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및 이란 외교장관들이 핵합의를 발표하고 있다. ⓒphoto 미 국무부
2015년 7월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및 이란 외교장관들이 핵합의를 발표하고 있다. ⓒphoto 미 국무부

‘에그테사데 모거베마티’는 서방의 제재에 굴하지 않고 자력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하자는 이란의 ‘저항경제(Resistance Economy)’를 의미한다. 외국 투자와 교류 없이 자급자족 내수만으로도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란 국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주장해온 ‘저항경제’는 말 그대로 자력갱생하자는 것이다. 하메네이는 2012년 국제사회가 핵 개발을 추진해온 이란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자 ‘저항경제’를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이란 정부가 올 들어 ‘저항경제’의 기치를 또다시 높이 들고 있다. 하메네이는 페르시아력(曆)에서 새해 첫날로 삼는 ‘노루즈’를 하루 앞둔 지난 3월 20일 연두교서에서 “국산품 생산과 소비를 가속해 ‘저항경제’를 달성한다면 많은 경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면서 “올해를 국산품 애용의 해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같은 날 대(對)국민 연설에서 “1397년은 국산품과 이란 제품을 애용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진전하는 해”라고 강조했다.

이란은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에 따라 춘분(3월 21일)이 새해의 첫날인 페르시아력을 사용한다. 페르시아력으로 올해는 1397년이다. 이란 정부는 정부 기관과 공기업, 정부 관련 기관에 외국에서 수입한 물품을 쓰면 안 된다는 금지령을 내렸다. 이란 정부는 “정부 부처는 물론 공기업과 관련 기관 및 이들과 거래·계약하는 상대방도 이란에서 이미 생산되는 물품이 있다면 외국산 제품을 구매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란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도 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가 올해를 ‘국산품 애용의 해’로 선포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5월 12일까지 이란 핵합의를 수정하지 않을 경우 이를 파기하겠다고 위협해왔다. 반면 핵합의를 절대 수정할 수 없다는 입장인 이란 정부는 외국산 수입품을 최대한 줄이고 국산품 소비를 늘려 내수만으로도 버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란 경제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란은 1차산업이 발달해 농산물은 풍부한 편이지만 제조업은 부진한 탓에 생활필수품의 원자재 또는 완제품을 외국 제품에 의존한다. 때문에 이란 통화인 리알화 가치가 떨어지면 물가가 급등한다. 지난 1월 이후 최근까지 달러화 대비 리알화 환율은 19.5%나 폭등했다. 리알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수입품을 중심으로 물가상승률이 10%에 육박하는 등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에도 서방의 제재로 환율이 단 며칠 만에 1만2000리알에서 3만리알 이상으로 뛰는 등 외환위기가 발생해 이란 경제가 급격히 악화했었다.

이란 정부는 과거의 위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지난 4월 9일 전격적으로 환율을 단일화하면서 외환 거래를 중앙은행의 통제 아래 둔다는 포고령을 내렸다. 이란 정부의 의도는 사설 환전소를 통한 외환 거래를 제한하고, 모든 무역 거래로 발생하는 외환을 중앙은행과 국영 은행을 거치도록 해 기축통화 유출을 막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란 중앙은행은 지난 4월 20일 모든 외환환전소에 달러화와 유로화 등 외화의 환전 업무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중환율제를 인정해온 이란에선 그동안 사설 환전소들이 활발하게 영업해왔다. 사실상 사설 환전소가 폐쇄되자 텔레그램 등 SNS상에선 ‘달러화를 바꿔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고 있고, 암달러상들도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서고 있다. 물가도 계속 오르고 있다. 공산품뿐만 아니라 달걀과 쌀 등 식재료와 생활필수품까지 덩달아 뛰고 있다. 이란 국민들이 미국의 제재에 대비해 사재기를 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로 핵합의를 깰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이란과의 핵합의는 재앙이자 최악의 거래”라면서 “이란에 대한 항복이자 미국의 수치”라고 지적해왔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새로운 사령탑이 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이란과의 핵합의는 이란의 핵 개발 야망을 제어하기보다 오히려 부추길 것”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욱 강력하게 이란 핵합의 파기를 주장해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도 하원의원 시절부터 “이란 핵합의를 뜯어고쳐야 하며, 이를 관철시키지 못할 경우 파기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란 나탄즈 핵시설에 설치된 농축우라늄 제조용 원심분리기들의 모습. ⓒphoto IRNA
이란 나탄즈 핵시설에 설치된 농축우라늄 제조용 원심분리기들의 모습. ⓒphoto IRNA

