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201억원, 410억원, 610억원. 최근까지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받았거나 곧 받을 예정인 퇴직금의 액수다. 아무리 퇴직금이라지만 ‘억대 연봉’을 꿈꾸는 일반 직장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금액이다. 직장인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총수들의 ‘퇴직금 잔치’를 향한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그룹의 경영 실패를 인정하고 자의 혹은 타의로 물러난 기업 총수들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퇴직금까지 챙기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 또한 거세지고 있다. 총수의 퇴직금을 어떻게 산정하고 있는지 외부에 알리지 않는 기업들도 많아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웅렬 코오롱그룹 전 회장이 퇴직금으로 410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액 퇴직금 논란이 불거졌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깜짝 은퇴’를 선언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 4월 1일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코오롱그룹 계열사 5곳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지주회사인 ㈜코오롱을 비롯해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글로벌, 코오롱글로텍, 코오롱생명과학, 코오롱베니트 등 자신이 등기이사로 몸담은 6곳 중 5곳에서 지난해 총 455억7000만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6개 회사 중 코오롱베니트는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이 아니어서 코오롱베니트에서 받은 이 전 회장의 연봉은 제외된 수치이다.)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 ⓒphoto 뉴시스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 ⓒphoto 뉴시스

이웅렬 전 회장 퇴직금 410억원

이웅렬 전 회장은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 중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받아 ‘보수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뒤를 이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CJ, CJ제일제당, CJ ENM 등 3개 회사로부터 160억1100만원을 받은 것과 견주어도 295억원 이상 많은 보수를 받았다.

이웅렬 전 회장의 고액 연봉 비결은 바로 퇴직금이다. 이 전 회장의 보수 중 410억4000만원(총보수의 90%)은 퇴직금(퇴직소득+기타 근로소득으로 분류한 퇴직금)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코오롱인더스트리에서 180억9000만원을 수령한 것을 비롯해 코오롱글로텍(89억8000만원), 코오롱글로벌(83억5000만원) 등에서 거액의 퇴직금을 챙겼다.

이 전 회장은 최근 퇴행성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의 판매 중단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코오롱생명과학에서도 32억2000만원을 퇴직금으로 받았다. 그는 2010년 3월부터 2018년 12월 말까지 코오롱생명과학의 사내이사로 활동했다. 인보사는 이 전 회장이 19년 동안 1100억원을 쏟아부은 야심작이었기에 이번 사태를 두고 이 전 회장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그가 32억원2000만원의 퇴직금까지 챙긴 것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퇴직금으로 따가운 눈총을 사고 있는 인물은 또 있다. 바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다. 박 회장은 경영실패를 책임지기 위해 2017년 금호타이어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금호타이어는 최근 10년 동안 워크아웃과 구조조정 등 끊임없는 부침에 시달렸다. 지난 2009년 워크아웃에 돌입한 뒤 2014년 졸업했으나 3년 만인 2017년 다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당시 박 전 회장은 자신의 경영실패를 인정하고 “금호타이어 경영에서 사퇴함과 동시에 금호타이어 우선매수권을 포기한다”며 대표이사직을 스스로 내놓았다.

최근 박 전 회장이 그동안 지급 보류된 퇴직금 21억9400만원을 수령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퇴직금 수령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게다가 박 전 회장은 지난 3월 28일 그룹 회장직과 아시아나항공·금호산업 등 2개 계열사의 대표이사·등기이사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그가 받게 될 퇴직금 규모와 수령 여부가 다시 이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대기업 총수의 퇴직금은 어떻게 결정될까. 대다수 기업들은 내부에 임원 퇴직금을 산정하기 위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부 기업은 사업보고서 등을 통해 임원의 퇴직금 계산식을 공개하고 있다. 이는 일반 직장인의 퇴직금 계산 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

회장 퇴직금 비밀은 ‘직급별 지급률’

보통의 월급쟁이는 근속기간 1년당 한 달치 월급(퇴직 직전 3개월 동안의 월평균 급여)을 퇴직금으로 받는다. 즉 월평균 보수에 재직한 기간(연수)을 곱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그룹 총수의 퇴직금을 계산할 때에는 여기에 ‘특별한 숫자’가 곱해진다. 바로 ‘퇴직 시 직급에 따른 지급률(혹은 지급배수)’이다. 이 지급률은 대개 이사회가 결정하므로 기업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개 ‘1~6’ 사이에 머물고 있다.(지급률이 6일 경우엔 법정 퇴직금에 6을 곱한 금액이 최종 퇴직금이 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1849개 상장기업의 주주총회 소집공고 내용을 조사해 총 158개 기업의 임원 퇴직금 지급률을 파악한 결과에 따르면, 총 158개 분석 대상 기업 중 71%인 112개 상장기업이 직급별로 퇴직금 지급률을 차등화했다. 나머지 29%인 46개 기업은 직급과 무관하게 동일한 지급률을 적용하고 있었다.

또 차등지급률을 적용하는 기업들의 경우 최대지급률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112개 기업의 최대지급률을 비교해본 결과 ‘최대지급률 3’을 적용하는 회사가 65개사로 가장 많았다. 차등지급률 적용 기업의 평균 최대지급률은 2.86으로 나타났고 그 가운데 가장 높은 지급률은 6으로 조사됐다. 최대지급률 6을 기록한 기업은 대한항공, SK하이닉스, 유니드, JB금융지주, 오리온, 광주은행 등으로 조사됐다.

