대칭입자가 검출되지 않는 현 상황과 관련된 얘기를 들었다. 좌담회에는 양운기 서울대 교수,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유재훈 미국 텍사스주립대(알링턴) 교수(이상 실험 입자물리학), 박명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이론 입자물리학)가 참석했다. 김동희 경북대 교수는 뒤늦게 합류했다. 다음은 좌담 내용.

최준석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프랑크 윌첵은 저서 ‘뷰티풀 퀘스천’(2015)에서 이런 말을 했다. “LHC에서 초대칭입자 일부가 발견될 것이다. 내기를 건다면 발견된다는 쪽에 돈을 걸겠다.” 그런데 LHC에서 힉스입자 발견 이후에 새로운 입자가 발견됐다는 얘기가 없다. 어떻게 되고 있는 건가?

박명훈 윌첵이 지고 있다는 건 지금으로서는 분명하다.(웃음) 초대칭모형, 그중에서도 우리가 많이 공부한 게 저에너지(low energy) 초대칭모델이다. 낮은 에너지에서 초대칭입자가 검출될 것이라고 저에너지 초대칭모델은 예측했다. 양성자 대 양성자 충돌로 깨져나오는 파편 입자가 갖는 에너지는 현재 2TeV(테라전자볼트·1조전자볼트) 정도이다. 이 에너지 영역에서 초대칭입자가 검출되지 않고 있다.

최준석 LHC는 충돌에너지 13TeV로 가동됐다. 그런데 2TeV에서 발견될 것으로 예측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2TeV는 13TeV보다 10분의 1 이상 작은 에너지인데.

박명훈 LHC는 양성자와 양성자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돌려 정면충돌시키는 장치다. 이때 양성자를 가속시키는 에너지가 13TeV이다. 양성자끼리 충돌하면 양성자 안에 있던 쿼크, 글루온과 같은 입자들이 쏟아져나온다. 이 파편 조각이 갖는 에너지가 얼마인가가 중요하다. 회전하는 양성자들이 갖는 13TeV란 에너지를 파편들이 나눠 갖게 된다. 이 파편 중 큰 것의 에너지가 2TeV이다. 대략 1TeV 에너지 영역에서 초대칭입자가 나올 걸로, 다시 말하면 이 에너지 크기를 갖는 초대칭입자를 예측한 저에너지 초대칭모델이 있는 것이다.

양운기 프랑크 윌첵은 QCD(양자색역학) 연구자다. 그분은 초대칭입자(SUSY) 쪽 전문가는 아니다. LHC 상황이 윌첵에 불리한 건 사실이다. SUSY(초대칭입자)가 코너에 몰려 있다. 표준모형은 이 세상이 16개 기본입자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표준모형 속 16개 입자가 짝을 갖고 있다는 게 초대칭이론이다. 그 짝들은 초대칭짝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초대칭모델 중에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자연스럽고 가장 단순한 모델로 예상한 초대칭입자가 LHC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기 때문에 예측하기 힘들다.

유재훈 이 내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LHC가 초대칭입자를 찾을 수 있는 최대 에너지 영역까지 아직 가동되지 않았다. 빔의 휘도도 늘릴 예정이다. 휘도가 올라가면 양성자와 양성자의 충돌 횟수가 증가한다. 그러면 우리가 찾는 입자의 검출 확률이 높아진다. 그때 가서도 초대칭입자가 보이지 않으면 윌첵이 지는 게임이다. 또 LHC에서 윌첵이 진다 할지라도, 나는 그게 초대칭입자가 없다는 증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높은 에너지 영역에서 찾아봐야 한다.

박인규 물리학자는 대칭성을 좋아한다. 거울대칭성, 전하대칭성, 시간대칭성 등과 같은 대칭성이다. ‘초대칭’은 관측에 의해 발견된 게 아니다. 물리학자가 그런 대칭성이 있지 않을까 해서 만들어놓은 인위적인 대칭성이다. 페르미온이라는 입자와 보손이라는 입자도 대칭성을 갖고 있다는 이 이론은 수학적으로 매우 아름답다. 많은 물리학자는 아름다운 이론은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초대칭’ 이론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에서 나온 대칭성이 아니고, 물리학자가 수학으로 만든 대칭성이기 때문이다.

최준석 초대칭입자가 검출되지 않아서 입자물리학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가?

김동희 초조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유재훈 표준모형의 4분의 1이 무너진 건 사실이다. 표준모형은 중성미자란 입자가 질량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 입자물리학계가 질량이 있는 걸 확인했다. 때문에 표준모형은 고쳐야 한다. 표준모형을 다 확인한다고 해도 표준모형은 우주 물질의 5%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우주물질의 나머지 95%는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물리학자가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거 아니냐는 건 잘못 이해한 거다.

양운기 길을 잃었다고 이론가 일부가 말하기는 한다. 나는 실험가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LHC가 생산한 제2차 가동(Run2, 2015-2018년) 데이터의 3%밖에 받지 못했다. 분석하지 못한 데이터가 산과 같다. 새로운 입자가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실험 입자물리학자는 갈 길을 잃은 게 아니라 2036년까지 갈 길을 정확히 알고 있다.

박명훈 실험가가 LHC에서 나온 데이터를 분석하기에 어려운 부분도 있다. 예컨대 실험가에게 힘든 분석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가령 2036년까지 LHC를 가동해 새로운 입자가 나온다면, 이미 지금쯤 입자가 존재한다는 간접적인 효과가 보여야 한다. 입자가 직접 만들어지지는 않으나 양자보정 효과가 보여야 한다. 새로운 입자가 만들어졌으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게 양자보정 효과다.

