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원전수출국민행동이 국민통합대회를 열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 4월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원전수출국민행동이 국민통합대회를 열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오는 6월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할 경우 대가로 주어질 경제지원방안이 모색되는 가운데 일각에서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근 원자력 학계, 산업계, 시민들로 구성된 최대 규모의 탈(脫)원전 반대 시민단체가 내홍 끝에 분열됐다. 북한에 원전 수출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맞서다 북한 원전 지지파들이 따로 새로운 단체를 창립해 곧 출범식을 열 예정이다.

내홍을 겪다 분열된 단체는 ‘원전수출국민행동’(이하 원국행)으로, 이 단체 기획위원장을 맡았던 이병령 박사(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대북원전지원팀장)와 홍보위원장을 맡았던 김창영 전 정운찬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회원이었던 전영기 중앙일보 전 편집국장 등 핵심 인물들이 탈퇴를 결정했다. 현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직함을 유지하고 있는 전영기 전 편집국장의 경우 원국행에서 보직을 맡지는 않았지만 칼럼 등을 통해 탈원전 반대 논리를 펴왔다.

이 중 탈퇴를 주도한 이병령 박사는 2001년 북한 함경남도 신포지구에 경수로를 건설하는 KEDO사업에 참가했던 원자력 전문가다. 그는 대전 원자력연구원에서 한국형 원전을 개발했고 KEDO사업 때는 대북 경수로 지원단장을 맡아 정부 협상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었다.

이들이 탈퇴를 결정한 주된 이유는 북한에 원전을 수출하자는 자신들의 주장이 원국행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병령 박사는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할 경우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그는 지난 3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원국행 출범 기자회견에서도 “우리의 원전 기술은 최대 현안인 북한 비핵화에도 절묘한 대안”이라며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북한에 한국형 경수로를 다시 공급하기로 결정한 후 30% 짓다가 만 신포에서 나머지 70% 공정을 완성하겠다는 제안을 하자는 것이다. 전영기 전 편집국장 역시 중앙일보 ‘전영기의 퍼스펙티브’ 코너를 통해 수차례 ‘북한에 원전을 수출하자’는 주장을 해왔다.

이렇게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자는 주장을 두고 원국행 내부에서는 그간 내홍이 거듭됐다는 것이 원국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원국행의 한 임원은 기자와 만나 “이 박사와 함께 원국행 내 일부 인사들이 북한에 원전을 짓자는 주장을 계속하면서 원자력 학계 교수들과 충돌해왔다”고 말했다. 원국행의 다른 관계자는 “북한 원전 얘기를 지금 내놓는 건 여러모로 봐도 시기상조이고 원전 해외 수출을 진흥하고 나아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막는 게 목표인데 북한에 한국형 원자로를 짓자는 식의 튀는 얘기를 하면 모두를 적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며 “이병령 박사를 중심으로 한 측과 설전을 벌인 교수들이 이 박사에게 원국행에서 나가달라고 말하고 이 박사와 전영기 전 국장이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내홍이 일단락됐다”고 말했다.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자고 주장해온 측은 현재 새로운 단체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신생 단체 이름은 ‘한반도평화에너지국민연합’이다. 전영기 전 편집국장과 이병령 박사가 단체 설립을 주도하고 있다. 이병령 박사는 전화통화에서 “나른하지 않고 문제의식 있는 교수들을 모으고 있다”며 “아직까지 핵심 인물들의 이름을 밝히긴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계, 산업계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단체의 핵심 멤버 10명 정도를 규합한 상태로 6~7월 중 출범식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출범 직후부터 다른 목소리

이병령 박사는 “북한에 원전 수출을 주장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원국행 관계자들의 주장에 대해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이미 정부가 원전 해외 수출을 잘하고 있는데 ‘원전 수출을 하자’는 캐치프레이즈가 뭡니까. NGO가 이슈가 되고 주목을 받으려면 강하게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야죠. 구호가 너무 밋밋하잖아요. 탈원전 반대는 정부에 밉보인다니까 못 한다고 하고. 반대에 부딪혀 설전이 벌어졌어요. 한전·한수원 사장 자리를 몇 달간 비워놓는 산업부를 비판해야 하는데 주최 측과 의견이 너무 달라서 나왔습니다. 단체 출범식을 준비하는데 나오기는 뭐하니까 출범식 직후에 나왔습니다.”

