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앤드루 영국 왕자가 런던의 공자학원을 방문해 1000번째 교실 개설을 축하하고 있는 모습. ⓒphoto 뉴시스
2015년 10월 2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앤드루 영국 왕자가 런던의 공자학원을 방문해 1000번째 교실 개설을 축하하고 있는 모습. ⓒphoto 뉴시스

미국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중국 담당 기자인 배서니 알렌-에브라히미안(Bethany Allen-Ebrahimian)은 지난 2월 말 미국 조지아주 사반나주립대 저널리즘학부 초청으로 현지 강연을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행사 팸플릿 연사 소개란에 자신의 대만 취재 경력이 쏙 빠져 있었던 것이다.

존스홉킨스대와 예일대에서 동아시아를 공부하는 그녀는 중국과 러시아, 일본, 대만 등지를 취재하면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에도 기고를 해왔다. 중국에서 4년을 살아 중국어에 능숙하고, 국제중국저널리스트협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홍콩의 민주화 시위, 위구르와 티베트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 시진핑 주석의 언론과 인터넷 통제 등에 대해 설명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이 대학 공자학원 중국인 원장인 뤄치줸(羅其娟)이 다가와 중국말로 그녀에게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중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시 주석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했는지, 반부패 캠페인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느냐” “당신은 점점 좋아지고 있는 지금 상황을 모른다”는 등의 취지였다.

중국의 주권에 도전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연사 소개란의 대만 취재 경력을 삭제하도록 한 것도 뤄 원장이었다. 공자학원이 이 강연 행사의 스폰서라는 이유로 대학 당국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 대학 대만 출신 교수가 공자학원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일도 있다고 한다. 지난 5월 9일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에 이 사건 전말을 쓴 알렌-에브라히미안 기자는 “이런 검열은 (미국 내에서) 사반나주립대학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전 세계 138개국 525곳

중국이 중국어와 중국문화 보급을 위해 전 세계 각국에 설립한 공자학원이 올 들어 미국 내에서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 공자학원이 단순한 문화 보급을 넘어 중국의 이념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대만·티베트 문제 등에 대한 언급을 검열하는 등 학문의 자유마저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정부 내에서는 공자학원이 비전통적인 첩보 수집 조직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미·중 간에 치열한 무역전쟁이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미국 내에서 공자학원도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양상이다.

공자학원은 독일의 ‘괴테인스티튜트’(독일문화원), 영국 ‘브리티시카운슬’(영국문화원)처럼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키우겠다는 취지로 창설됐다. 2004년 한국 서울에 서울공자아카데미가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 세계 138개 국가에 총 525곳의 공자학원이 만들어졌다. 나라별로는 미국이 110곳으로 가장 많고, 우리나라도 23곳으로 아시아에서 공자학원 수가 가장 많다.

공자학원은 중국 교육부 소속으로 베이징에 본부인 ‘궈자한반(國家漢辦)’이 있다. 주로 세계 각국의 대학 내에 설립되는데, 중국 정부는 공자학원 한 곳에 매년 10만~15만달러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한 해 전 세계 공자학원 유지를 위해 쓰는 돈만 수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자학원 폐쇄 대학 속출

서방에서는 5~6년 전부터 공자학원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에 자금을 지원해 중국어와 중국문화 강좌 등을 마련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대가로 달라이 라마 초청이나 대만·티베트 문제, 중국 군사력 강화, 공산당 내 당파 싸움, 중국 인권 문제 등을 언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2013년에는 캐나다 맥매스터대가 서방에서는 처음으로 공자학원을 폐쇄했다. 이 대학 공자학원이 중국어 강사를 임용하면서 ‘파룬궁 수련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신앙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본 것이다. 파룬궁은 중국 내에서 활동이 금지된 심신수련 단체이다. 2014년에는 토론토교육청도 “중국공산당이 공자학원을 직접 통제하고 있고 체제 선전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공자학원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미국에서도 2014년 시카고대가 처음으로 공자학원 폐쇄를 결정했다. 이 대학 교수 100명이 “공자학원이 중국공산당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학문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성명을 내자 이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유럽에서도 2015년 스웨덴의 스톡홀름대학, 독일 슈투트가르트미디어대학 등이 공자학원을 폐쇄했다.

올 들어 미국 내 공자학원 비판은 더 거세지는 양상이다. 미국 내에서 학생 수가 두 번째로 많은 곳인 텍사스 A&M대학은 올 4월 5일 공자학원과의 협력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텍사스주 출신 연방 하원의원인 마이클 맥콜(공화당)과 헨리 큐엘라(민주당)가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을 통해 텍사스 교육기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고 크게 우려한 직후였다. 두 의원은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으로 학술적 원칙을 해치고 중국의 정치이념을 선전하려 하고 있다”면서 “파괴행위와 악의적인 의도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미국적 가치를 억압한다”고 했다.

