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9일 홍준표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대통령 개헌 저지 긴급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12월 29일 홍준표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대통령 개헌 저지 긴급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자문위가 작성한 ‘개헌 보고서’가 좌편향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개헌특위 자문위는 2017년 2월 2일부터 12월 31일까지 활동했다. 선발 경위는 이렇다. 먼저 개헌에 관심 있는 단체·기관으로부터 후보자를 추천받았다. 후보자를 두고 여야(與野) 간사 간 논의를 거쳐 각 분야 학자, 시민단체 인사 등 총 53명을 뽑았다. 그중 4명은 중도사퇴해 현재는 49명이다. 김원기·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김선욱 전 이화여대 총장이 공동자문위원장을 맡았다. 선발과정만 놓고 보면 문제될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개헌특위는 원래 ‘교섭단체 추천’으로 30명 규모의 자문위를 꾸릴 계획이었다. 막판에 50명 규모로 늘어나게 되면서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 “별도의 순수 시민 자문기구를 꾸려 일반 국민 의사를 더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개헌특위 자문위는 기본권 및 총강, 정부 형태, 정당·선거, 경제·재정, 지방분권, 사법부 등 총 6개 분과별로 활동한 결과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개헌 보고서는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국회 개헌특위가 참고자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문위가 만든 보고서에는 현행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을 완수’한다는 내용이 삭제됐다. 대신 ‘평등한 민주사회의 실현을 기본 사명’ ‘연대의 원리를 사회생활에서 실천’이라는 내용이 삽입됐다. 헌법에서 ‘자유민주’를 삭제하고 ‘평등한 민주’로 대체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한 김성원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의 논평이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 안에는 국가체제 근간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개념이 삭제됐다. 좌편향 자문위원들의 참여로 좌편향 일색의 개헌안이 마련된 것이 사실이라면, 문재인 정권이 의도적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허물어 못 쓰게 만들 작정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보고서에는 ‘사형제 폐지’와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의 내용도 담겼다. 이 두 가지 사항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병역거부자의 처벌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고, 사형제에 대해서도 1996년과 2010년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지난 1월 3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개헌 권고안에 대해 “법적 구속력도 없는 안(案)”이라고 했지만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각 분야의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자문 역할에 충실해야 할 개헌 자문위가 오히려 이념적으로 편향되고 사상적으로 경도된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보고서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는지 또 어떤 사람들이 참여했는지 6개 분과별로 나눠 살펴봤다.

1. 기본권 및 총강

우선 기본권 및 총강 분과에 참여한 10인의 면면을 살펴보자. 신필균 헌법개정여성연대 대표,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 정성헌 한국DMZ 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총 4명이 시민단체 출신이다.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원장을 지냈다.

김선수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사법개혁비서관 출신이다. 일각에서는 기본권 및 총강 분과에 좌편향 인사가 과반을 넘는다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고문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김창수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조소용 부산대 로스쿨 교수, 김은경 세종리더십개발원 원장이 참여했다.

기본권 및 총강 분과에서 작성한 보고서에는 ‘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가진다’ ‘사형은 폐지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노동자들의 기본권 보장이 강화됐다. 보고서에는 노동자들의 기본권 보장 강화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사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기본 방침이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기간·파견근로 사실상 폐지’와 ‘정리해고 금지’ ‘노동이사제’ 등의 조항이 포함됐다.

김선수 변호사는 ‘노동 변호사’로 불린다. 그는 과거 서울대병원 전체 조합원의 3년치 미지불 수당을 집단청구해 승소했다. 이 사건은 다른 대학병원 노조의 집단소송으로 이어져 서울지방법원에 노동사건 전담부(노동특별재판부)가 설치되는 계기가 됐다. 김 변호사는 2011년 북한의 노동당 지령을 받고 20년 가까이 활동해온 지하당 ‘왕재산 간첩 사건’의 변론을 맡은 민변 소속의 인물이다. 또한 그는 2014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사건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당시 그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명령 직후 기자들에게 이렇게 언급했다.

“헌재가 국민의 민주적 역량을 불신했다. 통진당이 북한과 직접 연계됐다는 근거가 없는데도 정부의 종북 공세와 여론몰이에 편승했다. 양심에 따라 심판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은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1988년 충북대에 입학해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그는 양화대교 개조 공사와 세빛둥둥섬 등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관련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전시성 토건 시장’으로 몰아붙인 인물이다. 염 사무총장은 2010년 4대강 사업에 반대해 남한강 이포보에 올라 고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신필균 헌법개정여성연대 대표는 사형제 폐지론자다. 신 대표는 2017년 9월 ‘국민주권을 지키기 위한 기본권 강화’ 보고서에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때 민정2비서관을 지냈다.

정성헌 한국DMZ 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은 제4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정 이사장은 2016년 한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 폭력’(시위군중)을 제압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 것(백남기 물대포 직사), 즉 절대 폭력을 행사한 것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공동체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2. 경제·재정

경제·재정 분과에는 총 6명이 참여했다. 김호균 명지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을 지냈다. 박갑주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장용근 홍익대 법학과 교수,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있다.

