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4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서 준비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4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서 준비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4일 오전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소환돼 21시간의 고강도 조사를 받았다. 다음날 새벽 귀가한 MB는 측근들에게 “잘 대처하고 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지켜본 문재인 청와대는 “개입하지도, 개입할 여지도 없다는 게 대통령 입장”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 자체 판단과 수사 결과에 맡긴다”고도 했다. 이는 “MB의 검찰 출두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고 이를 수사하는 것은 검찰의 자체 판단”이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시계를 9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2009년 4월 30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금품수수 의혹을 조사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할 당시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공식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는 “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걸음씩 매진하겠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는 ‘청와대와 무관하고 우리 갈 길을 간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당시 청와대의 주인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9년 만에 양측의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지만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두에 대한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재인 청와대를 노무현 정부의 연장선이라고 본다면 MB 정부와 공수(攻守)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청와대 대변인은 모두 중견 언론인 출신이다. MB 시절에는 동아일보 출신의 이동관 전 대변인이 대통령의 ‘입’이었고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한겨레신문 출신이다. 두 전·현직 대변인이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두를 두고 한 발언은 어디까지가 ‘팩트’일까. 현직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의 지휘 아래 진행되는 전직 대통령 수사가 “청와대와 무관하다”고 얘기한들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다.

실제 청와대의 반응과 달리 그때나 지금이나 야당과 언론은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두를 모두 ‘표적수사’ ‘보복수사’라고 비판했다. 당시는 참모였지만 지금은 청와대에 입성한 문재인 대통령과 주변 친노 인사들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를 두고 “이명박 정권의 졸렬한 정치보복”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있는 백원우 전 의원은 당시 “MB가 속좁게 국정을 운영한다”면서 비판에 가세했다. 한겨레신문은 사설에서 “검찰 수사에 대해선 보복 아니냐는 따위의 곱지 않은 눈길이 있다”면서 검찰 수사를 힐난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으로 막을 내렸다.

MB의 검찰 출두 때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MB의 검찰 출두를 ‘문재인 정부의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지난 3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복수의 일념으로 전전(前前) 대통령의 오래된 개인비리 혐의를 집요하게 들춰내 꼭 포토라인에 세워야만 했을까. MB처럼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3월 15일 신문 사설에서 “정권과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을 표적 삼아 반년 이상 탈탈 털었다고 보는 국민도 적지 않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러한 인식이 사회 일각에 퍼져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은 한목소리로 “다시는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이 또한 과거 모습 그대로다.

MB 적용 혐의만 20여개

이번에 MB에게 적용된 혐의는 18가지나 된다. 크게 보면 세 가지의 굵직한 사안으로 나뉘는데, 우선 국정원 특수활동비와 뇌물 수수다. 그 금액이 최소 110억원에 이른다는 게 검찰이 밝힌 대표적 혐의다. MB가 현대차 납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로 밝혀질 경우 이 업체에서 발생한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검찰은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불법정치 개입 사건의 정점에 MB가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해왔다. MB는 검찰 소환 조사에서 이와 같은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MB가 조사를 마치고 귀가할 시점에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MB 측 변호인들도 검찰이 혐의 입증을 위해 확보한 MB 측근들의 진술이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됐던 다스 실소유주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은 BBK 투자금 반환 과정과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다스는 MB 소유”라고 사실상 결론을 내렸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MB의 재산관리인으로 알려진 이병모씨를 기소하고 그의 공소장에 “다스 실소유주는 MB”라고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다스가 MB 소유’라는 게 입증되려면 MB나 가족이 직접 소유한 지분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서류상 MB 소유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면 당사자가 부인하는 상황에서 주변인 진술만으로 혐의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자유한국당 이재오 전 의원은 “뇌물 혐의를 인정한 MB 측근들의 진술은 법적 증거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초미의 관심 영장 청구 여부

MB 측근들은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이번 사건으로 MB가 구속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구체적 증거자료가 아니라 주변인 진술에 의존한 수사의 한계와 전직 대통령을 잇따라 구속해야 하는 검찰의 부담이 크다고 본 것이다. MB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재직했던 한 인사는 “검찰은 이미 관련자들을 대부분 구속했고 압수수색을 통해 자료를 모두 확보했다. 전직 대통령이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건 주지의 사실인 만큼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지키는 게 맞다. 그런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보고를 드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년 말과 현재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직 시절 정치 댓글 문제를 MB에게 보고했는지 여부에 방점을 찍고 굴러가던 사건이 특수활동비와 청탁성 뇌물 수수 의혹으로 비화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경준 BBK투자자문 대표에게 떼인 투자금 반환 소송비 60억원을 삼성이 대납한 것도 뇌물로 규정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이 전 대통령의 20개에 달하는 비리와 범죄는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라고 꼬집었고, 같은 당 김현 대변인은 “증거인멸의 우려를 없애야 한다”면서 사실상 구속수사를 촉구했다.

MB가 금융기관 인사청탁 대가로 수억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이 부분은 대선자금과 연관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이 돈을 대선자금의 일부라고 본다면 형평성 차원에서 당시 경쟁 정당인 민주당 후보에 대해서도 대선자금 수사가 이어질 수 있어 검찰은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고 있다고 한다.

3월 15일 현재 검찰 내부에서는 MB에 대한 영장청구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강하다. MB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가운데,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게 조사를 담당한 실무진의 입장이다. 최종 판단은 문무일 검찰총장의 손에 달려 있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다면 MB는 내주 중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된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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