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런던 도심을 메운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 영국 시위 역사상 최대인 100만여명이 모였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3일 런던 도심을 메운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 영국 시위 역사상 최대인 100만여명이 모였다. ⓒphoto 뉴시스

‘정치운동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지난 토요일(3월 23일) 런던 시내 중심부를 하루 종일 점령한 브렉시트 반대 시위에 참가한 후 느낀 감상이다. 100만여명이 모여서 런던 중심가를 하루 종일(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령한 시위치고는 너무나 평화로웠다. 시위 군중의 얼굴에는 긴장감이나 분노나 흥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가 들고 다니는 구호판에 적힌 문구들은 유머를 지나 철학적이기까지 했다. 피식 웃음이 나게 만드는 것들이 부지기수였다.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나온 할아버지, 어깨에 아들을 올린 아버지, 심지어는 반려견까지 끌고 나온 시위대는 정말 가족 소풍을 나온 듯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시위라기보다는 축제였다. 평소 주말마다 트라팔가광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시위를 많이 보아왔지만 이번 시위대의 표정이나 분위기만큼 평화로운 시위는 처음이었다. 특히 최루탄과 화염병과 돌이 마구 날아다니던 1970~1980년대 한국의 시위 현장만 보아온 나로서는 개안(開眼)의 경지에 가까운 문화 충격의 경험이었다. 영국인의 속살을 들여다보겠다는 속셈으로 영국 정치 활동에 발을 담그고 작은 활동은 해왔지만 영국 주민의 일원으로 이런 식의 대규모 정치 현안 시위에 참가해보기도 처음이었다. 특히 시의원으로 있는 딸과 같이한 의미 있는 첫 정치행사이기도 해서 두고두고 추억이 될 듯하다.

나는 이날 딸이 시의원으로 있는 런던 해머스미스 풀럼 자치구 노동당 당원과 유럽운동(European Movement) 회원의 합동 시위에 손님 자격으로 참가했다. 원래는 내가 속한 킹스턴 자유민주당 시위대에 참가해야 하지만 딸의 강권에 못 이겨 적(?)인 노동당에 합류한 셈이다. 결국 어린 딸을 어깨에 메고 나온 킹스턴 지역구의 에드 데이비 하원의원(나와 같은 자민당 소속)을 만나 미안함에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하긴 이번 시위는 보수당을 뺀 영국의 범정당 브렉시트 반대 민간기구인 ‘국민투표운동(The People’s Vote Campaign)’이 주관한 행사였다. 자민당, 노동당, 녹색당이 모두 시위에 참여했으니 어느 정당의 시위대에 속했건 정색을 하고 따질 일은 아니었다.

이번 시위는 100만명 이상이 참가한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기획되고 준비되어서 굉장히 다양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참가했다. 영국 전국은 물론 파리, 로마, 암스테르담 같은 유럽국가에서도 왔다. 유럽 각국에 사는 영국인과 함께 상당한 숫자의 유럽인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상당히 잘 치러진 멋진 행사였다. 내 옆의 부부는 이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아침에 파리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왔다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젊은 이탈리아인 부부는 자신들은 로마에서 영국으로 여행 온 김에 시위 소식을 듣고 호텔에서 복사용지 얻어서 어설프나마 구호를 적어서 들고나왔다고 했다. 물론 자신들이 영국 국내 사안에 관여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옳은 일을 하는 영국인들을 도우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94세의 노인이 휠체어를 타고 참여한 모습도 보였다. 안내견을 끌고 온 시각장애인도 있었다. 개에게 EU 깃발로 된 옷을 입혀 데려오고 아이 얼굴에 새파란 EU 색을 칠해서 데려온 가족도 있었다. 내가 목에 걸고 있던 구호판에 그려진 태극기나 ‘바보짓, 바보’라는 한글 구호를 보고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차리는 시위 참가자들도 있었다. 한국인이 왜 브렉시트를 반대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2주 동안 310㎞ 걸어온 사람도

영국 언론에도 다양한 시위대의 사연이 소개됐다. 기사에 따르면 로마에 사는 20여명의 영국인들은 그룹을 만들어서 시위에 참가하러 왔다. 데본에서 온 97세의 2차대전 참전용사는 증손자를 포함한 4대가 함께 참가해 화제를 불러모았다. 브리스톨에서 오는 런던행 기차는 아침부터 시위대 인파가 전세를 냈다. 스코틀랜드보다 더 북쪽인 하이랜드 인버네스에서부터 밤을 새워 달려온 사람들과 전날 런던에 도착해 인근 호텔에서 자고 왔다는 사람도 수도 없이 많았다. 하이랜드보다 더 위인 에버딘 북해 바닷가에서 12시간을 운전해 겨우 시간에 맞춰 온 사람까지 있었다. 가히 영국 전역에서 모여든 모습이었다.