이 박사는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자는 제안은 아직 시기상조가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강연 다니면서 보면 북한에 원전을 짓는다는 방안에 대해 주로 진보층은 찬성한다고 하고 보수층은 ‘북한에 퍼주기’라면서 반대한다”며” “북한에 원전을 지어줘도 얼마든지 대가를 받을 수 있게 계약할 수 있으니 ‘퍼주기’가 아니다. 원전이 나중에 남북관계의 ‘접착제’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우리가 짓지 않으면 중국이 어차피 지을 것’이라고 얘기하면 호응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일순 원국행 본부장(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은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실제로 핵을 폐기한다는 전제가 있으면 북한에 원전을 수출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현재는 불확실성이 너무 심하고 KEDO 때 경험을 봐도 특히 핵 문제에 관해서는 북한은 상상 이상으로 전략적인 나라라 성급하게 결론을 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병령 박사에게) 개인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은 상관없으니 나중에 핵폐기가 확정되고 상황이 안정되면 공식 입장을 내라고 했다”며 “여기에 대해서는 이병령 박사도 동의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박사를 포함한 원국행 핵심 멤버들의 탈퇴 이유와 관련해서는 “(이병령 박사) 본인이 탈퇴를 결정했다”며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고 본인으로부터는 다른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는 설명만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원전수출국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황일순 본부장(왼쪽 세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 3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원전수출국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황일순 본부장(왼쪽 세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도보다리 대화서도 “발전소 문제” 언급

그렇다면 원국행이 쪼개질 정도로 논란을 빚은 한국형 원전의 북한 건설은 진짜 현실성이 있을까.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에너지협력 방안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해 핵무기를 전량 폐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북한으로서는 에너지 문제가 가장 시급하기 때문이다. 4·27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 대화에서 “발전소 문제…”라는 다섯 글자를 언급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통계청 ‘2017년 북한의 주요통계지표’ 에너지 및 전력 분야 분석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연간 발전설비용량은 10만5866㎿다. 반면 북한의 설비용량은 7600㎿로 한국의 7.2% 수준에 불과하다. 연간 발전전력량 역시 한국은 5404억㎾h지만 북한은 239억㎾h로 4.4% 수준이다. 이에 대해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북한에서는 언제 전기가 들어올지 나갈지를 몰라 ‘자유전기’라고 부른다”며 “산업화하려면 연속공정 등이 필수인데 북한의 경우에는 설비가동률이 엉망”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원전을 건설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한번 지어주면 원전 건설의 기대 효과로 상호관계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든다.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은 일단 지어주면 그만이지만 원전은 막대한 인력과 부품이 계속 지원돼야 하기 때문에 발전소를 수출한 측에 수입한 측이 관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고 기술적으로도 예속이 된다는 것이다. 이병령 박사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한 경제가 발전하면 중국은 북한에 자국의 원전을 수출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원전을 건설한다면 북한은 중국에 계속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원전은 배제하는 분위기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대로 북한에 대해서도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소나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소를 통해 전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얼마 전 산업부 산하 한 공기업이 비무장지대(DMZ)에 LNG발전소를 건설해 북한 내 산업인프라에 전력을 지원하려는 계획을 세워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5월 8일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산업부 산하기관인 한국동서발전이 비무장지대에 복합화력발전소인 ‘평화발전소’를 건설하려 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자료에 따르면 평화발전소는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500㎿급 발전소로, 북한 내 산업인프라 구축용 전력공급을 목적으로 한다. 권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평화발전소 건설 사업은 2013년 10월 연천군과 한국동서발전 사이에 업무협약이 체결된 상태여서 사업 진척이 수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평양시 인구를 260만명으로 볼 때 평양시 2배의 전력공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업부는 동서발전의 ‘평화발전소’ 건설 계획이 보도되고 ‘시기상조’라는 비판 여론이 제기되자 “평화발전소는 한국동서발전의 자체 아이디어일 뿐”이라고 서둘러 해명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원전수출국민행동은?

지난 3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원전수출국민행동 임원진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이 이병령 박사,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김창영 전 총리실 공보실장이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 3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원전수출국민행동 임원진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이 이병령 박사,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김창영 전 총리실 공보실장이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 3월 20일 출범한 원전수출국민행동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 산업과 수출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로 결성됐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 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격렬한 토론의 경험이 이 단체의 결성 배경이었다. 서울대·KAIST·한양대 등 원자력 관련 공학과가 있는 공대 교수들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노동조합 등 원자력 학계·산업계 구성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4월 21일에는 원자력공학 관련 학과가 있는 학교 소속 전국 대학생들이 모여 대학생연합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당시 참가자들 중 일부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항의하는 의미로 청와대 근처까지 행진해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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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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