주요 대기업의 직급별 지급률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현재 LG그룹과 KT는 최대 지급률이 5다. 이에 따라 고 구본무 회장은 LG에서 지난해 퇴직금 210억원을 받았다. LG그룹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구 회장은 월 기본급 9600만원을 받은 12개월의 근무기간과 월 기본급 1억7700만원을 받은 22년3개월의 근무기간(총 근무기간 23년3개월)에 직급별 지급률 5배를 적용해 총 201억3600만원의 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같은 방식으로 황창규 KT그룹 회장의 퇴직금도 계산해볼 수 있다. 2014년 취임한 황 회장의 경우 지난해 연봉 14억5000만원을 받았으므로 오는 2020년 임기를 채우면 퇴직금이 3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4월 8일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퇴직금은 이웅렬 전 회장의 기록을 깰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아왔던 대한항공의 회장 직급별 지급률은 6으로 최고 수준에 달하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지난 3월 열린 대한항공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20년 만에 사내이사직을 박탈당했는데 이 즉시 조 회장이 받게 될 어마어마한 액수의 퇴직금에 관심이 쏠렸다.

대한항공은 2015년 주주총회에서 ‘임원 퇴직금 및 퇴직위로금 지급규정’을 변경하여 ‘회장’의 경우 재직 1년에 6개월치의 퇴직금을 받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종전 지급률 4를 6으로 상향 조정한 것이다. 조 회장은 1974년 12월부터 대한항공에 재직했고, 1992년 대표이사 사장에 이어 1999년 4월부터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았다. 2018년 사업보고서에 공개된 조 회장의 개별보수가 31억3000만원임을 감안할 때 퇴직금은 최소 61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법정 퇴직금(연봉 31억3000만원/12×39년=101억7000만원)에 회장직에 따른 지급률 6을 곱하면 610억원이 된다.)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퇴직금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경제개혁연대에서는 논평을 통해 “과도하게 계상된 퇴직금에 대한 박탈 내지 대폭적인 감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명백한 주주가치에 대한 훼손 사례가 될 것이며 이는 감시의무를 소홀히 한 이사회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퇴직금 두고 ‘진흙탕 싸움’

그룹 총수가 받는 과도한 퇴직금은 기업에도 큰 부담이 된다. 거액의 퇴직금 지급을 둘러싸고 수년간 소송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2012년 교원그룹 이정자 전 부회장은 장평순 현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은 1985년 교원을 설립한 공동창업자였다.

이 전 부회장 측은 약속한 퇴직금 300억원 중 200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교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교원 측은 이 부회장이 학습지 등 교원과 겹치는 사업을 준비하면서 해직된 것이라고 맞섰다. 결국 2013년 장 회장과 이 전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합의를 보면서 이 전 부회장 측이 소송을 취하했다. 하지만 교원그룹은 퇴직금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으로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어야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퇴직 시 적용하는 직급별 지급률을 공개하지 않는 곳이 아직 많다는 점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조사에서도 드러나듯 1849개의 국내 상장기업 가운데 약 8.5%에 해당하는 158개 기업만이 임원 퇴직금 지급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대다수 기업들은 여전히 임원의 퇴직금 지급률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400억원이 넘는 총수 퇴직금으로 문제가 된 코오롱그룹 역시 총수 등 임원의 직급별 지급률을 사업보고서에서 노출하지 않았다.

한국보다 기업 임원에 대한 퇴직금이 후한 미국에서는 임원 퇴직금 공시를 꼼꼼하게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국은 임원 퇴직금에 관한 별도의 법적 규제가 없으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공시 규정을 근거로 임원 퇴직금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상세히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 퇴직금을 포함한 임직원 사이의 보상금액 차이와 배율에 대해서도 상세히 공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세밀한 정보공개 때문에 CEO(최고경영자)가 받는 퇴직금 규모를 두고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또한 빈번하다.

한국에선 여전히 직급별 지급률 등이 공개되지 않다 보니 외부에서 어떤 식으로 퇴직급여를 산출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임원의 퇴직급여에 관한 정관 규정이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 ‘이사의 퇴직금은 주주총회의 결의를 거친 임원퇴직금지급 규정에 의한다’는 정도로 최소한의 근거만 두고 있다.

‘셀프 퇴직금’ 논란도 여전

주주총회에서 근거 규정을 승인받는다고 해도 퇴직금은 기본적으로 급여에 연동된다. 때문에 급여수준을 정하는 이사회 또는 대표이사가 금액을 결정하는 구조다. 퇴직금 지급률을 대표이사가 정하도록 하거나 퇴직금 이외에 상당한 규모의 퇴직위로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셀프 퇴직금’이란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재벌 총수 일가의 고액 퇴직금 논란은 여러 회사에 동시에 임원으로 재임하면서 퇴직금을 중복해서 받기 때문에 벌어지는 측면도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 총수의 과도한 퇴직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본 보수의 책정뿐만 아니라 지급률 개선, 겸직으로 인한 중복수령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희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지배주주 일가의 임원은 고속 승진을 통해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되고 근속연수도 매우 길며 여러 계열사의 임원을 겸하기까지 한다”며 “이런 현실에서 고액의 퇴직급여를 받는다는 것은 사익추구의 유형으로 비치고 사회적 형평성에도 위배된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지배주주 일가도 회사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만큼 합당한 보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며 “하지만 그 보수는 성과와 연동된 장기이연보수 체계 속에서 지급되어야 하지 생계보조수단이나 노후대책의 의미를 갖는 퇴직급여로 해결할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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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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