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가 11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쟁탈전이 점입가경이다. 지난해 12월 29일 특별사면돼 피선거권을 회복한 정봉주 전 국회의원이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에 가세하며 판세가 요동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지난 2월 21일 “3월 초 공식 출마선언을 하겠다”는 입장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최근 TV조선 등 자신이 진행 또는 출연해온 방송을 모두 정리하고 있다.

정 전 의원은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와 관련한 ‘BBK 의혹’ 제기에 앞장서다 허위사실 공표 혐의가 인정돼 1년간 구속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가 당시 제기했던 BBK 관련 의혹들은 최근 검찰 수사과정에서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자 민주당 내부에서 “정봉주는 이명박 정권의 희생양이었다”는 동정론까지 일고 있다.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이런 당 안팎 분위기가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편 정 전 의원이 서울시장 도전을 선언하자 당내 서울시장 후보 가운데 1위를 달려온 박원순 시장, 그리고 그 뒤를 쫓는 박영선·우상호·민병두·전현희 의원 등 후보군의 움직임이 한층 빨라졌다.

여권 후보가 난립하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1개월여 만에 치러지는 이번 6·13 지방선거는 문 대통령의 높은 국정운영 지지도와 50%에 가까운 집권당 지지율로 인해 여당 우세가 점쳐진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서울·경기 등 17개 광역시도지사 가운데 12곳 이상을 석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구·경북(TK) 등 일부를 제외한 전 지역을 싹쓸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지만 아직 여당 후보를 상대할 경쟁력 있는 후보군이 선뜻 눈에 띄지 않는다. 야당 소속 현역 광역단체장마저 민주당 후보에게 뒤지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 남경필 경기지사·서병수 부산시장·유정복 인천시장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제3당인 바른미래당과 제4당인 민주평화당도 내로라할 만한 후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차기 서울시장 선거가 여당 주도로 흘러가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고, 작금의 분위기가 선거 당일인 오는 6월 13일까지 이어진다면 민주당이 가장 중요한 서울시장을 다시 배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될까?’ 그 결과는 조기에 불붙은 당내 경선 레이스를 통해 가려질 예정이다.

최근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여권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이 단연 앞서가는 모양새다. 지난 2월 13일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박원순 시장이 36.7%로 1위를 차지했고 박영선 의원 14.1%, 우상호 의원 7.8%, 정봉주 전 의원 7.7%, 전현희 의원 2.7%, 민병두 의원 2.4%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18일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이 발표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는 박원순 시장이 35.9%, 박영선 의원 15.8%, 우상호 의원 6.6%, 정봉주 전 의원 3.9%, 민병두 의원 0.9% 순으로 나타났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물론 서울시장 출마선언이 2월 말까지 이어지고 있고 여기에 동계올림픽에 쏠린 시민들의 관심을 반영하면 현재의 후보 적합도 조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선 엔트리가 확정되기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현역 프리미엄을 가진 박 시장이 1위에 오른 것도 예견된 결과였다. 때문에 정봉주 전 의원까지 공식 출마선언을 하고 난 3월 초 이후 여론조사 결과가 어떻게 변화되느냐에 관심이 모아진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박 시장이 현재 1위라고 하지만 시장 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전체의 60%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보군이 확정된 이후 지지율에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박 시장이 서울시정을 무난하게 잘 이끌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면서 “이재명 성남시장이나 안희정 충남지사에 비해 정치적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도 당내 경선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시장은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최근 여야를 가라지 않고 다양한 인사들을 접촉하며 서울시장 3선 도전의 명분 쌓기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사석에서 일부 인사들과 만나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하면 곧장 차기 대선을 준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우상호·정봉주에 주목하는 친문세력