박인규 지난 100년의 입자물리학 발전을 보자. 이론가가 실험가에게 입자 요리법을 써준 경우가 있었다. 이와 반대로 실험가 앞에 요리가 갑자기 툭 나타나기도 했다. 이론가가 써준 요리법에서 나온 게 아닌 음식이었다. 입자물리학계가 갈 길을 잃었다는 표현, 현재로 보면 틀린 건 아니다. 이론가가 써준 레시피대로 실험가가 다 해봤으나 새로운 입자가 안 나오고 있으니까. 실험가가 해볼 수 있는 이론가의 레시피는 바닥이 났다. 그럼 뭐가 남았을까? 실험가가 어느날 갑자기 입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14TeV로 LHC의 충돌에너지가 올라간 2년 뒤에 새로운 입자가 발견될 수 있다. 지금은 실험가가 뭔가 찾아서 이론가에게 길을 안내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동희 LHC는 향후 5년이 중요하다. 2년 후 재가동에 들어가면 1TeV를 올려 14TeV로 에너지 준위가 높아진다. 에너지 1TeV가 높아지면 데이터로는 10배 이상 더 얻는 효과가 있다. 2021년부터 시작되는 제3차 가동(RUN3)의 초반부가 중요하다.

유재훈 미국에서는 중성미자 쪽으로 이론가들이 계산을 많이 한다. 표준모형이 틀렸으니, 이를 고쳐야 하는데 중성미자 쪽으로 접근해보자는 것이다. 1조5000억원을 들여 DUNE(Deep Underground Neutrino Experi-ment)이라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페르미연구소가 주도한다. 중성미자 다발은 페르미연구소에서 생산하고, 중성미자 검출기는 1300㎞ 떨어진 사우스다코타의 지하 1500m에 짓는다. 페르미연구소에서 방향을 정확히 맞혀 사우스다코타의 검출기를 향해 쏘기만 하면 된다. 따로 터널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중성미자는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거의 안 하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잘 이동한다.

중성미자는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 세 종류가 있다. 특정 중성미자가 이동 중 다른 중성미자로 바뀌는 확률이 어떻게 되는지를 측정해야 한다. 3가지 중성미자 각각의 질량을 현재로서는 측정할 수 없다. 방정식 하나가 부족해서다. 때문에 상대적인 질량을 비교 측정한다. 또 하나는 중성미자와 중성미자의 반물질(anti-matter)인 반(反)중성미자를 DUNE에서 비교할 수 있다.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가 똑같은 것인가를 측정한다. 중성미자는 이런저런 확률로 1300㎞ 거리를 왔다갔다 하는데, 반중성미자는 다른 확률로 왔다갔다 한다면, 그건 대칭성 붕괴이고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DUNE에서 새로운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물리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빔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

미국의 실험물리학계는 1993년 차세대 가속기인 SSC(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건설을 포기한 뒤, 유럽의 CERN에 입자물리학 연구의 주도권을 빼앗긴 바 있다. 때문에 미국은 중성미자 연구를 통해 지금 그 탈출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DUNE 검출기는 2017년부터 짓기 시작했고, 중성미자 빔은 2026년에 쏠 예정이다.

박명훈 중성미자 탐지기로 우주를 구성하는 새로운 종류의 암흑물질 탐지가 가능하다. 최근에 한국의 이론물리학자인 박종철(충남대), 신서동(연세대), 김두진(미국 애리조나) 박사가 ‘새로운 종류의 암흑물질 메커니즘이 있을 때 DUNE 검출기가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을지’를 연구했다. 한국 젊은 과학자들의 쾌거다. 김두진 박사는 CERN에 있을 때 CERN 이론책임자인 잔 주디체와도 논문을 같이 썼다.

유재훈 DUNE 내부에 ‘표준모형 너머’ 그룹을 내가 만들었다. 거기서 암흑물질도 연구한다. 김두진 박사와 내가 CERN에 같이 있을 때, DUNE에서의 암흑물질 연구를 얘기했다. DUNE이 만든 시제품(Proto Type)을 갖고 해보자고 해서 논문을 썼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암흑물질을 찾겠다는 거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암흑물질 중 특별한 것이 있으면 DUNE으로 얼마든지 검출할 수 있다. DUNE은 빔을 2026년에 쏘는데, 우리는 시제품을 써서 그걸 5년 앞당기자고 하고 있다. 한국 연구자들이 그걸 추진하고 있다.

최준석 한국CMS그룹의 활동을 얘기해 달라.

양운기 2016년 46명이었으나, 지난해 104명으로 그룹이 커졌다. 교수만 해도 16명 이상이다. 발표 논문이 많다. 지난해 116편으로, CMS 전체 논문 생산의 12%를 차지했다. 뮤온검출기를 한국이 만들어 CERN에 보낼 예정이다. ‘검출기 학교’를 만들어 대학원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박인규 한국CMS그룹이 CMS 검출기에 들어가는 뮤온검출기를 만든 게 CERN과의 큰 협력 사업 중 하나다. 기존에 검출기가 설치되지 않은 부분에 추가로 뮤온검출기가 들어가는데, 한국이 이걸 만들었다. 이 뮤온검출기는 GEM이라고 불리며 전자증폭장치가 핵심이다. CERN과 기술협력을 해서 지난 5년간 개발해왔다. 우여곡절 끝에 해냈다. 반도체 부품 소재 업체인 메카로(대표 이재정)가 개발에 성공했다. 서울대와 CERN이 올해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 서울대 유인석 박사가 CERN에 파견되어 있는데, 제네바에서 조립하게 될 것이다. 설치하면 2023년에 첫 가동된다.

최준석 장시간 감사하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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