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일 ‘남북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에 참석한 김정은. ⓒphoto 뉴시스
지난 4월 1일 ‘남북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에 참석한 김정은. ⓒphoto 뉴시스

오는 4월 27일 열릴 제3차 남북 정상회담에 많은 국가가 주목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에 대해 반대할 국민이나 국가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 김정은이 새해 벽두부터 전개하고 있는 평화공세가 본질적인 ‘전략적 변화’가 아니라 상황 변화에 따른 ‘전술적 변화’라는 사실이다.

북한이 대남 강경(전쟁)노선에서 유화(평화)노선으로 전격 전환한 배경부터 살펴보자. 김정은 집권 이후 연이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실험 등 비타협적 군사모험주의로 치닫던 북한이 올해 초 돌연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디딤돌로 활용하여 상호 특사를 교환한 끝에 제3차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을 도출해냈다. 북한이 돌연 대화공세로 나선 것은 미국, 유엔 등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 경제제재로 인한 경제적 압박 심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등 군사작전 검토 등의 상황에 직면하여 향후 도래할 강도 높은 체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술책으로 평가된다. 갑자기 김정은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수령절대주의 폭압정치와 대남적화혁명전략을 폐기하고 평화노선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4월 11일 도쿄에서 주간조선 취재팀과 함께 만난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사카이 전 일본 공안조사청 조사2부장은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하고 이를 지렛대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대화에 나섰다고 분석했으나, 필자는 북한이 체제압박이나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는데 스스로 대화의 장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의 핵심의제인 ‘북한의 비핵화’의 진의와 방식도 따져 봐야 한다. 김정은은 대북특사단 면담과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비핵화’가 선대(先代) 수령이라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遺訓)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른바 조선혁명의 계승자이며 유일한 유훈 관철자라는 명분으로 저항 없이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과 김정은이 선대 수령의 유훈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핵개발을 한 꼴이다. 핵개발을 다 해놓고 이제 와서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니?

최소한 유훈이라고 공인되려면 육성녹음이나 관련 문서 등이 공개되어야 하지만, 누구 하나 유훈의 근거를 요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논의 전에 먼저 비핵화 유훈의 근거와 입증 자료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이 비핵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북한의 과거·현재·미래의 핵시스템을 완전 해체하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방식이 아니다. 지난 3월 26일 중·북 정상회담에서 보듯이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단계적 조치’를 전제조건으로 걸고 있는 것을 보아도 CVID 방식은 우리와 서방세계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는 북한이 2016년 7월 6일 정부성명으로 발표한 이른바 조선반도 비핵화 5대 조건을 보면 명확해진다. 이 성명에서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이 북의 핵무장을 촉발시켰다고 강변하며 ‘선 비핵화’를 하기 전에 먼저 북에 대한 핵위협 공갈의 근원부터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며 미국의 핵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북한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명분하에 △미국의 핵폐기 △북한에 대한 핵공격 중지 및 체제보장 △미국·북한 간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하며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위 조건 중 ‘미국의 핵폐기’를 협상용으로 활용하고 나머지 전제조건의 관철에 주력할 것이다. 결국 2005년 ‘9·19 공동선언’에서 보듯이 북핵 폐기는커녕 또 한 차례의 비핵화 사기극에 놀아날 가능성이 높다.

CVID 방식의 비핵화가 난망함에도 불구하고 이행되었다고 일단 가정해 보자. 그렇다고 해서 북한 비핵화만 달성되면 남북관계의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북한이 핵을 보유하지 않았을 때 남북한 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가? 우리 정부와 전 세계가 북한 비핵화에만 올인하고 있는데, 비핵화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은 착각이다. 북한의 군사도발, 간첩남파, 테러, 마약·위조지폐 등 국제범죄, 인권탄압 등 산적한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정상회담 등 남북 당국자 회담을 그동안 통일전선 중 상층(上層) 통일전선으로 간주해왔다. 김일성 사후 발간된 북한 통일전선부의 대남지령용 책자인 ‘김일성 주석과 민족대단결’(평양출판사·1994) 99쪽을 보면 “북과 남의 고위당국자들이 마주 앉은 정치회담, 그것은 북남 상층 통일전선의 서막이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민족대계를 위해 진실성을 보여야 할 남북 당국회담을 대남적화전략의 핵심전술인 통일전선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대남(적화)전략을 포기하기 전까지, 남북 정상회담은 적화혁명을 위한 최상층 통일전선임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제3차 정상회담에서 꼭 지켜야 할 원칙은 다음과 같다고 본다. ①어떤 경우에도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회담을 해야 한다. ②북한의 정상회담 전술, 즉 상층 통일전선전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문 정부는 북한의 평화공세를 전략적 변화로 믿고 싶겠지만 냉철하게 평가할 때 전술적 변화임을 깨닫고 회담에 임해야 할 것이다. ③북한이 전개하는 정상회담 관련 영향공작(Influence Operation) 등 대남심리전과 관련하여 지금처럼 방치가 아닌 사상전 차원의 대응이 꼭 필요하다. 철저한 대응만이 협상력을 높여줄 것이다. ④정상회담의 연기나 무산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⑤CVID 방식에 의한 비핵화 시한을 명기해야 하며 또한 비핵화 이행이 완료되지 않을 때를 가정한 후폭풍에도 대비하며 정상회담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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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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