김호균 교수는 2016년 신문 칼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국정목표가 돼야 한다. 전자가 후자를 보장해준다는 ‘낙수효과’는 없다. 불평등을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해소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근로자 경영참여다. 한국 현실에서 근로자 경영참여가 노조로 조직된 정규직의 이기주의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부 정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 수준으로 높여서 차별을 해소하면 된다.” 당시 김 교수의 발언은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정책과 맞닿아 있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서울대 서양사학과 86학번으로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운동권 출신이다. 참여연대는 201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한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한다”는서한을 발송한 단체다. 이태호 위원장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최저임금 미준수 사업장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강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2017년 한 신문에 칼럼을 기고했다. 그가 칼럼에 실은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새 정부는 적폐청산을 약속하고 있는데, 적폐 중 적폐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남용이고 다방면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이다. 이를 해소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3. 지방분권

지방분권 분과 보고서에는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이다’라고 명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의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헌법을 통해 지방분권국가를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분권 분과에는 김성호 자치법연구원 부원장,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안영훈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대외협력단장, 유재일 대전세종연구원 원장, 이기우 인하대 로스쿨 교수, 최백영 대구 지방분권협의회 의장이 참가했다.

지방검찰청장과 지방경찰청장을 주민직선제를 통해 선출한다는 방안도 담겼다. 헌법 1조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라는 내용을 신설하는 부분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지금도 분권국가로 규정할 수 있는데 굳이 명문화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김성호 자치법연구원 부원장은 201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헌법 개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권고안대로 헌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연방제 국가의 주(洲) 수준까지의 분권으로 제도의 확장이 가능하다. 이번 개헌은 지방분권을 확실하게 제도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지난 1월 4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인물이다. 김 교수가 공개서한에서 한 말이다.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 때 개헌 투표를 하지 않으려는 것은 결국 지방선거에 불리하다는 당리당략적 판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국가 백년대계를 짜는 개헌을 결코 정략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 형태 관련 개헌은 다음 기회에 하더라도 괜찮지만 지방분권 개헌은 한시가 급하다.”

4. 정부 형태

정부 형태 분과에는 10인이 참여했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자문위는 강상호 국민대 교수, 강원택 서울대 교수, 명재진 충남대 로스쿨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백준기 한신대 교수, 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대표, 이상수 법무법인 우성 변호사, 이현출 건국대 교수,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 최영태 전남대 교수다. 자문위는 분권형 정부와 중임 대통령제를 제시했다. 분권형 정부제는 일반적으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각각 외치와 내치의 권한을 나누는 형태다.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 등에 대한 전권을 갖는 반면 국내 행정은 총리가 책임지는 구조다. 4년 중임 대통령제는 현행 5년인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줄이되 중임을 허용하는 제도다.

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대표는 2016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대 국회 개원 당일엔 범시민사회단체연합이 주관하는 국가전략포럼에서 개헌 문제를 다뤄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헌 언급 발언과 연계돼 시너지 효과를 낸 바 있다. 사실상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는 여러모로 문제를 야기하며 대한민국에 짐이 되고 있다.”

5. 정당·선거

정당·선거 분과 자문위는 ‘정당 국고보조금’ 규정을 헌법에서 폐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비슷한 사례가 해외에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현행 헌법 8조 3항에는 ‘국가는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정당·선거 분과 자문위원 8인은 김욱 서남대 경찰경호학과 교수, 김정수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공동대표,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과 교수, 이광복 아시아미래포럼 이사,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좌세준 법무법인 한맥 변호사, 최태욱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2017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국회 탄핵의 정치사적 의미와 한국 정치의 시대적 과제’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역설적이게도 민주적인 절차를 가장 크게 어긴 대통령을 민주화 30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민주적인 헌법 절차에 의거해 심판한 역사적 성격을 갖는다. 대통령의 입법권·예산권·인사권을 대폭 축소하고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 개인·언론·기업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

6. 사법부

사법부 분과 자문위원 6인은 권오창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성창익 법무법인 원 변호사, 여운국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 조정찬 숭실대 교수, 황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다. 사법부 분과 개헌안에는 법원행정처를 관할하는 대법원장을 견제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자문위는 법관의 임용, 징계 등 사법행정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사법평의회’의 신설을 제안했다. ‘사법평의회’ 신설을 놓고 자문위원들이 갑론을박을 벌였다고 한다. 여운국 변호사는 “정당이 추천한 인사들이 사법평의회 위원이 되면 법관이 되려는 사람들이나 현직 법관들이 정당에 줄을 대기 위해 로비를 하는 폐해가 시스템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법원장의 임기를 현행 6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방안도 담겼다. 전관예우금지도 헌법에 명시된다. 자문위는 ‘퇴직 대법관 및 법관의 변호사 업무수행에 관하여는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황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가 201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법원에서 이렇게 불공정한 판결이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사법부의 관료화에 있다. 이런 관료화를 깨야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게 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이 나오는 경로는 크게 2가지다. 권력자의 영향, 그리고 재력가의 영향이다.” 황 교수는 사법부 개혁을 주장해 온 대표적인 학자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2017년 한 인터넷 언론사에 털어놓은 바 있다. “국민이 헌재 결정을 우려한 건 과거 주요 사건에서 의외의 결론을 내려 불안감이 있어서인데 정치·사회적 압력이 높았던 사건에선 헌재도 대세를 따랐다. 이 사건도 국민의 압도적인 여론이 탄핵이어서 대세를 무시할 수 없었다.”

개헌 특위 자문위원들의 과거 발언을 보니 헌법 개정에 대한 시각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이전 정부에 대해 지나치게 공격적인 발언을 한 인물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헌법 개정안 초안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사항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국회는 2011년과 2014년에도 개헌 자문위를 꾸리고 권고안을 냈지만 개헌이 이뤄지지 않아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헌을 추진하고 있어 얘기가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 합의를 기다리는 한편, 필요하다면 정부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국민개헌안을 준비하고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개헌 보고서’를 둘러싼 편향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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