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영결식에서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추모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지난 2월 10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영결식에서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추모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설 연휴 동안 격무에 시달리다 집무실 의자에 앉아 숨진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이국종(50) 아주대 의대 교수(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를 비롯한 응급의료센터 의료진들의 건강 상태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이국종 교수 역시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한 황반변성 등의 질환으로 왼쪽 눈이 실명에 가까운 상태이고, 장시간에 걸친 격무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어깨, 치아 등의 건강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지난 1월 아주대병원 본관 1층에 있는 외래환자 진찰실에서 이국종 교수를 만났다. 2017년 12월 주간조선 ‘올해의 인물’ 선정 인터뷰 때 만난 뒤 약 1년 만의 만남이었다. 수요일이었던 이날은 마침 이 교수가 외래진료를 보는 날이었다. 이 교수는 지난해 펴낸 저서 ‘골든아워’에서 “외래진료를 볼 때는 아무래도 마음이 낫다”며 “갖은 고난을 겪고 살아난 환자들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당시 이 교수를 만나 “건강은 좀 괜찮으시냐”고 묻자 그는 “안 괜찮다”면서도 “올해가 더 힘들 텐데 걱정”이라고 했다. 1년 전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그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그는 “요즘은 그때보다는 씻고 자고 한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 교수는 이날 기자와 만났을 때 닥터헬기 착륙장과 관련된 어려움을 토로했다. 당시는 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를 상대로 “닥터헬기 소리가 시끄러우니 밤에는 뜨지 말라”는 민원이 제기돼 공분이 일던 시점이었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경험한 자신의 기준에 비춰보면 한국의 권역외상센터 설립과 운영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고 토로했었다. 상황이 언제나 만족스럽지 못하고, 동료 집단의 견제와 비방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당시 그의 말이었다.

이 교수는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늘 외부에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의 건강 상태를 대략적으로나마 알아보기 위해서 김지영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프로그램매니저를 접촉해야 했다. 김 매니저는 이 교수가 저서에서 “나는 김지영이 지금의 외상센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할 만큼 외상센터 설립에 기여한 인물이다. 현재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운영을 총괄하면서 매일 이 교수를 근처에서 지켜보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김 매니저에 따르면 이 교수의 건강 상태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실명에 가까운 왼쪽 눈 시력 저하다. 흔히 이 교수의 안과 질환에 관해서는 왼쪽 눈 망막 혈관이 폐쇄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의료진에 따르면 이 교수가 현재 시달리고 있는 안과 질환은 황반변성이다. 김 매니저는 지난 2월 13일 전화통화에서 “교수님이 고혈압인 데다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한쪽 눈 혈관이 막혀 황반이 변성돼서 눈이 잘 안 보인다”며 “계속 진료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황반변성은 시세포의 대부분이 몰려 있는 황반이 변성돼 굳어지는 질환이다. 65세 이상 인구에서 실명 빈도가 가장 높은 질환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60대 이상의 고령층에서 주로 발병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 심혈관계 질환도 발병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 교수는 올해 50세가 됐다.

김 매니저는 이 교수의 경우 요즘 수술은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했다. 일주일에 대략 1~2번 정도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시력이 좋지 않은데 수술은 괜찮냐’는 질문에 그는 “교수님은 수술을 워낙 잘하시니까 그래도 문제없이 하신다”며 “이제 아래 교수들이 대신 수술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있는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의 경우 정경원 교수와 권준식 교수가 주로 수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혈압에 황반변성 시달려

수술이 줄었다고 해서 이 교수의 업무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다 보니 신경써야 할 행정 업무가 많고, 아주대 의대 교수이다 보니 연구도 해야 한다. 대학교수의 경우 일정 기간 동안 논문을 쓰지 않으면 승진할 때 불이익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응급환자의 경우 닥터헬기를 타고 출동해서 헬기 위에서 응급처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강도가 살인적이다. 이 교수는 요즘 일주일에 2~3번 당직을 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말에만 잠깐 집에 갔다온다고 한다.

이 교수는 설 연휴 윤한덕 센터장이 숨진 뒤 자신에게 몰려드는 언론의 취재 경쟁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매니저는 윤 센터장이 숨진 뒤 과열된 취재 경쟁에 대해 “너무 안타까운 일이고 망자한테도 죄송한 일”이라며 “처음에 한두 번 (기자들) 연락온 것에 응했었는데 전화가 계속되다 보니까 (이 교수가) ‘센터장님이 돌아가셨는데 왜 내가 계속 언급되냐’며 부담스러워 한다”고 했다. 그는 “사회에서 제일 일 많이 하는 세대가 40~50대 아니냐”며 “이 교수님은 과하게 일을 많이 하긴 했는데 그래도 대학교수니까 사회적 지위도 있고 그런 거 아니냐. 특별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교수의 경우 응급환자를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한 헬기출동을 하면서도 종종 부상을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현장 헬기출동으로 인해 오른쪽 어깨가 부러졌고 왼쪽 무릎은 헬기에서 뛰어내리다 꺾여서 다친 적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를 갈아서 치과 질환에도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주변에 따르면 이 교수는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행하는 건강검진은 매년 받는다고 한다. 정기 건강검진의 경우 일정 기간 동안 받지 않으면 사업장 사업주가 벌금을 받는다. 이 교수는 본인이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인 만큼 아주대병원의 다른 교수들에게 이따금 안과 등의 진료 분야에서 진찰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 외에도 전국의 권역외상센터에서는 수많은 의료진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명절 때면 지역에 있는 1·2차 의료기관들이 문을 닫으면서 응급실에서 일하는 종합병원 의료진들의 근무 강도가 더 높아진다. 이국종 교수는 지난해 펴낸 저서 ‘골든아워’에서 자신의 건강 상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지만 다른 외상외과 의료진의 고충에 대해서는 털어놓았다. 저서에 따르면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만도 수많은 전담간호사들이 신체적 부담과 정신적 부담으로 인해 유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국에는 17곳의 권역외상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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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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