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관련 수요전망 워킹그룹 회의에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유승훈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관련 수요전망 워킹그룹 회의에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유승훈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산업부가 2030년의 최대 전력수요를 2년 전 제7차 기본계획의 전망보다 무려 10%나 낮춰 잡아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심지어 심각한 전력 부족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던 2010년의 제5차 기본계획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2년 전 전망치와 비교해 보면 당장 내년부터 최대 전력수요가 5.5GW 줄어들고, 2030년에는 한국형 표준원전 11기에 해당하는 11.3GW나 줄어든다는 것이다. 석탄발전소의 퇴출은 물론 제7차 기본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신규 발전소 건설 계획 중 상당 부분을 포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는 셈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면서까지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는 새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장 소극적인 8차 전망

기본계획을 만들고 있는 전문가들은 펄쩍 뛰고 있다. “학자적 양심을 걸고 맹세컨대 청와대나 산업통상자원부의 가이드라인은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수요 전망의 방향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작년 말에 일찌감치 결정된 것으로, 수요 예측의 핵심이라는 GDP 성장률을 제7차의 3.4% 대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내년도 전망치 2.5%를 근거로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처럼 앞으로 우리의 전력수요도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는 ‘과격한’ 전망도 내놓았다.

물론 청와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워킹그룹의 전문가들에게 직접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 정부가 탈원전과 탈석탄 정책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워킹그룹의 전문가들이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주장은 아무 설득력이 없다. 지난 4월 18일에서야 발표된 KDI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작년 말부터 고려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어설프고, 전력수요의 증가가 둔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설명이 필요하다. 2025년부터 5년 동안 전력수요가 거의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학자적 양심을 강조하려면 훨씬 더 솔직하고 겸손해야 한다. 전력수요 전망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분명하게 인정하고, 상당한 수준의 불확실성이 포함된 기본계획에 대한 과도한 확신을 경계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2년 사이에 3.4%에서 2.5%로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전망한 GDP 성장률을 근거로 작성된 수요 예측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전력수요 예측의 어설픈 축소가 자칫 심각한 경기 침체나 삶의 질 후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위험성도 분명하게 지적했어야만 한다. 충분한 전력 공급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업의 경제활동과 국민생활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2011년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위기에까지 내몰린 순환 정전 사태로 우리가 뼈아프게 경험한 사실이다.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전력수급기본계획은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던 발전과 송·배전 사업을 분리시켰던 2001년의 전력산업구조 개편으로 도입된 새로운 제도다. 전기사업자의 자율적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시장기능에 의한 전력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전기사업법 제25조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가 2002년부터 격년으로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발전소 건설에 8년에서 10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해서 어렵지만 15년 동안의 전력소비량과 최대(피크) 전력수요에 대한 전망과 함께 발전·송변전 설비의 확충 방안을 제시한다. 다만 제6차 기본계획은 순환정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혼란으로 연기되어 2013년에 수립되었다.

장기적인 전력소비량과 최대 전력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일단 여기에는 GDP 성장률이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된다. 하지만 그밖에 산업구조도 고려해야 하고, 전기요금에 따른 수요의 변동도 무시할 수 없다. 석탄·석유·가스 등의 연료 가격에 따라 수요가 달라지기도 하고, 가전제품과 냉난방 기기의 활용에 따라 늘어나는 전력수요도 고려해야 한다. 폭염이나 혹한과 같은 날씨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전력수요 예측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 중에서 어느 정도라도 중장기 예측이 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실제로 그동안 마련했던 7차례의 기본계획은 지극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합리적인 전망이라기보다는 정부의 정책적 결정을 수동적으로 합리화시켜주는 수단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다. 2002년 제1차 기본계획에서는 예측 마지막 해였던 2015년의 최대 전력수요를 67.8GW로 전망했었다. 그러나 실제 2015년의 최대 전력수요는 무려 원전 11기의 발전량에 해당하는 11GW나 늘어난 78.8GW였다. 2015년 예측치 중에서는 2008년의 제4차 기본계획의 77.2GW가 그나마 근접한 전망치였고, 2010년의 제5차 기본계획에서는 반대로 8GW나 초과한 86.8GW로 전망했었다. 이번에 워킹그룹이 제시한 내년도 최대 전력수요 86.3GW도 2010년의 제5차 기본계획의 전망치 97.4GW보다 11.1GW나 줄어든 것이다. 기본계획의 수요 전망은 도무지 믿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기본계획을 수립한 전문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옹색한 ‘학자적 양심’을 들먹일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원전 덕에 만성적 위기 벗어나

1970년대까지 우리의 전력 사정은 언제나 위기 상황이었다. 사정이 조금 나아진 것은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3억달러의 원조와 기술력으로 어렵사리 건설한 발전용량 59만㎾의 고리원전 1호기 덕분이었다. 원전 시대의 문을 열어준 고리 1호기는 당시 전력 수요의 9%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였고, 지난 6월 19일 영구정지가 선포될 때까지 40년 동안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통해 경제성장과 국민생활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 고리 1호기가 국민 안전과 환경을 무시한 ‘개도국형 에너지 정책’의 상징으로 추락해버린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것이다.

