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총기의 나라다. 미국 시민들이 보유한 총기는 최소 2억7000만정에서 최대 3억1000만정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전 가정을 기준으로 약 40%가 총기 한 자루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총기가 많다는 것은 총기사고가 많이 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6년에는 무려 3만8000여명이 총상으로 사망했다. 같은 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인 4만여명과 유사한 수치이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대표적이면서도 악명 높은 총기사고는 바로 총기난사이다. 총기사고를 기록하는 ‘매스슈팅트래커’에 따르면 2017년에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만 해도 346건으로, 사망자 437명에 부상자가 1802명에 이르렀다. 특히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작년에 일어났다. 바로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이다.

2017년 10월 1일 라스베이거스의 한 야외공연장을 향하여 한 남성이 총기를 난사했다. 스티븐 패독이라는 64세 남성은 자신이 투숙한 호텔 32층에서 450m 거리의 공연장을 향하여 무려 1100여발의 소총탄을 난사했다. 그는 총기난사를 위하여 자신의 호텔방을 무기고로 바꿔놓았다. AR-15와 AK-47 등 무려 20여정의 총기가 방에 있었다. 총격의 결과는 처참했다. 무려 58명이 사망하고 851명이 부상당했다.

총기사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3월 3일까지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은 모두 38건으로, 사망자가 66명에 부상자가 155명이다. 특히 지난 2월 14일에는 플로리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AR-15 소총과 권총을 든 퇴학생이 배낭 한가득 탄창을 채운 채 학교에 들이닥쳐 17명을 사살하고 15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최악의 학교 총기난사로 기억되는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기난사보다 사망자가 2명이나 많았다.

사실 총기난사는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1966년에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학에서 총기난사가 있었다. 범인인 찰스 휘트만은 총기 7정과 700발의 실탄을 가지고 ‘텍사스타워’에 올라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90분간 이어진 무차별 총격으로 14명이 사망하고 31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건은 당시 사회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고, 경찰특공대 SWAT가 창설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합동결혼식에도 등장

총기난사가 횡행하지만 미국에서 총기소지의 자유는 여전히 중요하다. ‘무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미국은 헌법을 만들 당시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였다. 정규군이 없던 국가였던 만큼 스스로 무장하고 자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고 이것이 헌법에 반영됐다. 게다가 서부지역을 개척하려면 총기가 없이는 인디언이나 들짐승으로부터 스스로의 목숨을 지킬 수 없었다.

총기는 미국의 자유와 독립의 상징이자 미국의 문화가 되었다. 따라서 총기를 규제하려는 정부의 정책은 늘 커다란 벽에 부딪혀왔다. 심지어 총기정책은 정치인의 당선을 좌우한다. 총기에 우호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후보는 보수표를 가져간다. 거기에다가 미국총기협회(NRA)의 강력한 후원까지 얻을 수 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도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은 ‘총기 문화’도 돌출한다. 지난 2월 28일 미국의 한 교회에서 합동결혼식이 있었다. 그런데 결혼식에는 성경과 결혼반지 말고도 의외의 물건이 등장했다. 바로 AR-15 소총이다. 교회 측은 합동결혼식에 참석하는 신랑·신부와 하객들에게 AR-15 소총을 들고 나오도록 했다. 소총이야말로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쇠지팡이’라면서 “전능하신 신이 무기를 소지할 수 있도록 부여한 권리를 통해 서로를 보호하고 인류를 번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이 예식이 더욱 언론의 관심을 끈 것은 그 주체 때문이다. ‘AR-15 결혼식’을 시행한 교회는 ‘세계평화·통일 생크추어리 교회’로, 고(故)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7남인 문형진 목사가 이끄는 곳이다. 2015년 통일교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문형진 목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생크추어리 교회를 세우고 통일교의 새로운 분파를 만들었다. 그는 지난해부터는 “평화군 경찰을 세우기 위해 총과 칼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AR-15의 등장에 교회 인근 학교들은 수업을 취소하고 교회 밖에서는 총기 반대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이렇듯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AR-15는 어떤 소총일까. AR-15는 총기사고가 빈번한 미국에서도 ‘악마의 총’이라 불릴 법하다. 대량살상을 불러온 끔찍한 총기사고 때마다 등장하는 총이기 때문이다.

2007년 버지니아텍에서 조승희가 권총을 이용해 32명을 사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제외하고 이후 발생한 대량 총기 사망 사건에 모두 AR-15 계열 소총이 동원됐다.

AR-15 소총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M16 소총의 민간 모델이다. 민간 모델이므로 연발사격이 안 되고 반자동으로 단발사격만 가능하다. AR-15라고 불리는 것은 원래 M16 소총을 개발한 총기 회사가 ‘아말라이트’이기 때문이다. 즉 AR-15는 아말라이트 라이플(Armalite Rifle) 제15번 설계 총기라는 뜻이다.

지난 2월 21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젊은이들이 ‘전미총기협회를 해산시켜라’고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AP
지난 2월 21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젊은이들이 ‘전미총기협회를 해산시켜라’고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AP

설계도 공개, 누구나 만들 수 있어

M16은 콜트사의 ‘모델 1911’ 권총과 함께 가장 미국적인 총기로 불린다. 1964년 미 공군이 처음으로 채용한 이후 육군, 해병대, 해군 등 모든 현대 전쟁터에서 미군이 들고 싸웠던 소총이다. 무려 50년이 넘게 ‘현역’의 지위를 누려온 소총이다. 그 사이 4차례나 세대 변경을 거치면서 현대화를 추구해왔다. 현재 M16의 제4세대에 해당하는 M4A1 카빈소총이 제식소총으로 전군에 지급되고 있다.

총기난사에 AR-15가 빈번히 등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가장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우선 미군에서 사용할 만큼 친숙하고 신뢰성 높은 총기라 인기도 높다. 게다가 1989년에 AR-15의 특허기간이 끝나면서 설계도까지 공개됐다. 이후 어떤 총기 회사라도 AR-15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원 제작사인 콜트 이외에도 HK, 시그, 스미스앤웨슨, 부시마스터 등 수십 개의 총기 제작사에서 AR-15를 만들고 있다. 부품을 만드는 회사는 100여개에 이른다. 심지어 부품을 여기저기서 사모아서 AR-15 소총을 조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손잡이, 총열덮개, 개머리판 등 AR-15용 액세서리는 아이폰용 액세서리보다 더 많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미국인들은 총기를 더욱 많이 구매한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의 결과다. 미국은 자동사격이 가능한 공격용 소총이나 총열 길이가 16인치(40.64㎝)보다 짧은 소총은 민간 판매를 금하고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사격 시 반동을 이용해 자동소총처럼 총기를 발사하도록 하는 범프스톡이라는 제품이 나왔다. AR-15에서 개머리판을 없애고 재킷 속에 숨길 수 있는 크기의 ‘AR-15 권총’까지 나왔다. 미국인의 생활과 문화 속에 깊숙이 들어간 ‘악마의 총’을 없애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듯하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WMD대응센터장. 합참·방사청·육해공 자문위원. 민간 군사 서비스(Private Military Service)를 제공하는 인텔엣지(주) 전 대표이사.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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