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중 기간 시진핑 주석(왼쪽)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는 김정은. ⓒphoto 뉴시스
방중 기간 시진핑 주석(왼쪽)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는 김정은. ⓒphoto 뉴시스

김정은은 스물여섯 살이던 2010년 8월 26일 아버지 김정일을 따라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으로 간 적이 있다. 거기서 열린 환영 연회에서 김정일은 김정은을 데리고 나와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에게 인사를 시켰다. 당시 김정일은 3남 김정은을 인사시키면서 “우리들의 후대가 조·중(朝中) 우의라는 우량한 전통을 계승하게 합시다”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중국 측에 통보한 것이었다. 실제 한 달 뒤인 9월 27일 김정일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명령을 하달해서 김정은을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발령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은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보름 뒤인 12월 30일 김정은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고, 이듬해 2012년 4월 11일 조선노동당 제4차 대표회의는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이상은 중국 측이 파악하고 있는 김정은의 김정일 후계 승계 과정이다.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를 중국 최고위층에 인사시킨 것과 비슷한 장면을 중국 측이 연출한 적도 있다. 1989년 6월 천안문사태가 벌어져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던 덩샤오핑(鄧小平)의 권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은 이해 6월 말에 열린 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자오쯔양(趙紫陽) 출당으로 공석이 된 당 총서기 자리에 상하이(上海)시 당서기였던 장쩌민(江澤民)을 발탁했다. 그해 11월 김일성이 열차편으로 베이징역에 도착하자 85세의 덩샤오핑은 플랫폼까지 나가서 김일성을 기다렸다. 당시 덩샤오핑은 63세였던 장쩌민의 손을 잡고 열차에 올라가 김일성에게 인사시켰다. 그때 덩샤오핑은 2010년 8월 김정일이 후진타오에게 김정은을 인사시키면서 한 것처럼 ‘조·중 우의’ 운운하는 말을 김일성에게 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2013년 2월 12일 세 번째 핵실험을 했다. 당시 시점은 시진핑(習近平) 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2012년 11월 8일 열린 제18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처음 선출된 뒤 2013년 3월 5일 개막되는 제12차 전국 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으로 선출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다시 말해 시진핑으로서는 ‘권력 교체기’를 맞고 있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김정은이 중국에 제대로 통보도 하지 않고 핵실험을 하자 시진핑 당 총서기는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그 뒤로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의 당대당 관계는 낮은 차원에서 유지됐다. 시진핑은 5년간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초청하지도 않았고, 평양을 방문하지도 않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지난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3박4일간 이뤄진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은 의미심장하다. 김정은 본인으로서는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그리고 시진핑으로서는 2012년 11월 당 총서기 자리에 앉은 뒤 거의 6년 만에 처음으로 만남을 이룬 것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당 중앙총서기 겸 국가주석 시진핑의 초청으로” 김정은의 방문이 이뤄졌다고 전했고,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3월 26일 만찬 연설에서 “우리의 전격적인 방문 제의를 쾌히 승낙해준 지성과 극진한 배려에 깊이 감동했으며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런 속사정까지 알려줄지는 모르지만 주미대사와 외교부장을 지낸 양제츠(楊潔篪) 정치국원이 3월 29일 서울을 방문했다. 중국은 양제츠의 서울 방문 발표를 김정은 방중 사실 공개와 거의 동시에 했다. 시진핑의 표현대로 김정은과 시진핑은 이번에 회담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마치 친척처럼 왕래하던” 이전 관계로 회복하자는 말을 하는 데 쓴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앞으로 시진핑 동지를 자주 보게 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시진핑은 이번 김정은의 방문이 “시기도 특수하고, 의의도 중대한 방문”이라고 했다. 시진핑은 또 “이번 김정은 동지의 방문은 중국과 조선이 양국 관계와 양당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을 체현했다”고도 표현했다. 이에 대해 김정은은 “조선반도 정세가 급속히 진전하는 가운데 적지 않은 중요 변화가 발생해서 정의상으로나 도의상으로 내가 시진핑 동지에게 당면한 정황을 통보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진핑과 김정은의 이런 언급들에서 김정은과 시진핑이 이번 만남을 통해 5월에 성사될 김정은·트럼프 회담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적 방안을 모색했을 것이란 추론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회담 말미에 시진핑은 앞으로의 북·중 관계가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요약했다. 첫째는 중·조 우호협력 관계의 회복이고, 둘째는 두 나라 간 전략적 소통을 하는 것이 ‘법보(法寶)’이므로 중대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의견교환을 하자는 것이었다. 셋째 양국 협력의 방향은 평화발전이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은 결론적으로 김정은의 ‘평창 드라이브’로 형성됐던 북한 핵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우리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판단에 힘을 실어준다. 또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함께 뒤따를 것으로 기대되던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미·북 관계의 새봄도 이전보다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은 시진핑에게 “북남 관계를 평화협력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우리의 결심은 변함이 없으며, 조·미 수뇌회담을 통한 조·미 관계 완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어서 “만일 남조선과 미국이 나의 노력에 선의로 답해 평화 안정 분위기를 조성하고, 평화실현을 위해 단계적 동시 조치를 취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가 추구하던 목표”라는 말도 했다.

여기서 ‘단계적 동시 조치’와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과 중국이 오랜 세월 전가의 보도처럼 써오던 헌 칼이다. 김정은의 이런 언급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을 고민에 빠뜨릴 전망이다. 후진타오, 장쩌민 등 중국 지도자들이 김정일과 회담만 하면 합의 제1조로 내세우던 것도 ‘한반도 비핵화’였다. 이들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우리와 미국이 추구하던 북한 핵의 제거와는 거리가 멀다. 즉 미군의 핵무기 보유도 금지시키면서 ‘한반도 남북이 동시에 추진하는 비핵화’라는 낡은 카드이다.

왜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5월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진전을 보기 전에 중국으로 달려갔을까. 미국·한국을 2 대 1로 상대하기에는 혼자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결국 김정은의 이번 방중으로 ‘남·북·미’ 회담 구도가 ‘남·북·미·중’으로 바뀌었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평창 드라이브’로 기대감이 일었던 북한 핵문제 해결 전망도 물 건너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일고 있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ㆍ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ㆍ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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