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이 정경두 합참의장(오른쪽)과 함께 경기도 의정부에서 벌어진 ‘워리어 스트라이크 9’ 훈련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12월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이 정경두 합참의장(오른쪽)과 함께 경기도 의정부에서 벌어진 ‘워리어 스트라이크 9’ 훈련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많은 사람들이 평화협정이 되면 (주한) 유엔사가 자동해체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데, 이는 달리 봐야 합니다.”

2007년 10월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평화재단(이사장 법륜) 주최로 열린 ‘전환기 한반도, 한국군의 위상과 새로운 역할’ 토론회에서 당시 이상철 국방부 현안안보정책TF장(대령·현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이 대령은 “평화체제로 전환되면 유엔사 문제가 핵심 이슈가 될 수 있다”며 “평화협정 시 유엔사가 자동적으로 해체된다는 것은 단편적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대령은 뒤에 준장으로 진급한 후 전역했으며,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안보실 1차장이라는 핵심 요직을 맡고 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주한미군 철수, 유엔사 해체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특히 좌파 진보진영 일각에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유엔사는 자동으로 해체되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비록 10여년 전이긴 하지만 현 정부의 요직을 맡고 있는 인사가 그런 좌파 진보진영 기류와 정반대의 입장을 밝혔던 것이다.

당시 이 대령은 이 같은 주장의 근거들을 이렇게 밝혔다. 우선 유엔사가 단순하게 정전협정을 유지, 관리만 하는 기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유엔사가 유엔으로부터 처음엔 북한 남침을 격퇴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가, 38선 이북으로 진출하는 문제에 봉착하자 “유엔 총회에서 통일되고 독립되고 민주화된 한국을 건설하는 임무를 새로이 부여받았다”는 점을 밝혔다. 유엔사가 정전관리 임무 외에 이 같은 별도의 임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따져볼 때도,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을 대체한다고 해서 유엔사가 전적으로 해체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유엔사가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연계되어 있고, 한반도 위기 사태 시 유엔사의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생각해야 한다”며 사견임을 전제로 “유엔사는 한반도 전쟁을 억지하는 안전장치로 존속하는 것이 옳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상철 차장 외에도 비슷한 입장을 밝힌 전문가들이 있다. 김동명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은 2011년 서울대 ‘통일과 평화’ 3집에서 “법리적으로 정전협정 폐기와 유엔사 해체 문제는 별도 사안으로, 정전협정 폐기만으로 유엔사가 해체될 성질은 결코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유엔사가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할 경우 미군으로 하여금 즉각 개입할 수 있는 명분도 제공하고 있다”며 “유엔사는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공고한 평화체제가 실현될 때까지 존속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경우도 유엔사처럼 정전체제 해체와 무관하다는 지적이다. 김동명 박사는 “주한미군은 6·25전쟁 발발 후 한국의 방위를 위해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미군과, 한·미 상호방위조약(1953년 10월 1일)에 따라 지금까지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으로 나눌 수 있다”며 “이는 법적으로 별개이며 따라서 주한미군 문제는 정전체제 해체 문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유엔사가 정전체제 유지, 관리 외에 한반도 유사시 유엔 회원국들의 참전을 유도하는 창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일본 주일미군 기지에 있는 유엔사 후방 기지가 대표적이다. 이 기지들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났을 때 병력과 무기, 보급물자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주한 유엔군사령부 휘하에 있지만 일본에 주둔하고 있어 ‘유엔사 후방 기지’라고 한다. 유엔사 후방 기지는 요코스카 기지 외에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 기지, 후텐마 해병대 기지 등 7곳이 있다.

유엔사 강화의 이유

요코스카 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약방의 감초’처럼 출동하는 항공모함과 이지스함을 비롯한 미 7함대 소속 함정들의 모항이다. 함정 10여척이 한반도 유사시 48시간 내 출동 태세를 갖추고 있다. 아시아 최대 미 공군기지인 가데나 기지에는 F-15 전투기, E-3 공중조기경보통제기, KC-135 급유기, RC-135 전략정찰기 등 한반도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항공기 120여대가 배치돼 있다. 오키나와 기지엔 한반도 위기 때 가장 먼저 출동해 전쟁을 억제하거나 북한의 공격을 저지하는 미 제3해병원정군도 배치돼 있다. 사세보 기지엔 한반도 유사시에 사용할 수백만t에 이르는 탄약이 저장돼 있다.

몇 년 전부터 미군이 유엔사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는 것도 평화체제 및 전작권(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추진과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연계시키고, 한반도 위기 시 다국적군의 휴전선 이북 진출을 위해 유엔사를 유지·강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B. B 벨 전 한·미연합사 겸 유엔사령관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유엔사를 침략 억제와 전투작전 수행을 지원하는 중요한 사령부로 유지한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3년 4월엔 한·미 연합 상륙훈련(쌍용훈련)에 유엔사 회원국인 호주군이 처음으로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호주 육군 소속 1개 소대(18명)가 참가했다. 호주군은 유엔군 자격으로 한·미 해병대의 연합상륙전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유엔사 회원국의 전투병력이 한·미 연합 야외기동훈련(FTX)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었다. 종전엔 유엔사 소속 16개 회원국 중 영국·프랑스·호주·터키·태국 등 5∼7개국은 키리졸브(KR)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2~3명의 장교를 옵서버 자격으로 파견했었다. 호주군 전투병력의 한·미 연합훈련 참가에 대해선 전작권 전환 및 평화체제 구축 이후 유엔사의 임무와 조직 확대를 위한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은 2006년 이후 전작권이 전환되면 유엔사가 정전협정 유지 및 관리 임무뿐 아니라 유사시 한·미연합사령부를 대신해 ‘전력 제공자’로 대북 억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주한미군은 그뒤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하거나 참관하는 유엔사 회원국들의 숫자를 늘려왔다. 군 소식통은 “미국은 향후 유엔사를 회원국들이 작전계획 수립과 훈련에 적극 참여하는 ‘다국적연합군’으로 변모시키길 원한다”며 “앞으로 한·미 연합훈련에 더 많은 유엔 회원국의 병력과 장비가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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