심지어 63세의 스완지라는 시민은 2주 동안 310㎞를 걸어 런던까지 왔다. 그는 “내가 만일 이번에 뭔가를 하지 않으면 남은 여생 내내 후회할 거라는 생각에 도보여행을 결심했다”고 했다. 오는 도중에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중에는 브렉시트 찬성자도 있었고 반대파도 있었다 한다. 그는 “어찌되었건 우리는 브렉시트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할 듯하다”면서 “내가 만일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뉴스만 듣고 있었다면 미쳐버렸을 것”이라고 뿌듯해했다는 게 기사의 전언이다.

그런가 하면 정당이나 단체 깃발을 앞세우고 참가한 그룹들도 많았다. 시위 현장의 깃발들은 에든버러, 뉴캐슬, 리버풀, 센아이브, 브라이턴 등 정말 영국 각 곳에서 온 것들이었다. 영국은 정당의 중앙당이 지구당에 해주는 지원이 거의 없어 지구당별로 각자도생해야 한다. 해서 런던 시위에 시골 지구당이나 단체들이 참여하려면 버스비가 없어서 못 오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도시의 지구당들이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해머스미스 노동당이 리버풀, 스트라포드 지역 반(反)브렉시트 단체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지난 3월 23일 브렉시트 반대 시위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각양각색의 구호를 내걸고 분장을 한 시위대의 모습이 이채롭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3일 브렉시트 반대 시위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각양각색의 구호를 내걸고 분장을 한 시위대의 모습이 이채롭다. ⓒphoto 뉴시스

‘1700만명이 나치에도 투표했었다’

이날 런던 하이드공원에는 아침부터 인파가 모여들어 일찍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100만여명의 인파가 낮 12시에 하이드공원에 모여 연설을 듣고 동지들끼리 담소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2시경부터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움직이던 인파가 결국 멈춰 서는 바람에 중간에 갇힌 사람들은 거의 2시간을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같이 온 동료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도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웃고 담소를 나눴다. 보통의 경우 영국인은 얼굴 모르는 사람과는 말을 잘 섞지 않는다. 심지어는 같은 마을에 살면서 서로 얼굴을 아는 이웃과 기차역에서 10여년간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만나도 알은척도 안 하고 마지못한 목례나 눈인사만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날은 모두 쉽게 말을 섞고 대화를 나누었다. 같은 생각을 갖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자신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시키기 위해 같은 주장을 하는 데서 동지의식을 느낀 듯했다. 시위 중간중간 구호가 선창되면 서로 소리를 지르고 박수 치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우린 뭘 원하는가? 국민투표! 언제? 지금 당장!(What do we want? People’s vote. When do we want it? Now!)”이라고 외쳐댔다.

이날 시위 현장에는 없는 게 참 많았다. 우선 시위 현장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경찰이 보이지 않았다. 100만명이 모인 시위 현장에 7시간 동안 있었지만 경찰은 두세 명 빼고는 못 봤다. 이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경찰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경찰도 시위대에는 관심도 없는 듯 아주 심드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확성기도 없었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현장이라고는 하지만 줄창 자신의 말만 일방적으로 해대는 공해(公害) 같은 확성기는 없었다. 확성기가 없으니 당연히 노래도 없었고, 비명소리 같은 살벌한 구호도 없었다. 시위대 옆에 늘어서서 마실 것과 주전부리를 파는 임시 가판대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옆에 서서 깃발이나 구호판 등 시위 용구를 나누어 주지도 않았다. 모두들 자신의 시위 용구는 직접 준비해 오거나 자신의 돈으로 구입해서 왔다. 스티커도 자기 돈으로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시위를 조직한 주최자가 나누어 주는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시작부터 해산까지 7시간을 한 번도 앉지 않고 내내 서 있었다. 가다가 서고 섰다가 다시 걷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나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수많은 인파 속에 그렇게 장시간 서 있었음에도 불쾌한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분위기가 호의적이었고 동정적이었다. 거기다가 주위의 시위대들이 들고 다니는 익살맞고 재치와 재기가 철철 넘치는 구호판 문구를 읽는 재미가 정말 쏠쏠해 피로를 잊었다. 구호판을 읽고 사진을 찍다 보니 언제 그렇게 시간이 갔는지 몰랐다. 브렉시트 반대 의사를 나타내려는 분장과 화장을 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시간과 피로를 못 느끼게 한 요인이었다. 특히 날카로운 칼날을 썰렁한 유머 속에 숨기는 문구는 정말 영국인다웠다. 그중 뛰어난 구호를 몇 개 소개해 본다.

