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만난 고졸 유튜버 ‘현선우’는 “고졸이 주목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월 26일 만난 고졸 유튜버 ‘현선우’는 “고졸이 주목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솔직히 말하자면 저나 다른 누군가가 ‘고졸’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별난 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사는 모습이거든요.”

24살 유튜버 ‘현선우’는 얼마 전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현선우’에 ‘고졸로 산다는 건 ft.학벌주의’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은 그의 채널 구독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봤고 각자의 의견을 담은 길고 정성 어린 댓글들이 수십 개 달렸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채 고졸로서 살아가며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담담히 얘기한 현선우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한 것이다.

사실 ‘현선우’는 가명이다. 지난 2월 26일 충북 청주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현선우’에게는 24살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남들이 다 가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채 여전히 진로를 모색하고 있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는 세 달 정도 됐다.

“처음부터 유튜버를 꿈꾼 건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사실 창업하려고 했습니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은 꽤 일찍부터 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께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크게 혼난 적이 있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대학진학률이 85%에 육박해 모두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당연시 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점차 변하고 있다. 통계자료가 이를 증명한다.

교육부의 2018 ‘간추린 교육통계’를 보면 2018년 대학진학률은 69.7%에 그친다. 그나마 2017년 68.9%에 비해 아주 소폭 증가한 추세다. 대학진학률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떨어져왔다. 2008년에만 해도 83.8%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했다. 사상 최대로 높은 수치였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감소세가 뚜렷해지더니 2016년에는 70% 밑으로 진학률이 떨어졌다.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특이한 사람 취급받는 일이 10년 새 줄어들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고졸’이라는 것은 어떤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킨다. 가정형편이 어렵다거나 학업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적응을 잘 하지 못했거나 특별한 신념이 있어 저항적인 사람으로 취급받곤 한다. 그러나 점차로 떨어지는 대학진학률은 ‘고졸’이 또 다른 선택일 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외부환경에 떠밀리듯 결정하는, 혹은 굳은 의지로 결심하는 일이 아니라 ‘대학 진학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일’이라는 것이다.

대학에 가지 않는 이유는?

유튜버 현선우는 그런 선택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데는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 큰 영향을 줬다. 현선우는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손위 형제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봤다. 그러나 그중 2명은 4년제 대학을 나와 또다시 시험 준비를 해 공무원이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또다시 처음부터 진로를 고민하고, 그러다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는 것을 보고 굳이 학업에 뜻을 두고 있지 않으면 대학에 진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선택한 일이다.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고민해볼 때 대학에 가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8년 ‘청년 사회·경제실태’ 보고서를 보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이유로 꼽은 것 중에서 ‘피치 못할 사정’은 의외로 적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진학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15.8%에 그쳤고 ‘성적이 부족해서’ 가지 않았다는 사람도 18.0%였다. 더 많은 수는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25.9%), ‘빨리 취업해 돈을 벌고 싶어서’(35.8%)처럼 자신의 희망에 따라 고졸을 선택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이유 역시 지난 10년 사이 변해왔다. 지금 30대인 고졸들만 하더라도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사람이 19.2%에 달했다. 그러나 20대 고졸 중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사람은 9.3%에 그쳤다. 그저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아서’ 가지 않았다는 20대는 28.3%였지만 30대는 24.8%였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고졸을 대할 때 ‘떠밀려 고졸로 살아가며 빈곤에 시달리고 차별받는 모습’만 상정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정상’인 사회에서 고졸을 선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타의에 의해서 시작됐을지 몰라도 ‘고졸’은 이제 그저 소수의 특이한 사람들만이 아니다.

고졸 유튜버 ‘초코한나’의 유튜브 방송 캡처.
고졸 유튜버 ‘초코한나’의 유튜브 방송 캡처.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 고졸

유튜버 ‘초코한나’는 맨 처음 고졸을 선택한 이유가 ‘분노’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초코한나’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 ‘한나TV’를 운영하는 그는 최근 자신이 살면서 겪은 이야기들, 자신의 생각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영상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예체능계열 진로를 꿈꾸고 있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나서는 방황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저를 ‘답 없는’ 학생으로 봤죠. 선생님들은 제가 대학에 가지 않고 헤매는 삶을 살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분노했어요. 저를 무시하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자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자신을 보여주는 유일한 길이 아니었다.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매달리고 있을 때 초코한나는 취업을 준비했다. 갖은 노력 끝에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저는 고졸이 어떤 장애물이나 차별의 근거, 나와 남을 다르게 만드는 특별한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거기에 집착할수록 고졸인 내가 특이하게 보일 거 같았죠. 회사에 장학금을 주며 대학에 진학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저는 한 번도 신청하지 않았어요. ‘남들만큼’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따는 학위는 별 의미 없을 것 같았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8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 중계방송을 하다가 전업 유튜버를 꿈꾸며 여전히 진로를 모색하고 살고 있지만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튜버 현선우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을 보면 다섯에 둘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대학을 가나, 가지 않나 방황하며 고민하는 건 똑같죠. 만약 제가 대학에 갔더라면 학점을 쌓느라 보낸 시간이 아까웠을 거예요. 뭘 이뤄냈기 때문이 아니에요. 비록 모든 것이 다 잘되지는 않았지만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 후회하지 않아요.”

