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스위스 제네바공항에 내리는 여행자를 직군별로 보면 물리학자 수가 적지 않다. 인하대 핵물리학자 윤진희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제네바공항에 내린 물리학자는 관광객과 달리 제네바 시내 쪽으로 향하지 않는다. 물론 짬을 내어 레만호수와, 프랑스 자연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 동상이 있는 루소섬, 바스티옹공원에 있는 16세기 종교개혁가 칼뱅의 석상을 찾아보기는 한다. 하지만 물리학자의 목적지는 시내 서쪽 외곽 프랑스와의 국경지역에 있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이다.
   
   윤진희 교수가 제네바를 빈번하게 찾는 이유는 한국에는 고에너지 물리학 실험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제네바 지하에는 인류 사상 최대 규모의 과학 실험 시설이 있다. CERN은 반경 27㎞ 길이의 터널을 뚫고 2008년부터 입자 충돌 실험을 하고 있다. 입자충돌기 이름은 대형강입자충돌기(LHC). 강입자인 양성자와 양성자가 진공 파이프 안을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다가 정면충돌한다.
   
   윤 교수를 지난 1월 14일과 17일 두 차례 그의 인천 인하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그간 제네바를 10여차례 다녀왔고, 안식년을 맞은 2019년에는 6개월을 제네바에 가서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핵물리학자인 그를 만난 건 현대 핵물리학의 최전선이 어딘지를 물어보기 위해서다. 최전선에서 지(知)와 무지(無知)는 만난다. 윤 교수에게 “핵물리학 연구 분야에서 인류가 모르는 건 무엇인가” “신이 앞에 있다면 그에게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가”를 물었다.
   
   “현대물리학은 빅뱅에서 우주를 이루는 물질이 나왔다고 말한다. 빅뱅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기본입자들이 출현했는지에 관한 이론을 우리는 갖고 있다. 나는 빅뱅의 핵 합성 과정 때 QGP(Quark-Gluon Plasma·쿼크-글루온 플라스마)가 실제로 만들어졌는지가 궁금하다. 이 QGP가 존재했는지를 LHC에서 실험으로 확인하는 게 목표다.”
   
   갑자기 내용이 어려워진다. 쿼크, 글루온은 들어봤다. 쿼크는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입자 중 하나다. 글루온은 쿼크와 쿼크를 들러붙게 하는 힘 입자다. 글루온이 작용해 쿼크들을 붙들어 매면 양성자와 중성자가 된다. 양성자나 중성자 안에는 세 개의 쿼크가 들어 있다. 자연상태에서 쿼크는 낱개 입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개만 떼놓을 수 없다.
   
   윤 교수에 따르면, 빅뱅 이후 ‘10-15 ~10-5초’ 시기에는 쿼크와 글루온이 결합되어 있지 않았다. 두 입자가 플라스마 상태에서 각기 자유롭게 움직였다. 플라스마는 전기를 띤 입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물질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QGP란 쿼크와 글루온이 플라스마 상태에 있는 걸 말한다. 빅뱅 이후 극히 짧으나 이 시기에는 ‘쿼크 시대(quark epoch)’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과학의 빅뱅 신화에 시대(epoch)라는 단어를 써서 그 시기를 구분하고 있다. ‘쿼크 시대’ 이전을 빅뱅 직후부터 순서대로 보면 ‘플랑크 시대’ ‘대통일 시대’ ‘전기약력과 인플레이션 시대’가 된다. 우주의 네 가지 힘이 출현하던 시기다.
   
   ‘쿼크 시대’가 지나고 빅뱅 이후 3분쯤 되면 우주를 만들기 위한 기본 재료가 다 준비된다.
   
   윤 교수는 QGP가 빅뱅 이후에 존재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2015년부터 지상 최대의 과학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LHC에 붙어 있는 네 개의 대형 입자 검출기 중 하나인 앨리스가 그가 핵물리학을 하는 도구이다. 앨리스 팀에는 세계 41개국, 총 176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고 그 인원이 2000명에 이른다. 한국에서는 윤 교수가 소속된 인하대 외에 6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윤 교수는 한국 앨리스팀 대표로 2016년부터 3년간 일했고 향후 3년 더 한국 앨리스팀을 이끌 예정이다.
   