민주당 후보 적합도 1위인 박 시장은 당내에서 비문(非文) 인사로 분류된다. 이 점이 당내 경선 문턱을 넘어야 하는 박 시장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박 시장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패권적 사당화로는 결코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수 없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여론조사 수치와 별개로 당 조직의 열세를 극복해야 하는 입장에서 친문(親文) 진영의 비토(veto)까지 받는다면 당내 경선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지율 2위의 박영선 의원도 비문계로 분류되는 인사다. 박 의원은 최근 때아닌 특혜 논란에 휘말려 이미지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박 의원은 지난 2월 16일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경기장을 찾아 피니시라인 근처에서 금메달을 딴 윤성빈 선수를 응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올림픽 관계자만 출입이 가능한 곳에 박 의원이 등장하자 ‘국회의원 신분을 이용해 특혜를 누렸다’는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박 의원은 “올림픽위원회 초청 게스트로, 다른 분들과 함께 그곳으로 안내받아 이동했다”고 해명했지만 특혜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박 의원은 또 비매품인 선수단용 ‘롱패딩’을 입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벌에 60만원가량 하는 선수단 지급용 패딩을 받았다면 김영란법 위반이 아니냐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박 의원은 “동료 의원이 준 패딩을 입은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공짜로 패딩을 받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야당의 지적이 이어졌다. 서울시장 후보로서 얼굴을 알리려던 박 의원의 행보가 오히려 비난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와 관련 여당 일각에서는 “특혜와 패딩 논란으로 인해 박 의원이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문 대통령과 각을 세운 안희정 캠프의 좌장 역할을 맡아 친문 진영과는 거리감이 있다.

이들보다 여론조사에서 밀리고는 있지만 친문 진영에 우호적인 우상호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은 향후 경선 레이스에서 다크호스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당내 서울시장 후보 가운데 가장 먼저 출마를 공식 선언한 우 의원은 친문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개혁을 서울시에서 성공시킬 사람이 시장이 되어야 한다”면서 친문을 자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 의원은 지난 1월 7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영화 ‘1987’을 관람하기도 했다. 우 의원은 특히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과 각별한 사이다. 전대협 1기 부의장을 지낸 우 의원은 3기 의장을 지낸 임 실장과 가깝게 지냈다. 대학 졸업 후 이들은 한때 회사를 함께 운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 의원이 사장, 임 실장이 부사장으로 불렸다. 그래서 차기 서울시장 선거에 친문을 대표할 만한 인물로 한때 우 의원이 거론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우 의원을 친문이 아닌 GT(김근태) 계열 인사로 분류하기도 한다.

정봉주 전 의원이 차기 서울시장 선거전에 가세한 이후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정 전 의원은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방송과 팟캐스트 등을 오가며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해온 바 있다. 그래서 친문 진영에서 다른 서울시장 후보에 비해 더 많은 호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원은 방송을 통해서도 젊은층 사이에서 호감도를 높여왔고 기존 저격수 이미지도 어느 정도 벗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서울시라는 거대한 도시를 이끌어갈 정책적 역량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달려 있다. 정 전 의원 측은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나면 지지율이 급상승할 것으로 기대한다. 당내 경선에서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전세는 역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 등과 최근 사석에서 만나는 등 친문 핵심들과 접촉면을 늘리고 있다.

민주당 전략통으로 불려온 민병두 의원은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정책 등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민주당 국회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강남에 지역구를 둔 전현희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 가운데 문 대통령과 가장 호흡이 잘 맞는 후보”라며 친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당내 경선 후보가 6명까지 늘었기 때문에 1차 컷오프에서 3명을 선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평론가들은 대체로 박원순·우상호·정봉주·박영선 후보의 컷오프 통과를 점치고 있으나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다.

후보교체론 불씨 댕겨질까

민주당 차기 서울시장 선출을 위한 경선의 또 다른 변수는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여부다. 박원순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은 모두 안철수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기대하고 있다. 여론조사 1위인 박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외부 변수이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는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후보직을 박 시장에게 양보한 바 있다. 이후 재선까지 성공한 박 시장 입장에선 안 전 대표에게 정치적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출마할 경우 박 시장은 안 전 대표를 상대로 공격적인 선거전을 펼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게다가 만일 안 전 대표가 야당 단일후보로 나와 박 시장과 1 대 1 구도로 선거를 치른다면 여론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현재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로는 김용태 의원과 노무현 청와대의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있다. 김 교수는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국민대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의 출사표는 곧 민주당 내 서울시장 후보 교체론의 불씨를 댕길 것이라는 게 다른 후보들의 생각이다. 실제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 1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나설 모양이다. 반가운 소식”이라면서 “구태정치, 한풀이 정치를 끝내버리겠다”고 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언급한 글에서 지지율 1위의 박원순 시장이 아닌 안 전 대표를 전략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민병두 의원도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찌감치 정치생명을 걸고 (서울시장에) 출마하라. 정면승부를 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나는 안 전 대표와 아무런 빚도, 채권 채무 관계도 없다”면서 과거 안 전 대표의 양보로 서울시장이 된 박 시장을 에둘러 겨냥했다.

김관옥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원순 시장의 3선 도전이 현실화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최근 정봉주 전 의원까지 당내 경선에 가세하며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굉장히 치열한 당내 경선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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