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페렌바크의 저서 ‘이런 전쟁’. (우) 시어도어 페렌바크.
(좌) 페렌바크의 저서 ‘이런 전쟁’. (우) 시어도어 페렌바크.

‘1950년 7월 5일 경기도 오산시 죽미령에서 유엔군의 일원으로 파견된 미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였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일본에 주둔하던 미국 제8군 제24사단 21연대 제1대대로 부대장은 찰스 스미스 중령이었다. 스미스 중령이 받은 작전 명령은 부산에 도착하면 즉시 대전으로 올라가 북한군을 지연시키라는 것이었다. 스미스 부대는 죽미령에 2개 소총중대와 75㎜ 무반동총 4정 및 4.2인치 박격포 4문을 배치했다. 북한군은 정예부대인 제4사단의 107전차연대를 앞세우고 공격해왔다. 스미스 부대는 북한군의 소련제 T-34 전차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스미스 부대는 75㎜ 무반동총을 발사했지만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북한군 전차가 85㎜ 대포와 7.62㎜ 기관총을 쏘아대자 미군들은 참호 속으로 머리를 박아야 했다. 북한군 전차들은 스미스 부대의 방어선을 유유히 짓밟고 남쪽으로 진격해갔다. 스미스 부대는 북한군의 전투에서 엄청난 패배를 맛보아야만 했다. 스미스 부대는 북한군에 대한 정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소련제 전차를 파괴할 무기조차 없었다.’

미국 역사가 겸 칼럼니스트인 시어도어 페렌바크(1925~2013)의 저서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번역본 제목 ‘실록 한국전쟁’)의 한 대목이다. 스미스 부대의 무참한 패배로 미군 지상 병력의 투입이라는 위세만으로 북한군의 남침이 중단되기를 바랐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기대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장교들이 읽어야 할 고전 중의 고전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최근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페렌바크의 저서를 읽어 보란 말을 무려 3차례나 했다. 매티스 장관은 지난해 10월 9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 육군협회 주최 행사에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미군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구체적인 답변 대신 “페렌바크의 책을 읽어 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티스 장관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여러분도, 나도 말할 수 없다”면서 “육군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은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군사 옵션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티스 장관은 또 지난해 12월 21일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를 방문해 해병대원들을 격려한 자리에서 역시 같은 말을 했다. 매티스 장관은 북핵 문제에 대해 질문한 장병들에게 “평화적 해결의 기회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면서 “여러분은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티스 장관은 지난해 12월 22일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에 있는 제82공수사단을 방문해 연설을 통해 “여전히 평화적으로 갈등을 풀어나갈 시간이 있다”며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도 “미군이 한반도 전쟁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면서 페렌바크의 책을 일독할 것을 당부했다.

매티스 장관이 페렌바크의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무엇보다 매티스 장관의 과거 발언들을 볼 때 페렌바크가 미군의 희생 등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지적한 것처럼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매티스 장관은 역대 국방장관들과는 달리 외교적 해법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 자신이 ‘전쟁의 비극’을 몸으로 느껴왔기 때문이다. 매티스 장관은 “군의 목적은 외교적 노력을 위한 버팀목을 제공하는 것”이라면서 “강한 군대는 외교관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존재”라고 말해왔다. 매티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 및 백악관 참모들과의 불화설로 궁지에 몰려온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우군 역할을 해온 것도 이런 지론에서 비롯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북한을 향해 자극적인 언사를 쏟아내며 마치 당장 전쟁이라도 벌일 것 같은 모습을 보일 때 이를 누그러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매티스 장관이었다. 매티스 장관은 “지금 국제 정세는 내가 40여년간 군 복무했던 중 가장 까다롭고 엄혹한 시기”라면서 자칫하면 한반도의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해왔다.

