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 쪽은 하수구 같아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핵심인사 A씨는 식사 도중 상대가 불쑥 던진 말에 자신의 무릎을 쳤다. 시중에 자금이 풀려 유동성이 커졌는데 그동안 금융 분야를 등한시했던 점을 자각했던 것이다. 청와대로 돌아온 그는 정책실 내 금융 담당자들을 불러 모은 뒤 시중 동향을 파악해 수시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금융시장에 풀린 막대한 자금은 투자처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A씨에게 금융 쪽에서 수상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일러준 인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정덕구 현 니어재단 이사장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시중 자금이 어디로 튈지 몰라 여러 대비책을 강구했다. 그럼에도 시중 자금은 부동산을 출구로 선택했고,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이 됐다. 고삐 풀린 주택가격은 결국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이어졌다. 정책 컨트롤타워의 촉(觸)과 대응능력이 왜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사례다. A씨는 “현 정부 또한 시중 자금의 흐름에 주목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강남 집값이 큰 폭으로 상승하며 부동산시장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8·2 부동산대책을 포함, 집권 8개월간 총 6차례의 부동산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전혀 약발이 먹히질 않는다. 강남 집값은 천정부치로 치솟은 반면, 서울과 지방의 주택가격 격차는 더 벌어졌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장으로 시중 자금이 쏠리면서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지할 수 있다”는 극약처방은 금융당국이 아닌 법무부 박상기 장관이 직접 발표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암호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런 기류를 의식한 듯 청와대는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안은) 정부 차원의 조율된 입장이 아니다”면서 한발 뒤로 물러섰다.

돈이 오가는 암호화폐 시장의 문제를 다루는데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을 차세대 4차산업의 한 축으로 육성한다 했지만 암호화폐 대책을 발표할 때 담당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유영민 장관이 어떤 입장을 피력했는지도 알려진 게 없다.

청와대 정책실은 요즘 현장을 자주 찾는다. 최저임금 인상과 이에 따른 정부의 지원대책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지난 1월 1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분식집 등을 찾아 최저임금 홍보에 나섰으나 매출이 줄어든 소상공인들의 불만 섞인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지난 1월 23일에는 청와대 정책실 소속 홍장표 경제수석과 반장식 일자리수석이 각각 경기도 안성 소재 중소기업과 서울 강동구의 소상공인을 찾아가 애로사항을 들었다.

청와대 정책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을 읽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국정의 중심이다. 사회문제와 대외변수까지 모든 사안을 고려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나서 대통령이 올바른 정책을 펼 수 있도록 보좌한다. 그러나 최근 정책실 주요 인사들은 출장 중인 날이 많다. 정책실의 대통령 보좌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올 초부터 김동연 경제부총리로부터 월례보고를 받기로 했다고 한다. 기존에는 경제부총리로부터 정례보고를 받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앞으로는 경제정책에 있어 정책실보다 경제부총리에게 힘이 더 실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대로 내려앉았다. 6·13 지방선거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인사들의 현장 홍보는 오히려 늘어날 것 같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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