“1700만이 나치에 투표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투표하는지 몰랐었다.(17million voted for Nazis. They did not know what they were voting for.)”

2차대전 전 나치당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히틀러가 집권하게 함으로써 독일은 물론 유럽 전체를 전쟁에 휩싸이게 한 독일 유권자들을 꾸짖는 구호다. 이 문구는 과거의 독일인을 꾸짖는 듯해도 사실 2016년 브렉시트 찬성 투표를 한 영국인 1741만742명을 ‘바보들’이라고 욕하는 구호이다. ‘어리석은 니네들은 뭔지도 모르고 투표했다’는 말이다. ‘1700만’이라는 동일한 숫자를 찾아낸 날카로운 눈도 참 놀랍다. 이날 구호 중 가장 섬뜩한 내용이었다.

“브렉시트는 당신의 춤보다 더 형편없다.(Brexit is worse than your dancing.)”

메이 총리가 지난해 10월 보수당 전당대회 중 무대 중앙으로 연설하러 나오면서 리듬과 전혀 맞지 않는 춤으로 온 세상을 웃겼다. 그 춤을 빗대서 메이 총리와 브렉시트를 욕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메이의 똥구멍, 다시 생각해봐!(Brexit MaY arse, Think Again!)”

영어에서 뭔가를 욕할 때 ‘XXX my arse’라고 하면 바로 “XXX라고? 개뿔!’이라고 대꾸한다. 그래서 직역하면 ‘브렉시트 엿먹어!’ 이런 말인데 ‘my’가 아니라 대문자 소문자를 섞어 써서 ‘MaY arse’이다. 바로 MaY에서 중간 소문자 a를 대문자로 바꾸면 MAY, 즉 메이 총리를 뜻하게 된다. 해서 ‘메이 X구멍’이 되고 의역을 하면 ‘메이 총리 엿먹어!’가 된다. 또 중간의 a를 빼버리면 ‘Brexit My Arse’가 되어 바로 ‘브렉시트? 엿먹어!’ ‘브렉시트? 개뿔’이라는 뜻도 된다. 소위 말하는 셰익스피어 후예답게 영어 말장난으로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다.

우주인 복장을 한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 ⓒphoto 뉴시스
우주인 복장을 한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 ⓒphoto 뉴시스

‘이튼메스’, 이튼 출신 두 명이 만든 혼란

‘이튼메스(Eton Mess)’라고 쓰고 그 옆에 이튼메스라는 딸기와 생크림이 들어간 후식 그림과 함께 전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과 전 런던시장이자 직전 외무장관인 보리스 존슨 사진을 옆에 붙여놓은 구호판도 있었다. ‘이튼메스’라는 디저트는 실제 있다. 영국 사학 명문 이튼스쿨이 라이벌인 해로스쿨과 국기(國技) 같은 크리켓 시합을 할 때 먹는다는, 절대 아름답다고 볼 수 없는 디저트를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튼(Eton)이 만든 혼란(mess)’이라는 뜻으로 썼다. 평지풍파로 브렉시트에 불을 붙인 데이비드 캐머런과, 브렉시트가 설마 통과되겠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인기 전략으로 브렉시트 찬성 전선에 앞장선 보리스 존슨이 모두 이튼스쿨 출신임을 실제 존재하는 디저트 이름을 이용해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이튼스쿨 출신 둘이 만든 혼란’이라는 말이다.

말장난은 또 있다. “그들을 떠나지 마세요.(Don’t be-leave them.)” 얼핏 보면 흡사 ‘EU를 떠나지 마세요’라는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be-leave’를 붙여서 발음해보면 바로 믿지 말라는 ‘believe’라는 단어 발음이 된다. 해서 진짜 뜻은 ‘그들을 믿지 마세요(Don’t believe them)’이다. 브렉시트를 주장하고 이를 밀어붙이는 보수당 인사들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이렇게 영국인은 조어의 천재들이다.