이처럼 신중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매티스 장관이 이 책을 강추한 속내는 따로 있는 듯하다. 소장하고 있는 전략 관련 서적만 7000권에 달하는 등 독서광으로 소문난 매티스 장관은 6·25전쟁 관련 책들을 대부분 섭렵했을 것이 분명하다. 클레이 블레어의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1987)이나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가장 추웠던 겨울’(The Coldest Winter·2007) 등의 책들은 그동안 6·25전쟁에 대한 훌륭한 저서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도 매티스 장관이 이 책을 추천한 것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963년 출간된 이 책은 6·25 당시 미군 제2사단 제72전차 대대 등에서 지휘관으로 참전한 페렌바크가 전쟁 전개 상황과 미군 작전 등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으로, 미군 장교들이 읽어야 할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힌다. 베트남전쟁 참전용사인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페렌바크의 저서에 대해 “오늘날까지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책”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1994년과 2000년에 재판(再版)된 총 688쪽 분량의 이 책의 부제는 ‘준비되지 않음에 대한 연구(A Study in Unpreparedness)’이다. 비록 나중에 부제가 ‘고전적인 한국전쟁사(The Classic Korean War History)’로 바뀌긴 했지만, 페렌바크는 이 책에서 미국이 당시 준비되지 않은 전쟁을 수행했음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페렌바크는 “개전 초 한국에 파병된 미군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허겁지겁 달려온 수준이었고, 미군의 무기는 북한의 소련제 전차에 작은 상처만 낼 뿐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 메모리얼데이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매티스 국방장관(가운데)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미국 메모리얼데이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매티스 국방장관(가운데)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이런 내용으로 볼 때 매티스 장관의 첫 번째 의도는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이 6·25전쟁에서 고전한 것은 전쟁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티스 장관은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를 대비해 철저한 준비 태세를 강조해왔다. 미국이 지난해 동해에서 항공모함 전단 3척을 동원한 해상훈련을 비롯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공군기들을 대거 투입한 공중훈련 등을 사상 최대 규모로 실시한 것은 제2의 한국전쟁을 가정한 것이다. 미국은 올해에도 비슷한 규모의 군사훈련을 계속 실시하면서 전쟁에 대비할 것이 분명하다. 매티스 장관은 한국에서 근무한 적은 없지만 해병대 소대장 시절인 1972~1974년 강릉 지역에서 3주씩 머무르며 훈련을 실시했다. 1980년대에는 해병대 중대장으로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피릿’에 참가한 바 있으며 1990년대 대대장 시절에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매티스 장관은 1969년 해병대 사병으로 자원입대한 뒤 44년 동안 군에서 복무하며 4성 장군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제1차 걸프전(1991)과 2000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3년 이라크 침공에 참전했다. 중부사령관을 끝으로 2013년 전역했다가 국방부의 수장이 된 매티스 장관은 역대 어느 장관보다도 전쟁 준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두 번째 의도는 적에 대한 정보와 의도를 제대로 알고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페렌바크는 “미군이 제대로 전쟁 준비를 하지 못한 이유로 상황 판단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페렌바크는 “1949년부터 많은 정보원으로부터 북한의 전력 강화와 남침 가능성에 대한 보고가 올라왔지만 한국은 물론 미국도 이를 무시했다”면서 “중공군의 개입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 정권은 6·25전쟁을 벌이기 2주 전부터 적극적인 평화 공세를 해왔지만 한국과 미국은 이를 속임수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전쟁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올해 대대적인 위장평화 공세와 대화를 통한 협상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도 쌍중단(雙中斷,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을 주장하면서 쌍궤병행(雙軌竝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진행) 등을 더욱 강조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평창 동계올림픽도 열린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 기간 중에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매티스 장관이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해 “김정은이 선수들을 죽임으로써 전 세계에 싸움을 걸 정도로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선수단을 파견하거나 또는 도발을 중지하는 전략에 속아 넘어가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올림픽이 평화를 보장할 것이란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한국 정치권과 학계 일각에선 벌써부터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하고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매티스 장관의 의도는 페렌바크가 지적했듯이 북한의 노림수를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버웰 벨을 비롯한 전 한·미연합사령관들이 훈련 중단이 협상 수단화될 경우 미군을 철수하고 한·미 동맹을 파기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군이 1950년 7월 15일 금강 인근에서 포사격을 하고 있다. ⓒphoto 미 국방부
미군이 1950년 7월 15일 금강 인근에서 포사격을 하고 있다. ⓒphoto 미 국방부

“한국전은 의지를 시험한 기묘한 전쟁”

미국의 북한 정권에 대한 정보와 핵 개발 의지에 대한 판단 잘못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북핵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이미 그대로 드러났다. 물론 역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입증됐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묵인해왔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수소폭탄에 버금가는 핵폭탄을 실험하고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 배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정신을 차리고 북한을 안보의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 북한에 가장 강력한 입장을 보여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 정부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제재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북핵을 지렛대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됐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경쟁국’이라고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 번째 의도는 제2의 한국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페렌바크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은 힘을 시험한 전쟁이 아니라 의지를 시험한 기묘한 전쟁”이라고 지적했다. 페렌바크는 이 책의 첫장에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제국의 전략가이자 장군인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의 명언을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했다. 페렌바크는 한국전쟁 초기 미군의 문제는 싸울 ‘능력’이 아니라 싸울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페렌바크는 “전쟁 초기 한국에 파견된 미군 병사들은 자신들이 할 일은 ‘경찰 역할’이며, 북한군이 자신들을 보면 등을 돌려 돌아갈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들은 목숨을 건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지도 없었고, 그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고, 전쟁을 위해 준비된 군인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페렌바크는 또 “한국전쟁의 교훈은 그것이 발발했다는 사실”이라면서 “소련과 중국 등 공산진영이 미국이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하는 바람에 한국전쟁이 벌어졌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당시 소련과 중국이 미국의 의지를 잘못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이 전 세계 공산화 전략의 일환으로 벌인 침략전쟁이다. 스탈린은 전차 300대, 전투기 200대, 대포 1300문, 군사고문 3000명을 보내 김일성의 남침을 적극 도왔다. 마오쩌둥은 1949년 7월 공산당 팔로군 소속 조선 출신 병사 2만2000여명을 김일성에게 넘겨주었다. 이들은 한국전쟁 때 남침의 주력부대였다. 이후 마오는 유엔군의 반격으로 북한군이 패퇴를 거듭하자 김일성의 요청을 받아들여 무려 연인원 135만명이나 되는 병력을 한국전쟁에 투입했다. 한국전쟁은 이처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이념 전쟁이었으며 양 진영이 서로 의지를 겨루는 무대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매티스 장관은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한다면 페렌바크가 지적한 잘못들을 교훈 삼아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란 의지를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매티스 장관이 “외교적 수단이 실패하고 군사적으로 대응해야 할 경우 북한을 사상 최악의 날로 만들겠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매티스 장관은 “냉전 당시에는 미국 지도자들은 중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김정은이 중국과 러시아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의지를 갖고 군사옵션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매티스 장관의 속마음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군 수뇌부가 최근 들어 북한의 위협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와 철저한 군사옵션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매티스 장관의 강력한 제언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도 김정은의 평화 공세를 냉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매티스 장관이 강추한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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