미 FBI는 “스파이 활동 내사”

워싱턴 정가에서도 올 연초 공자학원이 논란이 됐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지난 2월 미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미국 대학에 와 있는 중국 학자나 학생들에 의한 국가안보 위협에 대해 묻자 “중국 교수나 학자, 학생을 정보수집원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미 전역에서 보고 있다”며 “그들은 우리가 소중히 하는 개방적인 연구개발 환경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또 “우리는 중국의 위협이 단순히 중국 정부 차원이 아니라 결국 전체 중국 사회 차원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우리도 학술 분야를 포함해 전 사회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공자학원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안보 우려를 하고 있다”면서 “그들의 활동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적절한 조사 조치도 취해왔다”고 했다. 공자학원이 미국 사회의 첩보를 수집하는 스파이 활동의 일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루비오 상원의원은 지난 3월엔 톰 코튼 상원의원, 조 윌슨 하원의원과 함께 ‘외국 영향력 투명화 법안’도 발의했다. 공자학원을 외국대행기관등록법(FARA)상의 등록 대상 기구로 규정해 감시를 확대하겠다는 취지이다. 공자학원이 외국대행기관으로 등록되면 공자학원을 두고 있는 미국 대학들은 중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5만달러 이상의 기부금품이나 계약 등을 모두 사법 당국에 공개해야 한다.

미국 내에서는 공자학원에 대한 비판이 과도하다는 반론도 있다. 일부 문제가 될 사례가 있지만, 중국어 교육이라는 본래 목적에 충실한 공자학원도 많다는 것이다. 연방 하원의원 출신인 맷 샐먼 애리조나주립대 부총장은 지난 4월 말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 미·중관계 회의에서 “애리조나주립대 공자학원은 대만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한 적이 있고, 초청 토론자의 의견 제기를 막지도 않았다”며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가르치는 것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게 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의 한쪽 얼굴만 볼 것”

미국 사회가 보는 공자학원의 가장 큰 위험은 자라나는 젊은 세대가 중국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가 선전하고 싶은 중국의 한쪽 얼굴만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해 ‘공자학원과 미국 고등교육’ 보고서를 쓴 전미학자협회(NAS)의 레이셜 피터슨 연구원은 “천안문사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대만과 티베트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중국 영토라고 하고, 위구르족과 파룬궁 신봉자에 대한 박해 문제도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면, 결국 학생들은 중국에 대한 일방적인 인상만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공자학원이 괴테인스티튜트나 브리티시카운슬과 달리 대부분 대학 내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점도 문제로 본다.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선전활동을 하는 기관이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학 내에 있으면서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독립성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의 공자학원은 중국인 원장 외에 미국인 원장을 둬 학문적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두 명의 원장을 두는 대학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포린폴리시의 알렌-에브라히미안 기자는 “재정 형편이 좋지 않은 대학들은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수십만달러의 지원금과 중국 여행 기회 등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며 “이런 사정 때문에 공자학원의 검열행위에 대해 강한 반격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대학에 있는 한 중국 학자는 “미국 대학은 상당수가 교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학문적 자유에 대해서는 결벽증을 갖고 있다”며 “미국 정치인이나 고위 관리층의 간섭도 허용하지 않는데, 공자학원 같은 이질적인 외국 기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한 해 수억달러 운영비 지원

공자학원에 중국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점도 여러 억측을 낳고 있다. 공자학원은 중국 교육부 소속이지만, 사실상 12개 정부 부처가 참여해 부총리가 조장을 맡는 국가중국어국제보급영도소조가 관할하고 있다. 12개 부처에는 외교부와 재정부, 상무부, 문화부, 국가발전개혁위 등 주요 부처가 포함돼 있다. 중국 정부는 또 전 세계 공자학원 유지를 위해 한 해 수억달러의 자금도 투입하고 있다. 미국 유명 사립대학 공자학원 중에는 지난 5년간 설립과 운영에 수백만달러가 투입된 곳도 있다고 한다.

중국 내에서는 중국어 보급을 위해 부총리가 총대를 메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웨이신(중국판 트위터) 논객은 “민간 교류 채널이 많은 서방국가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자학원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것은 효과가 크지 않고, 현지 대학의 반발만 사고 있다”며 “차라리 그 돈을 중국 농촌 지역 교육환경 개선에 쓰는 것이 중국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유식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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