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4일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하고 있는 안철수 전 의원. ⓒphoto 뉴시스
지난 4월 4일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하고 있는 안철수 전 의원. ⓒphoto 뉴시스

바른미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양보한 뒤, 7년간 새정치민주연합과 국민의당 대표, 대선 출마 등을 거치며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을 이어왔던 안 위원장이 다시 원점에 선 셈이다.

“혁신 위해 서울시부터 혁파하겠다”

안 위원장은 지난 4월 4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위선과 무능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짜의 시대’ ‘혁신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서울시부터 혁파하겠다”며 “의사, 교수, IT 전문가, 경영인으로서 제가 가진 성공한 경험을 서울시를 바꾸는 데 모두 쏟아붓겠다”고 했다. “지난 몇 달 우리는 도대체 뭐가 뭔지를 알 수 없는 혼돈의 시간을 겪었는데, 세상이 온통 뿌연 날들이 계절도 없이 반복되는데 미세먼지 대책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어 보인다”며 “강남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정부 대책은 무차별로 쏟아졌지만, 금리까지 불안하자 오르지도 않았던 우리 동네 집값부터 떨어진다”고도 했다.

안 위원장은 지난 대선 자신의 실패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꼭 1년 전 이맘때를 아프게 기억한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열화와 같은 성원에 놀라고 감동했지만 제가 그 기대를 담아내지 못하고 실망을 안겨드렸다”며 “죄스러운 마음에 숨을 수도 없었다. 다당제를 뿌리내리고자 피땀 흘려 만든 정당이 송두리째 사라질 것 같은 위기감에 당 대표로 다시 나섰고 실로 힘든 통합 과정을 넘어 바른미래당을 만들고 다시 백척간두에 섰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2011년 자신의 양보를 통해 서울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서도 강하게 ‘견제구’를 던졌다. “7년 전에는 박 시장이 잘할 거라 믿고 양보를 했었는데, 막상 서울은 그간 제대로 변화해야 할 시기들을 많이 놓쳤다”고 했다. 박 시장을 향해 제기되는 일각의 ‘양보론’에 대해선 “제가 양보를 받아서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며 “어떤 후보가 서울시를 바꿀 수 있을지, 혁신시킬 수 있을지, 편안하고 안전한 서울을 만들 수 있을지 등을 놓고 시민들께서 판단해줄 것”이라고 했다.

안 위원장은 야권 대표선수는 자신이라고 강조하면서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을 했다.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은 견제와 균형이다. 야권 대표선수로 나선 제게 힘을 모아 달라”고 했고 “현재 서울에 살지도 않는 분이 갑자기 시장 후보로 나오는 건 시민에 대한 아주 큰 실례”라고 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소속 후보보다 자신이 여권을 견제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라고 한 것이다.

‘철수정치’에서 ‘강(强)철수’로

안 위원장은 정치 입문 초기 상대 진영으로부터 ‘철수정치’라는 비아냥을 들을 때가 종종 있었다. 중요한 정치적 결단의 순간에 한발 물러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당시 후보에게 야권 단일후보 자격을 양보한 것이 시작이었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제기된 것만으로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4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얻었던 그는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렀던 박원순 후보에게 자리를 내줬다.

당시에는 ‘아름다운 양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자 안 위원장 지지층 내부에서도 정치판에서 아직 단련이 덜 돼 유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2012년 대선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안 위원장은 정치권에 새로운 흐름을 원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받으며 ‘안풍(安風)’을 일으켰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대등한 지지세를 형성했지만 수차례 단일화 협상 끝에 결국 다시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안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재임 초기인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또 한 차례 ‘철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새 정치를 위해 건전한 제3당을 만들겠다며 새정치연합 창당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돌연 김한길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안 위원장을 따르던 핵심 측근들도 이런 결정을 뒤늦게 혹은 임박해서 전해들었을 정도로 급작스러운 반전이었다. 하지만 합당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체제로 치른 6월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참사’로 인한 박근혜 정부 심판론이 제기됐음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을 이기지 못했고, 7월 재보선에서는 아예 참패하면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후 안 위원장은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문재인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친문 진영이 장악한 당을 떠나 신당 국민의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그에게는 ‘강철수’라는 별칭이 붙기 시작했다. 당시 안 위원장을 따라 호남 중진들을 중심으로 상당수 의원들이 동반 탈당을 했지만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 지지율은 추락을 거듭했다. 당내 일각에선 다시 민주당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안 위원장은 “광야에서 죽겠다”며 독자 노선을 고집했다. 결국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호남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면서 지역기반을 마련했고 정당득표율로는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안 위원장과 함께 총선을 치렀던 한 전직 의원은 “안 위원장이 국회에 들어와서 짧은 시간에 정치 논리를 습득했으며 동시에 성공한 기업인 특유의 강단과 뚝심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던 선거였다”며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지만 안 위원장은 당시 냉정을 잃지 않았었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도 안 위원장은 굵고 낮은 목소리로 발성까지 바꿔가며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 애썼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국민의당이 분열하는 과정에서도 안 위원장은 각종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꾸준히 밀어붙였다. 결국 호남 중진들 대부분은 안 위원장에 반발해 결별을 선언하고 민주평화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안 위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맞붙었던 유승민 의원과 손을 잡고 바른미래당을 만들어 서울시장 후보로 다시 나서게 됐다. 안 위원장의 핵심 측근은 “기존 진보와 보수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건전한 제3당이 한국 정치의 주류가 돼야 한다는 안 위원장의 생각은 정치권에 들어올 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며 “지난 7년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앞으로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는 많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 안팎 고공행진을 기록하는 상황이라 안 위원장을 중심으로 뭉칠 수 있는 중도층의 절대적 숫자 자체가 적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선거가 다가올수록 유권자들은 기존 구도대로 좌우 양측으로 결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 위원장으로서는 힘겨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른미래당 한 의원은 “안 위원장으로서는 당연히 승리가 목표”라면서도 “만약에 지더라도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대안세력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가 나온다면 국민적 기대감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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