   
   ‘앨리스’의 가장 큰 목표는 QGP 확인
   
   앨리스 그룹의 주된 관심은 납과 납 충돌 실험이며, 이는 LHC의 1년 실험 중 한 달간 진행된다. 나머지 11개월은 양성자-양성자를 충돌시킨다. 이는 아틀라스와 CMS검출기그룹의 주요 관심사이다. 앨리스 그룹은 납-납 충돌 실험 결과의 비교를 위해 양성자-양성자 충돌 실험을 분석한다. 양성자들은 LHC의 27㎞ 진공 파이프를 광속으로 날아다니며 충돌하는데, 이때가 실험물리학자들이 분주하게 데이터를 받는 시기다. 아틀라스와 CMS그룹의 검출기는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크기라고 흔히 얘기된다. 앨리스도 그에 못지않다. 윤 교수는 “앨리스의 가장 큰 목표가 QGP 확인”이라고 했다.
   
   QGP가 있었던 걸로 추정되는 빅뱅 직후 ‘쿼크 시대’는 상상할 수 없이 높은 온도와 밀도였다. 1015~1012K이다. 0이 12개면 조 단위가 되니, ‘쿼크 시대’는 수천조~수조 도였다. 이는 일상에서는 만들 수 없는 극한의 온도다. 하지만 LHC의 입자 충돌 실험에서는 이에 근접한 온도까지 올라간다. LHC 안에서 ‘리틀 빅뱅’을 일으켜 초기 우주의 상태를 재현해 보는 거다. 입자 충돌 직후라는 아주 짧은 순간에 온도와 밀도가 확 올라가고 QGP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QGP 존재 여부는 어떻게 확인하나. 윤 교수에 따르면, 어떤 입자가 납-납 충돌에서 얼마나 만들어지는지와 이 입자들 사이에 운동량과 에너지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등의 정보를, 양성자-양성자 충돌과의 비교를 통해 확인한다. 윤 교수는 이 중에서 입자상호관계(co-relation)에서 나오는 ‘능선(ridge)’ 효과를 들여다보고 있다. “능선 효과는 원래 납 이온-납 이온 충돌에서 관찰됐다. 입자가 충돌하면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가 특정 방향으로 튀어나오는데, 이때 다른 입자들도 신기하게 충돌 방향을 따라 넓게 퍼진다. 이걸 능선이라고 한다. 이 능선은 QGP가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이 ‘능선’이 과연 QGP의 신호인가를 확인하는 게 내 일이다.”
   
   이 부분의 내용이 다시 좀 어렵다. 능선 효과가 처음 나타난 건 ‘납-납 충돌’(LHC 실험)에 앞서 있었던, ‘금-금 충돌’(미국 롱아일랜드 소재 국립 브룩헤이븐연구소의 입자가속기 RHIC 실험)에서다. 납에는 평균 208개의 양성자나 중성자가 들어 있고, 금 이온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197개 들어 있다. 200개 안팎의 입자가 충돌하면 수없이 많은 작은 입자가 튀어나온다. 이렇게 무거운 입자가 충돌하는 경우 그 내부에 생기는 매질의 효과를 입자들 간의 상관관계를 통해 보게 되는데, 이를 ‘벌크 효과’라고 한다. 벌크 효과가 양성자-양성자 충돌과 다른 신호를 주는지를 확인하면 ‘쿼크-글루온 플라스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핵물리학자는 이 ‘능선 효과’가 QGP가 존재한다는 신호인지 확인하기 위해 양성자-양성자 충돌 실험과 비교해야 한다. 한 개의 양성자와 한 개의 양성자를 부딪치게 하면 납 이온-납 이온 충돌에 비해 입자 수가 200분의 1밖에 안된다. 그런데 양성자-양성자 충돌 실험에서도 약하지만 정면충돌일 경우 ‘능선’이 보였다. 이 대목에서 핵물리학자는 당황했다. 양성자-양성자 충돌에서도 능선이 나타난다면, ‘납 이온-납 이온 충돌’에서 나타난 능선은 QGP가 존재한다는 신호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충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는 게 앨리스 실험의 핵심이다. 충돌 직후에는 높은 에너지로 인해 쿼크-글루온 플라스마 상태가 발생하고, 이어 충돌 후 10-10초가 되면 경입자가, 10-5초가 되면 드디어 강입자가 만들어진다. 앨리스 검출기는 납 입자와 납 입자 충돌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기 위해 입자 궤적을 추적한다. 데이터를 갖고 컴퓨터로 납 이온-납 이온 충돌 사건을 재구성하여 그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는 건 실험 핵물리학자의 일이다.
   