1998년 한울 4호기까지 20년 동안 무려 15기의 원전이 가동되면서 우리는 고질적인 전력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넘치는 법이다. 1990년 17.2GW에 지나지 않았던 최대 전력수요가 1997년 35GW를 넘어섰지만 대규모 원전 가동 덕분에 1998년에는 설비 예비율이 31.3%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는 전기가 지천으로 남아도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실시간으로 소비를 해야만 했다. 생산한 전기를 저장해둘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아도는 전기를 소비하기 위해 ‘심야전기요금’ 제도를 시행했고,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저장하기 위한 양수(揚水) 발전소도 건설했다. 과잉 투자는 무분별한 전력 소비를 초래했다. 전기로와 데이터센터와 같은 전력 다소비 산업이 늘어났고, 비닐하우스에 전기 난방을 사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주유소와 상점들이 대낮에도 눈부실 정도의 전등을 켜두기 시작했고, 문을 열어두고 냉방을 하는 상점도 늘어났다. 식당과 농촌에서 전기온돌 설치도 크게 늘어났다. 겨울철 난방 전력수요가 늘어나면서 2005년부터는 최대 전력수요가 여름철 낮 시간에서 겨울철 밤 시간으로 바뀌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소극적 설비투자가 부른 재앙

2000년에 처음으로 41GW를 넘어선 최대 전력수요는 2016년 85.2GW로 늘어났다. 그러나 과잉 투자에 대한 비난에 직면한 정부는 적극적인 설비투자를 포기해버렸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그랬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4기의 원전을 건설했을 뿐이다. 이는 2010년 이후 완공된 원전이 6기나 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인 과제로 강조되면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중위도 지역에 위치해서 일사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풍력발전에 활용할 정도의 바람이 부는 지역도 많지 않은 우리의 자연적 환경에서 신재생 전원의 개발은 결코 쉬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재생 발전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획기적인 ‘발전차액제도’까지 시행했지만 중국산 태양광 발전설비와 독일산 풍력 발전설비의 도입만 늘어나고 말았다. 결국 전체 발전량의 4%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재생 발전의 대부분은 동식물 폐기물(바이오매스) 연소로 채우고 있는 형편이다.

실질적인 발전소 건설을 포기해버린 사이에 재앙이 닥쳐왔다. 2011년 9월 추석 연휴에 시작된 비정상적인 폭염으로 냉방용 전력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재앙적인 순환 정전 사태가 벌어졌다. 소극적인 투자에 의해 시작된 고질적인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더욱이 2012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2013년에 드러난 원전부품 인증 비리 사건으로 원전의 가동이 중단되고, 밀양 송전탑 논란이 계속되면서 사태는 더욱 어려워졌다. 극심한 혼란을 경험한 후인 2013년에 어렵게 마련한 제6차 기본계획은 석탄화력과 원전을 증설하는 반(反)환경적인 꼼수라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전력 부족 사태는 2016년 신고리 3호기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어렵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전력 부족 사태의 위험은 여전이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있다.

脫원전·脫석탄은 불가능

앞으로 기술 발전에 따라 신재생의 발전단가가 줄어들 수는 있다. 그렇다고 막연하게 경제성이 보장될 것이라는 어리숙한 약속만 믿을 수는 없다. 신재생 발전의 친환경성에 대한 환상도 경계해야 한다. 태양광·풍력·조력·바이오매스가 진정한 의미에서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엄청난 면적의 토지가 필요하고, 발전 기기의 생산과 설치·운영·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도 무시할 수 없다. 국민의 안전과 지속가능한 환경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발전 기술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환상일 뿐이다.

더욱이 신재생 발전은 시간·날씨·계절에 따라 가동 여부가 결정된다. 신재생의 역할은 ‘보조 전원’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해가 나지 않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태양광과 풍력은 의미가 없다. 특히 태양광은 겨울철 야간에 발생하는 전력 피크에는 무용지물이다. 신재생 발전에 꼭 필요한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술도 아직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안정적인 기저(基底) 전원의 역할은 앞으로도 석탄화력과 원전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석탄화력과 원전을 포기해버리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불가능해진다. 앞으로도 석탄화력의 단점을 보완하고, 원전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와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석탄화력과 원전의 위험을 관리하고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막중한 과제다. 어설프게 밀어붙인 탈원전·탈석탄은 다음 정부에 큰 짐이 될 것이다. 2011년 순환정전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던 노무현 정부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해놓은 ‘스마트원자로’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도 필요하다.

편리하고 안전한 전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낭비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전국의 모든 소비자와 발전소가 하나의 전력 공급망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력 부족은 재앙적인 블랙아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2011년에 우리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블랙아웃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0% 이상의 예비율을 확보해야만 한다. 어차피 불확실한 전망이라면 최대한 넉넉한 예측이 안전하다. 어렵게 생산한 전기를 최대한 절약하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제도적·기술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더욱 적극적인 전력수요 관리에 필요한 제도적·기술적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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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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