마냥 쉽지만은 않은 고졸의 길

윤민종 부산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학업성취도가 고졸로 머무르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고졸이 늘어나는 이유를 그 자체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고졸의 비진학 과정을 살펴보면 여러 조건들이 오랫동안 얽혀 결정 배경을 형성하고 고졸 본인이 그 가운데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선우와 초코한나의 예를 들어보자. 현선우는 “가정형편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주 어렵지는 않지만 지방의 서민 가정에서 무작정 4년제 대학에 진학해 기약 없는 취업활동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형제들이 이미 대학에 진학했다가 취업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한 경험도 있었다. 초코한나는 경쟁이 심한 예체능계열 진학에 실패했었다. 그 탓에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억지로 대학에 진학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 고졸로서 가장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윤민종 교수는 “고졸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입시 중심으로 움직이는 학교 현장에서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이 고졸이었다는 말이다. 특히 인문계에서 대학 진학 대신 고졸로 남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의 결정 과정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고졸로 살아가는 일이 마냥 확신에 차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코한나도 현선우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산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들은 아직 사회·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청년 사회·경제 실태’ 보고서에서 조사에 응한 15~39세 청년 3000명 중 ‘우리 사회가 고등학교 졸업자에게 적절하게 대우해주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5.9%에 불과했다.

학업에 종사하거나 취업활동, 직업훈련 어느 것도 하지 않는 이른바 ‘니트(NEET)’ 비율도 대졸보다 고졸에게서 유의미하게 많았다. 고졸인 니트가 니트로 지낸 기간은 평균 84개월이나 됐는데 84%의 니트가 1년 이상 학업·취업·직업훈련 어느 것도 받지 않고 지냈다고 말했다. 심리적인 이유가 컸다. 경험이 부족해서 니트로 지냈다는 사람은 31.6%에 그쳤지만 자신감이 결여됐다(43.0%)거나 사회의 편견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18.6%)는 답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가명을 써주기를 요청한 고졸 유정화씨는 “고졸로 살기는 너무 힘들다는 것을 뒤늦게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취업하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해 고졸을 선택했지만 “잘사는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시 돌아가도 그 상황에서는 대학 진학을 선택했을 것 같지 않아요. 고졸이 된 것을 후회한다기보다 어떻게 하면 고졸도 성공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요.”

통계자료를 보자.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고졸의 58.7%는 앞으로도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질은 썩 좋지 않다. 대학 재학 이상의 청년들이 사무직으로 많이 취직하는 것에 비해 고졸의 직장은 서비스업이나 판매업인 경우가 더 많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대졸 취업자의 60.5%가 사무직 종사자지만 고졸은 15.3%에 그쳤다. 대신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율은 대졸이 16.7%, 고졸은 27.3%로 차이가 났다.

유튜버 현선우 역시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 취업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고 설사 받는다고 하더라도 뒤늦게 실력을 키울 방법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개 서비스업이나 판매업에 종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비율도 높고 임금 수준도 낮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고졸이 특별하지 않은 사회를 향해

남재욱 이화여대 사회과학원 연구교수는 “저임금·비숙련 고용이 반복될수록 고졸이 낮은 사회적 지위를 탈피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소외된 집단 중 하나이지만 사실 이들을 위한 사회적 제도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남 교수는 “고졸 청년의 문제가 대졸 청년의 문제와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대부분이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는 교육환경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고졸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종종 고졸 중에는 “웬만하면 대학에 진학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10년간 고졸로 지내다가 올해 대학에 진학한 최영호씨는 고졸인 후배들에게 “수능시험을 치라”고 말한다.

“사회적 차별이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고졸이기 때문에 받는 직접적인 차별은 잘 못 느꼈습니다. 요즘 세상에 ‘고졸이니까 그렇지’ 면박을 주는 사람도 없죠. 그러나 똑같은 사무직이라면 고졸보다 대졸을 선호하는 사회에서 고졸 앞에는 장벽이 하나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토익점수, 경력이 다 괜찮아도 대졸을 먼저 선택하는 회사도 있었습니다. 제 고집만으로는 취업활동을 하기 어려워 뒤늦게 대학에 가기로 했습니다.”

한국 사회만큼 대학진학률이 높은 사회는 없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아직 OECD 가입국가 중 가장 높다. 한국 다음으로 높은 캐나다와 일본이 60%를 갓 넘는 진학률을 보인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프랑스와 독일은 45% 이하다. 높은 진학률 수치는 한국 교육의 많은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사교육비부터 과도한 경쟁, 무너진 교육서비스 체계까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대학진학률이 가져오는 문제는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고졸은 별종이 된다. 윤민종 교수는 대학에 가려고 노력하다가 낮은 성적 때문에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한 고졸의 사례를 들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제출한 이 사례에서 뒤늦게 대학 진학을 포기한 고졸 J씨는 학교에서 “소외당했다”고 말했다. 진로상담이란 ‘갈 수 있는 대학’을 알려주는 것에 그쳤고 만약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조언을 얻을 곳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유튜버 현선우 역시 어떤 조언도 얻지 못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그는 대학 진학 대신 창업을 꿈꿨다. 당시만 해도 현선우의 창업 아이템은 참신한 것이었지만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자금을 모으기 시작할 무렵에는 평범한 것이 되어버렸다. 현선우는 고등학교 재학 내내 별다른 도움 없이 혼자서 창업을 꿈꿨지만 결국 성인이 되고 직접 부딪히고 나서야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고졸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도움을 받아야 한다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보다 더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는 만큼 그 시간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누군가가 도와줬더라면 더 좋았을 테죠.”

현선우의 말처럼 고졸이 되기를 선택하고 결정한 사람을 돕는 제도는 필요하다. 제도를 마련하기에 앞서 점점 늘어가는 고졸이 떠밀려 낙오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인식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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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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