   핵물리학계의 40년 숙제
   
   핵물리학계는 QGP 존재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실험을 해왔다.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국립브룩헤이븐연구소(BNL)는 RHIC이라는 가속기에서 금 이온-금 이온 충돌을, 유럽연합(EU)의 CERN은 LHC에서 납 이온-납 이온 충돌 실험을 하고 있다.
   
   QGP가 빅뱅 이후 우주 탄생 과정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윤진희 교수는 “QGP가 존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믿는다. 하지만 실험으로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실험에서 확인하고 QGP의 정확한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확실히 판단하려면 앞으로도 몇 년이 더 걸릴 걸로 보인다. 앨리스 실험 데이터를 더 받아보고 분석을 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빅뱅 후 QGP가 존재했던 것을 실험으로 확인하길 바란다”며 웃었다.
   
   쿼크-글루온 플라스마가 식으면서 물질의 상(相·phase)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QGP 연구의 큰 테마이다. 물은 얼음, 기체라는 세 개의 상을 갖고 있다. 우리는 물이 어떤 온도에서 얼음이 되고, 몇 도에서 기체가 되는지를 알고 있다. 이처럼 쿼크-글루온 플라스마도 어떤 온도와 밀도에서 상이 변해 다른 상태로 되는지 알아야 한다. 자연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게 물리학자가 하는 일이다.
   
   윤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 82학번이다. 핵물리학자인 성백능 교수에게서 배웠다. 1986년 미국 퍼듀대학에 유학, 핵물리학을 공부하고 1995년 인하대 교수가 되었다. 윤 교수와 물리학과 동기가, 수학자로 유명한 황준묵(고등과학원), 박형주 박사(아주대 총장)다. 두 사람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수학과로 갔다. 윤 교수는 원래 이론 핵물리학을 공부했다. 박사 논문도 핵 반응 시 산란단면적의 에너지 의존성에 관해 썼다. 산란단면적은 핵 반응이 얼마나 잘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는 수치인데, 에너지 크기에 따라 이게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윤 교수는 연구했다. 그가 실험물리학자로 변신한 건 인하대 물리학과에 권민정 박사가 교수로 부임해온 2013년이다. 권 교수는 미국 롱아일랜드에 있는 국립브룩헤이븐연구소의 가속기(RHIC) 실험에 참여했고, 이 연구로 고려대에서 학위를 받았다. 이후 스위스 제네바의 CERN에 가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앨리스 그룹에서 연구했다.
   
   “권 교수가 학과에 합류한 뒤 나는 이론과 실험을 겸하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인하대)를 설득해서 LHC 앨리스 연구그룹에 가입했다. 학교가 내 제안을 받아들여 인하대는 앨리스 회원기관이 되었고, 가입비 5만스위스프랑(약 5700만원)을 지난해 학교가 완납했다.”
   