“성기능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Mass debate is required to cure impotence)”라는 구호를 보자. 여기서 ‘많은 토론’이라는 ‘Mass debate’를 붙여 발음하면 자위행위를 뜻하는 영어 ‘masturbate’와 발음이나 단어 모양이 비슷해진다. 그래서 결국 ‘자위행위가 성기능 장애를 치료한다’는 말이 된다. 바로 현재 영국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국가를 기능장애 상태로 만들었으니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절묘한 문구들이 많았다. “테레사! 절망적이지? 빠져나갈 방법이 있어! 바로 국민투표 말이야!(In despair Theresa? There is a way out People’s Vote!)” “너는 내 엄마가 아니야. 테레사!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어!(You are not my mum, Theresa. You can not tell me what to do!)” “테레사에게서는 트럼프 냄새가 난다.(Theresa smell like Trump.)”

“심지어는 내 고양이마저도 브렉시트라면 진절머리를 낸다.(Even my cat pissed off with Brexit.)”(실제 자기 고양이 사진을 붙여놓았다.) “메이는 3R(사퇴, 투표 무효화, 재투표)이 필요하다.(May need to learn 3R-resign, revoke, referendum.)” “우리들의 미래를 파괴하지 마라.(Stop Destroying Our Future.)” “브렉시트가 우리 미래를 망친다.(BrexShitting Our Future.)”(Brex에 똥 싼다는 shitting을 붙여 발음을 비슷하게 만들었다. 십대 소년소녀들이 주로 들고 있었다.)

“이민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친구들의 유전자를 희석시키기 위해서라도.(We need immigration. To dilute these guys DNA.)”(이 구호판에는 브렉시트 원흉 3명인 캐머런 전 총리, 존슨 전 외무장관, 나이젤 파라지 전 영국독립당 당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 세 친구들이 우리까지 멍청하게 만드니 외국인이라도 받아들여 우리 유전자를 희석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비록 원흉 3명만 거론했지만 결국 브렉시트에 찬성한 1700만명의 멍청한 유전자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숨은 뜻이 담겼다.)

셰익스피어 후예답게 구호 하나하나가 유머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촌철살인의 시퍼런 칼날이 숨겨져 있다. 영국인들의 평소 삶의 태도와 같이 말이다. 영국인들은 절대 말을 격하게 하지 않는다. 집에 불이 나서 가산이 다 타는 재난을 당했어도 친구들에게 “우리 집에 일이 좀 생겨서 못 갔다(Something has happened in my house so I could not go)”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말이나 표정은 부드럽지만 절대 약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더 무서운 사람들이다. 100만명이란 엄청난 인원이 모여서 국가 중대사를 외치는 시위를 하는데 이렇게 평화롭고 즐겁게 축제 하듯 해서 조그만 사고 하나 없었다. 정치를 한다고 악쓰고 소리 지르고 서로 죽일 듯이 하지 않고도 이들처럼 하루 나들이 하듯 즐겁고 유머 넘치고 평화롭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도 정치도 사생결단이 아니다

인생이란 사생결단이 아니라는 걸 이번에 영국인들을 보고 새삼 배웠다. 영국인들이 평소 가장 좋아한다는 구호를 다시 한 번 소개하자면 ‘Keep Calm, Carry On’이다. ‘아무리 험한 일이 닥쳐도 호들갑 떨지 않고 꾸준하게 뭔가를 이루어 나가자’는 뜻이다. 이런 영국인들답게 시위도 하나의 축제였다. 정치는 심각한 것이어서 반드시 진지하고 사생결단하듯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영국인들의 자세 같다. 그렇다고 정치의 질이 낮아지지도 않을 터이니 말이다.

자신들이 그렇게 반대해온 브렉시트가 막바지에 도달해 잘못하면 진짜 통과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분노나 초조는커녕 모두의 얼굴에는 미소와 행복이 가득 차 보였다.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을 앞에 둔 사람들 얼굴에 미소와 행복이 가득하다니? 비록 상황은 최악이지만 그래도 가슴에 품은 이들의 여유와 긍정의 자세가 이해하긴 힘들지만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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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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