‘일몰 조항’이 트럼프의 가장 큰 불만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포함된 주요 6개국(P5+1)은 2015년 7월 이란과의 핵협상을 타결하면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라는 핵합의를 도출했다. JCPOA의 골자는 이란은 전력생산 목적 이외 핵 개발을 포기하고, 서방은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이란은 2025년까지 10년간 1세대 원심분리기 1만9138개를 6104개로, 저농축우라늄 7154㎏을 300㎏으로 각각 줄이기로 했다. 이란은 또 이미 장착된 최신 원심분리기 1008개와 농축우라늄 196㎏을 전부 포기하기로 했다.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는 나탄즈에서 신형 원심분리기용 우라늄 농축과 관련한 연구·개발을 계속하되 농축우라늄을 저장하지 않기로 했고, 농축할 수 있는 우라늄 농도는 3.67% 이하로 제한하기로 했다.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중수로는 전력생산만 가능토록 현대화하며 남는 중수로는 시장가격으로 해외 반출하기로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의심스러운 핵시설에 대해 사찰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IAEA가 이란의 합의 이행을 검증한 이후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내용의 이란 핵 합의를 문제 삼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른바 ‘일몰조항(sunset clause·일정 기간이 지난 후 폐지되는 조항)’이다. JCPOA에는 15년 후인 2030년부터 이란의 핵 활동에 대한 주요 제한을 모두 없애기로 한 일몰조항이 포함돼 있다. 또 2025년부터 이란의 핵 활동 중 일부는 해제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란이 마음만 먹으면 다시 핵 개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게다가 일부 군사 지역을 IAEA의 사찰 대상에서 제외했다. 핵 협상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유럽 국가 정상들이 이란과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일몰조항을 포함하는 내용을 양보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개발을 금지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8년간(2023년까지) 유지한다는 일몰규정만 있을 뿐이다. 2023년 이후에는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 개발이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란 정부는 이런 허점을 이용해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고 수시로 시험 발사까지 해왔다. 이란 정부는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능력이 없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이란이 지금도 핵 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핵탄두를 탑재하기 위해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이런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실제로 이란 정부는 그동안 북한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탄도미사일을 개발해왔다. 예를 들면 이란의 샤하브-3호 미사일은 사거리가 1000~1300㎞인 북한의 노동 미사일(화성-7, KN-5)을 수입해 개발한 것이다. 이란은 샤하브-3 미사일을 다시 개량해 가드르 미사일(사거리 1600㎞)과 에마드 미사일(사거리 1700㎞)을 개발해 실전배치했다. 북한은 이란에 사거리 2500~4000㎞인 무수단 미사일(화성-10, KN-7)도 수출했다. 이란이 지난해 9월 시험 발사한 영상을 공개한 사거리 2000㎞인 호람샤르 탄도미사일은 무수단 미사일과 비슷한 유형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 커넥션’에 대해 정보기관들에 철저히 조사해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프레드 플레이츠 미국 안보정책센터 부소장은 “이란은 북한의 도움으로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기술과 정보를 교환해왔다”고 지적했다.

2013년 이란을 방문해 로하니 대통령(오른쪽)과 만난 김영남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 ⓒphoto 이란 대통령실
2013년 이란을 방문해 로하니 대통령(오른쪽)과 만난 김영남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 ⓒphoto 이란 대통령실

북한과 공조해온 탄도미사일 문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 재협상을 통해 일몰조항 삭제, 탄도미사일 개발 제재 강화, 이란의 모든 핵시설 사찰, 이란의 핵합의 위반 시 미국과 유럽연합의 공동 제재 즉시 재부과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란 정부가 테러 단체들을 지원할 경우 핵합의를 파기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이란 핵합의 재협상을 통해 이런 내용들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오는 5월 12일 이후 제재 유예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영국·프랑스·독일 등에 통보했다. 제재 유예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것은 핵합의를 파기하겠다는 뜻이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 4월 11일 하원 세출 위원회에서 “이란 핵합의가 수정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이란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 핵합의 파기 상황에 대비한 ‘비상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미국 에너지 컨설팅그룹인 팩트글로벌에너지의 페레이던 페샤라키 회장은 “트럼프 정부가 JCPOA를 파기할 가능성은 90%”라고 예상했다. 미국 의회도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이란 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핵합의 파기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이란 정부는 핵합의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메네이는 “이란은 미국의 압박에 결코 굴복하거나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이 핵합의를 파기하면 핵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모든 시나리오에 대한 계획을 준비했고 어떤 난관도 없다”고 강조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도 “우리는 미국의 핵합의 파기에 대응해 많은 옵션이 있다”면서 “이미 깨져버린 핵합의를 우리만 일방적으로 실행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먼저 핵합의를 파기하지는 않겠지만, 미국 정부가 파기하면 이틀 안으로 농도 20%의 농축우라늄을 생산하겠다는 입장이다. 농도 20%의 농축우라늄은 핵무기를 바로 만들 수 있는 농도(90%)보다는 농축도가 낮지만, 발전용 우라늄 연료(4∼5%)보다는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핵합의 이전에 이란은 농도 20%의 농축우라늄을 보유했었다. 이란 정부는 또 핵 문제 이외의 탄도미사일 개발과 테러 지원 등 여타 사안을 연계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란 정부는 탄도미사일 개발이 주권과 자주국방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협상 안건이 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 4월 8일 국방의 날을 맞아 테헤란에서 열린 열병식을 참관하고 연설을 통해 “자주국방을 위해 우리 군이 필요한 모든 무기를 만들겠다”고 밝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탄도미사일 개발 제한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이란의 이런 입장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은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중재안을 만들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미국과 이란을 설득하고 있지만 성과가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미국보다 이란이 더욱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란의 샤하브-3호 미사일의 시험 발사 모습. ⓒphoto FARS 뉴스
이란의 샤하브-3호 미사일의 시험 발사 모습. ⓒphoto FARS 뉴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를 파기할 경우 북한의 비핵화를 논의할 북·미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결’ 성격인 이란 핵합의를 파기한다면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데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를 파기한다면 전임 대통령과는 달리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타협이 아닌 분명한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원칙을 천명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김정은이 이란 핵합의 파기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절대로 어정쩡한 합의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북한의 비핵화가 완전히 이루어져야 제재 해제 등 반대 급부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전략은 이란과의 핵 협상을 통해 얻은 교훈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잘못 결정했다고 생각해온 협정이나 조치들을 파기하거나 대폭 수정해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했다. 또 나토에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고,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를 두 차례나 공습할 것을 명령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관세를 대폭 부과하는 등 무역전쟁도 불사하고 있고, 러시아에 대해서도 가장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란 핵 문제에 대해선 최후통첩까지 내린 상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란 핵합의 파기 여부는 북한 비핵화의 ‘리트머스시험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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