▲ LHC에는 4개의 입자 검출기가 달려 있다. 사진은 앨리스 검출기. photo CERN

   핵물리학자 수가 부족하다
   
   인하대는 핵물리학자 수가 총 4명으로 한국 대학에서 돋보인다. 다른 대학의 핵물리학자 수를 물었더니, 윤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는 교수가 수십 명인데, 핵물리학은 한 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물리학과 학생이던 30여년 전에도 서울대에 핵물리학 교수가 5명이었다는 것. 윤 교수는 현재 한국의 핵물리학 연구자 수가 크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 대전에 중이온가속기를 만들고 있으나 이를 디자인하고 제대로 운영할 인원이 부족하다고 했다. “부족한 핵물리학 연구자 수로 간신히 끌고 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가 이끄는 한국 앨리스 그룹은 앨리스 검출기 업그레이드에 참여하고 있다. 앨리스 입자 검출기의 한가운데를 진공 파이프가 지나간다. 이 파이프 안에는 양성자나 납 이온이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이 파이프를 앨리스 그룹의 검출기가 감싸고 있는데, 파이프에서 가장 가까운 반도체 검출기(ITS)를 개발하고 있다. “앨리스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이다. 현재는 6겹으로 입자를 검출하는데 이를 한 겹 더해 7겹으로 만들면서 충돌 중심부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이 때문에 입자 궤적을 보다 정확히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물리학자가 필요로 하는 위치분해능력은 각 방향으로 2배, 6배 향상된다.” 앨리스 안에서 납-납이 정면충돌하면 납의 원자핵이 쪼개지고 더 작은 기본 입자가 나온다. ITS 등 18종의 검출기가 입자 궤적을 추적한다. 윤 교수에 따르면 쿼크가 2개인 파이온이 제일 많이 나오고, 기묘 쿼크를 갖는 케이온(kaon), 또 쿼크 세 개를 갖는 중입자가 나온다. 이 밖에도 충돌 초기에는 B-쿼크나 C-쿼크와 같이 무거운 쿼크나 이들을 포함하는 입자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붕괴하여 전자나 중성미자와 같은 경입자도 나온다. 수없이 많은 흔적을 꿰맞춰 입자 궤적을 찾아내고, 이를 보고 충돌 사건을 재구성하는 게 물리학자의 일이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다. 윤 교수는 지금까지의 연구 중 의미가 큰 성과를 소개해달라는 요구에 “파이온이란 입자의 질량은 137MeV(MeV는 100만전자볼트)이다. 이 정도 질량은 양성자의 10분의 1 크기다. 다른 중간자(meson)에 비해 아주 가벼워서 이론적으로 이 질량 크기를 설명하지 못했다. 내가 2005년에 그 이론적 근거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파이온은 쿼크로 만들어진 입자 중 가장 가벼운 입자다. 그 연구 내용을 일부 설명해줄 수 있느냐는 말에 윤 교수는 “그건 힘들다. 어렵다”며 사양했다.
   
   윤 교수의 책상 위 한쪽에 ‘인하대학교 산악회 50년 기록’이라는 책자가 보였다. 알고 보니 윤 교수는 서울대학교 총여학생회 산악부 출신이었다. 산을 좋아하는 언니를 도와주러 따라갔다가 산꾼이 되었다. 산을 타는 여성 물리학자로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리사 랜들이 유명하다. 랜들은 몇 년 전 학회 참석차 한국에 왔다가 북한산 인수봉에 오르기도 했다. 30년 넘게 기자로 일하면서 한 건의 기사를 쓰기 위해 두 번 찾아간 건 윤 교수가 처음이었다. 윤 교수는 총 다섯 시간이 넘도록, 요리조리 묻는 내게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다. 되레 “현장을 뛰어다니며 취재하는 기자 모습을 보니 좋다”라고 응원해줬다. 그가 QGP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알아 지식의 경계를 확대하길 응원한다. 윤 교수는 제네바에 LHC를 구경하러 오라고 말했다. 2020년 말까지 시설 업그레이드를 위해 가동을 중단한 상태여서 돌아보기에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나도 조만간 제네바공항에 내릴지 모르겠다. 물리학자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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